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너스 대륙전기-293화 (293/522)

# 293

리그너스 대륙전기 293

“그렇다면 한 기당 50억 리스에 두 기를 판매하도록 하겠습니다.”

“50억 리스? 방금 전에는 원가만 해도.”

호의 말에 이레네 아르티아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멀뚱히 그나이 칼츠만을 바라보았다. 그가 괜히 이런 이야기를 꺼냈을 리 없었다.

“돈이 아닌 다른 걸 원했던 거로군.”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원래부터 라이온레인을 판매할 계획이었나?”

“아니요. A등급 마장기가 지닌 가치를 모르지는 않습니다. 다만, 급하게 골든 크로우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겨서 말이죠.”

그나이 칼츠만의 말에 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회의실의 탁자 위로 지도 하나를 넓게 펼쳤다. 모습을 드러낸 지도에는 알르드를 중심으로 각 종족들의 영토들이 나타나 있었다. 골든 크로우의 영토 역시 그려져 있었다. 이어서 호의 손가락이 골든 크로우의 한 지역을 가리켰다. 그러자 신음에 가까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레네 아르티아였다.

“겨울언덕이로군요.”

경계선이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호가 어디를 가리키려고 하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겨울언덕. 골든 크로우에서 가장 추운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죠. 실제로도 그렇고요. 덕분에 작물들도 자라지 않아 극소수의 영지민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땅이죠.”

“맞네. 거기에 생산되는 특산품도 없을 뿐더러 주기적으로 토벌을 하지 않으면 급격하게 늘어나는 몬스터들로 인해 골치만 아픈 곳이기도 하지.”

말을 마친 그나이 칼츠만이 호를 쳐다보았다. 어째서 그가 골든 크로우에서도 버림받은 땅이나 다름없는 겨울언덕을 가리켰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가상현실게임 내에서도 버려지는 쓸모없는 땅.’

겨울언덕에 대한 호의 평가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공략하려는 폭풍바람의 신전은 바로 그 겨울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폭풍 바람의 신전. 겨울언덕에 있는 던전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이레네 아르티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만큼 예상치 못한 이름이 호의 입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호가 말한 던전의 이름은 그녀의 기억 속에도 남아 있는 이름이었다.

‘분명…….’

폭풍바람의 신전은 먼 옛날 리그너스 대륙을 지배하려고 했던 이름 모를 고대의 신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세운 기괴한 형태의 신전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의 존재는 사라졌지만, 신전의 형태만큼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었고 현재는 몬스터들이 자리를 잡으며 던전으로 탈바꿈한 곳이었다. 그리고 아르티아가 기억하고 있는 그 던전은…….

“저는 그 폭풍바람의 신전을 공략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골든 크로우가 저와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이 제가 원하는 라이온레인의 판매조건입니다.”

“위험합니다.”

이레네 아르티아가 얼굴을 굳히며 호를 바라보았다. 다른 던전이었다면 냉큼 호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터였다. 하지만 폭풍 바람의 신전은 달랐다. 그곳은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기사왕인 그녀라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던전이 아니었다.

“신전의 공략을 위해 A등급 마장기 열 기와 SSS랭크의 병사들을 투입할 생각입니다. 알르드가 보유하고 있는 수인족의 전설급 마장기 전부와 데스 사이더, 티거알리카가 포함된 전력이죠.”

“A등급 마장기 열 기나!”

“그 외에도 추가적으로 마장기를 투입할겁니다. 혹시나 하는 공략의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서죠.”

아르티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가 입에도 나온 전력은 인간들의 구심점이나 다름없는 골든 크로우도 보유하지 못한 전력이었다. 그런 전력을 이 대륙에 모습을 드러낸 지 십 년, 아니 오 년 남짓한 소환자가 보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알르드에는 라이온레인을 움직일 수 있는 실력 있는 마장기사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렇다는 말은 우리 측의 인원을 원하는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장기는 저희들이 지원할 겁니다. 수리 또한 마찬가지죠.”

“……몇 명이나 필요한 거죠?”

방금 전까지도 이레네 아르티아는 던전의 공략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만큼 폭풍 바람의 신전은 위험한 곳이었다. 하지만 던전의 공략에 A등급 마장기 열기를 포함해 다수의 마장기들이 투입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 정도의 전력이라면 군주급 세력 몇 개를 박살낼 수 있는 무시무시한 전력이었다. 더욱이 마장기를 보조하기 위해 알르드가 자랑하는 SSS랭크의 병사들도 움직일 터였다.

뉘앙스를 보아하니 호는 던전의 공략을 위해 많은 수의 영웅을 지원해 달라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도 어정쩡한 실력자들이 아닌 전장에서 닳고 닳은 그것도 A등급 마장기를 움직일 수 있는 인물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골든 크로우에는…….

“200억 리스에 네 기. 그리고 우리는 던전의 공략에 황금 기사들을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기라.”

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A등급 마장기를 원가에 네 기나 넘겨줘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골든 크로우가 자랑하는 황금 기사들이 폭풍 바람의 신전 공략에 함께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기는 했다.

‘아이템 하나 얻기 더럽게 빡세네.’

그러나 허리케인 글러브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손에 넣어야만 하는 아이템이었다. 잠시 후, 호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200억 리스에 네 기를 판매하도록 하죠. 하지만 당장 마장기의 판매는 불가능합니다. 새로이 제작도 들어가야 하는 만큼 인도 시기는 폭풍 바람의 신전 공략이 끝난 후로 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레네 아르티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인지 딱히 이견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네 기의 마장기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얼굴이 살짝 상기된 모습이었다.

“이거 거래가 잘 끝난 마당에 노인네의 괜한 호기심이네만, 자네 폭풍바람의 신전은 왜 찾는 건가?”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호는 고개를 돌렸다. 그나이 칼츠만이었다. 순간 어떤 대답을 해야 할 지 고민이 들었지만, 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말을 하기로 했다.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폭풍 바람의 신전 안쪽에 숨겨져 있는 물건이 필요합니다.”

“물건?”

“그렇습니다. 허리케인 글러브라는 아이템이죠.”

호의 말에 그나이 칼츠만은 허탈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아이템 하나를 얻기 위해 그 위험천만한 곳을 공략하려고 하다니 자신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테지만 그는 그것까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골든 크로우의 입장에서 오늘의 거래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레네 아르티아를 위시한 골든 크로우 일행은 거래가 끝나자마자 자신들의 나라로 향했다. 명목상 알르드의 건국을 축하한다고 찾아왔지만 본래의 목적은 역시나 라이온레인의 구매였던 모양이었다. A등급 마장기라는 큼지막한 보물을 탐내는 것은 골든 크로우만이 아니었다. 알르드의 건국에 떨떠름한 시선을 보냈던 미피츠나 바라테이온에서도 사신을 보내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 역시 라이온레인의 구매를 원했다.

그리고 호는 그들의 제안을 냉정하게 뿌리쳤다. 사이도 좋지 않은 그들에게 A등급 마장기를 판매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블루 스케일의 세이라 클리퍼드 역시 라이온레인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들의 재정 상태로는 라이온레인은커녕 B등급 마장기로 운영하기 힘들었다.

“꼬꼬꼬? 던전 공략?”

“음무우우. 디르시나로 가야겠군.”

그렇게 시간이 흘러 던전 공략에 나설 라이온레인의 제작이 끝이 나자 호는 각 영토에 배치되어 있는 영웅들을 모조리 소환했다. 전부 A등급 마장기를 보유한 영웅들이었다.

“출진의 나팔을 불어라!”

A등급 마장기의 속도에 맞춰 병사들도 행군을 시작했다. 굳이 다른 세력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는 않았기에 디르시나에서 출발하는 병사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어차피 폭풍 바람의 신전 공략에서 병사들은 정찰 및 잔챙이들을 처리하는 보조적인 역할밖에 할 게 없었다.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SS등급의 던전인 만큼 던전의 공략은 A등급 마장기 편대가 주력이 될 터, 아무리 SSS랭크 병종이라 해도 일반 병사들은 그렇게까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덕분에 호가 이끄는 병사의 수는 만 명 정도. 마장기를 수리할 수 있는 공병들도 포함된 숫자였다. 그리고 그중 반 수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실버 문들은 튼튼한 수레에 실린 마장기들을 호위하며 이동하고 있었다.

육중한 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옮기는 수인들의 전설급 마장기들과는 달리, 수레에 실린 마장기들은 전부가 인간의 A등급 마장기인 라이온레인들이었다. 오너가 정해지지 않은 마장기들이었다.

“마장기 조종에 능숙한 녀석들만 있었다면 저렇게 끌고 갈 필요는 없었을 텐데…….”

수레의 마장기들을 보며 브로리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 전까지 그녀는 호의 제안에 따라 던전의 공략에 나설 인간 영웅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그랬다면 정말로 좋았겠지. 하지만 알르드의 인간 영웅 중에서 라이온레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녀석은 페이샬 티슈밖에 없었다고.”

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브로리에게 훈련을 받은 알르드의 인간 영웅은 라이온레인의 발 하나조차 움직이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알르드의 인간 영웅들은 마장기를 건드려 본 적도 없는 이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브로리는 그들을 상대로 고작 일주일가량을 훈련시켰을 뿐이었다.

그나마 엑스칼리버의 오너로 호와 함께 던전 공략에 몇 번 참여했었던 페이샬 티슈가 그나마 봐줄 만한 수준으로 라이온레인을 움직이면서 체면치레를 했을 뿐, 라 엑스트나 어빈 아마추와 같은 다른 마장기사들 역시 라이온레인의 조종에 실패했다.

“인간들의 격을 높여주는? 창조신의 축복이라는 게 있잖아.”

“당연히 내려줬지.”

하지만 창조신의 축복은 영웅들의 격과 잠재력을 높여주는 것일 뿐, 마장기 조종술과 같이 스킬로 규정되지 않는 기술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었다.

“찍찍. 라이온레인이 아닌 수인 왕국이나 엘프의 마장기였다면 도움이 되었을 텐데요.”

뒤에서 들려오는 라쿤의 말에 호는 쩝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의 말대로 라이온레인이 아니라 티거알리카 혹은 아보르 비테를 생산할 수 있었으면 좀 더 많은 수의 마장기를 운용할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 마장기 기술에 관해 연구를 시작했을 때 도움을 받았던 나라는 다름 아닌 골든 크로우, 인간들의 왕국이었다. 어차피 지금의 상황이 이렇다 해도 시간이 지난다면 마장기술을 익힌 인간 영웅들은 점점 늘어날 터였다.

‘그래도 다른 종족의 마장기술 역시 연구를 시작해야겠지.’

최근 들어 알르드를 구성하는 종족 중 수인 다음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엘프들 사이에서 불만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보고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닌 라이온레인 때문이었다.

“대체 라이온레인의 개발은 왜 한 거지? 저것 봐. 움직이지도 못하잖아?”

“그러게. 차라리 아보르 비테나 윈드라이더가 있었으면 훨씬 도움이 되었을 걸?”

“맞아! 인간들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라스엘 님이나 니키타, 릿츠님과 같이 뛰어난 마장기사들이 있어. 하지만 알르드에는 엘프들의 마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장기가 단 한 기도 없다고.”

우려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시하고 넘어갈 내용은 아니었다. 그들의 불만대로 알르드의 엘프 영웅들 중에는 마장기 조종술이 뛰어난 영웅들이 제법 있었다.

수인도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엘프들과는 달리 그들은 라이온레인의 개발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엘프들과는 달리 알르드에는 카니앗산, 웨어타이거, 릴라릴라등 수인족의 마장기들이 다수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알르드에는 전설로만 내려오던 수인족의 마장기들도 다수 있었다.

‘그래도 라이온레인을 개발할 때 보다는 빨리 연구를 끝낼 수 있겠지.’

인간에 한해서긴 하지만 알르드는 A등급 마장기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마장기 제작과 관련된 공통의 기술을 제외한 종족의 특성 기술에 연구만 개발을 마칠 수 있다면 다른 종족의 마장기 역시 생산할 수 있었다. 연구에 들어갈 돈은 충분했고, 기술 연구를 위해 갈려야 하는 공돌이들 역시 아직까지는 건재했다.

행군은 순조로웠다. 아니, 순조로울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쿠투스 평원까지는 알르드의 영토였고, 골든 크로우로 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지나쳐야 할 모에드 왕국은 일찌감치 골든 크로우의 연락을 받았는지 별다른 일 없이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A등급 마장기와 SSS랭크의 병사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건드릴 만한 간 큰 산적이나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딱 한 번이지만 겁 대가리를 상실한 산적 떼들이 잠깐 모습을 드러내기는 했다.

그리고 그들은 브로리를 포함해 행군의 지루함에 몸부림치던 마장기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호기롭게 모습을 드러낸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