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1
리그너스 대륙전기 271
“음뭐어?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갑작스러운 호의 탄성에 열심히 이야기를 하던 칼리스텅이 말을 멈췄다.
“아아. 아까부터 어디서 들은 이름인가 했는데, 자네의 이름이 우인들의 전설적인 영웅 알리스텅하고 비슷하군.”
“음무워. 그 말은 어렸을 때부터 엄청나게 들었습니다. 덩치도 이런 탓에 알리스텅 님의 후손이 아닌가 하는 오해도 많이 받았었습니다.”
“그렇군.”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자신도 칼리스텅을 처음 봤을 때 당연히 영웅인 줄 알고 자연스럽게 칼리스텅의 정보를 확인했었다.
“계속해서 그런 오해를 받다보니 정말로 알리스텅 님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고 싶어지더군요. 덕분에 알리스텅 님의 전설을 찾기 위해 엄청나게 돌아다녔습니다. 제가 여행자가 된 까닭도 그런 이유 때문이죠.”
“알리스텅의 전설이라…….”
호의 입에서 한숨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이제껏 열심히 정보를 수집했지만 얻은 것이라고는 알리스텅의 유물이 황소방에 숨겨져 있을 거라는 추측밖에 없었다.
“나도 알리스텅의 전설에 대해서는 하나 알고 있는 게 있지.”
“음무워어어. 황소방의 소문을 모르고 있는 우인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렇군. 역시 황소방에 알리스텅의 유물이 숨겨져 있다는 말은 거짓이었나? 뭐, 정말로 숨겨져 있었다면 이제까지 발견되지 않았을 리도 없을 테니…….”
실망감이 가득한 호의 말에 칼리스텅이 주위를 힐끗 보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워어어? 아닙니다. 알리스텅 님의 유물은 정말로 황소방에 있습니다.”
“……어?”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칼리스텅의 말 속에 담긴 확신을 느낀 호는 순간적으로 소름이 오싹 돋았다.
“알리스텅의 유물이 황소방에 있다고?”
“그렇습니다. 음무웡.”
대답과 함께 칼리스텅은 자신의 커다란 머리를 호에게 가까이 하며 말했다.
“이제까지 알리스텅 님의 유물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다들 황소방의 숨겨진 비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숨겨진 비밀이라니?”
“혹시 아다만티움 쟁기라고 아십니까?”
호는 고개를 모로 저었다.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을 찾아보면 아다만티움 쟁기라는 아이템에 대해 알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공략본을 열어볼 타이밍이 아니었다. 그런 호의 반응에 잠시 고민을 하던 칼리스텅이 파스퇴 우유 한 컵을 통째로 들이키더니 투레질을 한 번 하고는 입을 열었다.
“푸르르르르. 이거 받은 게 있으니 숨길 수도 없고. 아다만티움 쟁기는 노루망디에서 동쪽으로 가면 나오는 던전에서 등장하는 아이템입니다. 음뭐.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더럽게 단단한 쟁기일 뿐이죠.”
“…….”
“그런데 말입니다. 음뭐어. 황소방에서 그 아다만티움 쟁기를 부수게 되면 굉장히 특별한 일이 벌어집니다.”
“특별한 일이라니?”
호는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알리스텅에 관해 자신이 알고 싶었던 정보가 바로 이런 거였다. 지금이라도 당장 아다만티움 쟁기를 얻으러 달려가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욕구를 참은 호는 계속해서 칼리스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칼리스텅은 자신의 입을 크게 벌리며 여러 번 쩝쩝대고는 말을 이었다.
“바로 비밀의 공간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열리죠. 쩝쩝. 저는 그 방을 가리켜 일명 카우방…….”
거기까지 듣는 순간 호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비밀의 공간으로 향하는 게이트. 분명 알리스텅의 유물이 숨겨진 곳임이 틀림없었다.
“오늘 자네를 만난 것은 굉장한 행운이었네. 그리고 좋은 정보를 알려준 보답으로 평생 파스퇴 우유를 마실 수 있도록 주점 주인에게 일러두지.”
“으, 뭐어?!”
호의 말에 칼리스텅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호는 자신이 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그 자리에서 실버 문을 시켜 주점 주인에게 칼리스텅이 원할 경우 언제나 파스퇴 우유를 제공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오늘 칼리스텅이 말해준 내용은 한 컵에 고작 15 리스밖에 하지 않는 파스퇴 우유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유용한 정보였다.
* * *
“그래서 이 던전에서 아다만티움 쟁기라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요?”
“응.”
호의 대답을 들으며 한시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광우병에 걸린 소처럼 진득한 침을 질질 흘리며 눈을 벌겋게 뜬 우인들이 자신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타락한 마나에 오염된 우인들이었다.
그런 우인들은 전부 정체를 알 수 없는 재질로 만들어진 쇠갈퀴를 들고 있었다.
‘호루떵의 던전. 여기서 아다만티움 쟁기가 나온다고 했지?’
호루떵의 던전. 칼리스텅이 노루망디에서 동쪽으로 가면 나온다고 말했던 던전이 바로 이 던전이었다.
난이도는 B등급. 그리고 칼리스텅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에도 역시 이 던전에서 아다만티움 쟁기를 획득할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띵동.
-<침착하라!> D랭크가 발동되었습니다.
-<지휘관이 독려> B+랭크가 발동되었습니다.
-<아크 스피릿> A랭크가 발동되었습니다.
-<전장의 노래> S랭크가 발동되었습니다.
-<팔진도> SS랭크가 발동되었습니다.
버프가 발동되며 화려한 빛줄기들이 병사들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지를 밟는 소리와 함께 버프의 영향을 받은 병사들이 타락한 우인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적들에게 세계수의 분노를!”
“멍멍! 백구 나가신다!”
“꼬꼬댁! 꼬꼬!”
사드나인을 필두로 한 수인 삼연성도 전투를 시작했다. 평범한 몬스터들은 가볍게 짓밟고 지나간 그들은 던전의 대형 몬스터를 상대로 자신들의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미일크 공성전을 포함해 몇 번의 마장기전을 경험하며 자신들이 초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대형 몬스터를 상대로 하는 수인 삼연성의 전투는 과감했고, 거침이 없었다.
“이놈들은 너무 약해보이는 데? 나는 빠질래.”
뒤쪽에 있던 브로리가 통신구를 통해 투덜거렸다. 굳이 그녀가 전투에 끼어들지 않아도 타락한 우인들은 빗자루에 쓸리는 낙엽들처럼 이리저리 쓸려나가고 있었다. 고 등급의 던전도 아니고 고작 B등급 던전인 만큼 당연한 결과였다.
“음무워어어억!”
“무와아아아아악!”
마장기와 고랭크 병사들의 공격에 호를 향해 달려들던 타락한 우인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대형 몬스터들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덩치는 컸지만 고작 B등급 던전의 몬스터들답게 시바나 프랭스와 같은 마장기들의 공격 두어 번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쿠워억!”
중간 보스로 보이는 몬스터가 등장했지만 상황은 별 반 다르지 않았다. 같은 수인 삼연성이라지만 과거 수인 왕국의 십이멀로 사드나인, 라쿤과는 이제껏 쌓은 경험치가 다른 팔쿤의 피닉스는 지네를 만난 닭처럼 홀로 순식간에 중간 보스를 쓰러뜨렸다.
“찾았습니다!”
그렇게 중간 보스를 물리치고도 계속해서 달려드는 우인들을 쓸어버리며 던전 내부로 진입하던 도중 아다만티움 쟁기가 발견이 되었다. 병사의 말에 따르면 타락한 우인을 잡던 도중 갑자기 허공에서 덜그렁 떨어졌다고 했다.
“이게 그 쟁기인가? 멍멍?”
“찍.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쟁기답게 상당히 단단해 보이는군요.”
자신들이 찾던 아이템을 보면서 수인 영웅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그러고는 호를 바라보았다.
“굳이 이 던전을 클리어 할 필요는 없겠지. 바로 가자.”
호가 멀찍이 보이는 타락한 우인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호루떵의 던전 등급은 고작 B등급. 굳이 시간을 들여 이 던전을 클리어 한다고 해도 쓸 만한 아이템을 얻을 것 같지도 않았다. 실제로 대단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던전도 아니긴 했다.
그렇게 호루떵의 던전에서 나온 호와 일행들은 곧바로 미일크에 있는 황소방으로 향했다. 역대 우인들의 왕이었던 영웅들의 뿔을 모아놓은 장소라 그런지 황소방 내부에는 묘한 한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여기서 이것을 부수면 된단 말이지?”
황소방에 도착한 자신의 손에 들린 아다만티움 쟁기를 바라보았다. 칼리스텅의 말에 따르면 이 쟁기를 부수는 순간 알리스텅의 유물이 숨겨져 있는 비밀의 공간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나타난다고 했다.
“그럼 부순다?”
슬그머니 쟁기에 힘을 주는 호의 행동에 모두들 긴장어린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문득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브로리도 주먹을 불끈 쥐었고, 한시진도 허리춤에 걸려 있는 아르마다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끄응.”
하지만 그런 긴장감을 순식간에 깨뜨리는 소리가 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빌어먹을. 더럽게 단단하네.”
손아귀에 핏줄이 잔뜩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다만티움 쟁기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더럽게 단단한 쟁기라고 하더니만 그 말 그대로였다.
“허약해. 허약해. 그거 이리 내놔.”
그런 호의 모습에 브로리가 콧방귀를 뀌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호의 손에서 아다만티움 쟁기를 빼앗듯 가져왔다. 하지만 무력 964 의 위엄을 자랑하는 그녀 역시 아다만티움 쟁기를 부술 수는 없었다.
“뭐,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단단해?!”
그 뒤로 사드나인, 팔쿤, 라쿤 심지어 웃소까지 도전했지만 아다만티움 쟁기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마장기를 사용해서 부시자.”
그리고 지그시 쟁기를 응시하던 호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힘으로 되지 않는다면 도구를 써야 할 차례였다.
퍼서석!
역시나 마장기의 힘은 강력했다. 많은 영웅들을 탈진시켰던 아다만티움 쟁기가 마장기가 가볍게 쥔 힘에 의해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렇게 조각난 쟁기가 황소방의 바닥에 우수수 떨어질 때였다.
“어?”
호는 자신도 모르게 사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가 기묘한 위화감이 전신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화아아악!
“큭!”
그 순간 갑작스레 터져 나온 밝은 빛에 호는 재빠르게 팔로 눈을 감쌌다. 강렬한 빛에 시야가 머는 것을 대비한 행동이었다. 빛줄기는 황소방 밖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다.
“저건?!”
“게이트잖아!”
그리고 빛 무리가 조금씩 잦아들면서 모두들 허공에 떠 있는 무언가에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나타난 검붉은 색의 원형 게이트가 황소방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빛과 함께 나타난 게이트는 황소방의 천장까지 뻗어 있었는데, 그 크기는 A등급 마장기 중에서 가장 큰 편인 데스사이더–화랑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이거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는데요?”
한시진이 말했다. 호 역시 그녀와 같은 생각이었다. 게이트의 크기는 마장기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그 말은 즉, 게이트 안에서 마장기를 사용해야지만 상대할 수 있는 강력한 적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혹여나 무언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정보창을 열어 봤지만 딱히 쓸모는 없었다. 정보창은 단순히 게이트를 가리켜 소의 원혼이 담긴 방이라는 이름만을 알려주고 있었다.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도 도움은 되지 않았다. 아무런 정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직접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봐야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시바나 코우랄라와 같이 이제까지 클리어 한 수인들의 전설 퀘스트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은 수준일거야.’
하지만 게이트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다는 것이 호의 불안감을 계속해서 자극했고, 결국 호는 미일크의 모든 전력을 동원해서 게이트 안으로 진입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선 호와 일행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움뭐어어어어어!
호루떵의 던전에서 등장했던 타락한 우인들과 비교했을 때 최소 두 배 이상은 큰 거대한 소 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