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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89화 (289/522)

# 289

리그너스 대륙전기 289

“이대로 당할 생각이오?!”

“…….”

“벌써 네 개의 영지가 그들의 손에 함락이 되었소. 당장이라도 병사를 일으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블루스케일의 후작 알타리가 손을 탕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무려 삼십만의 군대입니다. 마장기만 해도 다섯 편대가 넘는다고요. 게다가 그들을 이끄는 장수는 다름 아닌 브로리입니다. 천족의 10 천사인 니나 다니엘레를 상대로 호각을 이뤘던 그 맹장이라고요.”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우리들의 영지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알타리 후작의 말에 주위의 귀족들이 각자 침음을 흘렸다. 이들은 디아린 상단에게 빚을 졌지만 변제를 할 능력은 없는 귀족들이었다.

“여왕 폐하도 너무하시지. 우리들을 이렇게 져버릴 줄이야.”

“흥! 귀족들의 긍지도 모르는 어린 애 따위. 힘에 굴복해 버린 그 여자는 나의 여왕이 아니오!”

“크흠. 그래도 충성을 바친 여왕인데……. 말이 좀 심한 것 아닙니까?”

“충성은 무슨! 시그너스와 썬드라 밖에 책임지지 않는 것을 보면 그녀 역시 우리와 같은 일개 귀족에 불과하오!”

한 귀족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자신들이 모시는 국왕을 모독하는 말이었지만 그에 대해 지적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판 붙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림드 산맥의 병사들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다면 어떻게 할 거요? 영지를 내놓을 수는 없잖습니까?”

다들 씩씩거리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았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돈을 갚지 않으면 영토를 내어놔야 했는데,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귀족들이 흘끔흘끔 한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천족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크로스 공작의 아들이자 그의 뒤를 이어 새롭게 공작위에 오른 토르니 공작이었다.

토르니 공작 역시 디아린 상단에게 큰 빚을 지고 있었다. 디아린 상단이 블루스케일에게 빌려준 돈 105 억 리스의 반에 가까운 46 억 리스가 토르니 공작이 변제해야 할 돈이었다.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지 눈을 감으며 가만히 있던 토르니 공작이 어느새 조용해진 회의실의 분위기를 느끼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골든 크로우에 사신을 보내보겠소.”

“골든 크로우에?”

“아시다시피 블루스케일과 골든 크로우는 혈연인 관계가 아니오? 작금의 상황을 잘 설명하면 분명 도움을 내려줄 것이오. 그것이 돈이면 병사든 말이오.”

자리에 앉은 귀족들이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토르니 공작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도 필요하겠지. 골든 크로우의 귀족들에게 줄 선물이 필요할 것이오.”

“그 정도야…….”

“5 천만 리스 정도면 당장이라도 내놓을 수 있소.”

어떻게든 살아날 수 있는 길이 보였기 때문일까?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귀족들을 보며 토르니는 엷게 웃었다. 하지만 그들이 골든 크로우를 향해 사신을 보내기도 전에 브로리의 군대가 먼저 움직였다.

“바르시온의 코스틸! 함락되었습니다!”

“가디온도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지원군이 필요합니다!”

블루스케일의 귀족들이 돈을 갚을 생각은 하지 않은 채 한데 모여 꿍꿍이를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브로리가 군대를 나눠 동시에 여러 영지를 공격한 것이다.

“공격!”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푸른색의 물결들이 성벽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렇게 마장기의 마력포가 성문을 한바탕 뒤흔들면 브뤼헤아 비쉬의 강력한 마법이 떨어져 내렸고, 그 뒤로 실버문들이 성벽의 적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막아! 어떻게든 막으란 말이다!”

정석적이지만 강력한 위력을 지닌 알르드의 전술에 블루스케일의 귀족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밀려드는 적군들을 상대로 높은 저지력을 보이는 병기인 마장기도 없을뿐더러 기껏해야 A랭크 병종인 팔라딘 정도나 보유하고 있는 그들이 SSS랭크 병종으로 이루어진 실버문, 브뤼헤아 비쉬 조합을 당해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에레브와 바르시온이 호의 손에 넘어왔다. 블루 스케일의 북동쪽 평원에 자리 잡은 영토이자 토르니 공작이 다스리고 있는 쿠투스 평원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그 역시 점령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띵동.

-열 개의 영토를 획득했습니다.

-리그너스 대륙의 모든 영웅들이 당신의 업적에 놀라움을 표합니다.

-이제부터 알르드의 건국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명성이 크게 상승합니다. 영토를 방문하는 영웅들의 수가 더욱 많아집니다.

“어……? 벌써 점령이 다 끝났나?”

커티삭에서 공사 일을 감독하던 호는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메시지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자신의 세력이 리그너스 대륙의 한 세력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건국 선포는 간단하게 할 생각이었다. 괜히 다른 세력의 주목을 받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알르드가 건국된다 하더라도 지금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알르드에 거주하고 있는 영지민들의 충성도가 크게 높아지긴 하지만 이미 자신의 영토는 리그너스 대륙의 종족들에게 있어 유토피아라 불리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능력이 뛰어난 영웅들이 자신의 휘하로 들어올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지는데다가 건물의 건설 속도, 연구 개발 속도 및 각종 부문에서 약간이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영지에 거주하려는 유랑민들의 수 또한 앞으로는 크게 늘어날 터였다.

또한 달라지는 점이 있다면 앞으로는 휘하 영웅들의 명성에 따라 작위를 임명할 수 있기도 했다. 이는 영웅들의 충성도를 크게 높일 뿐 아니라 몇몇 영웅들의 승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중에는 호가 승급을 시키려고 마음먹고 있는 브로리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에게? 이게 전부야?”

하지만 아직 세력이 작기 때문인지 호가 임명할 수 있는 고위 귀족은 공작 한 명과 후작 두 명이 전부였다. 그래도 백작은 다섯이나 임명할 수 있었다.

띵동.

-‘천본앵’ 한시진이 알르드의 공작으로 임명 되었습니다.

-‘금파신’ 브로리 발란스가 알르드의 후작으로 임명 되었습니다.

-‘세계를 손아래에 둔 책사–제갈공멍’ 로우덴 셰필드가 후작으로 임명 되었습니다.

-‘바이스로이’ 아스트리드 벨이 백작으로 임명 되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위치에 있는 몇몇 영웅들에게 작위를 내린 호는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을 열어 브로리의 승급에 필요한 아이템을 체크했다.

자신이 보낸 임명장이 브로리에게 도착하는 순간 후작의 증표를 얻을 수 있을 테니 이제 남은 것은 +9 강화된 허리케인 글러브뿐이었다.

“폭풍 바람의 신전이라.”

공략본을 보며 호가 말끝을 흐렸다.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설정상 SS등급의 던전은 S등급 던전과 비교해 난이도가 열 배 이상은 어렵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로 인해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에도 던전의 원활한 공략을 위해서는 A등급 마장기 열 기 이상과 S등급 이상의 영웅들로 공격대를 구성하라고 나와 있었다.

사실상 대륙 통일을 앞둔 플레이어들이나 즐길 수 있는 컨텐츠였지만 그만큼 보상 역시 뛰어났다. 영웅의 SSS 승급에 필요한 재료라던가, SS등급 이상의 무기 혹은 A등급의 마장기들을 획득할 수 있었다. 던전 클리어로 인해 얻는 명성과 자원 역시 엄청난 수준이었다.

“조금만 더 준비를 하면 되겠네.”

그리고 호는 라이온레인의 개발이 끝나고 양성 체제가 갖춰지는 즉시 폭풍 바람의 신전을 공략할 생각이었다.

* * *

토르니 공작이 보낸 사신이 골든 크로우에 도착했다. 골든 크로우의 귀족들에게 바칠 리스와 특산품들과 함께였다. 하지만 토르니 공작과 블루 스케일의 귀족들이 원했던 골든 크로우의 지원은 없었다. 이미 전후 사정을 다 알고 있는 골드 크로우의 재상 그나이 칼츠만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군사 지원을? 허 참. 웃기는 소리. 빌린 돈을 갚으면 될 것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나?”

블루 스케일을 도와야 한다는 귀족들의 주장에 그나이 칼츠만은 콧방귀를 뀌었다. 이미 호에게 많은 돈을 지원받고 있는 골든 크로우의 입장에서는 쉽사리 군사를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뇌물을 받은 귀족들은 열정적으로 블루스케일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이라 클리퍼드가 직접 요청을 하면 출병을 고려해 보겠다.”

결국 골든 크로우의 지배자인 이레네 아르티아가 서로의 의견을 내세우며 투닥거리는 귀족들을 향해 말했다. 토르니 공작과 그를 따르는 블루 스케일 귀족들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닥친 것이다.

“빌어먹을! 병사와 용병을 모집해라! 다른 왕국들에게도 지원을 요청해!”

골든 크로우에서 아무런 지원이 없을 거라는 보고를 받은 토르니 공작은 곧바로 병력을 모집했다. 당장 브로리의 군대가 눈앞에 들이닥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토르니 공작이 병사를 모으는 속도보다 브로리가 먼저 쿠투스 평원에 들이닥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콰콰콰쾅!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을 저릴 것만 같은 기세를 내뿜는 병사들이 쿠투스 평원의 영지에 들이닥쳤다. 알르드의 마장기들은 수적 우세 및 뛰어난 실력을 앞세워 토르니 공작의 마장기를 박살냈고, 그 중심에는 코우랄라의 오너인 브로리가 있었다.

“크아아아아!”

단숨에 엑스칼리버급 마장기를 박살 내고 포효를 터뜨리는 브로리의 행동에 호응하듯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물러서지 마라! 우리의 땅을 지켜라!”

토르니 공작과 그를 따르는 귀족들 역시 죽자 살자 검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전력의 차이가 너무나도 심각했다. 토르니 공작의 직속 부대만이 인간족의 S랭크 보병인 로얄 나이트로 구성되어 있을 뿐 팔라딘, 나이트, 레인져와 같은 부대를 이끄는 귀족들이 실버문과 브뤼헤아 비쉬를 막아낼 리 만무했다.

게다가 수인 왕국, 마족과의 전쟁으로 실전을 겪었던 호의 영웅들과 다르게 블루 스케일의 귀족들은 소수의 몇몇을 제외하면 천족과의 전쟁에서도 수도 스완으로 도망을 치기만 했던 인물들이었다. 전쟁에 대한 경험치가 너무나도 달랐다.

“크아악!”

“아악!”

그래도 그 수는 적지 않았기에 여기저기서 거꾸러지는 실버문과 추락하는 브뤼헤아 비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귀족군의 피해가 훨씬 막심했다. 실버 문 한 부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만 명이 넘는 병사들이 피를 흘려야만 했다. 게다가 문제는 병사들이 아니었다. 바로 마장기였다.

퉁! 투퉁!

엑스칼리버의 집중 포격이 쏟아지자 도열을 하고 있던 귀족군 병사들이 삽시간이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마장기! 마장기를 막아!”

그 모습을 본 토르니 공작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하지만 전장은 손 쓸 수도 없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상대의 마장기 전력은 건재한 반 면, 아군의 마장기는 전투가 벌어졌다 하면 반파 혹은 파괴가 되고 있었다.

휘이이잉!

“……?!”

그렇게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도중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토르니 공작은 자신도 모르게 위를 올려 보았다. 하늘 위에서 검은색 점 하나가 점점 커져가는 것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공작님 위험합니다!”

쿠우웅!

로얄 나이트 몇이 토르니 공작의 앞을 가로막는 것과 동시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대한 무언가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수인족의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색의 마장기였다.

“드디어 찾았네.”

그리고 마장기의 주인은 토르니 공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치열한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귀찮음이 가득담긴 나른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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