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9
리그너스 대륙전기 299화
브로리를 SSS등급으로 승급시키기 위한 여정은 끝이 났다.
그 위로도 EX등급의 클래스가 존재했지만, 지금 당장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먼 일이었다.
어쨌든 SSS등급의 영웅이 되어버린 브로리는 알르드의 비밀병기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다. 짐승신의 축복으로 영웅의 격이 한 단계 상승한 것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전의 모습이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 해도 호를 비롯해 알르드의 행보가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당장 브로리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도 아니고, 발휘할 곳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벨, 림드 산맥은 당신에게 맡기도록 할게.”
“붉은 핏빛의 대지로 가시려고요?”
“아니. 거기도 슬슬 정리가 된 것 같아서 다시 군트락으로 가려고. 토슬치를 비롯한 마을들을 발전시킬 생각이야.”
호가 말했다. 군트락에는 그린 드래곤 레피스트 퓨리온이 있었지만 발전상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영 불안했다.
“아, 블루 스케일 쪽 영토는 당신이 신경을 좀 써줬으면 해.”
“림드 산맥의 자원으로 지원을 하라는 말이겠죠?”
“딩동댕. 역시 총독이라 불리는 바이스로이다워.”
알르드에서 가장 발전도가 떨어지는 영토는 바르시온과 에레브를 비롯한 과거 블루 스케일의 영토들이었다.
다행히 블루 스케일, 모에드 왕국과 같이 우호적인 세력들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터라 군사적으로는 크게 신경을 쓸 일이 없었다. 브로리에게 토벌당해 바라테이온으로 도망을 간 전(前) 블루스케일 귀족들이 신경이 조금 쓰이긴 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총독이라 쓰고 노예라 불리는 것 같아요.”
“하, 하하하…….”
벨의 투덜거림에 호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영토를 다스리는 군주 및 영주 역시 평범한 인간 영웅들에 불과했다. 한 마디로, 벨이 상당 부분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이었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 심시티가 영지를 방문하면 발전도가 큰 폭으로 높아질 테고 여러 영웅들 또한 주둔하고 나면 상황이 조금은 나아질 터였다.
현재 알르드의 기술 연구는 엘프의 마장기와 관련된 연구가 한창 개발 중이었다. A등급 마장기인 라이온레인의 생산이 가능한 알르드였지만, 라이온레인은 인간들의 마장기. 오직 인간 영웅들 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덕분에 인간을 제외하더라도 엘프, 수인과 같은 영웅들이 다수 존재하는 알르드의 전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족의 마장기들 역시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두 번째로 알르드에서 가장 많은 종족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엘프의 마장기가 선택이 되었다.
“좋아! 엘프다! 엘프의 마장기다!”
“아보르 비테의 노래를 불러라!”
알르드의 연구팀 ‘갈리는 공돌이’의 팀장은 엘프 영웅 엘 브릭. 그는 엘프의 마장기를 개발하라는 호의 명령을 반색하며 받아들였고, 현재 엄청난 기세로 연구를 완료하며 기술을 획득하고 있었다.
그렇게 디르시나에서의 일을 마치고 군트락의 토슬치로 돌아온 호는 군트락 영지들을 관리하며 내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호의 행동에 답답해하는 영웅이 하나 있었다. 바로 브로리였다.
“수인 왕국을 공격하는 건 어때? 이제는 우리도 라이온레인이라는 A등급 마장기를 생산할 수 있잖아?”
점심시간이 약간 지난 무렵, 춘곤증이 몰려오는 시간에 맞춰 브로리가 호의 집무실을 방문하고는 뒹굴 거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무리. 수인 왕국이 그리 만만한 녀석들인 줄 알아? 그리고 마족과의 전쟁에서 입은 피해도 복구하지 못했다고.”
“……내가 듣기론 커티삭은 예전의 모습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요새도시가 탈바꿈 되었다던데.”
“당연히 그걸 로는 부족하지. 적어도 쉐르난비체가 쳐들어와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
호의 대답에 브로리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만마의 제왕이라는 쉐르난비체를 막아낼 수 있는 요새 도시? 방어시설을 수도 없이 건설한다 해도 그게 가능할리 없었다. 마계의 신기 카시아움과 그녀의 전용기 루비아이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그리고 영지의 정보를 확인하던 호가 손으로 눈앞에 나타난 정보창을 한쪽으로 밀며 느릿하게 말했다.
“SSS등급이 되었다고 아주 힘이 넘치시나 본데, 차라리 라쿤하고 놀아주는 건 어때? 그 녀석 요즘 자신의 실력이 늘었다고 기고만장하던데.”
“시시하다. 지금 이 몸의 능력으로는 그 녀석의 프랭스 따위는 한 손가락으로도 이길 수 있을 정도다. 좀 더 나의 호승심을 채워줄 강력한 적이 필요하다.”
“강력한 적이라…….”
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무력 능력 1782의 상대가 될 만한 영웅은 대륙에서도 몇 안 될 터였다. 높은 등급의 던전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라면 모를까.
‘잠깐.’
생각을 바꿔보면 그녀는 높은 등급의 던전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실력자였다. 그리고 높은 등급의 던전은…….
‘S나 SS등급의 던전.’
그리고 이 던전들을 공략하면 아이템을 비롯해 리스와 식량과 같은 자원 그리고 자신의 전직에 필요한 조건의 횟수를 채워나갈 수 있었다.
호가 잠시 생각에 빠진 듯 팔짱을 끼다가, 브로리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 진정 전투를 원하는 것이더냐?”
“그, 그렇다!”
“진정으로 아주아주 강력한 적들과의 전투를 원하는…….”
“그, 그래! 강력한 적을 원한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을 하는 브로리의 모습에 호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손바닥으로 입술 주위를 전체적으로 몇 번 쓸어내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면 던전 공략. 어때?”
* * *
호는 예전 호인족의 십이멀 티르거를 총대장으로 한 수인 왕국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개미굴에서 웅족의 군대를 몰살시키고, 총대장인 티르거 역시 갑작스럽게 전쟁에 참전한 이레네 아르티아의 손에 목숨을 잃으면서 전쟁은 호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리고 승리의 여세를 몰아 호는 수인 왕국으로의 진격을 결심했고, 그 결과 제법 넓은 크기에 달하는 수인 왕국의 영토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바리안스의 대지, 군트락, 디치 플레이스만, 페렛 습지대, 카우셰드가 바로 호가 새롭게 손에 넣은 영토였다.
그렇게 알르드로 편입이 된 새로운 영지들은 로우덴을 팀장으로 한 심시티의 활약으로 인해 빠른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토의 모든 것이 공략된 것은 아니었다. 영토에 자리를 잡고 있는 던전이라 불리는 몬스터들의 주거지들은 그 누구도 손을 대지 않은 그야말로 순백의 상태였다.
“……그리고 군트락을 비롯한 이 주위에는 위험도가 높은 등급의 던전들이 제법 많단 말이지.”
병사를 일으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군트락에는 많은 수의 실버 문과 브뤼헤아 비쉬들이 주둔하고 있었고, 호가 자리를 비워도 영지를 맡아줄 든든한 드래곤도 존재했다.
“찌익. 아무리 그래도 폭풍 바람의 신전과 같은 수준은 아니겠지요?”
“아, SS등급도 하나 있더라고.”
호의 말에 라쿤이 창백해진 얼굴로 옆을 돌아보았다. 그의 옆에는 황금색의 코우랄라를 움직이고 있는 브로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던전을 공략한다는 사실에 굉장히 신이 난 모양이었다.
“그……. 호님. 우리들만으로 찌익. 공략할 수 있을까요? 포, 폭풍 바람의 신전과 같은 곳을?”
“왜? 쫄려?”
호의 물음에 라쿤이 침을 꿀꺽 삼켜 넘겼다.
그렇다고 대답하기에는 다람쥐 족의 전설적인 마장기 프랭스의 주인이라는 이름이 아까웠고,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목숨이 소중했다. 얼굴 가득 고뇌가 보이는 라쿤의 모습에 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 마. 우리가 공략해야 할 던전은 SS등급이 아닌 S등급이니까. 리코타 치즈성 정도의 난이도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찌익. 이 라쿤만 믿어 주십시오!”
호의 말에 라쿤이 태도를 백팔십도 변화하더니 천연덕스럽게 대답을 했다. 그 모습에 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브로리가 SSS등급의 영웅이고, 1000이 넘는 무력 능력을 지녔다고는 하지만 그녀만을 믿고 SS등급의 던전을 공략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폭풍 바람의 신전만 해도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를 포함해 A등급 마장기만 열 기가 넘게 투입이 되었었다.
하지만 승급을 한 브로리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천이 넘는 그녀의 무력은 자신의 예상 이상으로 강할 게 분명했다. 쉐르난비체의 경우만 봐도 그랬다. EX등급의 영웅인 그녀의 무력은 1300 정도에 불과했지만, 호는 브로리, 한시진과 함께 협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쉐르난비체의 압도적인 강함에 속절없이 무너져야만 했다.
어쨌든 병사들을 포함해 세 기의 마장기만 출진하는 상황이긴 했지만, S등급의 던전 쯤은 어렵지 않게 공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호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 브로리 님이 나가신다!”
S등급의 던전인 ‘파이어 치킨 네스트’에 도착한 브로리는 곧바로 던전을 향해 돌격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라쿤에 한숨과 함께 호를 힐끔 바라봤다. 조그마한 혼혈이 아무리 괴물 같은 강함을 지녔다 해도 여기는 S등급의 던전. 일반인들은커녕 낮은 랭크의 병사들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나게 위험한 곳이었다. 하지만 호는 팔짱을 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찌익. 호님. 우리도 슬슬 진입해야 하지 않을까요? 코우랄라가 혼자 먼저 들어갔는데…….”
“알고 있어. 다만, 그 녀석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조금 확인해 보려고.”
“아아. 찍. 최근 브로리 님께서는 짐승신의 축복을 받으셨죠.”
말을 하는 라쿤의 얼굴에는 부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만약 호의 축복이 내려지면 자신 역시 지금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콰앙! 쿠왕! 쿵!
전투가 시작되었는지 멀리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미미한 진동이 던전의 내부를 울리고 있었다.
“역시 브로리 님은 엄청나게 강하네요. SSS등급의 영웅이 되면 무슨 느낌일까요? 찌익. 막 손가락 하나로 땅을 뒤엎고 할 수도 있을까요?”
“아무래도 그건 무리인 것 같은데……. 뭐, 적어도 칠제들을 상대로 공격 한 번 받아내지 못하고 꽥 하고 목숨을 잃을 수준은 아니겠지.”
“찍찍. 리그너스 대륙의 최강자들인 칠제들을 상대로……. 엄청난 경지로군요. 저도 분발해야겠습니다!”
그래도 대륙의 영웅인 모양인지 호승심과 함께 투지를 불태우는 라쿤의 모습에 호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다정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에도 브로리는 파이어 치킨 네스트에 등장하는 타락한 조인들을 모조리 통구이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띵동.
-S등급 던전 파이어 치킨 네스트의 ‘핫불닭’을 물리쳤습니다.
전투 성과를 결산 중입니다. 3……2……1. 결산완료. 이번 전투의 등급은 F랭크입니다. 경험치를 1 획득했습니다.
일반 몬스터는 물론이고, 준보스급 몬스터도 마찬가지였다. 계속해서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가 그 증거였다.
‘괴물이 더욱 진화했군.’
아무리 SSS랭크 병사들의 도움이 있다 해도 이 S랭크의 던전에서는 무력 능력 1700이 넘는 괴물을 막아낼 수 있는 몬스터는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