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너스 대륙전기-311화 (311/522)

# 311

리그너스 대륙전기 311

“크아아악!”

“라쿤!!”

통신구를 통해 라쿤의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상대의 공격에 제대로 당한 모양이었다.

빠르게 정보창을 살펴봤지만 다행히도 라쿤의 프랭스가 파괴되었다는 메시지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그것도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리고 브로리가 외치듯 말했다.

“호! 내가 가겠다!”

“잠깐! 너는 너무 멀어! 네가 도착하기 전에 프랭스가 버티지 못할 거다!”

브로리는 라쿤이 배치된 남문과는 정반대인 북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가 라쿤을 지원하려면 치니코프 영지를 완전히 가로질러야 했다. 게다가 이동속도가 빠르지 않은 코우랄라로는 한세월이 넘게 걸릴 일이었다. 다행히 남문 근처에는 브로리만큼이나 믿을 수 있는 여인이 배치되어 있었다.

“제가 가고 있어요. 곧 전투에 들어가겠습니다.”

바로 한시진이었다. 벌써 전투에 들어가겠다고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시진은 라쿤이 지원 요청을 했을 때부터 이미 움직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라쿤을 공격하고 있는 상대는 한 명이 아니었다. 한시진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 혼자만으로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모든 마장기사들은 맡은 자리에서 적들을 물리치도록. 프랭스의 지원은 한시진과 함께 내가 가겠다.”

호가 자신의 조종간을 당기며 말했다. 상대는 분명 바라테이온의 에이스. 혼자라면 불안하겠지만 한시진과 함께라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이 들었다.

‘빨리 가야겠군.’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이는 요란한 마나의 폭풍은 이미 마장기들끼리의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 * *

“빌어먹을! 저 녀석은 대체 뭐야?!”

마력 폭탄에 당한 프랭스를 마무리하려던 레온과 레이자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뒤를 덮치는 검은색의 마장기에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데스사이더?! 알르드의 검은 악마!”

그리고 적의 정체를 확인한 레이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외치듯 말했다.

“거, 검은 악마?”

“레온! 조심해야 해요. 상대는 알르드의 에이스예요!”

검은 악마에 대한 위명은 바라테이온의 영웅인 그녀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비록 소환자에 불과하지만 각종 전쟁에서 활약한 그녀의 명성은 한 세력의 에이스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였다.

“에이스? 그렇단 말이지?!”

레이자의 말에 레온이 눈을 빛냈다. 수인족의 전설급 마장기는 박살내지 못했지만, 저 녀석을 잡을 수만 있다면 더 큰 성과를 올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마나 소드를 들고 공격을 하려던 레온은 머리카락이 쭈뼛 솟는 느낌에 움직임을 멈추고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카카카칵!

그리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자리에 데스 사이더의 낫의 긁고 지나가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조금만 늦었어도 사지의 부위 하나 쯤은 날아갔을 공격이었다.

“레온! 상대는 마족의 최상급 마족이자 수인 왕국의 십이멀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예요! 합공해야 합니다!”

“빌어먹을. 그 정도의 강자란 말이지? 아니, 갑자기 튀어나온 세력에 웬 실력자들이 이리 많아?!”

연인의 말에 레온이 투덜거리며 답했다.

수인 왕국의 전설급 마장기들이야 라우드 공방전을 통해 만만치 않은 녀석이라는 것은 익히 경험한 바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녀석 역시 그 못지않은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니, 서늘한 느낌을 줄 정도의 날카로운 기세는 방금 전 자신들이 제압한 마장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압박감을 뿌리고 있었다.

“마력 폭탄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묶어볼게요!”

“그렇다는 이야기는 나보고 정면을 막아달라는 이야기겠지?”

척하면 척.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왔던 사이인 만큼 레온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데스 사이더가 연기처럼 사라지더니 측면 쪽에서 나타나 레온의 라이온레인을 덮쳤다.

카아아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과 낫이 부딪치며 마나의 폭풍을 만들어내었다. 치지직 거리며 타오르는 마나의 부딪침은 위험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무슨 힘이……! 으리야아아앗!!”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데스 사이더의 낫을 막아내던 레온은 힘을 집중시켜 상대를 밀어내고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인간들의 마장기에 비해 마족의 마장기가 성능상 뛰어나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눈앞의 마장기는 거대한 동체만큼이나 힘 하나만큼은 대단했다.

‘그렇다고 움직임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일대일로 붙었다면 꽤나 골치를 썩였겠는데?’

하지만 레이자가 마력 폭탄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만 있다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까지는 정면충돌을 피하고 회피에 집중한다면…….

그 순간 자신의 눈앞으로 무언가가 우수수 덮쳐오는 것을 보며 레온은 급하게 숨을 삼켰다. 그리고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콰아앙! 쾅! 콰아아앙!!

성벽 위에서 터진 폭음은 치니코프 남문에서 벌어지고 있던 전투를 순간적으로 멈출 수 있을 정도로 요란했다. 하지만 그런 폭발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마장기가 멀쩡한 모습을 보이자 호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빌어먹을. 성벽만 조금 날려먹었네.”

전투에 합류하자마자 상대를 제압할 요량으로 마력 폭탄을 이용해 기습적인 공격을 가했지만,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한 것이다.

“제법 한가락 하는 녀석들인가 보네요.”

“사자기사단. 바라테이온의 최정예 마장기사단 중 하나야.”

상대의 정체를 확인한 호는 시진의 말에 대답하며 영웅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사자기사단의 단장인 레온과 레이자. S 등급의 영웅인 그 둘의 합공이라면 라쿤의 프랭스가 당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거 커플 싸움이 되겠는데?”

“커플 싸움요?”

사자기사단의 단장과 부단장인 레온과 레이자는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유저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진 유명한 연인관계였다.

그리고 호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시진이 데스 사이더의 낫을 휘두르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결코 질 수 없겠는데요? 다른 것도 아니고 커플전이라면!”

외침과 함께 데스 사이더가 레온의 기체를 향해 정면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레온!”

레온에게 달려드는 한시진의 움직임에 레이자가 마력 폭탄을 움직여 데스 사이더를 저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력 폭탄은 호가 사용한 마력폭탄에 의해 가로막히고 있었다.

펑! 퍼퍼펑!

마력 폭탄끼리 부딪치면서 폭발을 만들어내었고, 마나가 타들어가는 비릿한 냄새와 함께 주위를 메운 연기 사이에서 데스 사이더가 라이온레인의 옆구리를 불시에 후려쳤다.

“크허억!!”

순간적으로 얻어맞은 라이온레인이 물수제비마냥 성벽 위에서 튕겨져 나가면서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런 라이온레인을 향해 시진이 데스 사이더의 마력포를 사용하려는 순간 몇 개의 빛줄기들이 데스 사이더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자기사단의 마장기들이었다.

상대의 공격에서 재빠르게 몸을 뺀 한시진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거 커플전 아니었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쟤들은 아닌가 보네?”

“나쁜 놈들이네.”

농담을 하듯 말을 하면서 호는 빠르게 눈을 굴렸다. 얼핏 보니 상대의 마장기는 엑스칼리버와 골드 이글로 이루어져 있었다. 원거리 공격과 함께 지원 사격에 능한 녀석들이었다. 저 녀석들의 견제를 피하면서 레온과 레이자 커플을 상대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껄끄러워 보였다.

“케반스의 엑스칼리버 편대는 남문 쪽으로 이동. 적들의 마장기 편대를 상대한다.”

하지만 브뤼헤아 비쉬의 군중제어 마법과 아군의 마장기 편대의 지원이 있다면 충분히 물리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호의 라이온레인–플레임의 어깨가 열리며 마력 폭탄들이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우리 편이 올 때까지 일단 시간 좀 끌어볼까?”

호의 마나에 영향을 받는 마력 폭탄들이 훨훨 날아 성벽 밖으로 떨어져 내렸다.

“피해!! 피해!”

“궁수들은 저 구슬들을 요격하라!”

마력 폭탄의 존재를 눈치 챈 바라테이온의 영웅들이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라이온레인의 마력 폭탄은 일정한 궤적을 그리며 떨어지는 게 아닌 호의 의지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폭탄들이었다.

S랭크 궁수인 스나이퍼들이 폭탄을 향해 석궁을 발사했지만, 그 뿐이었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 마력 폭탄들은 굉음과 함께 주위의 모든 것들을 빨갛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어느새 한시진은 성벽 위에서 물러나려는 레이자의 라이온레인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었다.

콰앙! 쾅!

“크윽!!”

레온도 이탈한 만큼 성벽 위에서 후퇴를 하려던 레이자는 순식간에 자신을 따라잡은 데스 사이더의 공격에 재차 검을 휘둘렀다.

사자기사단의 부단장이라는 직함은 땅따먹기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듯 레이자의 움직임에는 아무런 군더더기가 없었다. 하지만 데스 사이더의 실력은 그녀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카앙! 캉!

낫의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지면서 하나둘씩 라이온레인의 동체에 생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조금만 더 깊게 박혔다면 기체 내부의 마력회로가 망가졌을 정도로 깊숙한 것들도 있었다.

‘이건…… 위험해.’

레이자의 머릿속으로 경고성이 울려 퍼졌다. 어떻게든 여기서 몸을 빼야 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분명 상대에게 제압을 당할 게 틀림없었다.

“레온! 도와줘요!”

“아?! 레이자!!”

레이자의 다급한 외침에 충격으로 인해 잠시 멍한 상태에 빠져 있던 레온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상황을 확인하고는 낯을 일그러뜨렸다. 치니코프의 성벽 위에서 레이자의 마장기가 홀로 적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모두 성벽 위의 검은색 마장기를 공격해! 부단장을 구해야 한다!”

그렇게 명령을 내린 레온은 아까 전 자신이 밟고 올라왔던 성벽의 무너진 잔해를 확인하고는 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시 잔해를 밟고 성벽 위로 올라설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레온의 움직임은 호에게 파악이 되고 있었다.

“시진아! 성벽 위로 적이 올라오려고 하고 있어! 지금 상대하고 있는 녀석을 성 안으로 떨어뜨려!”

“알았어요!”

말과 함께 호가 숨을 후읍 들이키고는 라이온레인의 마력건으로 커다란 잔해를 박살내기 시작했다. 무너진 성벽을 타고 상대가 오를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마장기의 방어벽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이어서 한시진의 데스 사이더가 양손으로 낫을 쥐고는 배트를 휘두르듯 상대의 마장기를 후려치는 모습에 호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레, 레이자!!”

그 광경을 본 레온이 기겁을 하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성벽 위로 뛰어오를 수 있는 잔해는 이미 가루가 되어 있었고, 무너진 성벽을 타고 달려들기에는 적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레이자의 라이온레인이 치니코프 성 안으로 떨어져 내리고 그와 동시에 데스사이더의 모습을 사라지는 것을 본 레온이 눈을 치뜨며 외쳤다.

“모두들 레이자를 구출한다!!”

“MLC?! 적들에게 엑스칼리버 편대가 합류했습니다. 라, 라이온레인도 보입니다!”

“단장님! 적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레온의 명령과는 달리 사자기사단은 치니코프의 성내로 진입을 할 수가 없었다. 성벽을 엄폐물로 삼은 실버문과 브뤼헤아 비쉬의 단단한 방어와 마장기의 포격은 아무리 사자기사단이라 할지라도 무시할 수 있을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라이온레인의 마력 폭탄들이 성내로 접근하는 아군을 향해 달려들며 눈부신 빛의 폭발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레온은 땀에 흠뻑 젖은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