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2
리그너스 대륙전기 272
띵동.
-‘알리스텅의 시험’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우인족의 일곱 번째 왕인 알리스텅은 자신의 유물을 찾으려는 후손들을 위해 하나의 시험을 남겨 놓았습니다. 혹여나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거나 자격이 없는 자를 걸러내기 위함이죠. 리그너스 대륙에서 우인들은 인내의 상징과도 같은 종족입니다. 아무리 힘든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꾸욱 참고 이겨내는 종족이죠. 이곳 소의 원혼이 담긴 방은 대륙의 혼란 속에서 목숨을 잃은 우인들의 영혼이 갇힌 곳입니다.
하지만 영혼이라고 해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무려 실체가 있는 영혼이니까요. 그리고 그 수는 가히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죠. 만약 당신이 끊임없는 인내로 이 영혼들을 이겨낸다면? 알리스텅의 힘이 담긴 유물 타우러스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겁니다.]
호의 눈동자가 빠르게 퀘스트를 훑었다. 결국 요약하자면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저 소떼들을 모조리 물리쳐야지만 알리스텅의 유물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바로 방어진을 갖추고! 마장기들은 전방으로 나서서 병사들을 보호한다!”
명령이 빠르게 내려졌고,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게이트를 넘어오는 병사들 역시 눈앞의 상황을 파악한 듯 재빠르게 대열에 합류했다.
“가자! 멍멍!”
“꼬끼오! 꼬꼬!”
수인 삼연성과 브로리, 한시진도 앞으로 나섰다. 이미 호가 무슨 명령을 내릴지 예상한 모양인지 데스 사이더 -화랑은 출력을 최대치로 높인 채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꾸워어어어엉!”
“음뭐어어어!”
그리고 윤호군이 자랑하는 에이스와 거대한 소 떼들이 부딪쳤다.
“하아아아앗!”
서걱! 썩! 촤악!
기합과 함께 데스 사이더의 낫이 휘둘러지며 순식간에 주위의 소떼 들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버렸다. 칼로 두부를 자르는 것처럼 조금의 거리낌도 없는 부드러운 공격이었다. 그렇게 푸르스름한 마력이 실린 낫은 자신의 예기를 뽐내며 계속해서 거침없이 소들을 자르고 분쇄시켰다.
“나도 간다아!”
투쾅!
선두에 있던 커다란 소 한 마리가 코우랄라의 주먹에 얻어맞고는 포탄처럼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퍼억! 퍽! 콰직!
온몸을 이용해 소 떼들의 뼈를 부서뜨리는 브로리의 공격은 단순하지만 굉장히 효율적이었다. 공격력도 막강했다. 코우랄라의 주먹 한 방에 한 마리 이상의 몬스터가 무조건 목숨을 잃었다.
“멍멍! 이거 생각보다 약한데요?”
“꼬꼬댁! 꼬꼬! 방심은 금물! 하지만 이 녀석들은 정말로 약한 걸?”
사드나인과 팔쿤이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몬스터들을 처리하며 대화를 나눴다. 덩치는 컸지만 B등급 던전인 호루떵의 던전에서 마주쳤던 타락한 우인들과 비슷한 수준에 불과했다.
“호 님을 위하여!”
“가자!”
그렇게 마장기들이 시간을 끄는 사이 대열을 갖춘 병사들이 하나둘씩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음뭐어어어억!”
“우워어엉!”
실버 문을 비롯해 호의 병사들이 전투에 참여하기 시작하자 우인들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그 비명들이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병사들에게 버프를 사용한 호는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키마라이를 움직였다. 어차피 병사들의 지휘는 웃소를 포함한 지휘관급 영웅들이 알아서 잘 해줄 터였다. 그리고 이미 움직이는 녀석들도 있었다.
“음뭐어어어! 돌겨억!”
옆구리에 장창을 꼬나든 웃소와 함께 윙드 훗사르 부대가 한줄기의 빛처럼 소 떼를 가르기 시작했고, 실버 문들이 그 뒤를 따르며 진형이 무너진 소떼들을 주살했다.
퍼펑! 펑!
아르카니움 아처의 화살이 섬광처럼 날아들며 소들의 목숨을 빼앗았고, 하이 코넷 위치의 마법이 발동되면서 강력한 폭발이 소떼를 휩쓸었다. 그런 병사들의 모습을 보던 호도 자신에게 달려드는 소 떼를 향해 검을 빼들었다.
“흐리야압!”
기합과 함께 호는 있는 힘을 다해 키마라이의 대검을 가로로 휘둘렀고, 달려들던 영혼 중 넷이 순식간에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검을 휘둘러 또 한 마리의 영혼을 회개시킨 호는 키마라이의 대검과 소떼를 번갈아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거 생각보다 쉽잖아?’
덩치만 크고 수만 많을 뿐 영혼들의 능력은 B랭크? 아니 C랭크의 병사와 비슷한 수준에 불과했다. 만약 이게 알리스텅이 안배한 시험의 전부라면 오히려 실망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게이트에 진입을 하면서 긴장을 했던 자신의 모습이 벌써부터 부끄러워지고 있었다.
그래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시바를 얻을 때도 B등급 마장기 여섯 기가 등장했었다. 아니면 페일 캣어스와 같은 까다로운 녀석이 등장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띵동.
-수많은 영혼들에게 안식을 가져다 준 그대들의 실력과 인내에 경의를 표합니다.
-알리스텅의 안배에 통과했습니다.
“……이게 끝인 건가?”
그러나 반전은 없었고, 호는 우인족의 전설적인 마장기인 타우러스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왠지 모를 찜찜함이 가득 남는 퀘스트였다.
* * *
“후우! 드디어 성공했군.”
끊임없이 땡땡거리던 망치 소리가 멎자 남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남자의 옆으로 한 천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조원이라는 이름을 지닌 천족의 A등급 영웅이었다.
“박상민. 그대의 능력은 매번 볼 때마다 나를 감탄하게 만드는군. 이 침울하고 황량했던 도시를 이렇게나 발전시키다니…….”
“과찬입니다. 조원님. 전부 여신 라헬님의 은총 덕분이지요.”
조원에 말에 상민은 눈을 깜빡이며 차분하게 말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했던 경험으로 말미암아 D 등급에 불과했던 영지를 이제 막 중도시급인 B등급으로 성장시킨 것에 불과했다.
“여신 라헬님의 말씀을 온 대륙에 전파하기 위해서는 이런 사소한 발전에 만족하면 안 됩니다.”
“음음.”
상민의 말에 조원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상민을 바라보았다. 1회 차 소환자로 A등급 클래스를 보유한 그는 10 천사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소환자로는 처음으로 천족의 영주가 되었지?’
몇 달 전, 블루 스케일과의 전쟁에서 10 천사 중 두 명을 잃는 대패를 겪은 천족들은 이대로 있다가는 리그너스 대륙 전체에 여신 라헬의 뜻을 전파할 수 없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해결책을 찾았다. 그러고는 자신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소환자 윤호의 방법을 따라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 결과로 소환자 중에서 천족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상민이 D 등급 영지인 에르지 마을의 영주로 부임한 것이다.
“에르지 마을의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상민은 그런 천족들의 결정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듯 자신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 빠른 속도로 에르지 마을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 결과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중도시급 영지였다.
‘후우. 어떻게든 에르지 마을을 중도시까지 발전은 시켰는데…….’
상민은 눈앞에 보이는 도시의 광경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까지 그는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했던 경험을 최대한 떠올리며 효율적으로 영지를 발전시켜 나갔다. 하지만 부족한 게 너무나도 많았다.
에르지 마을(중도시[B등급])-안식의 초원
인구 -50001
보유 리스 -7215
보유 식량 -4347
병사–엔젤 솔져 300, 윙 아처 200.
내정 건물 -식량 저장고 40, 주점 1, 시장 20, 천사의 머리띠 공장 3.
군사 건물–망루 10, 병영 2, 대장간 2. 마법 연구소 1, 제법 높은 성벽 1.
리스 수입 -22710 / 월
식량 수입 -35472 / 월
특산품–천사의 머리띠
집무실에서 에르지 마을의 관료들이 조사해온 내용을 토대로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나오는 도시의 정보창과 얼추 비슷한 형식으로 문서를 제작한 상민은 자신이 만든 문서의 내용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도시의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리스와 식량의 생산도 아슬아슬했으며 연구 시설과 특산품 생산은 이제야 걸음마를 뗀 상황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정보를 찾거나 공략본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전부 기억에 의존해서 하다 보니 생각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은 탓이었다. 게다가 영지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 또한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영웅들이 부족해.’
에르지 마을에 주둔하고 있는 영웅은 자신과 A등급 영웅인 조원을 포함해 달랑 세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한 명은 E등급 영웅으로 몇 주 전 주점에서 가까스로 등용한 인물이었다.
아무리 영지를 발전시키고 싶다고 해도 영웅이 없으면 명령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일반 천족들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에르지 마을은 상민이 이 세계에 넘어온 이후 처음으로 얻은 자신만의 세력이었다. 상민은 어떻게든 이 마을을 키우고 공을 세워서 더 큰 세력을 도모할 생각이었다. 블루 스케일의 전쟁에서 마주쳤던 윤호라는 소환자처럼 말이다.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엔딩을 봤던 내 모든 능력을 발휘해주지.”
지금 당장 윤호라는 녀석과 비교하면 굉장히 초라한 수준의 세력이었지만, 상민은 시간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상민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호는 급하게 하이엘프인 에어리스를 찾아가고 있었다.
“대체 이게 뭐야?!”
마장기를 타고 이동하면서 호는 자신만이 볼 수 있는 메시지를 연신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띵동.
-브뤼헤아 비쉬의 연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마족의 SSS랭크 마법병인 브뤼헤아 비쉬의 양성이 가능해집니다.
-일정한 자원을 소모해 하이 코넷 위치들을 브뤼헤아 비쉬로 승급시킬 수 있습니다.
작년부터 연구 중이었던 브뤼헤아 비쉬의 개발이 드디어 끝이 났다.
단단한 방패인 실버 문에 이어 적들에게 강력한 한방을 날릴 수 있는 대포들이 마련된 것이다. 이런 실버 문과 브뤼헤아 비쉬의 조합은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많은 유저들이 사용했던 검증된 전술이었다. 그렇기에 호는 이 두 병종을 이용해서 한 번 더 세력을 넓힐 생각이었다.
띵동.
-실버 문과 브리헤아 비쉬의 마력을 인피니티 나인의 3 파신인 크탈나스가 마음에 들어 합니다.
-숨겨진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썬더 퓨리의 양성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이제부터 썬더 퓨리의 양성이 가능해집니다.
[썬더 퓨리(EX)-제3 파신, 크탈나스의 분신이라 불리는 존재들입니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대검을 무기로 사용하는 이 마검사는 폭풍처럼 전장을 휩쓰는 존재로 그 위력은 A등급의 마장기를 뛰어넘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성스러운 엘프의 전사 실버 문의 마력과 원소와 마나의 모든 이치를 알고 있다는 마족의 마법사 브뤼헤아 비쉬의 마력이 필요합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새로운 메시지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이제껏 잊고 있었던 루베릭 대륙의 지배자 인피니티 나인이라는 이레귤러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별안간 나타난 새로운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호는 본능적으로 하이엘프 에어리스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피니티 나인, 3 파신 크탈나스, 천둥의 분노 썬더 퓨리. 이러한 내용들은 과거 호가 경험했던 가상현실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내용들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리그너스 대륙전기와 거의 완벽할 정도로 흡사한 이 세계에서 호에게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알려준 이가 있었다. 자신을 리그너스 대륙이 아닌 루베릭 대륙 출신이라고 밝힌 하이 엘프 에어리스였다.
다행이도 에어리스는 카우셰드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은 디치 플레이스만에 머무르고 있었다.
계속되는 개발로 디치 플레이스의 환경이 많이 파괴된 터라, 많은 수의 엘프 영웅들이 파괴된 환경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까닭이었다.
에어리스 역시 그러한 이유로 디치 플레이스만에 주둔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