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너스 대륙전기-309화 (309/522)

# 309

리그너스 대륙전기 309

치니코프로 쳐들어오는 망명 귀족 무리에는 모제스 클리퍼드와 함께 토르니 공작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병력은 호가 의외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숫자가 제법 많았다.

게다가 병력의 구성 역시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로얄 나이트, 정예 레인져 그리고 엘리멘탈 매지션도 있군. 전부 A랭크 이상의 병사들인데?”

“소수지만 기병대도 포함되어 있는데?”

“마장기도 일곱 기나 보이는군.”

임무를 받아 영지에서 일을 하다가 적들이 쳐들어온다는 말에 소집을 당한 영웅들이 적들을 보며 각자 말을 내뱉었다.

“멍멍. 블루 스케일의 귀족들이 저런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필시 바라테이온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하기야 걔네들이 무슨 세력이 있다고 저런 군대는 만들었겠어?”

“그렇습니다. 멍멍. 그렇기에 이번 공격은 바라테이온의 꼼수가 틀림없습니다. 저들을 희생양으로 내세워 우리들의 전력을 파악하려는 거지요.”

그리고 상황을 파악한 로우덴이 말했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굳이 블루 스케일의 핏줄인 모제스 클리퍼드까지 전장에 내세울 필요가 있었을까요?”

한시진의 의문에 로우덴이 잠시 생각하는 듯 눈을 굴렸다가 말을 이었다.

“멍멍.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노린 것이죠. 만약 이번 전쟁에서 모제스 클리퍼드가 우리들의 손에 중상이라도 입거나 사망을 한다면 바라테이온은 우리들을 비난하며 본격적으로 군사를 움직일 겁니다. 멍.”

“……그럴 수도 있겠네요.”

현재 치니코프 영지로 밀려드는 적들의 숫자는 약 7만가량. 거기에 마장기도 일곱 기나 끼어 있었다. 그 중 B등급 마장기는 한 기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있는 마장기 전력은 아니었다. 평범한 영지 정도는 충분히 박살낼 수 있을 수준이었다. 그리고 바라테이온의 참모부는 저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치니코프에 주둔하고 있는 알르드 역시 숨김없이 전력을 꺼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우리의 전력을 알고 싶다고 묻는다면 보여주는 것이 인지상정.”

“이 대륙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호님의 대륙 통일을 위해! 멍멍.”

“잠깐!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고요. 오빠, 바라테이온의 의도가 그렇다면 차라리 전력을 숨기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약한 모습을 보여 적들의 방심을…….”

“왜? 어차피 블루 스케일을 노리고 쳐들어 올 애들인데? 차라리 우리가 만만한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더욱더 시간을 벌지. 그리고 전력 노출 따위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어.”

호가 고개를 돌려 포신이 길쭉하게 나와 있는 포탑을 보며 말했다. 이제르론은 한창 마력을 충전하고 있었다.

“저런 오합지졸 따위. 전력을 다하지 않고도 충분히 박살낼 수 있거든.”

이제르론의 위력을 보지 못한 시진은 모르겠지만, 호는 이제르론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최종병기라 불리는 이제르론. 블루 스케일이나 바라테이온의 입장에서는 이제껏 보지 못한 위력의 방어 타워일 터였다.

그리고 망명 귀족들의 선두에 있는 마장기 편대가 이제르론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섰고, 그 뒤로 병사들도 하나 둘씩 사정거리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성벽과는 거리가 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 정도의 거리가 이제르론의 사거리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 같은 행군이었다.

“좋아. 1호 이제르론 발사!”

호의 외침과 동시에 이제르론을 지휘하는 영웅이 명령을 전달했다. 그리고 길쭉하게 튀어나온 포신에서 치지직거리며 마력의 스파크가 세차게 튀기 시작했다.

“이제르론 충전 중! 출력 40! 50!”

“거리 260! 상대의 마장기 편대를 노려라! 한 번에 일곱 기 모두를 쓸어버리라고!!”

“출력 90! 100! 충전이 완료되었습니다.

“발사아!!”

영웅의 외침과 함께 엄청난 양의 마력이 이제르론의 포신에 뭉치기 시작했다. 마력에 민감한 SSS랭크의 병사인 브뤼헤아 비쉬들이 눈을 휘둥그레 뜰 정도의 엄청난 양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망명 귀족들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저, 저게 뭐지?!”

“고급 방어 타워인가? 엄청나게 긴 포신인 걸? 근데 벌써 발사를 하려는 거야? 여기까지 사거리가 나온다고?”

“모두 방어 준비! 방어 준비! 방어 타워에서 날아올 무기를 조심하라!”

치니코프의 방어시설이 가동하는 것을 본 망명 귀족들이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의 앞으로 마장기들도 쿵쿵 움직이며 금속의 방어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성벽의 방어시설을 상대하는 전형적인 대응 방법이었다.

문제는 치니코프의 방어 타워가 그들이 이제까지 경험했던 일반적인 방어타워와는 차원이 다른 건물이라는 점이었다.

구우우우

콰아아아앙!!!

그들의 입장에서는 난생 처음 듣는 굉음과 함께 함께 쏘아져 나간 이제르론의 마동포는 순식간에 마장기의 벽을 꿰뚫었고, 지면과 맞닿아 폭발하며 커다란 버섯구름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공격에 산화해버리는 병사들의 모습에 토르니 공작의 동공이 크게 확대가 되었다.

“저, 저게 무엇이냐?!”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마장기도 버티지 못했다. 그 증거로 마동포가 뚫고 간 마장기의 부위에서는 치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금속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당연히 피와 살로 이루어진 병사들이 버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모두 뒤로 후퇴한다! 포탑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난다!!!”

그래도 몇 번의 전쟁을 경험한 베테랑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토르니 공작은 빠르게 마음을 추스르고는 병사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 때였다.

“저들의 방어탑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아까와 똑같은……! 동일하게 생긴 방어탑이 네 기나 보입니다!”

병사 한 명이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말대로 치니코프 영지에 건설되어 있는 이제르론은 총 네 기. 원래 호가 목표했던 열기에 비해서는 많이 모자란 숫자였지만 토르니 공작을 필두로 한 이들에게 있어 네 기의 이제르론은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콰앙! 쾅! 콰아아앙!

세 번의 폭발이 더 이어졌고, 먼지 구름이 하늘 높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 기의 이제르론을 사용해 적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호는 실버 문과 브뤼헤아 비쉬 그리고 몇 기의 라이온레인을 출진시켜 이제르론의 공격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패잔병들을 어렵지 않게 제압했다.

안타깝게도 토르니 공작을 포함해 이제르론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블루 스케일의 고위 망명 귀족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타고 있던 마장기가 이제르론의 최우선 목표였던 탓이었다.

“그 녀석도 휩쓸렸나 보네.”

모제스 클리퍼드 역시 마찬가지로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자신들과 동맹이나 다름없는 블루 스케일의 핏줄을 죽인다는 게 조금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전장에서 만난 사이.

거기까지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투 결과는 전장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던 바라테이온 정찰병들의 눈에도 톡톡히 목격되고 있었다.

“그래서 전멸했다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전부 제 불찰입니다.”

란틴 산맥 서쪽 영토에 있는 바라테이온 영지 배라운드의 회의실에서 빅터가 한 남자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는 이들 중에는 사자기사단의 단장인 레온을 비롯해 바라테이온에서 이름난 기사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 남성이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르론이라……. 소환자라는 녀석이 제법 재미있는 행동을 한 모양이야.”

“송구스럽지만 그들이 보유한 기술력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믿기가 힘들 정도로 뛰어납니다. 설마 라이온레인도 모자라 대륙의 방어 시설 중 최고로 손꼽히는 이제르론까지 개발을 완료했으리라고는…….”

“그쪽으로 머리가 제법 돌아가는 녀석들이 있는 모양이로군.”

패왕 패트릭 바라테이온이 탐이 난다는 어투로 말했다. 그런 노예, 아니 연구원들이 있다면 바라테이온에게도 엄청난 도움이 될 터였다. 그리고 빅터가 표정을 살짝 구기며 말했다.

“어쨌든 치니코프 영지에 건설된 이제르론의 존재로 인해 병사들의 발이 묶였습니다. 이제르론의 엄청난 위력을…….”

“그게 무슨 상관이지?”

“네?”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빅터를 보며 패트릭 바라테이온이 입을 열었다.

“이제르론은 강력한 위력만큼이나 마력 충전의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방어 시설이다. 빅터, 병사들을 진군시켜라. 그리고 이제르론이 사용되는 것이 확인되면 마장기들을 움직여 성벽을 무너뜨려라.”

“그,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병사들의 피해가 엄청날 터였다. 이제르론의 마동포는 병사들은 물론이고 마장기조차도 막아낼 수 없었다. 게다가 폭발범위도 굉장히 넓었다. 적어도 몇 천 아니 만 단위의 병사들이 죽어나갈 터였다. 하지만 패왕의 결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당장이라도 병사를 움직일 기세였다.

“멍청한 놈! 치니코프 영지의 녀석들에게 시간을 주지 마라, 빅터! 저들은 얼마 되지 않는 시간에 네 기의 이제르론을 건설한 녀석들이다! 그런 녀석들에게 시간을 주면 어떻게 되겠느냐!”

“아!”

모두들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패왕의 말대로 가만히 시간이 흐른다면 치니코프의 방어는 더욱더 견고해 질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치니코프의 함락은 더욱 더 어려워질 터였다.

치니코프를 무시하고 블루 스케일로 직접 공격해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치니코프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A등급 마장기를 비롯해 알르드의 에이스들이 성문을 열고 나오기라도 한다면 뒤통수가 서늘하다 못해 깨지는 것 정도는 각오해야 했다. 그리고 국경에 뭉쳐 있던 바라테이온의 군대가 본격적으로 움직임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 * *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멍멍. 생각보다 패트릭 바라테이온의 움직임이 굉장히 빨랐습니다. 역시 패왕이라는 명성은 프리스비로 딴 게 아닌 모양입니다. 멍멍.”

망명 귀족들의 공격이 있고 난지 불과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치니코프 영지는 바라테이온의 병사들로 인해 포위가 된 상황이었다.

덕분에 물자의 수송 역시 원활하지 못한 까닭에 이제르론의 건설도 중단이 된 상황이었다. 이미 건설이 완료가 된 네 기의 이제르론은 건재했지만, 공사가 진행 중인 이제르론도 세 기나 되었기에 호는 그런 패트릭 바라테이온의 빠른 행동이 굉장히 얄밉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서 적들의 움직임은?”

“멍멍! 본격적인 공격은 내일 혹은 모레부터 시작할 것 같습니다.”

“바라테이온에서 무슨 수를 쓰지는 않을까?”

“으음…….”

로우덴이 입술에 손을 가져다대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띵동.

-로우덴이 신산귀모를 사용했습니다. 자신보다 지력이 떨어지는 적들의 책략을 90 % 의 확률로 간파할 수 있습니다.

잠시 후, 띵동 하는 소리와 함께 호의 눈앞으로 로우덴이 스킬을 사용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SS랭크의 스킬인 신산귀모. 로우덴의 클래스인 ‘세계를 손아래에 둔 책사–제갈공멍’의 고유 스킬이었다. 자신보다 지력이 떨어지는 적들이라는 전제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로우덴의 지력 수치는 911로 대륙을 통틀어서도 비교대상이 몇 없을 정도로 굉장히 높은 수치였다.

그리고 로우덴의 입술이 느릿하게 꿈틀거렸다.

“아무래도 일반 병사들로 하여금 이제르론을 소모시키고 난 후, 정예 전력을 투입할 생각으로 보입니다. 멍멍. 그게 저들의 지닌 장점이니까요.”

“결국 물량 공세라는 말이네.”

호가 아직 완공이 되지 않은 이제르론을 보며 아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라테이온의 군세는 알려진 것만 해도 수백만에 달했다. 그에 반해 치니코프에는 30만 정도의 병사만이 주둔하고 있었다.

물자는 풍부했지만, 병사의 수가 부족했다.

“림드 산맥과 블루 스케일로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멍멍.”

“벨이 또 고생을 하겠네.”

“유능한 여인입니다. 멍.”

로우덴에 말했다. 의례하는 것이 아닌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그리고 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림드 산맥의 군주인 그녀는 알르드의 내정 전반을 책임지는 영웅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들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세이라 클리퍼드에게도 연락을 해서 도베르만 제독이 움직여줬으면 한다고 해.”

“……바라테이온은 모든 영토가 내륙에 있지 않습니까? 멍멍?”

“란틴 강을 통해서 거슬러 오른 다음에 모예드 왕국의 국경을 통해서 공격하면 되잖아? 어차피 바라테이온의 모든 병력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그쪽은 뭐, 텅텅 비어있는 상태일걸?”

“오오! 그렇겠군요!”

문제라면 모에드 왕국이 바라테이온으로 향하는 길을 빌려주느냐는 점이었는데, 라헬교의 난 사태로 사이가 벌어진데다가 같은 칠 왕국을 공격하려는 바라테이온의 행태에 가장 큰 비난을 하고 있는 왕국이 그들인 터라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럼 바로 연락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멍멍.”

대답과 함께 나가는 로우덴의 뒷모습을 보던 호는 눈을 돌려 탁자 위에 놓인 전략 지도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말들이 배치되어 있는 지도에는 바라테이온의 병사들을 형상화한 말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이거 SS등급 클래스로 승급 한 번 하려다가 제대로 붙게 됐네. 빌어먹을 던전. 하필이면 바라테이온 왕국에 있어서는.”

그리고 호가 한숨과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이번 전쟁은 조금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