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4
리그너스 대륙전기 294
와아아아아!
그렇게 골든 크로우의 수도 알트라에 도착한 호와 일행들은 귀가 떠나갈 정도의 큰 성원을 받으며 성내로 들어설 수 있었다.
골든 크로우 백성들의 성원이 자신들이 아닌 라이온레인에게 향한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기사들의 나라, 골든 크로우에 온 것을 환영하네. 윤호군.”
골든 크로우의 재상인 그나이 칼츠만이 기사들과 함께 일행들을 마중 나와 있었다. 그리고 마장기에서 내린 호가 땅바닥에 발을 디디며 그나이 칼츠만을 향해 말했다.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호의 말에 그나이 칼츠만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흘금 뒤쪽의 커다란 수레들을 바라보았다.
실버 문들이 호위를 하고 있는 강철 수레에는 붉은색으로 도색이 된 마장기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수가 무려 열 기 이상으로 보였다.
“저게 그……?”
마장기의 정체를 확인한 그나이 칼츠만이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뒤에 시립해 있던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몸을 움찔움찔하는 것이 허락이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마장기를 향해 달려들 기세였다.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리고 손님을 맞이하는 왕성의 접견실에서 이레네 아르티아가 빙그레 웃으며 호를 향해 말했다.
“수레에 마장기를 싣고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요?”
“……안타깝게도 알르드에는 라이온레인을 움직일 수 있는 실력 있는 마장기사가 많지 않습니다.”
“리그너스 대륙에서 유일하게 라이온레인을 생산할 수 있는 나라가 다른 이유도 아닌 오너가 부족해서 마장기를 운용할 수 없다니. 참 아이러니하네요.”
기사왕의 눈이 진지하게 빛났다. 사파이어처럼 영롱한 푸른색 눈동자에 실린 묘한 열망을 느낀 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다고 해도 남는 마장기를 판매할 생각은 없습니다. 게다가 골든 크로우는 더 이상의 마장기를 구입할 여력이 없을 텐데요?”
네 기의 라이온레인을 구입하기 위해 골든 크로우는 호에게 200억 리스의 자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인간들을 대표하는 왕국인 골든 크로우라도 나라가 휘청거릴 정도의 막대한 돈이었다.
“아쉽게도 맞는 말이에요. 현재 우리는 200억 리스를 지불하기 위해 귀족들은 물론 기사들에게까지 자발적으로 세금을 걷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정곡을 찌르는 호의 말에 이레네 아르티아가 무안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게다가 라이온레인의 구입을 위해 지켜야 할 약속이 하나 더 있었죠?”
“폭풍 바람의 신전 공략.”
“맞아요.”이레네 아르티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타락한 고대신의 힘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극히 위험한 던전인 만큼 실력이 뛰어난 황금 기사들로만 지원을 할 생각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마장기의 조종 실력이 가장 뛰어나야 합니다.”
“골든 크로우의 가장 날카로운 검들이 그대와 함께할 겁니다. 그중 세 명의 황금 기사는 골든 크로우가 자랑하는 라이온레인의 오너들이죠.”
“세 명?”
호가 드러나지 않게 살며시 이마를 찌푸렸다. 골든 크로우에 라이온레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이 고대의 유적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하지만…….
‘골든 크로우의 휘하에 있는 라이온레인의 오너는 황금 기사인 그랜달과 치토크, 이렇게 두 명이 아니었나?’
디아린 상단을 통해 얻은 정보에 따르면 틀림이 없었다. 그 짧은 사이에 골든 크로우가 A등급 마장기를 손에 넣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 호의 입에서 짤막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고는 무의식적으로 이레네 아르티아를 쳐다보았다.
“맞습니다. 제가 직접 출진할 예정입니다.”
그녀의 대답과 함께 누군가의 한숨 소리가 접견실을 조용히 가로질렀다. 한숨 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그 유명한 기사왕과 함께 전투에 나설 줄이야……”
접견실에서 이레네 아르티아와 대화를 나눈 이후, 일행들이 모인 자리에서 페이샬 티슈가 몽롱한 얼굴로 말했다.
블루 스케일 출신으로 평범한 기사에 불과했던 그에게 있어 골든 크로우의 지배자이자 기사왕이라 불리며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며 명성을 쌓아올렸던 그녀는 영웅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만큼 이레네 아르티아와 황금 기사들이 있는 골든 크로우의 1 군단에 대한 명성은 대륙 내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이거 흥미진진한데? 똑같은 A등급 마장기를 다루는 만큼 어느 쪽의 실력이 더 뛰어난지 겨뤄볼 수 있겠어.”
페이샬 티슈와는 달리 브로리는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녀는 수도 엇비슷한 만큼 좋은 기회라는 말로 연신 수인들의 전설급 마장기를 다루는 오너들을 꼬드기고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상대는 적이 아니 동료라고.”
“왜? 적당한 라이벌은 실력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고?!”
브로리의 툴툴거림에 호는 코웃음을 치며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조금 의외이긴 했지만 이레네 아르티아의 합류는 폭풍 바람의 신전 공략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더욱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스킬을 생각하면…….
‘공략계획을 좀 더 과감하게 바꿔도 되겠어.’
단순히 함께 전투를 치르는 것만으로 A등급 마장기를 내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 * *
알트라에 모습을 드러낸 주인 없는 마장기, 그것도 A등급인 라이온레인급 마장기의 등장은 골든 크로우 영웅들의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이레네 아르티아는 알르드와 함께 폭풍 바람의 신전을 공략한다는 조건으로 네 기의 라이온레인급 마장기를 구입하기로 했다고 이미 발표한 바 있었다.
덕분에 호가 겨울언덕, 정확히 말해 폭풍바람의 신전의 입구에 도착하기까지에는 고작 일주일이 흘렀을 뿐이었다. 그만큼 골든 크로우의 영웅들이 공략을 서둘렀던 탓이었다.
그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원하는 골든 크로우의 마장기에 대한 사랑은 호를 비롯해 알트라를 방문한 영웅들도 다들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렇게나 반응이 열광적일 줄 알았다면, 좀 더 많은 지원을 요구했어도 되었겠어요.”
“그래?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거래 조건을 바꿔볼까?”
장난기가 가득 담긴 호의 말에 시진이 피식 웃었다. 일반적인 상거래가 아닌 국가와 국가간의 거래였다. 그것도 던전의 입구를 눈앞에 앞둔 지금 호가 거래조건을 바꾸겠다는 말을 꺼낸다면 골든 크로우가 어떻게 나올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랬다가는 큰일 날걸요?”
“디치 플레이스만의 군주님께서 불만이 가득하다는 말을 덧붙이면 되지 않을까?”
“자기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는 말도 함께?”
“당연하지.”
호의 대답에 한시진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러고는 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눈으로 하얗게 덮인 신전이 보이고 있었다.
“내일이면 드디어 던전 공략에 들어가네요.”
한시진은 호와 함께 많은 던전을 공략한 바 있었다. 그중에는 위험천만하다고 알려진 S등급의 던전도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폭풍 바람의 신전을 공략하기 위해 호는 그 어느 때와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철저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A등급 마장기인 라이온레인이 그 증거였다.
“이렇게까지 오빠가 준비를 할 정도면 많이 위험한 곳이겠죠?”
“쉽지는 않을 거야.”
시진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A등급 마장기만 무려 십여 기가 넘게 동원이 된 토벌대였다.
그 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소환자인 한시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호의 대답은 그녀가 예상했던 대답과는 거리가 조금 아니 많이 멀었다.
“그렇게나 위험할까요……?”
한시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고작 던전의 토벌에 이 정도의 전력을 쏟아 붓는 것이 쉬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호는 자신보다 이 이상한 세계에서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위험하다고 하는 거면 분명 그 이유가 있을 터였다.
“응. 개인적인 예상이지만 최소 다섯 기 이상은 반파될 거야.”
“다, 다섯 기나요? 여기에 있는 마장기는 모두 A등급 마장기잖아요?”
시진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하지만 호는 여전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폭풍바람의 신전은 S등급과는 하늘과 땅 차이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SS등급의 던전이었다.
“뭐, 일반적인 잔챙이들은 SSS랭크의 병사들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할 정도의 수준이야. 그러나 폭풍 바람 신전의 진정한 괴물들 일명 보스급 몬스터들을 만나게 되면…….”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많은 수의 마장기를 이끌고 왔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한시진과 간단히 대화를 나누고 난 후 호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부터 시작될 던전 공략을 위해서는 피로를 풀고 체력을 회복시켜야 했다.
그렇게 어둠이 지나고 아침에 밝아오자 회의가 열렸다. 회의의 주최자는 다름 아닌 호였다.
“잠자리가 불편하셨을 텐데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야전에서 수면을 취하는 것은 이미 익숙한 일이죠.”
호의 연락을 받고 휘하 기사들과 함께 막사 안으로 들어선 이레네 아르티아가 호를 향해 빙긋 웃었다. 자신이 한 말이 거짓은 아닌 듯, 그녀의 표정은 굉장히 편안해 보였다.
알르드의 영웅들은 이미 막사 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빈자리에 골든 크로우의 기사들이 자리를 잡자, 호가 주위를 쓱 둘러보며 영웅들과 눈을 한 번씩 맞추고는 입을 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오늘 우리가 공략할 폭풍바람의 신전은 두 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하층부와 상층부죠.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보름동안 하층부를 완벽하게 공략할 예정입니다.”
“보름씩이나 걸립니까?”
“무리를 한다면 일주일 내에도 던전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분명 여기에 있는 누군가는 크게 다치는 일이 생길 겁니다. 아니면 죽을지도 모르죠.”
“상대는 고작 몬스터 따위일 텐데?”
중얼거리듯 내뱉은 말이지만 충분히 호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소리였다. 호가 고개를 돌리자 제법 젊어 보이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황금 독수리의 문양이 새겨진 매끄러운 갑옷을 입고 있는 훤칠한 영웅으로 표정에 자신감이 가득 드러나 있는 인물이었다.
‘게임 내에서는 저런 녀석이 먼저 골로 가곤 그랬는데.’
속으로 피식 웃으며 호는 아르티아를 바라봤다. 호의 눈동자에 실린 의미를 알아챈 그녀가 헛기침을 하자 어수선해지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정리가 되었다.
“물론, 몬스터를 상대로 너무 조심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은 들 겁니다. 하지만 장담하죠. 잔챙이들이 아닌 보스급 녀석들을 만난다면 생각이 바뀔 겁니다. 폭풍 바람의 신전이 사람들의 발길이 오가지 않는 겨울 언덕에 위치해 있다고는 하지만 모험가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던전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던전의 공략에 실패습니다.”
호의 말에 이어 이레네 아르티아가 답했다. 그중에는 골든 크로우의 토벌대도 있었다.
그렇게 전투에 나설 영웅들에게 던전의 위험성을 상기시킨 호는 이어서 폭풍바람의 신전에 등장하는 보스급 몬스터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던전의 하층에 등장하는 두 명의 보스급 몬스터의 능력과 대응책에 설명하고, 질문을 받는 데만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덕분에 던전의 본격적인 공략은 점심이 지나고 나서야 시작이 되었다.
“몬스터들이 등장했습니다. 곧바로 전투에 들어가겠습니다.”
선발로 진입한 SSS랭크의 병사들은 던전 내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들을 어렵지 않게 처리하며 폭풍 바람의 신전 하층부의 길을 뚫어나갔다.
뛰어난 방어력을 자랑하는 실버문과 강력한 마법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브뤼헤아 비쉬의 조합은 잔챙이나 다름없는 몬스터들이 막아낼 리 없었다.
“이거 너무 쉬운데?”
“SSS랭크의 병사들이 강하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소문대로 대단하군. 우리들이 나설 일도 없겠어.”
덕분에 A등급 마장기에 탑승한 마장기사들은 검 한 번 휘두르지 않은 채 걸음만 옮길 뿐이었다.
‘이 던전을 우습게 봐서는 분명히 큰 코를 다칠 거라고 몇 번이나 경고를 했는데…….’
통신구를 통해 들려오는 잡담에 호의 얼굴에 쓴웃음이 맺혔다. 하지만 저런 반응들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SSS랭크의 병사들이 강하다고는 해도 마장기사 그것도 A등급 마장기와는 그 전력의 강함이 비교도 되지 않았다.
하물며 현재 토벌대는 마장기사가 나서지 않아도 파죽지세로 던전의 길을 뚫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였다.
“저건 뭐지? 돌멩이가 하나 있는데? 어엇?! 움직인다!”
“정령? 아니! 골렘! 골렘이다! 조심!”
선두에서 움직이던 실버 문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통신구를 통해 시끄럽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창조주님의 휴식을 감히 방해하다니! 가만두지 않겠다!”
이어서 포효와 함께 멀리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왔다. 마장기에 탑승한 영웅들을 찌릿하게 만들 정도의 압박감이 느껴지는 고함이었다.
“이건?!”
다들 꽤나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이레네 아르티아를 포함해 빠르게 자신을 향하는 영웅들의 시선을 느끼며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SS등급 던전의 보스급 몬스터가 등장한 것이다.
“선두의 부대는 당장 후퇴한다.”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의 강한 기세를 내뿜는 몬스터의 등장에 영웅들이 당황하는 사이 호는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보스급 몬스터가 나타났다면 일반 병사들의 투입은 무의미한 희생만을 부를 뿐이었다.
그렇게 호의 명령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선두의 부대는 곧바로 후퇴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에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은 병사들의 수가 백여 명이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