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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22화 (322/522)

# 322

리그너스 대륙전기 322

‘잡음?’

호는 손을 들어 올려 병사들의 행군을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통신에 정신을 집중했다. 미세하지만 누군가의 비명이 지지직거리는 노이즈 속에서 섞여 나오고 있었다. 그런 호에게 시진이 말했다.

“엘프의 목소리? 아군의 비명이에요!”

“그래. 아무래도 브로리가 이끄는 부대가 전투를 벌이는 것 같아.”

“언데드일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흑왕의 무덤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는 대부분이 언데드 계통의 몬스터니까. 거기에 부쳐가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말끝을 흐리는 호의 얼굴은 살짝이나마 굳은 모습이었다. 여기서 정면으로 조금만 더 가면 흑왕의 던전에서 등장하는 준 보스급 몬스터이자 문지기 뼈의 기사 풀리츠프가 등장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브로리는 아마 풀리츠프를 상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준 보스급 몬스터라면 아무리 브로리라 해도 상대가 쉽지 않을 텐데…….”

브로리가 무력 능력 EX 등급의 맹장이자 알르드의 에이스 오너라고 한다면 뼈의 기사 풀리츠프 역시 SS등급 던전의 준 보스급 몬스터였다.

물론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에 따르면 흑왕의 던전에서 등장하는 준 보스급 몬스터들은 흑태자 루드비히와 비교해 거쳐 가는 수준의 몬스터라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준 보스급 몬스터들을 향해 무턱대고 공격 명령을 내려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브로리는 효율적으로 준 보스급 몬스터를 공략할 수 있는 공략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팔쿤이 있다 해도 전투가 쉽지 않을 거라고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저건?!”

그리고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장에 도착한 모두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뼈로 만들어진 기사의 미늘창에 아군의 마장기가 부서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라이온레인의 두 배 이상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언데드 기사가 미늘창을 휘두르며 아군의 마장기들을 박살 내고 있었다.

“풀리츠프…….”

몬스터의 정체를 확인한 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거대한 언데드 기사는 흑왕의 던전에 등장하는 준 보스급 몬스터 뼈의 기사 풀리츠프가 틀림없었다.

“아…… 아앗?!”

미늘창의 뾰족한 끝에 꿰뚫린 엑스칼리버가 이리저리 내동댕이쳐지더니 온몸이 박살이 난 채 한 쪽으로 나뒹굴었고, 그 모습을 본 엘 라스엘이 짤막하게 비명을 토해냈다.

안에 탑승한 마장기사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오른쪽 11시 방향! 아군의 마장기 편대 발견했습니다! 부쳐 무리와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병사의 보고에 호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찍이서 브로리의 코우랄라와 팔쿤의 피닉스가 이끄는 마장기 편대가 백은 족히 넘어 보이는 부쳐 무리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보아하니 전투 도중 대열이 무너져 낙오되는 마장기를 풀리츠프가 따로 사냥을 하는 모양이었다.

마장기를 지원해야 할 실버 문이나 브뤼헤아 비쉬와 같은 일반 병사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일반 병사들에 불과한 그들은 언데드들의 파상공세에 전멸을 당한 모양이었다.

“당장 전장에 합류해 아군을 후퇴시킨다! 라이온레인 편대는 마력폭탄으로 적의 보스급 몬스터와 부쳐를 견제한다!”

상황을 파악한 호가 명령을 내리고는 라이온레인의 어깨 부위를 개방하기 시작했다.

곧 조그마한 마력 폭탄들이 호의 마나에 감응해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뼈의 기사 풀리츠프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고는 풀리츠프가 타고 있는 유령 기마의 턱 부분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콰쾅! 쾅!!!

갑작스러운 공격에 풀리츠프가 움찔하더니 고개를 들어 새롭게 나타난 적들을 확인하고는 돌격이라도 할 기세로 자신의 창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라이온레인 편대의 마력 폭탄이 연달아 터지며 주위의 언데드들을 몰살시키자 턱의 뼈를 딱딱거리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브로리! 이때다! 지금 바로 후퇴해!”

“하, 하지만……!”

“서둘러 후퇴해야 합니다! 상황이 좋지 않아요!”

호의 명령에 브로리가 뭐라 대꾸하려고 했지만, 한시진까지 한몫 거들자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지금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30분 뒤, 브로리가 동체 여기저기가 찌그러진 코우랄라에서 풀 죽은 모습으로 내렸다.

“미안. 미안해. 내 실수 때문에 병사들을 잃었어.”

본래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브로리의 자신감 없는 모습에 병사들을 잃은 책임을 물어 그녀에게 화를 내려던 호가 입을 다물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상황이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됐는지는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게……. 병사들을 이끌고 신나게 적들을 물리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쳐 무리들이 공격해 왔어. 백여 마리가 넘었을 거야. 덕분에 아군 병사들의 피해가 너무 커져서 마장기들을 출진시켰는데…….”

브로리는 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흑왕의 던전에 등장하는 언데드 녀석들이 머리를 쓴 모양이었다.

그녀는 언데드들이 부쳐 무리들로 하여금 마장기 편대를 꾀어내고 그사이에 뼈의 기사 풀리츠프가 나타나 아군을 전멸시켰다고 했다. 몇몇 실버 문들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달아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은 상황이라고 했다.

“꼬꼬댁, 꼬꼬. 제 불찰입니다. 가장 먼저 상황을 알아차려야 했는데…….”

팔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언데드들의 움직임이 굉장히 교묘한 탓에, 브로리를 보좌해야 할 팔쿤 역시 속아 넘어간 모양이었다.

“풀리츠프라는 그 언데드 기사. 분명 흑왕의 부하였겠죠?”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까?”

“과거 일군을 이끌었던 기사라는 건가요? 전술이라는 것을 사용하다니……. 마장기를 유인하고, 그 틈을 타 병사들을 공격한 게 틀림없어요.”

“뭐, 우리만 귀찮게 됐지.”

시진의 말에 호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결국 첫 번째 문지기 몬스터인 풀리츠프에게 만여 명이나 되는 SSS랭크 병사들을 잃은 셈이었다. 이제까지의 던전 공략에서 입은 피해 중 가장 큰 피해라 할 수 있는 패배였다.

그래도 여기서 흑왕의 던전 공략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브로리의 패배는 조금 의외였지만, 사실 풀리츠프는 상대하는 법만 알면 공략법이 그리 어렵지 않은 녀석이기 때문이었다.

공격 범위가 넓은 미늘창을 견제하기 위해 방어력이 단단한 마장기를 두 기 배치하고, 유령 군마의 이동 능력을 제약할 수 있는 견제 능력이 뛰어난 마장기를 다수 배치하면 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라이온레인은 마력 폭탄의 존재로 인해 견제 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마장기였다.

문제는 뼈의 기사 풀리츠프와 함께 등장하는 다수의 언데드 몬스터들이었는데, 이는 파괴력이 뛰어난 에이스급 마장기와 병사들의 방진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이런 식으로 공략을 하면 어렵지 않겠네요. 변수는 풀리츠프라는 보스의 능력이겠는데…….”

“폭풍 바람의 신전과 동급의 던전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니 상대하기가 크게 어렵지는 않을 거야.”

시진의 질문에 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다른 영웅들도 호가 세운 작전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흑왕의 군대가 너희들에게! 죽음을 안겨다 주리라!”

가장 먼저 고성과 함께 풀리츠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어서 우르르하고 무언가가 무시무시하게 몰려오는 기척이 전해졌다. 보나 마나 언데드들이 분명했다. 예상대로 부쳐를 포함한 수만의 언데드 무리가 아군의 병사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진형을 갖춰라!!!”

적들이 등장하자 지휘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상대는 일만이나 되는 선봉을 몰살시켰던 죽음의 군사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언데드 군단을 상대해야 하는 마장기사들의 표정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그사이 풀리츠프와 거리를 좁힌 호를 비롯한 마장기 편대는 격돌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야아앗!”

가장 먼저 풀리츠프에게 무기를 휘두르는 건 다름 아닌 브로리였다. 좀 전의 패배 때문일까? 어떻게든 이번 전투에서 공을 세우겠다는 그녀의 의지가 행동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쾅!!

곤봉 혹은 봉으로 변형이 가능한 코우랄라와 무기가 뼈로 만들어진 풀리츠프의 몸체를 내려쳤다.

무력 능력 EX 등급 영웅의 강력한 공격에 마력으로 인해 파랗게 빛나는 풀리츠프의 뼈가 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겨난 금은 곧 원상복구라도 되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흥!”

그런 풀리츠프의 경이로운 회복력에 브로리는 콧방귀와 함께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 풀리츠프의 뼈가 원상복구 되면서 미약하지만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지닌 마나를 모조리 소모시키면 박살이 난 몸체 역시 회복시키지 못할 게 분명했다.

“언제까지 막아내나 보자!”

띵동-

브로리의 무릎 꿇어라가 발동했습니다. 이제부터 브로리의 공격은 치명타로 발동됩니다.

스킬의 발동과 함께 브로리가 맹렬하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마장기사들 역시 공격을 개시했다. 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거나 먹으라고!”

조종간의 버튼을 누르는 순간 온몸에서 무언가가 쭉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라이온레인 ? 플레임의 마력폭탄과 연결된 자신의 마나였다. 이어서 호는 정신을 집중해 자신의 마나와 연결된 마력 폭탄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콰콱하는 소리와 함께 지면을 긁으며 풍압을 만들어내는 풀리츠프의 공격을 피해 마력 폭탄을 풀리츠프의 가까이에 접근시켜야 했다. 잠깐 다른 곳에 정신을 파는 것만으로도 마력 폭탄은 목표했던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 정도쯤이야…….’

하지만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라이온레인을 전용기로 사용하며 수도 없이 마력 폭탄을 다뤄본 호에게 있어 이 정도 수준의 공격은 대수롭지 않은 수준에 불과했다.

그리고 풀리츠프의 측면으로 돌던 마력 폭탄은 전방으로 휘두르는 풀리츠프의 미늘창을 피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쾅! 콰콰쾅!!!

커다란 폭발과 함께 뼈다귀들이 하늘 위로 치솟았다. 그러나 호는 고작 이 정도의 공격으로 풀리츠프를 물리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데들의 커다란 동체를 이루고 있는 마나를 크게 소모시킨 것만큼은 틀림이 없었다. 그 증거로…….

“크아아아아아!!!”

풀리츠프가 괴성을 지르고 있었고, 그 괴성은 다른 언데드들의 소리와 합쳐져 합창으로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패턴 투! 지원군이 나올 거다!!! 팔쿤!”

“치르넬 발사합니다! 꼬끼오!!!”

철컹! 철컹!!!

호의 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피닉스의 날개가 햇살처럼 사방으로 퍼지더니 하나, 둘씩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어서 마장기를 다루는 오너인 팔쿤의 마나와 감응해 전후좌우로 펼쳐지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포물선을 그리며 전장을 날아다니다가 아군을 향해 접근하는 언데드들을 향해 집중 사격을 가했다.

콰콰콰쾅! 쾅! 콰쾅! 쾅!

여덟 기의 치르넬에서 연사되는 마력포가 순식간에 언데드들이 있는 지형을 초토화시켰다. 그러는 동안에도 던전 깊숙한 곳에서는 새로운 언데드 무리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부, 부쳐! 3시 방향. 마장기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후방에서도 적이 나타났습니다!!!”

전투가 계속될수록 언데드들의 수는 점점 더 불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던전 안의 모든 언데드들이 몰려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덕분에 호는 풀리츠프를 상대하기보다는 마력 폭탄을 이용해 불리한 아군의 선전하는 한편, 전황에 따라 언데드들을 상대하는 마장기들의 이동 명령을 내리는 데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브로리와 한시진을 비롯한 알르드의 에이스들은 뼈의 기사 풀리츠프를 상대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특히나 브로리와 함께 풀리츠프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내고 있는 엘 라스엘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다급함이 잔뜩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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