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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69화 (269/522)

# 269

리그너스 대륙전기 269

“흐읍!”

그런 웃소의 공격에 수소는 이제까지 윙드 훗사르들과 격전을 벌였던 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날렵한 움직임으로 살짝 몸을 돌려 창을 피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옆구리를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창을 자신의 근육으로 꽉 붙잡으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퍼어어억!

“음무어어어!”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웃소가 고통에 사로잡혀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웃소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예전의 허약하고 멍청한 자신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은 황소 클래스를 지닌 S등급의 영웅이었다.

“푸르르륵!”

거친 투레질과 함께 웃소가 머리를 숙이고는 오른쪽 발로 땅을 긁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뿔을 앞세워 수소에게로 달려들었다. 날카롭게 휘어진 뿔이 수소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자 강철과도 같았던 근육이 갈라지면서 피가 터져 나왔다.

“감히!”

“전 예전의 나약한 그 소가 아닙니다!”

자신을 노려보는 수소를 향해 웃소가 소리쳤다. 그러자 수소가 두툼한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웃소에게로 달려들었다. 거대한 덩치들이 부딪치면서 묵직한 타격음과 짧은 비명 그리고 거친 숨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이벤트 한 번 살벌하네…….”

그리고 자신의 전용기인 키마라이–플레임의 조종석 안에서 호는 멍하니 수소와 웃소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부자지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둘 다 피범벅이 된 채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미일크 공성전은 이미 끝이 났다. 성 내에 있는 우인 병사들은 항복했고, 철벽의 한우단이라는 수소의 친위대들은 실버 문의 손에 전멸했다. 남은 것은 우인족의 왕이라는 수소뿐이었다.

“저런 녀석을 상대로 고전하다니, 쯧쯧.”

누군가가 혀를 차는 소리가 통신구를 통해서 들려왔다. 브로리였다. 하기야 무력 수치가 1000 에 가까운 그녀에게 저 둘의 싸움은 어린 아이 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게요. 움직임 하나하나가 빈틈이네요.”

그에 지지 않겠다는 듯 뒤이어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한시진이었다.

“그래. 니들은 무력이 SSS등급이라 이거지.”

인피니티 소드였던 한시진은 S등급인 천본앵으로 전직을 하면서 무력등급이 SSS등급으로 상승했다. 경험치의 부족으로 인해 세부 능력을 상승시키지 못해 현재의 무력 능력는 850 대에 불과했지만 소환자인 만큼 무력 그녀 역시 1000을 찍는 건 시간문제나 다름없었다.

“빨리 나도 전직이나 해야지, 나 참…….”

그런 둘에 비해 호의 무력은 고작 300 에 불과했다. 아이템을 통해 상승한 수치를 포함해도 400을 넘지 못했다.

“……아니지. 아이템부터 얻어야 되나?”

생각해보니 SS등급의 클래스인 오버 로드로 전직을 한다 해도 자신의 무력 한계는 S등급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주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풀 강화해서 착용하게 되면 당장 200 가까이 더 수치를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둘 다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거기까지 생각을 한 호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웃소와 수소의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음무어어어!”

외나무다리에서 적을 만난 듯 웃소가 섬뜩한 비명과 함께 창을 휘둘렀다.

촤악!

계속된 전투에 지친 것일까? 살갗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웃소의 창이 수소의 몸에 긴 상처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바라보던 수소가 정신을 차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눈을 껌뻑였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실버 문과 윙드 훗사르 그리고 깔깔거리며 주위를 날아다니는 마족의 하이 코넷 위치들 뿐이었다. 심지어 적들의 마장기도 움직이지 않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반해 아군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자신의 목숨과도 같았던 친위대 철벽의 한우단이 비참하게 쓰러져 있는 모습이 수소의 눈에 들어왔다.

‘이 몸이……!’

수소는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전쟁은 이미 끝이 났고, 자신은 구경거리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곧 분노로 치솟아 올랐다. 그때였다.

“움무어어어어어어어!”

푸우욱!

한이 서린 긴 울음소리에 수소가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날카로운 창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순간적으로 주변의 상황을 살피느라 정신이 팔린 탓에 일어난 사고였다. 반사적으로 미스릴로 만들어진 창을 붙잡았지만 이미 날카로운 창끝은 그의 몸을 끝까지 꿰뚫고 지나간 후였다.

“빌어먹을.”

수소는 얼굴 가득 인상 찌푸리고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웃소를 바라보았다. 그런 수소의 시선에 웃소는 흠칙 놀라는 듯싶더니 곧 입을 꽉 다물고는 창대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아버지. 수인 왕국의 시대는 갔습니다. 우리 우인들은 앞으로 알르드의 이름 아래에서 더욱 번성할 겁니다.”

말과 함께 웃소는 수소의 가슴을 꿰뚫은 창을 뽑아냈다. 이어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나오며 수소가 천천히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카우셰드의 패자이자 우인족의 왕이었던 수소의 최후였다.

* * *

푸르르륵! 푸르르르륵!

“히히히힝?”

“우인들의 전령인가?”

미일크 성을 떠나 쉬지 않고 이동하던 우인족의 전령이 마인족의 영토 호올스에 도착했다.

“뭣이?!”

그리고 우인족의 전령을 통해 소환자 윤호가 군사를 일으켰고, 전용기를 포함해 고 랭크의 병사들로 구성된 그의 군대가 카우셰드를 짓밟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마인들은 엄청난 충격에 사로잡혔다. 이제껏 약한 적들을 짓밟을 줄만 알았지 자신들이 공격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일까? 우인족 전령이 보내온 말에 호올스의 마인 영웅들은 너도나도 소리를 높였다.

“당장이라도 타르판 요새로 병사들을 보내야 합니다. 히힝!”

“아니, 카우셰드로 가야 하오! 히힝! 다른 영웅도 아닌 그 수소님이 지원군을 보내달라고 하셨소! 수소님과 포니님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반드시 그 분의 요청을 받아들여야 하오! 잇힝!”

카우셰드가 무너지면 그 다음은 호올스였다. 카우셰드와 호올스는 굉장히 넓은 영토가 인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직접 카우셰드로 가겠소!”

회의장에서 한 마인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는 그의 이름은 서러브레드. 수인족의 십이멀 중 한 명으로 마인들을 대표하는 용감무쌍한 영웅이었다.

“포니님의 절친한 친구인 수소님이 위험에 빠지셨소. 히히힝! 지금이라도 당장 병사들을 이끌고 출발해야 할 판에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대체 뭐란 말이오?!”

“적의 군세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강력합니다. 소환자 윤호의 군세를 얕보다가 몇 개의 종족이 무너졌지 알기나 하십니까?"”

“맞아. 우리가 가봤자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차라리 타르판 요새로 병력을 집중시켜 적들을 막아내는 것이 현명해!”

동료 영웅들의 말에 서러브레드는 거칠게 발굽을 굴렀다. 아무리 상대가 강하다 하더라도 물러서지 말아야 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서러브레드는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원군을 보내지 않겠다는 말이오?”

과거 용맹을 떨쳤던 영웅 중의 영웅이지만 수소는 이미 일선에서 물러난 지 한참이나 되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카우셰드는 최근까지 우인 왕자들의 세력다툼이 벌어졌던 곳이었다. 분명 자신들의 도움이 절실할 게 틀림없었다.

“지원군을 보내지 않는다는 게 아니야. 다만 상황의 추이를 생각…….”

“웃기는 소리! 카우셰드는 지금 한시라도 급하다고! 히히힝!”

동료 영웅의 말에 반박을 한 서러브레드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자네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내 병력만이라도 이끌고 카우셰드로 가겠다. 히히힝! 소환자를 물리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수소님은 구출해 와야겠어.”

그러고는 콧바람을 세차게 내뿜으며 말했다.

“출진이다!”

회의장을 박차고 나온 서러브레드는 자신이 말했던 대로 바로 병사들을 움직였다. 소환자 윤호의 공격 소식을 듣고 긴장감에 물들어 있던 그의 병사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무기들을 꺼내들고 도열했다.

“마정석! 마정석을 챙겨!”

“마장기의 엔진을 가동해! 출진이다!”

서러브레드의 친위대인 훗사르 부대도 거칠게 투레질을 하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조만간 느껴질 죽음의 냄새에 긴장감과 두려움을 떨쳐내려는 행위였다. 그만큼 소환자의 부대가 강력하다는 것은 호올스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서러브레드는 곧바로 카우셰드로 향했다. 열여섯 기의 마장기로 이루어진 네 개 편대와 육 만에 가까운 대병력이었다.

“미일크로 달려라!”

병사들을 이끌고 카우셰드의 경계를 넘은 서러브레드는 곧바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미일크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미일크에 도착하기 전 행군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수소님은 이미 사망했습니다.”

미일크 공성전에서 도망친 우인 영웅과 수인 병사들이 그에게 수소의 죽음을 알렸기 때문이었다.

“수소님이 목숨을 잃어?! 그 강철근육의 수소가?! 대체 누구한테!”

“……웃소님입니다”

우인 영웅의 대답에 서러브레드는 흠칫 몸을 떨었다. 웃소. 기억에 있는 이름이었다. 수소의 장남으로 허약한 체질과 겁이 많은 성격으로 인해 수소의 손에서 버려진 우인 영웅이었다.

“빌어먹을. 히힝!”

우인들의 왕이자 마인들을 이끄는 장로 포니의 절친 수소의 죽음에 서러브레드가 몸을 떨며 분노했다. 하지만 분노에 잠식되어 병사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후퇴한다.”

수소가 죽고 미일크가 함락된 이상 카우셰드는 소환자 윤호의 땅이나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요새 타르판에 병력을 집중시키는 일 뿐이었다.

* * *

미일크 공성전에서 우인족의 왕 수소를 쓰러뜨린 호는 곧바로 카우셰드 전역으로 병사들을 보냈다. 하지만 우인들의 전력 대부분이 미일크에서 쓰러진 탓에 호의 발길이 닿지 않은 카우셰드 영지에 남아 있는 수인 병사들의 수는 기껏해야 수백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호의 군대를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리무우진과 노루망디가 차례대로 호의 손에 넘어왔고, 노루망디에 호의 깃발이 올라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카우셰드의 점령이 끝이 났다.

“약하네요.”

주위를 둘러보던 한시진이 말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우인들의 땅이었던 넓은 지역이 알르드의 이름 아래로 들어왔다.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게. 격렬하게 저항을 하는 녀석들도 생각보다 없고.”

말을 하면서 호는 자신이 상대했던 우인들의 전력을 떠올렸다. 그들은 수소의 친위대인 철벽의 한우단을 제외하면 A, B랭크의 병종들과 열 기 남짓한 마장기만을 보유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무리 왕자의 내전을 겪은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십이 종족의 전력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아닌가……?’

하지만 이제껏 자신이 상대했던 적들의 전력을 떠올리던 호는 슬그머니 머리를 긁적였다.

‘현재 내가 보유한 전력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림드 산맥 주위의 영주들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압도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B랭크 마장기의 생산 체계도 갖췄고, SSS랭크인 실버 문을 비롯해 브뤼헤아 비쉬의 양성도 조금만 있으면 가능해졌다. 경제력과 특산품 생산력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특히나 림드 산맥과 붉은 핏빛의 대지, 나크 평원의 발전 수준은 대륙 제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남은 지역들도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로우덴이 팀장으로 있는 팀 심시티와 능력 있는 수많은 영웅들이 노력한 결과들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일개 영주를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쉐르난비체, 유스타시아, 골드 스트리안, 라이프린등과 비교하면…….’

자신에 비해 수 배 혹은 수십 배나 되는 땅을 차지하고 있는 종족의 지배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명령 한마디에 이 리그너스 대륙의 패권을 다투는 종족이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눴다.

‘아무래도 힘들겠지.’

호는 자신의 경험 속에 남아 있는 그들의 전력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하더라도 이 대륙의 패권을 차지하는 종족 그것도 여왕이나 왕의 이름 아래에 한데 뭉칠 수 있는 종족을 상대하는 것은 아직까지 힘들었다.

그나마 인간이나 수인 왕국을 상대로는 여차저차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서로의 안전 및 이익을 위해 뭉친 집단이지 강력한 지도자 아래에서 한데 뭉칠 수 있는 종족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팔 왕국의 수장이자 군사 강국인 골든 크로우나 호인, 웅족의 세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어쨌든 객관적으로 봐도 자신이 이제까지 이룩한 세력은 이 대륙에서 생활한 지 고작 오 년밖에 안 되는 소환자의 힘이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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