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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01화 (301/522)

# 301

리그너스 대륙전기 301

사신 일행들은 림드 산맥을 먼저 방문했지만, 림드 산맥의 군주 아스트리드 벨을 통해 호가 군트락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 토슬치까지 찾아온 모양이었다.

그렇게 블루 스케일의 사신일행이 그들의 영토에서 멀리 떨어진 토슬치까지 호를 찾아온 이유는 다름 아닌 바라테이온 때문이었다.

“푸핫! 바라테이온이 블루 스케일의 정통성을 부정한다고요? 그것참 신선한 농담이네요.”

익숙한 얼굴의 영웅에게 이야기를 들은 호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블루 스케일의 백작에서 후작으로 작위가 상승한 스퀴드 수운다 후작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들은 세이라 클리퍼드 폐하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신들이 블루 스케일의 진정한 주인을 모시고 있다고 우기고 있네. 망명한 블루 스케일의 귀족들과 함께 말일세.”

“아니, 누가 그런 사실을 믿는다고. 게다가 망명이라뇨? 그냥 자신들의 모든 세력을 잃고 쫓겨난 애들 아닙니까?”

호가 자신의 귀를 후비적거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수운다 후작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문제는 그들의 주장이 완전히 허황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네. 세이라 클리퍼드 폐하의 육촌 관계에 있는 모제스 클리퍼드가 그들의 손에 있어.”

“그러면 뭐합니까? 블루 스케일의 수많은 백성들이 세이라 클리퍼드 폐하의 정통성을 부정할 것도 아니고. 다른 왕국들도 헛소리라고 생각할 겁니다. 게다가 모르긴 해도 골든 크로우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분명 자네처럼 생각을 할 걸세. 문제는 그런 논리가 힘의 앞에서는 유명무실하게 변한다는 것이겠지. 그리고 골든 크로우는 현재 우리 블루 스케일에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라네.”

“그게 무슨?”

“타이밍이 공교롭게도 천족들이 움직이고 있어. 십 천사 중 둘이 골든 크로우의 영토를 공격했다가 철수했네. 그런 와중에 바라테이온이 사고를 치려고 하고 있으니……. 기사왕도 꽤나 머리가 아플걸세.”

수운다 후작의 말에 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 나왔다. 어쨌든 현재 블루 스케일을 대표하는 영웅 중 하나인 스퀴드 수운다 후작이 직접 군트락으로 찾아올 정도의 일이었다. 그만큼 모제스 클리퍼드라는 인물을 앞세운 바라테이온의 압박이 제법 심각하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블루 스케일을 다스리는 세이라 클리퍼드는 S등급의 영웅. 하지만 그녀와 육촌 관계라는 모제스 클리퍼드라는 녀석은 호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영웅이었다. 빠르게 공략본으로 검색을 해보니 딸랑 E 등급 영웅에 불과했다.

하물며 세이라 클리퍼드는 벌써 십여 년이 넘게 블루 스케일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그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새로운 왕을 내세운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헛소리도 적당히 해야 받아줄 수 있을 법 한데 이건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이래서 권력이란…….’

그러나 바라테이온과 망명한 귀족들이 무슨 생각으로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바라테이온은 세이라 클리퍼드 폐하가 왕위를 내려놓고 모제스 클리퍼드가 블루 스케일의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네. 그리고 왕국의 배신자들이 모제스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지.”

“클리퍼드 폐하의 입장은요?”

“당연히 헛소리라고 여기고 있지. 성품이 온화하신 여왕 폐하가 크게 분노를 하셨을 정도로 그들의 무례함은 지나칠 정도로 심하네. 하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최근 바라테이온의 국경에 마장기 편대가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오고 있어.”

“전쟁입니까……?”

호는 말을 잇다 말고 수운다 후작을 바라봤다. 아무리 권력이 좋다 하더라도 전쟁은 그렇게 쉬이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더욱이 다른 세력과의 싸움도 아닌 칠 왕국 끼리의 내분이었다. 게다가 라헬교 및 아이리스 성국의 사태로 칠 왕국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던 게 얼마 지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아, 전체는 아닌가?’

모에드, 블루 스케일, 골든 크로우 정도가 큰 피해를 입었지 따지고 보면 바라테이온이나 상업 왕국 미피츠는 피해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국 전력이 온전한 왕국이 천족과의 전쟁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동맹국을 집어삼키려는 그림이었다.

“그래서 우리 알르드를 찾아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군사를 빌려주게. 마장기 편대 말일세. 그대도 알다시피 블루 스케일의 군사력은 바라테이온과 비교한다면 형편없는 수준이라네. 자네와 몇몇 귀족들과 다퉜던 저번의 전쟁에서도 많은 수의 마장기를 잃었지.”

수운다 백작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세력도 아닌 동맹국의 도발로 인해 소환자에게 힘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픈 모양이었다.

‘바라테이온이라.’

블루스케일을 노리는 그들은 인간들의 팔 왕국 중 군사력 면에서는 골든 크로우와 함께 수위를 타두는 군사 강국이었다. 또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엘프 왕국과 천족과의 전쟁에서 많은 승리를 거둬 패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SS등급의 영웅 패트릭 바라테이온이 다스리고 있는 국가였다.

하지만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에게 있어 바라테이온은 호감이 가거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국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유저들의 지탄을 받는 나라였다.

그 이유는 육십이 넘는 패트릭 바라테이온이 서른도 되지 않은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를 부인으로 탐한다는 설정 때문이었다.

하물며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는 SSS등급이라는 뛰어난 능력과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게임 내의 인기랭킹 순위에 10위 안에 매번 드는 인기 영웅이었다.

그런 이유로 인해 유저들에게 자주 치이는 바라테이온이지만 군사 강국이라는 설정처럼 군사력만큼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패트릭 바라테이온을 제외하더라도 능력이 좋은 영웅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기도 하지.’

하지만 블루 스케일에게는 도움을 받은 게 굉장히 많았다. 특히나 눈앞의 귀족은 호가 엘프 왕국의 장로 엘 로즐린과 전쟁을 치를 때 두 개 편대의 마장기를 지원해주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수운다 백작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가 하얗게 변하는 모습을 본 호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위기에 처한 동맹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 지원군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별말씀을요.”

얼굴에 여러 감정이 떠오르는 수운다 후작을 뒤로 한 채 호는 응접실의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브로리를 바라보았다. 그린 드래곤 레피스트 퓨리온과 차를 마시고 있는 그녀는 호와 시선이 마주치자 눈을 반짝 빛내고는 고개를 위아래로 강하게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게 블루 스케일로 파견을 나갈 영웅이 정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함께할 영웅이었다.

* * *

“라이온레인 편대를?”

“그래. 슬슬 실전도 경험해 봐야지. 던전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하는 것도 좋지만 마장기사는 같은 마장기사를 상대해야 크게 성장하는 거 아니겠어? 너도 들어서 알겠지만 바라테이온의 움직임이 제법 심각한 모양이던데?”

“인간들끼리 전쟁이 벌어지는 건가?”

브로리가 훈련장에 배치된 붉은색의 기체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알르드의 최신기체이자 앞으로 엑스칼리버를 대신해 주력 기체가 될 A등급 마장기 라이온레인들이었다.

그러나 무기를 휘두르는 그들의 움직임은 굉장히 거친 면이 없잖아 있었는데, 아직 숙련도가 부족한 게 그 이유였다.

“가능성이 높긴 하겠지만 확실한 건 아니야. 바라테이온의 움직임이 없다면 시간만 보내다가 돌아오는 일이 생길 수도 있어.”

“그러면 굳이 마장기 편대를 움직일 이유가 없지 않을까? 라이온레인이 잡아먹는 마정석만 해도 돈이 엄청날 텐데?”

“그 정도의 마정석은 해머스가 10 초만 기를 모아도 충분할 거다. 그리고 마장기가 놀 일은 없을 거다. 아주 신나게 돌아다닐 테니까.”

“블루 스케일의 던전을 공략하려고?”

호의 말에 브로리가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최근 호와 함께 그녀가 가장 많이 한 일은 바로 던전 공략이었다. 그리고 블루 스케일에도 S등급의 던전이 몇 개는 있을 터였다.

“아니. 바라테이온의 던전을 공략할 생각이야.”

“바라테이온의?”

“그래. 그쪽에 있는 SS등급의 던전.”

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브로리가 사래가 들린 듯 캑캑거렸다. 그리고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호를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아니, SS등급 던전이라면 사막의 무덤도 있잖아? 왜 하필이면 바라테이온까지 가서 던전을 공략하려는 거야? 그것도 앞으로 적대국이 될 상대의 영토까지 가서?!”

“다섯 번이라는 횟수를 채워야 하거든.”

“……횟수?”

“그래. 아무튼 아주 귀찮고 까다로운 그런 게 있단다.”

호가 어린애를 달래듯 브로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버로드로 전직을 하기 위해서는 다섯 개의 SS등급 던전을 성공적으로 공략해야 했다. 하지만 폭풍 바람의 신전을 포함해 사막의 무덤까지 공략을 한다 하더라도 고작 두 개에 불과했다.

‘이왕 움직이는 거 함께 처리하면 좋잖아?’

그리고 바라테이온의 SS등급 던전은 알르드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SS등급 던전 중 하나였다. 어차피 전쟁이 일어나도 그만 일어나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알르드가 아닌 블루 스케일인 까닭이었다.

당연히 SS등급의 던전 공략을 목표로 두고 있는 만큼 호는 브로리와 고작해야 초짜나 다름없는 라이온레인 오너 몇 명만을 데리고 지원을 갈 생각은 없었다. 당연히 라쿤이 전력에 추가되었고, 한시진과 팔쿤, 사드나인도 이번 지원군에 함께하기로 정해졌다.

그리고 림드 산맥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라이온레인 두 개 편대도 합류했다.

안타깝게도 웃소는 카우셰드의 방어를 맡아야했기에, 이번 원정에서 제외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전력이라면 아무리 군사강국이라는 바라테이온이라도 쉽게 건드릴 수는 없을 터였다. 적어도 몇 개 군단과 영토 정도는 각오해야 했다.

“또 전쟁이라니……. 이거 너무 저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거 아닙니까?”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말이야.”

“이러다가 제가 다시 천족으로 돌아가면 어쩌시려고 계속해서 저를 군주로 임명을 하는 거죠?”

그렇게 모든 편성이 끝나고 남은 것은 자신의 빈자리를 대신해야 할 군주의 임명이었다. 그리고 니나 다니엘레의 무시무시한 협박에 호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오너 시스템으로 인해 영혼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이상 그녀가 배신을 할 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SS등급의 영웅인 그녀 또한 이번 원정에 함께하면 좋겠지만 수인 왕국의 도발을 막아낼 영웅이 하나쯤은 필요했다.

강력한 힘을 지닌 그린 드래곤 레피스트 퓨리온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내정에만 도움이 되는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설령 수인 왕국이 공격해 들어온다 하더라도…….’

군트락의 옆에 위치한 영토는 바리안스의 대지. 리셴르나라면 충분히 수인들의 도발을 막아낼 능력이 있는 영웅이었다. 그리고 별이 깜박이는 깊은 밤하늘 아래 호의 전용기 라이온레인–플레임을 선두로 알르드의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뭐라고……?! 그 녀석이 움직였단 말이야?!”

한 때 강력한 권력을 누렸던 토르니 공작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의 눈앞에는 병사가 엎드려 있었는데, 블루 스케일의 움직임을 감시하던 임무를 맡은 병사였다. 그리고 그는 알르드의 군대가 블루 스케일의 국경을 넘었다고 보고하고 있었다.

“윤호. 그 빌어먹을 녀석이 드디어 컴컴한 속내를 드러내는군. 얼마 되지 않는 푼돈으로 나의 영토를 빼앗고, 이제는 블루 스케일까지 손에 넣을 생각이 분명해!”

“흐음……. 그래서 얼마나 되는 겁니까? 그 녀석의 병력은?”

흥분한 토르니 공작을 뒤로 한 채 바라테이온의 왕자 빅터 바라테이온이 물었다. 아무리 명성이 높다 해도 기껏 일개 소환자.

그리 대단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알르드에 대해서는 들리는 풍문이 굉장히 많았다. 게다가 그들이 A등급 마장기인 라이온레인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골든 크로우와의 거래로 인해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빅터가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A등급 마장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소환자 주제에 바라테이온의 일을 방해하고 나선다는 게 영 거슬렸다.

“그, 그게……. 군사 십만입니다.”

“고작 십만?”

고작 그 정도의 병사로 바라테이온을 적대하다니? 병사의 대답에 빅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병사의 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섯 개의 마장기 편대가 발견되었습니다. 세 개 편대는 라이온레인으로 이루어졌고, 나머지 편대 또한 데스 사이더와 수인들의 마장기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알르드의 지배자 윤호의 모습 또한 확인되었습니다.”

병사의 말에 토르니 공작이 뿌드득 하고 이를 갈았고, 빅터 바라테이온 역시 눈썹을 씰룩 추켜올렸다.

A등급 마장기가 주축이 된 다섯 개 편대.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뒤집어 말하면 바라테이온을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전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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