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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17화 (317/522)

# 317

리그너스 대륙전기 117

알르드의 군대는 용맹하고 유능했다. 게다가 치니코프 요새의 방어는 이제르론이라 불리는 리그너스 대륙 최강의 병기 때문에 병사와 마장기의 막대한 희생을 감당하지 않고서는 뚫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바라테이온은 수적 우세와 함께 끊임없이 공격을 가하는 차륜전으로 알르드를 무너뜨리려는 작전을 세웠다. 그리고 그런 자전은 현재까지는 어느 정도 잘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공격!!”

파르르 떨리는 검을 들어 올리며 바라테이온의 영웅이 외쳤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달려드는 병사들을 향해 호가 라이온레인–플레임의 검을 내리그었다.

“바라테이온의 영광이 우리와 함께 하리라!”

호의 공격에 바라테이온의 주축 병사인 로얄 나이트가 자신들의 방패를 들어 올렸지만, 마장기의 무지막지한 힘은 방패를 종잇장처럼 구기며 그대로 로얄 나이트를 깔아뭉갰다.

“물러서지 마라! 커억!”

마장기의 공격에 여럿의 병사가 죽어나가는 모습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리던 영웅이 화살 세례에 몸이 꿰뚫리며 쓰러졌다. 그러고는 흙바닥에서 몸을 꿈틀거리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그러한 영웅의 죽음은 또 다른 영웅의 등장으로 금방 잊혀졌다.

“빌어먹을. 더럽게도 많네! 로우덴 녀석은 대체 뭐하는 거야?!”

끊임없이 몰려드는 적들을 보며 호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머리 기사단의 단장 발드를 물리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라테이온의 정예인 하이에나 기사단이 공격을 개시했다.

그리고 그들을 상대한지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삼십만에 가까운 바라테이온의 군단이 공세를 가하고 있었다.

“으하하핫! 덤벼라! 덤벼!!”

전투를 좋아하는 누군가는 시야를 빼곡하게 채우는 적들의 등장에 신이 난 듯 마장기를 움직이고 있었지만, 지휘관으로써 전황을 지켜보던 호는 생각보다 끈적거리는 적들의 공세에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마장기의 수리는커녕 보급조차도 하지 못할 터였다.

후방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라이온레인들은 어떻게든 가까스로 보급을 마쳐 마장기를 움직이는 마력량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전방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는 한시진이나 브로리와 같은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전투 도중 마장기의 마력이 떨어져 어이없게 목숨을 잃거나 고립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시진아! 뒤로 잠깐 후퇴해서 마정석을 보급해!”

그리고 전황을 살피던 호가 조금이나마 적의 공세가 느슨해진 틈을 타 교대 명령을 내렸다.

“네? 하지만 여기가 뚫리면!”

“라이온레인 편대를 보낼게!!”

호의 명령에 한시진이 데스사이더의 낫에 실린 유형의 마나를 풀고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마치 기다린 것 마냥 행동이 재빠른 것을 보면 그녀 역시 마장기의 마나 관리에 꽤나 신경을 쓰고 있던 모양이었다.

한시진이 빠진 자리는 인간 영웅들로 이루어진 라이온레인의 마장기 편대가 메꿨다. A 등급 마장기인데다가 몇 번의 전쟁 경험을 통해 숙련도가 어느 정도 쌓였기 때문일까? 라이온레인 마장기 편대는 끝도 없이 몰려드는 적들을 상대로 검과 마력포 그리고 마력 폭탄까지 골고루 사용하며 몰려드는 적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크아악! 아악!”

“적들도 곧 지칠 거다!!! 돌격!”

“황제 폐하를 위해!!!”

그렇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장에서는 끊임없이 병사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짙은 혈향이 바람을 타고서 널리 퍼지고 있었다. 그런 혈향을 뒤로 한 채 패왕 패트릭 바라테이온은 높다란 절벽 위에서 자신의 군사들과 알르드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법이야.”

패트릭 바라테이온이 말했다. 뜨거운 김을 뿜어내는 붉은 액체가 어느새 강을 이뤄 출렁거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만큼 전투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벌써 몇 번째 공격이지?”

“지금 4 파가 진행 중입니다.”

패왕의 물음에 한 영웅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부하의 대답에 패왕의 얼굴에 놀라운 빛이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알르드는 벌써 바라테이온의 공격을 네 번이나 막아내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지는 자신이 직접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장의 주도권을 잡지 못한 상황이니 저들의 무용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굳이 들을 필요도 없었다.

“내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녀석들이었군.”

“소환자가 세운 역사가 짧은 세력이지만 라이온레인을 생산할 수 있는 국가입니다. 게다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셰비트리의 등장이 전황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렇지. 셰비트리라……. 엘프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부하의 말에 패트릭 바라테이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인간과 엘프 연합군의 등장하기라도 한 듯 두 세력의 마장기가 힘을 합쳐서 아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패트릭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처럼 다른 종족들끼리 손을 잡는 모습은 리그너스 대륙의 공공의 적이라 불리는 루베릭 대륙의 세력들을 상대할 때나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전황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전장에 투입시킬 수 있는 아군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고, 마장기 전력 또한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적은 이제 슬슬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알르드의 병사들을 포위하던 부대가 정체모를 군대에게 공격당하리라는 것은 패왕 패트릭 바라테이온은 물론이고, 바라테이온 참모들도 예상했던 바가 아니었다.

“꼬꼬댁! 꼬꼬!”

“멍멍! 적들을 포위 섬멸한다!”

핵맨이 지휘하는 군대를 몰살시킨 로우덴은 계속해서 근처에 주둔하고 있는 바라테이온의 군단들을 하나, 둘씩 섬멸하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얼마나 은밀하고 신속했는지, 바라테이온 군사들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때는 이미 몇 개 군단이 사라지고 난 후였다.

“뭐, 뭐라고?!”

그리고 소식을 들은 패트릭 바라테이온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온 몸에 부상이 가득한 전령을 바라보았다.

SS등급의 영웅으로 한 때 대륙에 명성을 떨쳤던 영웅답게 그는 지금의 보고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지 그리고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곧바로 추측할 수 있었다.

“적들의 병력은?!”

“최소 십만 정도로 추정됩니다. 현재 적들은 반으로 나눠 디오, 오리안 군단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마장기도 열 기 이상이 발견되었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패트릭인 인상을 찌푸렸다.

만약 그 병력이 호가 지휘하는 본대와 합쳐진다면 기껏 만들어 놓은 포위망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컸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다. 연달아 몰아쳐야 할 병력들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각 군단장들에게 알려 좀 더 빠르게 적들을 몰아치라고 해라! 그리고 레온의 군단은 즉시 반전해 아군을 공격하는 적의 별동대들을 처리한다!”

패트릭 바라테이온의 명령은 빠르고 신속했다. 게다가 사자기사단의 단장인 레온은 바라테이온이 자랑하는 맹장. 그라면 충분히 알르드의 별동대를 괴멸시킬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있었다.

하지만 알르드의 별동대에는 무용이라면 레온 못지않은 SS등급의 영웅이자 과거 수인 왕국의 십이멀이자 썬더 팔콘이라 불리는 팔쿤이 있었다.

게다가 뛰어난 지략을 지닌 로우덴도 지휘관으로 있었다. 그리고 로우덴은 병사들을 통해 이미 적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적, 움직입니다!”

로우덴의 명령으로 정찰을 나섰던 부대 중 몇몇이 바라테이온의 선발대에 걸려 장렬하게 전투를 벌이다가 전멸했다.

하지만 살아서 귀환한 병사들은 자신들이 알아낸 정보를 로우덴에게 알려주었고, 로우덴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뒤로 슥 넘기고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굳이 상대를 해 줄 필요는 없지. 뒤로 후퇴한다. 멍멍! 그리고 바라테이온이 움직였다는 소식을 빨리 팔쿤 장군에게 전하도록.”

“넵!”

이런 로우덴의 명령은 전투에서 발을 빼겠다는 의도가 아니었다. 그 증거로 알르드의 정찰 부대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레온의 군단이 어디로 그리고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계속해서 감시하고 있었다.

“적의 병사들을 빨리 쫓아내라!”

레온 역시 무능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자신들을 정찰하는 알르드의 부대를 발견할 때마다 족족 그들을 전멸시키거나 무너뜨리곤 했다.

하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브뤼헤아 비쉬는 스나이퍼의 공격을 방어 마법으로 막아내며 허공으로 도망을 쳤고, 수인 기병대인 윙드 훗사르 또한 바라테이온의 챔피언들과 비교해 기동력에서는 우위에 있었다.

결국 레온의 부대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계속해서 자신들의 움직임을 노출시켜야 했고, 이는 로우덴이 하나의 작전을 수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바로 함정과 기습이었다. 강력한 마법병인 브뤼헤아 비쉬가 있는 만큼 마법을 이용한 함정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함정을 만들기 위해 로우덴은 계속해서 본대를 움직이며 함정이 완공될 때까지 레온을 유인했고, 그가 자신의 계획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적의 정찰 부대는 마장기까지 동원하면서 몰살시켰다.

“적! 레드 포인트에 곧 도착합니다! 대략 십여 분 후면 선봉이 지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멍멍. 일반병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마장기 부대가 지나가는 순간 함정을 발동시킨다!”

그리고 레온이 이끄는 마장기 부대가 자신들이 목표했던 포인트로 걸음을 옮기는 순간 로우덴이 들었던 팔을 빠르게 내렸다.

쾅! 콰아앙! 콰쾅!!!

“우왓?! 적들의 함정이다!”

“조심해! 흙에 파묻히지 않도록 마장기의 균형에 신경을 써라!”

그 순간 지면이 쑥 하고 무너져 내리더니 커다란 폭발이 요란스럽게 터지기 시작했다. 브뤼헤아 비쉬들이 만든 마법 함정답게 몇 대의 마장기가 땅 속에 파묻힐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로우덴이 계획한 공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멍멍! 공격!”

“발사!”

무너지듯 마장기가 떨어진 함정으로 라이온레인의 마력 폭탄은 물론이고, 피닉스의 치르넬까지 달려들며 폭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공격을 가하던 도중 밝은 빛 무리가 무너진 지면 속에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뒤, 뒤로 후퇴! 마장기가 폭발한다!”

“아, 안 돼! 아직 저 안에는 마장기사님들이!”

빛 무리의 정체를 알아챈 바라테이온의 병사들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행동에는 한계가 있었다.

곧이어 아까 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커다란 폭발이 터져 나오며 흙무더기가 사방으로 비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사령관인 레온을 포함해 전력의 꽃이라 부를 수 있는 마장기 전력을 허무하게 잃은 바라테이온의 군단이 피닉스와 라이온레인을 앞세운 로우덴의 군단을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팔쿤은 가까스로 살아남은 적 마장기의 공격을 가볍게 넘기면서 그들을 무력화시켰다.

* * *

“황제 폐하를 위하여!”

“호님을 위하여!!!”

전장에서 외치는 병사들의 기합소리는 각자의 절규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만 하루가 지났지만, 바라테이온의 파상공격은 처절할 정도로 끈질겼다. 하지만 호가 지휘하는 알르드의 병사들 역시 불굴의 투지로 버텨내고 있었다.

자신들이 무너지고 호가 목숨을 잃는다면 알르드라 불리는 이상향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히 보급 물자가 많이 있었고, 중요한 전력인 마장기 편대가 그나마 멀쩡한 상황이었기에 바라테이온의 파상공세에도 불구하고 알르드의 병사들은 아직까지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는 시간문제로 보였다. 아군의 병력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적들의 공격은 전투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처럼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투가 시작된 지 하루가 지나 다음날 점심을 넘어선 순간 적들의 공세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멍멍이 녀석. 너무 늦잖아…….”

퀭한 눈으로 자신을 포위한 C등급 마장기들을 상대로 무위를 뽐내고 있던 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갑작스럽게 전장의 상황이 변하며 적들의 공격이 느슨해진 까닭은 분명 로우덴 때문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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