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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02화 (302/522)

# 302

리그너스 대륙전기 302

“알르드에서 편대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라이온레인을 생산했다고?”

이번 블루 스케일 사태와 관련된 중심인물 중 하나인 빅터가 병사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라이온레인을 생산하려면 최소한 몇 십억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 그 많은 자금을 대체 어디서 충당한 거지?’

‘마정석과 해양석의 판매 대금은 결코 아니다. 몇 천, 몇 만 상자를 판매했다고 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자금이 아니야.’

‘알르드의 경제력과 생산력이 그렇게나 대단하다고? 알르드가 건국된 지 고작 몇 년이나 되었다고?!’

머릿속으로 몇몇 의문점이 떠오르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생각을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알르드의 군대는 이미 움직였고, 그들은 블루 스케일의 영토를 지나 자신들의 국경에 배치될 터였다.

“……혹은 선제공격을 가할지도 모르겠군.”

빅터 바라테이온의 단정한 얼굴에 짜증으로 인한 주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번 일은 군사력이 크게 줄어들어 탐나는 먹잇감으로 변한 블루 스케일을 손에 넣기 위한 패트릭 바라테이온의 지시였다. 게다가 블루 스케일의 여왕 세이라 클리퍼드는 바라테이온의 왕비 중 한 명이 될 수 있는 충분한 미모와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계획에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그것도 만만한 녀석들이 아니었다. 보고가 거짓이 아니라면 왕국의 정예 전력이 움직여야 했다.

“일단 패트릭 폐하께 보고를 올려야겠군.”

“저, 전쟁입니까? 저에게 군사를 내어 주신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윤호라는 녀석을 물리쳐 보이겠습니다!”

빅터의 혼잣말에 토르니 공작이 불쑥 끼어들었다. 군사, 세력, 명성, 신망 등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겼기 때문일까?

소환자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토르니 공작의 눈동자는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아직 결정된 사항은 아니오. 하지만 공작, 우리는 블루 스케일의 평화와 칠 왕국의 유대를 위해 블루 스케일의 정통성을 지닌 핏줄을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어렵지 않게 상대의 말뜻을 이해한 토르니 공작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허리춤에 걸린 검을 검집에서 뽑아들었다.

날카롭게 빛나는 잘 벼려진 검이 자신이 명검이라는 것을 뽐내며 예리함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토르니 공작이 빅터에게 자신의 검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저 역시 바라테이온의 위대한 행보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빅터는 속으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권력이란…….’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흘러 나왔지만 간신히 집어삼킨 그는 눈앞의 멍청한 귀족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용해 먹기 쉬운 인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눈앞의 귀족은 지닌 능력이 보잘 것 없었다.

그렇게 토르니 공작과의 만남을 마친 빅터는 곧바로 왕의 알현실로 향했다. 하지만 왕에게 보고를 해야 할 사실을 떠올리니 절로 표정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알르드의 난입으로 인해 자신들의 계획이 번거로워졌기 때문이었다.

“……폐하.”

“빅터로군. 발 빠른 녀석들을 통해 보고는 이미 들었다. 소환자라는 녀석이 끼어들었던데?”

“그렇습니다. 그들의 전력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모양입니다.”

빅터가 눈앞의 노인을 향해 조심스레 말했다.

백발이 성성한 모습이지만, 바라테이온의 패자이자 SS등급의 영웅인 패트릭 바라테이온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강렬하게 빛나는 안광과 날카로운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그래. 여러 소문은 들었다. 확실히 우습게 볼 녀석은 아니지.”

소환자들에 대한 리그너스 대륙 영웅들의 인식은 최근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소환자의 나라 알르드 덕분이었다. 그들은 수인 왕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많은 영토를 빼앗았고, 천족은 물론 블루 스케일의 일부 귀족들을 상대로도 승리를 거뒀었다.

게다가 만마의 지배자이자 마족을 이끄는 마왕 쉐르난비체를 상대로도 치열한 전쟁을 벌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살아남았고, 이 대륙의 한 세력으로도 당당히 깃발을 휘날리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들이 무시 못 할 세력이라는 것을 대륙에 널리 알린 것이다.

“하지만 블루 스케일의 마정석과 해양석 그리고 휴머니온 합금이 생산되는 시그너스와 썬드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손에 넣어야겠다. 우리도 슬슬 라이온레인을 생산해야지.”

시그너스와 썬드라는 블루 스케일의 왕실 영토. 그것을 가지겠다는 이야기는 블루 스케일을 손에 넣겠다는 말과 동일했다. 결국 알르드와의 충돌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할 일로 보였다.

“미피츠와의 이야기는 끝난 것입니까?”

“그래. 퉁 파오 녀석에게 확답을 들었다. 그 대가로 골든 크로우의 영토 조금을 떼어줘야겠지만. 뭐, 그 정도는 감수해야겠지.”

“그렇다면…….”

“골든 크로우의 발톱을 꺾고 바라테이온의 사자가 대륙의 인간을 대표할 때가 왔다.”

강한 의지가 드러나는 왕의 말에 빅터는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라이온레인의 개발과 생산만 완료된다면 잦은 전쟁으로 인해 군사력이 줄어든 골든 크로우쯤은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다. 문제는 자신들의 계획에 없던 새로운 세력 알르드였다.

“소환자들은 블루 스케일의 귀족을 이용할까요?”

“아니, 쓰레기들에게 맡길 바라테이온의 병사는 없다. 괜한 병력을 낭비할 수는 없지. 빅터! 장군들을 소집해라. 이 패트릭이 직접 나서겠다.”

말을 마친 패트릭 바라테이온이 입이 찢어질 듯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런 부왕의 모습을 보며 빅터 바라테이온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골든 크로우와 비견되는 바라테이온의 강군이 패왕의 이름 아래에 움직이려고 하고 있었다. 그 첫 상대는 바로 최근 위명을 떨치고 있는 알르드였다.

* * *

블루 스케일의 왕실직할영토인 썬드라.

란틴 산맥의 한 갈래가 지나는 이 땅은 숲과 광산이 많아 마정석과 함께 인간들의 마장기의 제작에 필수로 들어가는 단단한 금속 휴머니온 합금이 생산되는 곳이었다.

그로 인해 영토 곳곳에는 넓은 도로들이 쫙 깔려 있어 상인들의 휴머니온 합금 유통을 쉽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이 되는 휴머니온 합금과 마정석은 블루 스케일의 아주 중요한 수입원이기도 했다.

“블루 스케일 입장에서는 여기를 빼앗기면 큰일 나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돈이 될 만 한 특산품이 생산되는 곳은 이 썬드라와 해양석이 생산되는 영지인 스완 정도가 전부니까. 아, 사파이어도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사치품은 중요성이 조금 떨어지지.”

시진의 말에 호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휴머니온 합금을 수송하는 블루 스케일의 상단을 보며 말했다. 비록 약소국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칠 왕국 중 하나로 명성을 떨쳤던 블루 스케일은 천족과의 전쟁과 바보 같은 귀족들의 난리로 인해 현재 그 세력이 크게 줄어든 상황이었다.

그래도 S등급 영웅인 세이라 클리퍼드를 비롯해 능력 있는 영웅들이 건재한 편이라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나라를 잘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허약한 지상군이 발목을 잡았지.”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잖아요. 사실 아직까지도 지상군 전력이 변변치 못한 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자신들의 약점을 몇 년이나 그냥 두었다는 이야기잖아요?”

“그것도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할 때의 이야기지. 멀쩡했을 때는 멍청한 귀족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현재 블루 스케일은 백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군량이라도 빼서 써야 할 판일걸?”

“하기야 많은 식량이 생산되는 영토인 바르시온과 쿠투스 평원을 우리가 차지했으니까요. 저들의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식량 생산이 급감한 셈이겠죠.”

“이거 어째 우리가 굉장히 나쁜 놈으로 들리는데?”

호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블루 스케일에게 미안함을 가질 생각은 없었다. 이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 자신이 힘이 없었다면 블루 스케일보다도 더한 일을 겪었을 터였다.

“아뇨. 오히려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는 아주 좋은 동맹국으로 보일걸요. 뭐니 해도 디아린 상단이 블루 스케일에 싼값으로 식량과 생필품을 팔고 있잖아요. 게다가 이렇게 군대까지 움직이며 도움을 주고 있으니…….”

“뭐, 그렇겠다. 게다가 왕국을 배신한 멍청한 귀족들도 있으니 우리 대신 욕먹을 애들이 많긴 하겠네.”

그런 면에서 알르드의 행보는 굉장히 신사적이었다. 적어도 블루 스케일을 멸망시키거나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막지는 않고 있었다.

‘그나저나 바라테이온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라헬교의 난 이후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인간들의 칠왕국은 서로를 반목하며 거리를 두고 있었다.

천족과의 전쟁이 그 시발점이었다. 큰 피해를 입은 모에드 왕국이나 블루 스케일 그리고 계속된 전쟁으로 많은 희생을 지른 골든 크로우와는 달리 미피츠나 바라테이온은 천족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딱히 별다른 피해도 없었다.

특히나 골든 크로우 못지않은 군사 강국인 바라테이온은 천족들의 계속된 공격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지원군도 보내지 않아 여러 국가들의 지탄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랬던 그들이 지금은 이상한 놈팡이 한 명을 내세워 블루 스케일을 상대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으니 다른 왕국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하기야……. 바라테이온은 게임 내에서도 포지션이 애매했지.’

군사 강국이라고는 하지만 골든 크로우가 인간들을 대표해 다른 종족과 전쟁을 벌이는 것과는 달리 그들은 엘프 왕국이나 천족을 상대로 전쟁을 몇 번 치른 게 전부였다.

그것도 패왕 바라테이온이 젊었을 시적의 이야기니 적어도 몇 십 년 이상은 된 이야기였다.

게임 내에서도 칠왕국이 크게 위기에 빠져 있을 때나 군사를 찔끔 보낼 뿐, 고슴도치처럼 자신들의 영토에나 틀어박혀 있다가 다른 세력의 공격에 멸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쨌든 호는 바라테이온이 어떻게 나오던 간에 크게 신경을 쓸 생각이 없었다.

전쟁을 원한다면 림드 산맥으로 사람을 보내면 되었고, 그렇지 않으면 정중하게 바라테이온의 SS등급 던전 공략을 위해 통행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며 이동을 하는 호와 시진의 앞에 멀리 영지 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썬드라의 대도시급 영지인 레지온이었다. 그리고 레지온은 앞으로 호와 알르드의 군대가 주둔을 할 곳이기도 했다.

왕실 직할령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레지온의 성벽에는 푸른 백조의 문양이 내걸려 있었다.

그리고 선두의 병사들이 성에 도착하자마자 호응을 하듯 성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레지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장기 보관고에 마장기를 세우고 조종석에서 내린 호를 향해 중년의 남성이 정중하게 말했다. 레지온의 영주로 보이는 영웅이었다.

‘나쁘지 않네.’

호가 정보창을 이용해 능력을 살펴보니 S등급에 다다른 A등급의 내정형 영웅이었다.

레지온에서 생산되는 특산품이 값비싼 휴머니온 합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인사 배치였다. 빠르게 특산품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통솔과 무력에 보너스를 받는 영웅보다는 정치 능력이 높은 영웅이 훨씬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세이라 클리퍼드 역시 그것을 노리고 눈앞의 영웅을 레지온의 영주로 임명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세력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내정형 영웅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로우덴 같이 여러 부문에서 두루 활약할 수 있는 만능 영웅이라면 모르겠지만 눈앞의 남성은 그 정도의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오오. 이것이 그 라이온레인입니까?”

그리고 호가 내린 거대한 마장기를 보며 레지온의 영주가 감탄을 했다. A등급 마장기인 라이온레인은 블루 스케일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최신형의 기체였다.

“소문에 의하면 라이온레인의 생산가가 오십억이 넘는다고 하던데…….”

“뭐, 비슷합니다.”

“어, 엄청나군요. 어휴. 그 정도의 돈이면…….”

레지온의 영주가 입맛을 다시고는 부러운 표정으로 붉은색의 마장기를 바라보았다. 없어서 못 판다는 휴머니온 합금을 대량으로 생산한다 하더라도 라이온레인 한 기를 구입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게 알르드의 군대가 레지온에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용감무쌍하던 바라테이온의 움직임이 소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라이온레인 편대가 국경 지역에 모습을 드러낸 까닭에 슬쩍 국경을 넘는다거나 시빗거리를 거는 간 큰 녀석들이 사라진 것이다.

까딱하다가 전투라도 벌어지게 되면 A등급 마장기 편대의 무시무시함을 몸으로 확인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괴물들에게 우리가 덤벼야 한다고?”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네.”

한 마장기사의 설명에 회의실에 모인 기사들이 난감한 표정을 신음을 했다.

바라테이온 철매사단의 기사들로 B등급 마장기와 C등급 마장기로 이루어진 마장기 편대에 속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수년간 블루 스케일과 맞닿은 국경을 지키던 그들에게 어젯밤 명령이 하나 떨어졌다. 바로 썬드라의 영지 레지온을 공격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리고 레지온에는 A등급 마장기가 포함된 알르드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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