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3
리그너스 대륙전기 313
호는 브로리나 한시진처럼 선두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맹장 타입의 영웅은 아니었다. 지휘관 클래스로 전직을 한 이유도 전장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것이 무서워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장기에 탑승해 있을 때의 그는 항상 전장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었다. 마장기라는 강철의 거인에 대한 믿음과 마장기를 움직이는 자신의 실력에서 나오는 자신감이었다.
그 증거로 호의 마장기술, 특히 라이온레인?플레임을 다루는 실력은 알르드 내에서도 제대로 상대할 수 있는 영웅이 몇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리고 호의 장점은 단순히 마장기를 다루는 실력만이 아니었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통해 수없이 많은 전투를 경험했던 터라 호는 전장을 보는 시야가 놀라울 정도로 넓었다.
“34, 36 실버 문 부대는 지금 당장 뒤로 후퇴한다. 그리고 브뤼헤아 비쉬들은 아군이 있던 위치에 적들이 도달하는 순간 군중 제어 마법으로 적들의 움직임을 제약한다. 그러고 나면 마력 폭탄을 발사하겠다. 제3, 4 엑스칼리버가 MLC(마나 런쳐)로 지원을 하도록.”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호의 명령이 통신구를 통해 각 부대에게로 전달이 되었다.
그리고 성벽 위에서 적들을 막아서고 있던 실버 문 부대가 명령대로 후퇴를 하자 바라테이온의 로얄 나이트들이 사다리를 타고 성벽 위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성벽 위로 올라서고 있는 적은 로얄 나이트만이 아니었다. 스나이퍼들이 걸쳐진 사다리를 성벽 아래에서 호위하고 있었고, 자넷급의 마장기들 역시 단단한 자신들의 몸을 방패 삼아 아군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수의 병사들과 함께 몇 기의 마장기가 성벽 위로 올라선 순간 호가 조종간을 움직이며 말했다.
“지금!”
구우우우웅!
“크으윽!”
“주, 중력 마법이다!”
“마장기! 병사들을 지켜라!!!”
브뤼헤아 비쉬의 중력 마법이 시전되면서 성벽 위로 올라섰던 병사들이 하나둘씩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적들에게 공격을 당한다면 전멸이나 다름없는 피해를 입을 수 있기에 바라테이온의 지휘관들은 아군의 마장기를 향해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마, 마력 폭탄입니다!!!”
하지만 그때 한 스나이퍼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비명 섞인 경고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어서 거대한 폭발이 성벽 위에서 터져 나왔다.
강력한 마나 보호막이 걸린 튼튼한 성벽이라지만 성벽의 보호막에 자잘한 실금이 생겨날 정도의 큰 폭발이었다. 당연히 성벽 위로 올라선 병사들이 무사할 리 없었다.
“브로리!”
그렇게 순식간에 성벽 위의 적들을 쓸어버린 호가 소리쳤다.
“나만 믿으라고!!!”
호의 목소리를 들은 브로리의 코우랄라가 허공 위로 붕 날더니만 성벽 밖의 자넷급 마장기를 향해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몇 번의 주먹질로 상대의 마장기를 단숨에 박살 내는 한편,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달려들기 시작했다.
무력 능력 1782에 신의 힘을 이어받은 자, 제천대성이라는 클래스를 지닌 그녀의 능력은 특출한 녀석이 몇 없는 바라테이온의 입장에서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실력은 패왕이라 불리는 패트릭 바라테이온은 물론이고, 만마의 제왕 쉐르난비체가 나서도 한판 거하게 붙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괴, 괴물이다!!!”
“마장기를 지켜라! 최강 로리가 나섰다!”
이미 브로리의 코우랄라에 몇 번이나 당한 전적이 있는 바라테이온의 병사들이 코우랄라의 앞을 가로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한 기의 마장기를 순식간에 박살을 낸 그녀는 코우랄라의 커다란 양팔을 크게 휘두르며 병사들을 날려버리는 한편, 자신이 목표로 삼은 또 다른 마장기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히이이익?!”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코우랄라의 모습에 바라테이온의 마장기사인 콴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리고 콴은 다급하게 마장기의 조종간을 움직였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마장기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콴에게 마력구를 이용한 통신이 들어왔다.
“콴! 시간을 끌어라! 우리가 포위하겠다! 저 빌어먹을 년을 여기서 잡는 거다!!!”
통신을 보낸 이는 바라테이온의 마장기사단 중 하나인 하이에나 기사단이었다.
‘시간을 끌라고!? 미친!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상대는 A등급 마장기로 평가받는 괴물을 조종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자신의 기체는 C등급에 불과한 자넷급 마장기.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박살이 날 터였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시간을 끄는 것 역시 적의 공격에서 살아남았을 때나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콰앙! 쾅!
하지만 코우랄라의 펀치 두 방에 자신의 기체가 고꾸라지는 것을 보며 콴은 시간을 끌라는 아군의 명령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최강 로리라는 명성은 결코 허명이 아니었다.
“크아아악!”
“으악!”
그리고 브로리의 활약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하이에나 기사단까지 묵사발을 내고는 적들에게 포위를 당하기 전 성벽을 넘어 귀환했다.
성벽 위에서 아군의 라이온레인과 엑스칼리버가 엄호를 했다고는 하지만 홀로 여러 기의 마장기를 박살 낸 것은 전부 그녀의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상대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무사히 귀환한 브로리를 보던 호는 고개를 돌려 멀찍이 떨어져 있는 바라테이온의 깃발을 바라보았다.
바라테이온에도 괜찮은 영웅들은 더러 있었다. 빅터 바라테이온도, 레온도 그중 하나였다. 또한 바라테이온을 골든 크로우 못지않은 군사 강국으로 키워낸 패왕 패트릭 바라테이온도 있었다.
“뭐, 그것도 과거의 영광인가?”
하지만 그는 SS등급의 영웅답지 않게 능력치들이 큰 폭으로 하락해 있었다. 일흔에 달하고 있는 나이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패왕의 위엄이 어디 가지는 않았겠지만, 직접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뒤에서 움직이는 것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패트릭 바라테이온이 조금만 무능했다면 조금 더 쉽게 전투를 풀어나갈 수 있었을 텐데…….’
호는 정보창을 통해 패트릭 바라테이온의 능력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수인 왕국의 십이멀과 비슷한 수준의 영웅이었다면 치니코프 공성전은 이미 알르드의 승리로 끝이 났을 터였다. 하지만 서로 간에 사력을 다한 전쟁은 벌써 열흘째 계속되고 있었다.
“이제르론! 앞으로 삼십 분 후에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삼십 분? 그렇다면 이제 슬슬 물러나겠네.”
부하의 보고에 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런 호의 예상대로 성벽을 넘어서려고 했던 바라테이온의 병사들이 썰물처럼 뒤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퇴각만큼은 정말 칼 같네요. 이제르론의 공격을 두려워하는 것은 알겠는데……. 조금 비효율적으로 병사를 움직이는 것 같아요. 패왕이라는 명성이 조금 아까운데요?”
“나이만큼이나 생각이 많아진 모양인가 보지.”
어느새 자신에게로 다가온 한시진의 말에 호는 그렇게 대답했다. 분명 패트릭 바라테이온은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매뉴얼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의 걸물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계속된 전투를 통해 호는 그가 지닌 패왕이라는 명성이 과거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치니코프가 바라테이온의 공세를 또 한 번의 막아낼 무렵, 모에드 왕국과 국경을 맞닿고 있는 바라테이온의 영토인 프리케의 주도 마이아드에서는 열띤 격론이 교환되고 있었다.
“싸워야 합니다!”
“미쳤소? 우리 영토의 힘으로 그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보시오?!”
“블루 스케일의 육상 병력을 상대로 물러난다고? 대륙의 모든 이들이 우리를 비웃을 것이오!”
“모에드 이 배신자 녀석들! 우리의 전력이 치니코프에 있는 틈을 타서 공격을 해오다니!”
바로 블루 스케일과 모에드 연합군이 자신들을 향해 진군해 오고 있다는 정보가 전해진 탓이었다. 그리고 응전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모든 물자를 가지고 후퇴, 다른 영토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부딪쳤다.
하지만 연합군이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 마이아드의 귀족들은 어쩔 수 없이 전투에 참여해야만 했다. 신성 왕국과의 전쟁 이후 새롭게 모에드 왕국의 장군으로 임명이 된 힐몽거의 움직임이 번개처럼 신속했기 때문이었다.
이동 속도를 위주로 개조가 된 C등급 마장기들을 앞세운 그는 순식간에 바라테이온의 영지 세 개를 초토화시켰고, 바라테이온을 공격한 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마이아드의 영주성에 모에드의 깃발을 걸어버렸다.
* * *
“마이아드 점령! 프리케가 적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선세크림에서도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힐몽거가 이끄는 연합군이 재정비를 끝내고 선세크림의 공격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알르드의 지원군이 40㎞ 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수는 약 이십만 가량으로 추정됩니다!”
계속되는 보고를 들으며 빅터 바라테이온은 속으로 빌어먹을 이라고 중얼거렸다. 들어오는 보고마다 아군이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뿐이었다.
군사를 일으킬 때만 하더라도 순식간에 블루 스케일을 점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군의 군대는 치니코프 영지 하나를 점령하지 못하고 벌써 며칠째 발이 묶여 있었다.
심지어 치니코프에서 전사한 병사의 수는 벌써 이백만을 넘어서고 있었다. 마장기는 물론이고, 뛰어난 마장기사들 역시 많은 수가 치니코프 공방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만큼 적들의 피해도 상당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별다른 위안거리가 되지 않았다.
알르드의 패자인 윤 호를 비롯해 상대의 에이스라고 부를 수 있는 전력은 모두가 무사했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해 아군은 사자기사단의 부단장인 레이자가 전투 도중 행방불명이 되었으며, 하이에나 기사단은 괴멸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대머리 기사단의 전력이 멀쩡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전력이 지금의 불리함을 뒤바꿀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모에드와 블루 스케일이 손을 잡다니……. 이거 물러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블루 스케일의 군대가 우리의 후방에 있다면 그들의 영토는 텅텅 빈 게 틀림없습니다. 당장에라도 군대를 움직여 적들의 영토를 유린해야 합니다.”
“치니코프 성을 그냥 두고 블루 스케일으로 방향을 틀겠다는 말이오? 그랬다가 후방을 얻어맞기라도 한다면?!”
계속된 패전 때문일까? 패트릭 바라테이온이 있는 회의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하는 귀족들의 목소리에는 빈정거림이 가득했다.
그런 귀족들의 행태에 빅터는 불쾌감을 느끼며 허리춤에 찬 자신의 검을 매만졌다. 하지만 검을 휘두른다고 해서 상황이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그 순간 조용히 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패왕이 입을 열었다.
“열 개 사단을 두고, 뒤로 물러난다. 치니코프 요새에서 윤 호를 유인하는 거다. 그리고 빅터 너는 사자기사단과 함께 병사 오십만을 이끌고 연합군 잔당을 박살 내라.”
“저도 알르드를 상대하겠습니다.”
패트릭 바라테이온의 명령에 빅터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연합군이라고 해봤자 별 볼 일 없는 녀석들일 게 분명했다.
그럴 바에는 본대에서 알르드를 상대하는 게 공을 세울 기회가 더욱 많았다.
“아니. 곧바로 떠나라, 빅터. 후방이 안정되어야만 전쟁을 계속할 여력이 생긴다.”
“……알겠습니다.”
한 번 자신의 의견을 꺼내기는 했지만 빅터는 곧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아버지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그렇게 빅터가 이끄는 오십만의 병사가 스무 기의 마장기와 함께 힐몽거가 이끄는 연합군을 상대하기 위해 떠났다.
그와 함께 치니코프 성을 공격하고 있던 바라테이온의 군대 역시 후퇴 준비를 시작했다. 물론, 위장이었다.
그리고…….
띵동
-로우덴이 신산귀모를 사용했습니다. 자신보다 지력이 떨어지는 적들의 책략을 90%의 확률로 간파할 수 있습니다.
이런 패트릭 바라테이온의 계책은 제갈공멍 로우덴에 의해 전부 파헤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