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7
리그너스 대륙전기 307
“나의 강력한 힘 앞에 절망하고 무릎 꿇어라!”
스킬의 발동과 함께 브로리가 마장기의 조종간을 움직였다. 두꺼운 코우랄라의 양팔이 뒤로 쭈욱 당겨졌고, 마치 박수를 치는 것마냥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라이온레인을 찍어 눌렀다.
“크어어억?!”
엄청난 압력과 함께 몸이 튕겨져 나가며 라이온레인의 오너의 입에서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원인족의 전설급 마장기인 코우랄라는 가뜩이나 팔 힘이 강력한 릴라릴라를 베이스로 한 마장기였다. 거기에 무력 1782인 브로리의 능력이 가미되어 있었다.
아무리 장갑이 단단한 라이온레인이라 해도 버텨내기 힘든 파괴력이었다.
“무, 무슨……!”
그리고 아군이 공격당하는 모습을 본 레온은 엄청난 충격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여야만 했다.
A등급 마장기인 라이온레인이 단순한 공격 한 방에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찌그러져 있었다. 파괴나 반파 수준은 아니었지만, 라이온레인의 장갑을 눈에 보일 정도로 찌그러뜨렸다는 것은 상대 마장기의 힘이 그만큼 엄청나다는 이야기였다.
“크아아아악!”
하지만 통신구를 통해 들려오는 아군 마장기사 오드렌의 비명에 레온은 분노로 불타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신의 뒤로는 마장기에 탑승한 두 명의 사자기사단원과 라우드 성의 마장기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군을 돕기 위해 그가 자신의 애기를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콰콰쾅!
“이런!”
자신의 움직임을 방해하기라도 하듯 피닉스의 치르넬이 탄막을 만들어냈고, 그로 인해 레온은 뒤로 몸을 빼야만 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오드렌의 라이온레인은 브로리의 코우랄라에게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아래, 오른쪽, 왼손! 아래, 오른쪽, 왼손! 왼발, 오른발, 아래, 오른쪽, 왼손! 아래, 오른발, 왼손, 양손!”
모 게임에 등장하는 머리를 위로 한껏 치켜 올린 캐릭터의 콤보처럼 브로리의 코우랄라가 묵직한 움직임을 보이며 계속해서 라이온레인을 강타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A등급 마장기의 장갑이 움푹움푹 파여 들어가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힘이로군. 찍찍!”
“멍. 브로리 님의 클래스 명 몰라? 무려 신의 힘을 이어받은 자라고.”
라쿤의 말에 대꾸를 하는 사드나인의 얼굴에는 떨떠름함이 가득했다. 훈련장에서 저런 무시무시한 힘으로 자신을 공격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때 통신구를 통해 팔쿤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잡담은 나중에! 적들이 온다! 꼬꼬댁!”
“네이!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사드나인은 고개를 돌렸다. 팔쿤의 말대로 멀리서 적들이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군이 공격당하는 모습에 행동을 개시한 모양이었다.
“멍멍! 그러면 어디 이 몸도 움직여 볼까?!”
“라쿤, 프랭스! 출동합니다!”
이어서 두 기의 마장기가 전투에 합류했고, 라우드 성 앞 평원에서 치열한 마장기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라테이온의 압도적인 패배였다.
시작부터 라이온레인 급 한 기가 브로리의 공격에 박살이 났고, 사자기사단의 레온이 팔쿤에게 붙잡혀 있는 동안 사드나인과 라쿤의 시바와 프랭스가 다른 마장기들을 모조리 쓸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게 바로 시바의 번개슛이다!”
“프랭스 발칸!”
사자기사단 소속의 마장기사들은 그래도 괜찮은 실력을 보이며 사드나인과 라쿤의 공격을 버텨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사자기사단은 레온과 오드렌을 포함해 고작 넷에 불과했다. 게다가 라이온레인을 박살낸 브로리가 전투에 합류하는 순간 전황은 순식간에 한쪽으로 확 기울어졌다.
* * *
“그래도 다행히 살아남았네요.”
말을 꺼낸 분홍색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고는 이빨에 의해 강하게 깨물려졌다.
다친 연인의 모습에 분노한 것이다. 그리고 온몸 여기저기가 붕대로 감겨 있던 레온이 레이자를 향해 말했다.
“라우드 성은?”
“완전히 짓밟혔어요. 성벽은 파괴되었고, 생산 건물들이 대부분 박살이 났죠.”
“그렇군. 결국 라우드 성은 빼앗긴 것인가? 내가 직접 나섰는데도……. 폐하를 볼 면목이 없군.”
라우드 성 앞에서 펼쳐진 마장기전은 알르드의 대승으로 끝이 났다. 일반적인 마장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몸놀림과 화력에 레온을 포함한 사자기사단과 바라테이온의 마장기들은 순식간에 쓸려 나갔다.
특히나 치르넬이라 불리는 병기를 사용하는 마장기와 릴라릴라급을 베이스로 한 마장기를 다루는 적들의 편대장으로 보이는 마장기사의 실력은 그야말로 가공할 정도였다.
불과 서너 시간도 지나지 않아 가장 먼저 공격을 당했던 라이온레인이 완파, 레온 역시 피해를 입은 애기와 함께 도주를 해야 했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도망을 친 이는 레온 하나뿐이었다.
라우드 성에 함께했던 단원들은 수인 마장기를 상대로 분투를 하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
“아뇨. 빼앗기지는 않았어요. 적들의 목적은 오로지 성의 파괴였던 모양이에요.”
레이자가 의자를 가져와 레온의 곁에 앉으며 말했다.
알르드의 마장기들은 라우드 성을 파괴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냥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승자의 전리품으로 파괴된 라이온레인을 비롯해 마장기의 값비싼 잔해를 들고 사라졌다.
“당신을 공격했던 상대의 정체를 알아냈어요. 수인족의 전설급 마장기들이라고 해요.”
“전설급?”
“약간 더 뛰어난 성능을 지닌 것 같긴 하지만 라이온레인과 비슷한 수준의 마장기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그런 마장기가 있었다니…….”
레이자의 말에 레온이 쓰게 웃었다.
적의 전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며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니 지휘관으로써 실격이었다.
특히나 바라테이온에도 몇 기 없는 라이온레인급 마장기를 잃은 것은 타격이 컸다.
“그래서 그 마장기를 조종하는 녀석들은 누구지? 특히나 그 편대장은?”
두려움이 담겨져 있는 레온의 목소리에 레이자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연인을 뺨을 매만지다가 말했다.
“브로리 발란스. SS등급으로 추정되는 수인 영웅이에요. 소환자 한시진과 함께 알르드를 대표하는 전력이죠.”
“SS등급 영웅! 그, 그래서 그렇게나 강력했던 건가…….”
릴라릴라 급 마장기를 베이스로 한 마장기를 다루는 영웅의 실력은 생각만 해도 몸이 떨려올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실력 있는 기사인 오드렌이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하고 무참하게 얻어맞다가 쓰러진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다른 이도 만만치 않은 녀석들이에요. 특히나 붉은색 마장기를 다루는 영웅은 팔쿤이라는 조인족으로, 한때 수인 왕국의 십이멀이었던 영웅이라고 해요.”
“십이멀…….”
그녀의 말을 들은 레온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지었다.
수인 왕국이 자랑하는 십이멀의 명성에 대해서는 귀가 따갑게 들었다. 하지만 알르드의 전쟁에서 그 이름이 튀어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레이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결국 정보 부족이 만들어낸 참극이에요. 겉으로는 알르드의 전력이 강하다고 말해도 내심 별거 아닐 것이라 생각했던 거죠.”
“바라테이온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
“맞아요. 골든 크로우와 마찬가지로 인간 종족을 대표하는 군사 강국이잖아요. 하지만 알르드에 실력 있는 영웅들이 얼마나 있는지 또한 어떤 마장기를 다루는지 제대로 알려진 정보가 하나도 없어요. 기껏해야 하얀 악마가 데스 사이더를 다루는 것 정도가 전부예요.”
“…….”
“그리고 말이죠. 알르드는 엘프 왕국, 수인 왕국 그리고 마왕 쉐르난비체를 상대로도 전쟁을 치르고 버텨냈던 세력이에요.”
현실을 파악하라는 듯 한쪽 눈썹을 지켜 세우는 레이자의 모습에 레온은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말을 돌렸다.
“라우드 성이 공격당했다는 소식과 함께 사자기사단의 패배가 패트릭 바라테이온 폐하에게 알려졌을 텐데 우리에게 내려온 명령은 없나?”
“아직까지는 없어요. 뭐, 다행이죠. 그나마 당신이 이렇게 회복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니까요. 그리고 라우드 성뿐만 아니라 코른 성도 공격을 당한 모양이에요.”
“젠장. 알르드의 소환자 녀석은 정말로 우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생각인가? 아직 보급로가 이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그것도 시간문제예요. 수송대야 블루 스케일의 대로를 따라 이동하면 되니까요. 게다가 알르드의 녀석들은…….”
레이자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몇 주 전 갑작스럽게 점령당한 치니코프 영지가 요새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해서 전해져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알르드는 치니코프 영지를 거점으로 삼아 공세를 펼칠 생각으로 보였다.
호의 예상대로 코른과 라우드가 공격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바라테이온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대가 최전방으로 배치가 되었고, 눈에 띄기 시작한 마장기의 수 역시 크게 늘었다. 그중에는 사자기사단 만큼이나 바라테이온 내에서 위명을 떨치는 마장기사단도 끼어 있었다.
그러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바라테이온은 호가 주둔하고 있는 치니코프 영지를 공격하려는 행동은 취하지 않고 있었다. 알르드의 전력이 자신들의 예상보다 훨씬 대단한 수준인 터라 바라테이온의 수뇌부들은 첩자들이 전해오는 정보를 규합하는 데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자기사단의 단장인 레온이 알르드의 영웅을 상대로 한 일기토에서 처참하게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바라테이온의 왕자인 빅터가 모든 준비가 갖춰질 때까지 도발을 멈추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호에게 아주 좋은 호재나 다름없었다.
치니코프 영지를 요새 도시로 만들 수 있는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영지의 모든 전력이 동원된 공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었다.
* * *
“이제르론은?”
“멍멍. 일주일 후면 완공이 될 것 같습니다.”
“일주일이라…… 확실히 빠르긴 하네.”
“음뭐어……?!”
호의 칭찬에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응접실에서 접시에 코를 박고 있던 미노타우르스 영웅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팀 심시티의 영웅이자 로우덴의 부관인 그는 이제르론의 공사로 인해 닷새째 잠도 자지 못한 채 철야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미노타우르스의 체력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버텨낼 수가 없는 강행군이었다.
그런 미노타우르스 영웅의 주위로는 심시티 소속 영웅들이 시체처럼 쓰러져 있었다. 다들 한결같이 접시에 코를 박고 있는 모습이었다.
“멍멍. 어여 자, 자. 이따가 또 일해야지.”
“우프프프! 드르렁…….”
“…….”
그리고 앞발을 이용해 고개를 들어 올린 미노타우르스 영웅을 다시 접시에 박아버린 로우덴이 호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모두가 치니코프 영지를 발전시키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전부 영주님의 인덕입니다.”
“그래. 그리고 이 세계에 노동부가 존재했으면 진즉에 고소를 당했겠지. SNS가 터져 나갔을걸?”
“멍멍?”
얼굴이 퀭하게 변한 미노타우르스를 보는 순간 양심이 찔려왔지만, 호는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다는 자기 위안과 함께 고개를 돌려야 했다.
<영지 정보(Status)>
치니코프(대도시[A등급])-‘란틴 산맥 서쪽’
인구-162217
보유 리스-92467215
보유 식량-142672353
병사–실버 문(SSS) 65900, 브뤼헤아 비쉬(SSS) 32000, 윙드 훗사르 22100(S+).
내정 건물-대형 식량 저장고 48, 주점 2, 대시장 47, 의약품 공장 16, 화폐 공장 16 …….
군사 건물–병영 10, 대장간 12, 주조소 17, 초대형 망루 4, 강력한 마나 보호막이 걸린 튼튼한 성벽 4, 초대형 마법진 1, 가시 함정 16, 마력 포탑 20, 발리스타 36…….
리스 수입-151710 / 월
식량 수입-232472 / 월
특산품-프로틱스
어찌되었든 이들의 희생으로 인해 치니코프 영지는 요새화는 성공적으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정보창에 나온 내용처럼 많은 군사건물과 방어시설들이 성공적으로 건설되었고, 며칠 뒤에는 리그너스 대륙의 최강 방어시설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제르론이 완공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호는 고작 이제르론이 하나만으로 요새화를 끝낼 생각이 없었다. 마왕 쉐르난비체의 루비아이에 의해 힘겹게 건설되었던 이제르론이 순식간에 무력화 된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패트릭 바라테이온이 쉐르난비체만큼 뛰어난지는 않겠지만…….’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설정집에 나온 바라테이온의 군사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라우드 성을 공격한 브로리와 맞닥뜨렸던 사자기사단만 봐도 그랬다.
몇 기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자기사단은 인간들의 A등급 마장기인 라이온레인을 운영하고 있었다.
“로우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제르론 열기만 건설하자.”
“멍멍! 이 로우덴! 영주님의 명령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르론의 건설 따위야 우리 심시티에게 맡겨만 주십시오! 멍!”
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로우덴이 충성심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그만둬야 되나.’
‘음무워어.’
그리고 접시에 코를 박으며 은근슬쩍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심시티 소속 영웅들의 얼굴에는 다들 복잡한 빛이 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