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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92화 (292/522)

# 292

리그너스 대륙전기 292

“왠지 마음에 드는 아이템인데?”

“분명히 그럴 거야.”

허리케인 글러브를 얻고 나면 브로리는 그렇게나 자신이 염원하던 짐승신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호는 그에 대해서 브로리에게 자세히 이야기할 생각이 없었다. 허리케인 글러브를 얻고 난 이후 브로리가 깜짝 놀라며 기뻐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폭풍바람의 신전을 공략하려면 상당한 전력이 필요해.”

“실버문과 브뤼헤아 비쉬들이 있잖아?”

“그들만 믿고 던전을 공략했다가는 순식간에 전멸할걸?”

“……뭐?! 말도 안된다!”

호의 대답에 브로리가 크게 눈을 떴다. 그러고는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실버문과 브뤼헤아 비쉬의 강력함을 알고 있는 그녀로써는 호의 대답을 쉬이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전력을 상세하게 알고 있는 것은 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폭풍 바람의 신전은 무려 SS등급의 던전이야. 이제껏 우리가 공략했던 던전과는 궤를 달리하는 곳이란 말이지. 그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으으음. 이 대륙에 그런 곳이 있다고?”

“그래. 쉽게 설명하자면 하늘의 궁전의 보스급 몬스터인 페일 캣어스들이 다수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어?!?”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 모양인지 브로리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페일 캣어스는 특수한 능력으로 던전을 공략하던 아군의 마장기들을 박살낸 보스급 몬스터였다.

“그런 녀석들이 다수 있다고? 이거 재미있겠는데? 공략은 언제부터 하는 거지?”

강력한 적의 등장에 전의를 활활 태우는 브로리의 모습에 호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높은 무력능력을 지닌 영웅다운 모습이었다. 어쨌든 브로리의 적극적인 모습은 호가 원하는 바였다. 폭풍바람의 신전 공략을 위해 그녀가 해줘야 할 중요한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던전 공략에 참여해야 하는 인간 영웅들의 훈련이었다.

현재 알르드에 주둔하고 있는 A등급 마장기의 수는 총 여덟 대로 제법 많은 수가 배치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중 네 대가 라이온레인급 마장기라는 점이었다.

‘한대는 내가 탄다고 해도…….’

영지의 정보창을 연 호는 영지에 주둔하고 있는 영웅들의 목록을 살폈다. 다양한 종족의 영웅들로 구성된 알르드지만, 전쟁에 특화된 정예라 부를 수 있는 영웅들은 대다수가 수인과 엘프 영웅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라이온레인에 탑승한 수 없는 종족들이었다.

인간 영웅들 중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이라면 현재 A등급 영웅인 페이샬 티슈 정도가 전부였다. 그 역시 라이온레인급 마장기의 오너가 되기에는 실력이 떨어졌다.

“다들 적어도 S등급 이상은 만들어야겠네.”

호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라이온레인급 마장기의 제작이 끝난다 하더라도 폭풍 바람의 신전 공략은 좀 더 훗날의 일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라이온레인의 마장기사로 승급시킬 인간 영웅을 선별하던 호는 갑작스레 들려온 소식에 작업을 멈추고는 급히 영주성으로 향해야만 했다.

“갑자기 왜?!”

골든 크로우의 지배자인 이레네 아르티아가 그나이 칼츠만과 함께 디르시나로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 * *

이레네 아르티아와 그나이 칼츠만, 골든 크로우를 지탱하는 두 남녀가 마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현재 그들은 라이온레인의 구입을 문의하기 위해 알르드의 수도 디르시나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차의 창문을 통해 넓게 깔린 알르드의 가도를 본 이레네 아르티아가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군대가 움직이기에 편리하게끔 가도가 넓게 깔려 있네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가도는 군대 뿐 아니라 상인들과 여행자들에게도 편의를 제공하고 있죠. 하지만 이렇게 넓게 가도를 깔려면 많은 노동력과 자금이 필요할 텐데. 역시 상업이 발전한 왕국답군요.”

“흐음. 우리도 이렇게 도로를 넓힐 수 있을까요?”

“수도 부근이라면 모를까, 그 이상은 현재의 재정 상태로는 무리입니다.”

이레네 아르티아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했다. 힘들 것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귀로 듣고 나니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와는 별개로 골든 크로우의 문장이 그려진 마차는 디르시나를 향해 잘 닦여진 가도를 따라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다. 알르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화려한 마차의 등장에 심상치 않은 인물이 타고 있다는 것을 느낀 디르시나의 영지민들이 마차를 향해 예를 표했다. 미리 기사왕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은 아스트리드 벨이 그들을 맞이했다.

“골든 크로우의 지배자이자 대륙의 영웅인 이레네 아르티아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대가 림드 산맥의 군주인가? 소환자라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아스트리드 벨이라고 합니다.”

대답과 함께 벨은 조심스레 이레네 아르티아의 얼굴을 바라봤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답게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자연스레 기사왕의 위압감이 벨의 어깨를 짓눌렀다.

벨에게 있어 이레네 아르티아와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오래 전의 일이기는 했지만, 벨은 선택의 신전에서 인간족의 대표로 모습을 드러냈던 그녀를 가까이서나마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감히 쳐다 볼 수도 없었던 왕과 직접 인사를 나눴기 때문일까? 묘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벨은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상대는 기사왕. 결코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상대였다.

“윤호 님께서도 기사왕의 방문에 기뻐하고 계십니다.”

“조금은 무리한 부탁을 하려고 찾아왔는데 우리를 환영한다니. 잘된 건가?”

이레네 아르티아가 진심인지 장난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무리한 부탁?’

그 모습에 벨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표면적으로 이들은 알르드의 건국을 축하하기 위해 디르시나를 방문했다고 했다. 골든 크로우의 기사왕이 직접 알르드를 방문한 것은 분명 놀랄 만한 일이었지만, 이상하다고 생각될 정도는 아니었다. 알르드와 골든 크로우는 군사 동맹을 맺은 관계였고, 수인 왕국을 상대로 한 전쟁이 벌어졌을 때도 이레네 아르티아가 직접 출진해 전쟁을 도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벨은 상념을 치웠다. 지금 궁금해 하지 않아도 어차피 나중에는 알게 될 일이었다.

골든 크로우의 방문단을 환영하는 파티가 곧바로 열렸다. 갑작스런 방문 소식에 조금은 급하게 준비했지만, 많은 돈을 쓴 탓에 환영파티는 굉장히 성대했고, 화려했다. 그리고 환영 파티가 끝나자마자 이레네 아르티아는 그나이 칼츠만과 함께 호의 집무실을 찾았다.

“라이온레인의 제작에 성공했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이레네 아르티아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돌려서 말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라이온레인을 구입하고 싶습니다.”

“어……?”

“멍멍!”

꽉 찬 직구와도 같은 기사왕의 말에 집무실에 자리해 있던 벨과 로우덴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레네 아르티아의 제안이 너무나도 직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도 얻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얻어야 하는 게 바로 A등급 마장기입니다.”

이레네 아르티아의 말에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엔딩을 본 플레이어. A등급 마장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특출한 인간 영웅이 없는 알르드의 상황과는 달리 골든 크로우에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영웅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당장 호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영웅만도 이레네 아르티아를 포함해 다섯이나 되었다. 모두 라이온레인의 마장기사가 될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다.

“가격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알르드에서도 라이온레인을 판매할 의향은 있나 보군.”

잠잠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나이 칼츠만이 넌지시 물었다. 그리고 호는 잠시 머뭇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호의 모습에 희망이 느껴졌는지 두 남녀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호는 다른 세력에게 라이온레인의 판매를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무리 골든 크로우와 친분이 있다 하더라도 A등급 마장기의 중요성은 분명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골든 크로우와 껄끄러운 상황을 만드는 것은 호에게도 충분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조만간 브로리의 승급 아이템인 허리케인 글로브를 얻기 위해서 골든 크로우의 영토를 방문해야 했다. 게다가 또 하나의 생각이 호의 태도를 바꾸었다.

‘골든 크로우가 도와준다면 좀 더 쉽게 폭풍바람의 신전을 공략할 수 있어.’

기사들의 나라라 불리는 골든 크로우에는 호가 원하는 수준의 인간 영웅들이 여럿 존재했다. 충분히 폭풍바람의 신전 공략에 참여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다. 그에 반해 알르드에 소속된 인간 영웅들은 모두가 그저 그런 수준에 불과했다.

물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이용한다면 자신의 휘하에 있는 영웅들을 어렵지 않게 대륙에 유명을 떨칠 수 있을 정도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최소한 년 단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호의 눈동자가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레네 아르티아로 향했다. 기사왕이라 불리는 그녀가 도와준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터였다.

“라이온레인을 판매할 의향이 있다니. 구입을 원하는 우리로써는 아주 좋은 소식이네요. 그러면 라이온레인의 판매 조건에 대해서 듣고 싶은데요?”

“몇 기를 원하십니까?”

호의 말에 이레네 아르티아는 최대한 많이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전략병기라 불리는 마장기, 그것도 A등급 마장기였다. 분명 가격이 만만치 않을 터였다. 골든 크로우의 재정을 떠올리며 잠시 인상을 찌푸리던 그녀는 입술을 다물더니, 잠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세 기를 구입하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가 희망하는 가격은 한 기에 50억 리스입니다.”

“50억 리스?!”

“멍멍. 말도 안 됩니다!"”

옆에서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로우덴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C등급 마장기가 1억 리스, B등급 마장기가 10억 리스 언저리 선에서 거래가 되고 있습니다. 멍멍! 그런데 A등급 마장기가 고작 50억 리스라뇨? 원가만 해도 50억 리스에 육박할 겁니다!”

원가가 50억 리스? 라이온레인의 제작비용은 약 25 억 리스 정도에 불과했다. 여기에 인건비 정도를 따진다고 해도 30억 리스를 넘어가지는 않을 터였다. 호는 속으로 웃음을 터뜨리며 입꼬리를 살짝 당겼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뻔뻔한 얼굴로 사기를 치는 녀석이었다.

“하물며 라이온레인은 A등급 마장기입니다!”

“으, 으음.”

“그렇게나 비싸다니…….”

열을 올리는 로우덴과는 반대로 이레네 아르티아와 그나이 칼츠만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 로우덴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자신들의 생각보다도 훨씬 비싼 라이온레인의 제작비용 때문일까? 이레네 아르티아가 어색한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알르드에서 제작한 라이온레인의 가치를 훼손할 생각은 없습니다. 호 님이 원하는 가격을 말씀하시면 저희들이 그에 맞춰 재량껏 구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신들의 예상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도 불과하고 계속해서 거래를 진행하려 하는 것을 보면 골든 크로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라이온레인을 구입을 원하는 것 같았다.

“원하는 가격이라.”

그리고 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골든 크로우 측 인물을 돌아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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