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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88화 (288/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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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288

“100억 리스라. 휘유. 엄청난 돈이로군.”

“정확히 말하면 105 억 리스입니다, 브로리님. 이자가 조금 더 늘었거든요.”

디아린의 말에 브로리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100억 리스면 조금 과장해서 B등급 마장기 편대를 세 개 편대나 생산하고 유지할 수 있는 돈이었다. C등급 마장기는 무려 스무 편대 이상을 생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블루 스케일에는 B등급 마장기가 기껏해야 다섯 기 정도 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많은 돈이 블루 스케일 내에 유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난민들의 상태나 영지민들의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결국 전부 귀족들의 배로 들어갔다는 이야기였다.

“돈의 무서움을 모르다니. 정말 한심한 놈들이네.”

“그들이 머리가 돌아가는 이들이었다면 블루 스케일이 이렇게까지 무너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쨌든 내 역할은 그 돈 모두를 블루 스케일의 귀족들에게서 받아오면 되는 거지?”

“그래요. 하지만 돈보다는 그들의 땅을 빼앗아오세요.”

디아린과 브로리의 이야기를 듣던 림드 산맥의 군주 아스트리드 벨이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림드 산맥을 비롯해 발전이 잘 된 영토들을 오가는 상인들과 여행자들 그리고 질 좋은 특산품들의 판매로 인해 걷어 들이는 세금들로 리스는 부족함이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105 억 리스를 더해봤자 달라질 건 크게 없었다. 하지만 땅은 달랐다.

‘이왕이면 이 기회에 두 개 영토 이상은 꼭 손에 넣었으면 해.’

게다가 호가 말한 것도 있었다.

“카틀라스 항구가 포함되어 있는 영토인 에레브는 무조건 손에 넣어야 합니다. 거기에 바르시온과 가능하다면 쿠투스 평원까지 차지할 생각이에요.”

“영토를 세 개씩이나? 과연 블루 스케일이 가만히 있을까?”

“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단호한 아스트리드 벨의 말에 브로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미 세이라 클리퍼드를 만나 경고를 했습니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그녀라면 쓰레기 같은 귀족들을 위해 나라의 운명을 걸지는 않을 겁니다. 차라리 지금의 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왕권을 강화시키려고 들겠죠.”

“……뭐?”

브로리는 입을 꾹 다물며 벨을 바라봤다. 전에는 그저 행정에만 밝은 평범한 소환자라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한 영토의 군주에 걸맞은 위엄이 느껴지고 있었다.

“좋아. 그렇다면 병사들은 얼마나 동원할 생각이지?”

“나크 평원의 타레스 탄트라만에게 지원을 요청했어요. 실버문과 브뤼헤아 비쉬, 윙드 훗사르로 구성된 삼십만의 병사들과 마장기 다섯 편대를 출진시킬 생각이에요. 세 개 편대는 B등급, 두 개 편대는 성벽 공략을 위한 C등급으로 구성할 거고요.”

벨의 말에 브로리가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블루 스케일을 상대로 그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병력이었다.

“당연히 총사령관은 이 몸이겠지?”

“물론이죠.”

브로리의 얼굴이 흥분으로 인해 울긋불긋 물들었다.

* * *

“뭐, 뭐라고?!”

에레브에 자리를 잡고 있는 영지인 토드락의 영주 롬달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의 곁에 있던 늙은 집사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알르드의 군대가 움직이고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디르시나에서 출발한 대규모 병력이 어제 막 카틀라스 항구에 도착했다는 보고입니다.”

병사의 보고에 롬달은 입을 쩍 벌렸다가 털석 다리에 주저앉았다. 그들이 무슨 이유로 병사를 움직이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림드 산맥의 군주가 스완의 대전에서 선전포고에 가까운 경고를 날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디아린 상단에게 돈을 빚진 귀족들에게 그 대가를 받아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군대를 움직일까에 대해서는 다들 반신반의했다. 블루 스케일이 아무리 약소국이라고 해도 인간들의 팔 왕국 중 하나였고, 림드 산맥은 기껏해야 리그너스 대륙의 이방인에 불과한 소환자의 영토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사태를 보아하니 상황이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게 아니었다.

“이, 이런!”

토드락의 영주 롬달 역시 디아린 상단에게 2 억 리스에 가까운 돈을 빌렸다. 명목은 토드락의 발전을 위해서였지만, 사실 그 돈들이 투자된 것은 롬달을 비롯한 가족들의 사치와 수도 스완에 있는 대 귀족들의 뇌물로 사용되었다.

“집사?!”

“지금 영지에 있는 돈은 4 백만 리스에 불과합니다.”

“뭣이라?! 왜 영지의 돈이 그것밖에 남지 않은 거지?”

집사의 말에 롬달은 침을 튀기며 흥분했다. 하지만 돈이 어디로 쓰여 졌는지를 다 알고 있는 만큼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끄으응. 토드락의 병사들은?”

“육 천 정도가 있습니다만 다들 나이트와 레인져에 불과합니다.”

롬달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고작 그들로는 실버문과 브뤼헤아 비쉬를 앞세운 소환자의 군대를 막아낼 수 없었다. 하물며 토드락에는 마장기 한 기 조차 없었다.

“하는 수 없군. 일단 사백만 리스라도 갚으며 소환자 녀석들을 살살 달래는 수밖에. 에잉, 빌어먹을 녀석들. 돈도 많은 녀석들이 그깟 이 억 리스 가지고는. 그래서 소환자의 군대를 이끄는 녀석은 누구지?”

“브로리라고 합니다.”

“브로리?”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에 롬달이 집사를 바라보았다.

“천족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던 수인 영웅입니다. 웨어타이거 급 마장기를 다루는 오너기도 하지요.”

“아하! 그 혼혈!”

롬달이 기억이 난다는 듯 말했다.

“돈을 밝힌다고 하지 않았나? 다행이네. 돈 몇 푼 쥐어주면 넘어갈 수 있겠지.”

그러고는 잘 됐다는 듯 희희낙락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브로리가 이끄는 군대가 토드락에 도착한 순간 롬달의 얼굴은 똥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십만이 넘는 병사와 스무 기가 넘는 마장기들이 토드락을 포위하고 있었다.

“이억 삼천만.”

“그, 그게! 브로리님! 일단 이것을 받고…….”

“삼백오십만 리스네? 그러면 이억 이천육백오십만."

주머니에 들어 있는 리스를 힐끗 본 것만으로도 그 양을 확인하는 브로리의 모습에 집사는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조그마한 소녀의 얼굴에서 닳고 닳은 수전노의 느낌이 풍겨왔기 때문이었다.

“못 들었어? 나머지 이억 이천육백오십만은 어디에 있지?”

“도, 돈을 갚을 시간이 필요합니다. 브로리님.”

말과 함께 집사는 브로리에게 조그마한 주머니를 슬그머니 찔러 넣었다. 50만 리스가 들어 있는 주머니였다. 그리고 주머니를 챙긴 브로리가 고개를 주억이더니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시간을 줄게.”

“물론입죠!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은 꼭 갚을 겁니다! 아암! 그 돈이 무슨 돈인데요?!”

얼굴이 환해진 채 몇 번이나 고개를 꾸벅 숙이는 집사를 향해 브로리가 미소를 지었다.

“십만 리스 당 한 시간 씩 해서 다섯 시간 줄게. 다섯 시간 내에 이억 이천육백오십만 리스 가지고 와.”

“네, 네에?! 아니! 그게 무슨?!”

브로리의 말에 집사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다섯 시간. 이억 이천육백오십만 리스. 난 분명히 말했다.”

말과 함께 브로리는 축객령을 내렸고, 그녀의 막사에서 쫓겨난 롬달의 집사는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멍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토드락의 성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챠챠챠창!

롬달의 집사가 토드락의 성으로 돌아간 지 한 시간 뒤, 성문이 올라가며 성벽 위로 병사들이 배치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브로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째 하는 꼴을 보아하니 굳이 다섯 시간을 기다릴 필요도 없어 보였다.

“호가 말하기를, 전쟁은 어디까지나 선빵 필승이라고 했다. 골드 이글하고 엑스칼리버 편대, 준비하라고 해. 성문을 박살낸다.”

“찍찍? 브로리님. 세 시간 정도가 남았는데 먼저 공격 합니까?”

“물론이지. 니가 보기에는 쟤들이 돈을 갚을 생각으로 보이니?”

“그거야…….”

조심스레 말을 꺼냈던 다람쥐 영웅이 성벽 위의 병사들을 바라보더니 뒤쪽을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마장기 편대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투확! 퉁! 투둥!

잠시 후, 파괴적인 기운을 잔뜩 머금은 마력 에너지가 성문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들었다. 잠시 후,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성문이 우르르 무너지며 먼지 구름이 피어올랐다.

“성문! 파괴했습니다! 찍!”

다람쥐 영웅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요새 도시의 튼튼한 성문이라면 모를까, 토드락의 성문은 마나 보호막조차도 없는 그저 그런 성문에 불과했다. 그리고 브로리는 자신의 손을 위로 쭉 뻗더니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반항하는 녀석들은 모조리 죽이고 토드락의 성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로잡을 것.”

두두두!

브로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윙드 훗사르들이 성문 안으로 짓쳐 들어갔다.

이미 천족과의 전쟁에서 호의 병사들이 얼마나 강력하지 경험한 바 있는 토드락의 병사들은 반항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백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날 저녁 토드락에 걸려 있던 롬달 가문의 깃발이 내려지고 알르드의 문장이 성 위로 걸렸다.

토드락의 영주였던 롬달과 그의 식솔들은 말 두 필에 의지해 토드락을 떠났다. 그래도 블루스케일의 수도 스완에 커다란 저택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무사히 스완에만 도착할 수 있으면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는 길은 있었다.

“히, 히익?! 오지마라! 나는 토드락의 영주 롬달이다!”

하지만 롬달과 그의 식솔들은 스완에 도착하기 전 산적들을 만나 변을 당하고야 말았다. 림드 산맥과 달리 에레브는 치안이 좋지 않았고, 대낮에도 산적들이 가도를 점령하고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토드락을 손에 넣은 브로리는 이틀 정도 토드락에 머문 후 토드락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다른 영지로 향했다. 치린트 자작이 다스리는 치린트 영지로 롬달과 마찬가지로 디아린 상단에게 자금을 빚지고 있는 귀족이었다.

토드락에서 있었던 일을 들은 모양인지, 치린트 영지에 도착한 브로리는 방어 태세가 만반으로 갖춰져 있는 치린트 성을 마주할 수 있었다. 토드락과는 다르게 자넷 급 마장기도 한 기 배치가 되어 있었다.

“그래. 진정한 도둑놈들이라면 이렇게 나와야지. 안 그래?”

그 모습을 보며 브로리가 자신을 손을 마주 비볐다.

투콰아아앙!

이어서 코우랄라의 어깨에 장착된 대구경 마력포가 푸른색의 섬광을 내뿜자 자넷 급 마장기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터져 나갔다. 성벽 위에서 폭발한 마장기로 인해 강력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성벽 또한 반쯤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우왕좌왕 하는 성벽 위의 병사들을 보던 브로리가 주위에 대기하고 있던 영웅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지금부터 두 시간 내로 영주성 깃발 내리고 마무리 해.”

상대는 기껏해야 B랭크에 불과한 병사들. A랭크 병사인 팔라딘이 가끔 눈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브로리의 명령을 받은 영웅들은 자신들의 병사들을 이끌고는 치린트 성을 향해 돌격했다.

와아아아아!

브뤼헤아 비쉬의 파괴적인 마법에 성문이 순식간에 박살이 났고, 실버 문들이 성내로 진입하면서 전투는 그대로 종료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백기들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일찌감치 항복 준비를 하고 있던 모양인지 치린트 성의 병사들이 백기를 올리는 속도는 번개처럼 빨랐다.

“쳇. 이거 너무 간단하잖아? 손 맛도 있어야 하는데…….”

천천히 코우랄라의 걸음을 옮기면서 브로리가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블루스케일의 군사력이 형편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두 개의 영지를 점령하면서 전투다운 전투조차 치르지 못한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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