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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70화 (270/522)

# 270

리그너스 대륙전기 270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어.”

그렇게 밀려오는 뿌듯함을 날려 버리며 호는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은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했던 경험과 공략본으로 잠시나마 우위를 점한 것에 불과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상대 역시 발전을 거듭할 테고 이 세계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차이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이번 전쟁처럼 손쉽게 적의 영토를 차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단순히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자신을 노리는 적들을 향해 제법 단단한 가시는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호가 원하는 것은 이 세계의 생존이 아닌 탈출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리그너스 대륙의 통일과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진 엔딩에 나오는 것처럼 여신 라헬의 통수를 대비해야 했다. 그리고 일단 호는 라헬의 오호신장과 각 종족의 엘리트들을 상대할 수 있는 정예 영웅들을 양성할 생각이었다. 브로리의 승급과 수인들의 전설이라 불리는 A등급 마장기들을 모으는 것도 그 일환이었다.

“음뭐어! 저, 저에게 카우셰드를 맡겨주신다니……!”

“우인족의 땅을 우인 영웅이 맡는 것뿐이야. 다만, 노루망디에는 아쉬카로트가 주둔할거야. 그 이유는 알고 있지?”

“음뭐! 저는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뛰어난 맹장인 호인 영웅으로 하여금 카우셰드를 지켜주시려는 윤호 님의 은혜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며 찬사를 늘어놓는 웃소의 모습에 호는 피식 웃었다. 영웅의 등급이 올라가면서 낯간지러운 말을 하는 능력도 함께 올라간 모양이었다.

어쨌든 웃소가 새롭게 카우셰드의 군주로 임명이 되자 전쟁의 여파로 혼란스러웠던 우인들도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그가 비운의 왕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늙은 우인들은 진정한 왕이 찾아왔다며 웃소를 찬양하고 있었다.

그렇게 전쟁은 끝이 났고, 병력의 반 수 가량이 자신들이 출진했던 영토로 돌아갔지만 호와 한시진은 카우셰드에 남았다. 타르판 요새에 병력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마인 때문은 아니었다.

띵동.

-‘수인족의 전설–우인’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리그너스 대륙에서 인내의 상징이라 불리는 우인들은 오래전부터 수인 왕국을 대표하는 종족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성질이 지극히 온순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한 번 화가 나면 호인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먼 친척뻘인 마족의 미노타우르스도 들이받을 정도로 앞뒤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우인족의 역사 속에서 가장 용맹한 이로 알려진 인물은 우인족의 일곱 번째 왕으로 알려진 알리스텅입니다. 승리의 포효를 내지르며 단단한 뿔로 적들을 동강내고, 분쇄시키는 그의 용맹은 투쟁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호인들마저도 벌벌 떨게 만들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 알리스텅의 유물이 카우셰드에 남아 있습니다. 만약 그 유물을 차지할 수 있다면 알리스텅의 힘을 얻는 것과 함께 수인들 사이에서 이야기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그들의 전설에 손이 닿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수인족의 전설–우인 퀘스트 때문이었다.

“웃소 녀석이 무슨 키 맨이라도 되는 건가?”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하며 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웃소를 카우셰드의 군주로 임명하자마자 이틀도 되지 않아 하얀 털에 점박이 가득한 늙은 우인이 미일크를 찾아오더니 곧바로 우인족의 전설 퀘스트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 알리스텅의 유물은 타우러스라 불리는 마장기로 늙은 우인의 말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마장기라고 했다.

한마디로 전방에서 날뛰는 근접용 마장기라는 이야기였다.

어쨌든 알리스텅의 유물에 대한 정보를 얻은 만큼 호는 군트락으로 돌아가기 전에 먼저 이 퀘스트를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 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정보수집이었다.

“알리스텅 님이 잠들어 있는 무덤? 그런 곳이 있던가? 음뭐어?”

“황소방을 말하는 게 아닐까?”

“황소방?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잖아?”

정보 수집을 나간 한시진이 우인들에게서 이야기를 듣고를 호를 찾았다.

“황소방?”

“미일크의 중앙에 있는 커다란 신전이에요. 과거 왕이었던 우인 영웅들의 뿔을 모아놓은 장소라고 해요. 제가 가보니까 이번 전쟁에서 전사한 수소의 뿔도 전시되어 있더라고요.”

“대체 그 녀석 뿔은 언제 뽑았는데?”

한시진이 알아온 내용에 따르면 황소방은 우인들에게 왕의 무덤처럼 여겨지는 장소였다. 어쨌든 원인족의 유물인 코우랄라를 얻었을 때와 비슷한 경우였기에 호는 곧바로 한시진과 함께 황소방을 찾았다. 하지만 이상한 점을 샅샅이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황소방에는 과거 왕들의 뿔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황소방이 아닌 건가?”

황소방에서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호는 아파오는 머리를 매만졌다. 공략본을 포함해 여러 정보들을 찾아봤지만 알리스텅과 타우러스에 대한 정보들은 모두가 황소방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그런데 황소방에는 아무 것도 없잖아?’

지금도 한시진과 실버 문들이 황소방을 수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라던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보고는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알리스텅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해.”

허나 그렇다고 해서 알리스텅의 유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 * *

띵동.

-초대형 주점이 완공되었습니다.

미일크 성에서 초대형 주점의 건설이 완료되었다.

이제껏 미일크에서 보지 못했던 커다란 주점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소문을 들은 많은 우인들이 초대형 주점을 찾았다. 그리고 호는 이렇게 주점을 찾은 우인들 중에 알리스텅과 타우러스에 대한 정보를 아는 이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알리스텅 님의 유물? 음……. 아무리 생각해도 황소방 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음뭐?”

“음무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우인들이 한 둘이 아닐 텐데 왜 아직까지 타우러스가 발견되지 않은 거지?”

“이 집의 우유는 정말 최고인데? 입에 챱챱 달라붙는 게 아주 끝내줘!”

“미일크의 특산품인 파스퇴 우유라고 하더군.”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일반 주점에서 획득했던 정보들과 비교하면 조금 더 다양하고 자세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기는 했지만 알리스텅의 유물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인 핵심들이 빠져 있었다.

“후우우우. 시현이를 불러야 되나?”

초대형 주점에서도 정보를 획득할 수 없다면 그보다도 더욱 큰 주점인 멍멍아 야옹해봐 밖에 답이 없었다. 그리고 미일크에 그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멍멍아 야옹해봐라는 랜드마크를 만들어낸 장본인인 시현이 필요했다.

“에라, 모르겠다. 며칠만 더 정보를 수집해보고 안 되면 시현이를 부르던가 해야지.”

그렇게 중얼거린 호는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흘끗 밖을 쳐다보니 해가 슬슬 저물려고 하고 있었다. 주점의 피크 시간은 밤인 만큼 지금쯤 출발하면 주점 내부가 제법 꽉 차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음뭐! 음뭐! 끄어억! 음무워!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초대형주점은 수많은 우인들로 인해 북적이고 있었다. 멀리서도 보이는 화려한 불빛과 시끄러운 소리들이 그 증거였다.

“……어?”

그리고 실버 문의 호위를 받으며 초대형 주점의 앞에 도착한 호는 문을 열고 주점에 들어서려다가 멈칫 제자리에 섰다. 문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 손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리가 부족한가?’

선객의 덩치가 상당했기에 까치발로 힐끔 주점 내부를 살펴본 호는 곧 고개를 갸웃했다. 많은 손님들로 인해 북적거리고는 있었지만 군데군데 빈자리 역시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푸르르르. 들어가시려는 거요?”

순간 자신을 향해 말하는 목소리에 주점 내부를 보던 호는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흰 털에 검은 얼룩이 군데군데 있는 우인이 커다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호는 자연스레 상대의 정보창을 열었다.

‘착각인가?’

외형만 놓고 보면 눈앞의 상대는 웃소 저리가라 할 정도의 맹장으로 보였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상대는 그냥 일반적인 우인에 불과했다. 그리고 우인이 호를 향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음뭐어. 이것 참 초면에 염치없기는 한데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소?”

“부탁?”

“그렇소. 음뭐어. 미일크의 주점에서 파는 파스퇴 우유에 대한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왔는데 제 생각보다 엄청 비싸더군요.”

거대한 덩치와는 다르게 우인의 목소리는 모기만 했다. 아무래도 돈 때문으로 보였다.

‘15 리스.’

주점에서 파는 파스퇴 우유의 가격이었다. 뭐, 개개인의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눈앞의 우인에게는 제법 비싼 금액인 모양이었다.

“들어가죠. 제가 사겠습니다.”

하지만 호에게 15 리스는 푼돈조차도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음무뭐어?! 이거이거! 그래도 되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이미 우인의 몸은 주점의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 이것이 바로?!”

그렇게 호와 함께 주점에 들어선 우인은 자신의 눈앞에 놓인 파스퇴 우유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묘인들에게 캣닢이 존재한다면 우인들에게는 파스퇴 우유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고의 물건으로 보였다.

“캬아흐아아아! 최고야?!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로군!”

“…….”

술을 먹는 건지 우유를 먹는 건지 모르겠지만, 파스퇴 우유를 마신 우인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그 모습이 굉장히 우스꽝스럽고 재미있었기에 호는 곧바로 파스퇴 우유를 몇 잔 더 주문했다. 지금의 이 상황이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잔으로 시작된 파스퇴 우유가 열 잔을 넘어서 스무 잔이 비워질 무렵이었다.

“크어어. 제가 오늘 귀인을 만나 입이 호강을 하는 군요. 이거 소개가 늦었습니다. 제 이름은 칼리스텅이라고 합니다. 노루망디에서 태어나 수인 왕국의 영토를 여행하고 다니는 여행자죠.”

커다란 덩치가 자기소개를 하자 호는 이마를 찌푸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어쨌든 상대가 소개를 했으니 이제는 자신이 정체를 밝힐 차례였다.

“윤호다.”

“역시 림드 산맥의 패자셨군요. 실버 문을 호위로 대동했을 때부터 이미 눈치는 채고 있었습니다.”

놀라지 않고 너스레를 떠는 칼리스텅의 행동에 호는 피식 웃었다. SSS랭크의 병사인 실버 문을 호위로 대동하는 세력은 리그너스 대륙에서 단 한 곳밖에 없었다. 모르는 게 바보였다.

“이거 선물도 받았으니 제가 알고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몇 개 해 드리도록 하죠. 음뭐어.”

“재미있는 이야기?”

“그렇습니다. 소환자분들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음뭐.”

칼리스텅의 말에 호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수인 왕국의 영토를 여행했다는 여행자답게 칼리스텅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수인들이었다.

그렇게 아쉬토와 관련된 출생의 비밀이라던가, 커다란 동굴 속에서 벌어진 웅족과 호인족의 쑥과 마늘 전쟁, 회색 전쟁이라 불렸던 천족과 토끼족의 전쟁 등.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한 유저들조차도 알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호오.”

이야기보따리 마냥 쉬지 않고 계속되는 이야기에 호는 자신도 모르게 칼리스텅에게 집중했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가 재미있었으며 맛깔났기 때문이었다. 이미 테이블 위로 쌓인 파스퇴 우유 컵은 서른 잔을 넘어서 마흔 잔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

그러던 도중 아까부터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은 호가 낮게 탄성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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