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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04화 (304/522)

# 304

리그너스 대륙전기 304

“대체 정체가 뭐야?! 저 마장기는!!”

“수인족의 마장기다! 정면으로는 붙지 마! 힘이 엄청나다!”

“젠장! 엑스칼리버의 출력으로는 버틸 수가 없어!”

바라테이온의 치니코프 영지 소속 마장기사들의 비명을 내질렀다. 그들을 지휘하는 지휘관 역시 식은땀을 흘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특이한 형태를 한 상대의 마장기는 전장의 화신이라도 되는 것마냥 아군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 실력을 지닌 적이 눈앞에 보이는 고릴라 한 명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크아아악!!”

성벽을 방패삼아 알르드의 병사들을 향해 마력총을 발사하던 골드 이글급 마장기 하나가 갑작스러운 비명과 함께 자리에 주저앉았다.

“뭐, 뭐야?”

“무슨 일이지? 어엇! 저게 뭐야?!”

그리고 범인으로 생각되는 검은색의 마장기가 자신의 무기인 커다란 낫을 망토 속으로 갈무리하고는 어둠 속으로 숨어드는 게 병사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데스 사이더!”

“데스 사이더가 등장했다!!”

통신구를 통해 들려오는 병사들의 비명 소리에 치니코프 영지 소속 한 마장기사가 자신의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빌어먹을! 검은 악마인가!”

마족의 심장이라 불리는 데스 사이더를 조종하며 수많은 마장기사들의 목숨을 빼앗은 여성 소환자에 대한 악명은 바라테이온에도 자자하게 퍼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어둠 속에서 데스 사이더는 더욱 강해졌다.

검은색으로 도색된 동체 덕분이었다. 대형 마장기인 까닭에 가동 소음이 작지는 않았지만, 지금과 같은 난전과 폭발음이 여기저기 들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푸욱!

그렇게 겁에 질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마장기사 갑자기 자신의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나타난 마력의 칼날이 인간 형태를 한 자넷급 마장기의 정수리에서부터 끝까지 베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대체 언제……?’

그런 생각과 함께 자넷급 마장기에 탑승하고 있던 영웅은 자신의 감각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커다란 폭발이 성 내를 휘감았다.

“멍멍. 바라테이온의 강군에 대해서는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전력이 변변치 않네요.”

“이런 성 따위야…….”

사드나인의 말에 호는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눈앞으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한시진과 브로리라는 알르드의 투톱이 참가하는 전투였다. 거기에 사드나인을 비롯한 다른 영웅들도 어디서 빠지는 녀석들이 아니었다.

“밤이 끝나기 전에 차지해야 되지 않겠어? 그러면 어디 나도 공을 좀 세워볼까?!”

“멍멍! 그렇다면 이 사드나인의 시바도 난입하겠습니다!”

견인 영웅의 포효를 뒤로 한 채 호는 정신을 집중하며 자신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라이온레인의 어깨가 활짝 펴지며 조그마한 공 모양의 마력폭탄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빨려나가는 엄청난 양의 마력의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롭! 메크링거! 우리도 공격한다!”

호의 뒤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다른 라이온레인도 공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숙련도의 차이인지 그들의 움직임은 호와 비교해 굉장히 느릿느릿했다.

그리고 호의 마력에 영향을 받는 마력 폭탄들이 아군을 향해 무기를 겨누는 적의 마장기나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라이온레인의 마력 폭탄이다!”

“조명탄을 터뜨려라!”

“모두 넓게 퍼져! 화망을 구축해!”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구체를 보며 바라테이온의 마장기사들이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라이온레인의 마력 폭탄은 하나만 터져도 C등급 마장기의 관절 부위 정도는 가볍게 날려버릴 수 있는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곧 마장기의 스크린에 붉은색의 점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빌어먹을!!”

투투투투!

마장기의 마나기관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연사가 힘든 마력총으로는 라이온레인의 마력 폭탄을 막아낼 수 없었다.

궁병들 또한 마력 폭탄을 노리고 밤하늘로 화살을 쏴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온레인의 마력 폭탄은 평범하게 일직선 혹은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드는 멍청한 무기가 아니었다.

“젠장할! 좀 맞아라!”

죽음의 위기 속에서 마장기사의 머리로 피가 잔뜩 쏠리고 있었다. 마력 폭탄이 가까워질수록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경고음에 정신이 사나울 정도였다.

병사들도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보병들은 마력 폭탄에 대응할 수단이 없었고, 궁병들의 화망은 이제껏 서너 개의 폭탄만을 공중에서 터뜨렸을 뿐이었다. 그에 반해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폭탄은 대충 봐도 스무 개가 넘었다.

그리고 호가 발사한 마력 폭탄이 지면으로 떨어지면서 백광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 * *

“생각보다 방어가 형편없네.”

“블루 스케일 쪽에서 쳐들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에요.”

시진의 말에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밤에 있었던 전투의 결과로 인해 치니코프 영지에는 알르드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아니면 쳐들어온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전력으로는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여겼겠지.”

치니코프 영지에는 두 개 편대의 마장기가 주둔하고 있었다. 마장기 전력이 변변치 못한 블루 스케일을 상대로는 충분한 전력이겠지만, 알르드가 상대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확실히 마장기의 등급이 깡패네.’

고작 등급 하나의 차이지만 이번 전투에서 라이온레인 편대는 바라테이온의 마장기사들을 상대해 어린 아이 손 비틀 듯 가지고 놀았다. 특히나 성의 방어를 깨부수는 데 있어 마력 폭탄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오너의 마력과 실력에 따라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폭탄 수가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적의 공격을 피해 위력적인 폭탄을 날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기적인 수준이었다.

브로리와 한시진을 필두로 한 정예 전력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그러면 이제부터 바라테이온이 어떻게 나올까가 문제인데…….”

패왕 패트릭 바라테이온은 야망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사자기사단을 전선에 배치한 것만 봐도 그랬다. 블루 스케일을 손에 넣고, 칠 왕국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힐 생각이었던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런 만큼 이번 도발을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터였다. 금이 간 바라테이온의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아무래도 우리는 수성전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왜?”

“……상대가 블루스케일 쪽으로 진격을 할까도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뒤통수를 비어둔 상황에서 무리를 할 것 같지는 않아요. 더욱이 우리의 전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잖아요.”

전장을 정리하는 병사들을 보던 한시진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분명 새벽의 전투에서 무사히 살아나간 바라테이온의 영웅들이 있을 거예요.”

“우리에 대한 정보가 노출이 됐겠네.”

“네. 검은 악마와 함께 오빠가 나타났다는 것도 이미 파악이 됐을 걸요? 알르드의 지배자가 여기에 있는데 블루 스케일 따위가 눈에 들어오겠어요?”

맞는 말이었다. 알르드의 발전도와 경제력에 대해서는 주위 국가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라이온레인의 제작에 성공하면서 최근 칠왕국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사건도 있었다. 바라테이온 입장에서는 충분히 탐이 나는 먹잇감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성벽, 얼마나 파괴됐죠?”

시진의 질문에 호의 얼굴이 잠시 굳었다. 은밀한 기동으로 성벽을 뛰어넘어 적들을 제압했던 그녀와는 달리 호와 라이온레인 편대는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마력 폭탄으로 성벽을 박살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호의 고개가 멀찍이 보이는 잔해 쪽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수성전은 무리겠네요.”

“으음.”

호가 침음을 흘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 폭탄에 난타당한 치니코프 영지의 성벽은 말 그대로 가루가 되어 있었다.

* * *

“치니코프 영지가 함락되었다고?”

사자기사단의 단장이자 바라테이온의 S 등급 영웅인 레오가 병사의 보고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앞에는 한 남성이 죄인이라도 된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젯밤 전투에서 패배하고 가까스로 도망을 친 치니코프 영주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휘하의 마장기사 둘과 함께 자신들의 주둔지로 달려온 치니코프 영주를 향해 레오가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뺨에 칼자국이 아로새겨진 젊은 기사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는데, 고작 남작위에 불과한 치니코프 영주와는 달리 레오는 바라테이온의 후작 위를 지니고 있는 고위 귀족이었다.

“아, 알르드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알르드……? 설마, 레지온에 주둔하고 있던 녀석들이 움직였다고?”

레오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알르드의 정찰부대를 상대로 교전이 벌어지면서 자신들의 정체가 노출이 된 게 불과 어제였다.

그리고 하루도 되지 않아 알르드의 군대가 국경을 넘어 치니코프 영지를 공격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알르드의 국왕인 윤 호를 비롯해 검은 악마까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런, 미친놈들.”

“거기에 수인들의 마장기까지. 얼핏 봐도 스무 기가 훨씬 넘는 숫자였습니다. 아무래도 레지온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이 모두 움직인 것으로…….”

치니코프 영주의 말이 이어지면서 사자기사단의 단장인 레오의 얼굴에 분노가 깃들기 시작했다. 수인, 엘프 왕국 등을 상대로 조그마한 승리를 거뒀다고 아무래도 자신들이 단단히 우습게 보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레오가 고함을 지르려던 참이었다. 고운 손이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더니 레오의 뺨을 감싸 안았다. 사자기사단의 부단장이자 레오의 연인인 레이자였다.

“진정해요, 레오.”

“레이자? 하지만 지금 당장 저 건방진…….”

“상대는 블루 스케일의 허약한 지상군이 아니에요. 마장기만 해도 스무 기가 있다면서요? 게다가 그 라이온레인이 주축이 된 군대라고요. 무턱대고 달려들었다가는 엄청난 피해를 입고 폐하게 질책을 받을 걸요?”

“……그, 그렇겠군.”

연인의 날카로운 지적에 레오는 더듬더듬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연인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선두에서 전투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자신과는 달리 레이자는 군사학교에서도 총명하다고 소문이 난 여인이었다. 그녀라면 분명 좋은 계획이 있을 것 같았다.

“일단, 흔적을 감추고 란틴 산맥 안으로 깊숙하게 숨어야겠어요. 적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말이죠.”

“어째서? 우리가 나서서 적을 막아야 하지 않겠어?”

“아니, 괜찮아요. 우리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다면 알르드도 쉽게 움직이지는 못할 거예요. 오히려 알르드가 무리해서 공세를 취하면 더욱 좋아요. 뒤에서 적의 보급로를 끊은 후, 고사시키면 되니까요.”

설득력 있는 그녀의 이야기에 레오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게다가 자신들이 나서지 않더라도 치니코프 영지의 주변에는 많은 병력들이 배치되고 있을 터였다. 그렇게 사자기사단이 자취를 감췄고, 그들의 예상대로 알르드의 군대는 치니코프 영지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따앙! 땅! 따아앙!

“어이! 빨리빨리 움직여! 언제 적들이 찾아올지 모른다고!”

“디아린 상단은 대체 언제 도착하는 거야?! 자재가 모자란다고!”

“취익! 취익! 오크님이 나가신다!”

다만, 호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레이자를 비롯한 여타 바라테이온 영웅들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건축 상황은 어떻지?”

“아직 한참이나 남았습니다. 적어도 일, 이주는 더 걸릴 것 같은데요?”

호의 물음에 노란색 안전모를 쓴 드워프가 턱으로 뼈대가 올라오고 있는 성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 뒤로 병사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감시탑과 방어 시설들도 함께 건설되고 있었다.

“빨리빨리 성벽을 완공한 다음에 이제르론까지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호님. 이제르론까지 만들려면 지금의 진행 속도로 봐서는 일 년은 더 걸릴 것 같은데요?”

호의 혼잣말을 들은 드워프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 역시 그런 드워프의 말에 동의했다. 자원이 넘친다 하더라도 순식간에 건물이 뚝딱 올라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호에게는 이럴 때 쓸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하나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심시티를 부르는 수밖에.”

현재 치니코프 영지는 파괴된 성벽의 복구 및 우주 방어를 위한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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