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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68화 (268/522)

# 268

리그너스 대륙전기 268

“하이 코넷 위치들로 대규모 화염마법을 시전하면 상대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한시진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호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시진을 향해 물었다.

“다른 수인 부족의 움직임은?”

“아직까지는 잠잠해요. 하지만 우인족의 전령이 마인족의 영토로 향했다는 것을 목격했다는 첩보가 있어요.”

“그렇군.”

그들의 생각 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자신들의 전력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원군을 요청하려는 것일 게 분명했다.

“출진 준비를 해야겠군.”

하지만 우인들이 어떻게 나오든 간에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마인족의 군대가 미일크로 오기 전에 호는 수소를 물리치고 성을 점령할 생각이었다.

“출진이다!”

“호 님을 위하여!”

“캐피탈리즘 호우!”

카우셰드의 영지 중 하나인 앵거스에서 출발한 호의 군대는 거침없이 미일크 성으로 향했다. 중간 중간 우인 영웅들이 이끄는 수인 군대가 호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불과 한, 두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다.

“음뭐어어?!”

“저, 적인건가!”

카우셰드의 우인들이 엘프와 마족을 비롯해 다 종족으로 이루어진 호의 군대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기겁했다. 그러고는 두려움에 떨었다. 소환자 호의 손에 원인, 조인들이 세력을 잃고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은 탓이었다. 하지만 호의 병사들은 그런 우인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미일크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 * *

“푸르르륵. 왔군.”

멀리서 보이는 군대의 위용에 수소가 거칠게 투레질을 하며 말했다. 그런 수소의 뒤로 병사들이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적군의 위용이 상상이상으로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마족의 심장이라는 데스사이더를 비롯해 코우랄라를 필두로 수인족에게 전설로 알려져 있는 마장기들이 천천히 미일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마장기가 아군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상대해야 할 무시무시한 적들이었다.

“음무워어어. 이럴 때 타우러스라도 있었으면…….”

한 병사가 과거 우인들의 전설적인 마장기의 이름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타우러스는 사라졌다고 알려진 게 벌써 몇 백 년 전의 일이었다.

“푸르르륵. 감히……!”

성벽 위에서 적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던 수소가 한 인영을 확인하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외형의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기는 했지만 자신의 피가 인영의 정체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인영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증오가 수소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푸르르르륵! 철벽의 한우단!”

수소가 소리를 질렀고 단단한 갑주로 무장한 검은 소들이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우인족이 자랑하는 병사들이었다.

“적들을 격퇴하고! 배신자를 처단한다!”

말과 함께 수소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적들을 향해 공격을 하라는 신호였다. 그러자 뒤쪽에서 다람쥐 석궁수들이 발사한 화살과 비행병종인 페리칸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화살 공격이다!”

“방어 마법을 발동해라!”

“하이 코넷 위치들은 페리칸들을 요격한다!”

적들의 공격이 시작되자 호의 군대 역시 영웅들의 정확한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터터텅! 텅텅!

실버 문이 시전 한 방어마법이 다람쥐 석궁수의 화살들을 막아냈고, 뒤이어 불덩이들이 페리칸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펑펑 거리는 폭발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그럴 때마다 까맣게 탄 페리칸들이 지면으로 추락했다.

“그럼 슬슬 가볼까?!”

자신의 전용 마장기인 키마라이–플레임 에 탑승한 호가 키마라이의 대검을 크게 휘두르며 말했다. B랭크에 불과한 다람쥐 석궁수와 A랭크 비행병인 페리칸의 존재로 호는 상대의 병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는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다. 게다가 성벽 위에 듬성듬성 보이는 수인들의 마장기는 그 수가 채 열 기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모조리 찌그러트려주지!”

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코우랄라에 탑승한 브로리가 으르렁거리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저번 전투에서 싫소를 해치운 한시진보다 공이 적었던 까닭인지 그녀의 행동은 그 누구보다도 빨랐다.

“우리도 가자! 꼬꼬댁!”

“출발! 수인 삼연성!”

그런 브로리의 뒤를 따라 팔쿤, 사드나인, 라쿤이 편대를 이뤄 돌격했다. A등급 마장기 그것도 전설로 내려오는 전용기 세 기로 이루어진 이들의 공격은 뛰어난 실력의 오너라도 쉽사리 막아내기 힘들 터였다. 수인들에게는 검은 악마라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한시진도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다른 마장기들과는 다르게 왼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호의 명령에 따라 그녀는 미일크 성의 측면을 공격할 예정이었다.

“음무워어어어!”

화살비의 공격을 한바탕 막아낸 호의 병사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이 코넷 위치와 아르카니움 아쳐들이 견제 사격을 하는 동안 실버 문과 윙드 훗사르들이 빠르게 성벽 아래로 달려들었다. 간간히 날아오는 화살비와 페리칸의 폭탄에 목숨을 잃는 병사들이 하나둘씩 생겨났지만 전체에 비하면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다.

“미일크를 지켜라!”

“물러서지 마라! 이길 수 있다! 우인의 인내를 가지고 버텨!”

우인족도 물러서지 않았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장들이 앞서서 병사들을 독려했다. 그런 노장들의 분투에 수인족의 병사들이 잔뜩 인상을 쓰며 열정적으로 자신들의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적들은 열정만으로도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푸욱! 푹!

“음무워어어어어어엉!”

실버 문들의 날카로운 검이 다른 병사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갑옷을 입고 있던 우인 한 명에게 향해 틀어박혔다.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던 우인 영웅이었다.

“음뭐어어어! 이 풀죽만도 못한 것들이!”

무려 다섯 개 이상의 검에 몸이 꿰뚫린 자신의 부하를 보며 수소가 붉어진 얼굴로 실버 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솥뚜껑 만 한 손으로 열 명 가까이 되는 실버 문들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주위에는 자신이 쳐 죽인 실버 문보다도 더욱 많은 수의 병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노오옴! 소환자! 썩 모습을 드러내라! 뭐어어어! 이 몸이랑 한 판 붙자꾸나!”

터질 것 같은 근육들이 강철처럼 단단해지며 수소의 포효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호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그런 수소를 똑바로 쳐다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왜?’

정보창에 따르면 수소의 무력은 SS등급으로 무려 643 이나 되었다. 그에 반해 자신의 무력 능력은 아이템을 포함해 400 이 넘지 않았다. 불리한 상황도 아니고 완벽히 유리한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마장기에 탑승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한 판 붙자는 말은 검을 맞대는 일기토를 하자는 말인데 그런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사양하고 싶었다.

우지끈!

그렇게 얼마나 전투가 벌어졌을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성벽 한쪽이 무너지면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수인 삼연성들이 한 건 해낸 것이다. 그리고 성벽이 무너진 방향으로 윙드 훗사르들의 내부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크읏!”

순식간에 무너진 성벽으로 적들의 기마대가 들이닥치는 모습을 보며 수소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새 자신의 주위에는 수인들이 아닌 엘프들로 가득해 있었다.

“후퇴! 철벽의 한우단은 본성으로 후퇴하라!”

후퇴 명령을 내린 수소 역시 전속력으로 본성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소환자의 군대는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다. 하지만 수소는 이대로 미일크 성을 넘겨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자신의 목숨이 이곳에서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수소는 계속해서 저항을 할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수소의 앞을 가로막았다.

“음무워. 오랜만입니다. 아버지.”

“…….”

전속력으로 달리던 수소가 걸음을 멈추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커다란 눈망울과 무른 얼굴을 한 우인 영웅 하나가 자신을 향해 창을 겨누고 있었다. 한때는 그의 아들이었던 웃소였다.

“그래. 푸르르륵.”

웃소의 말에 수소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깊은 폐부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거친 숨과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기는 힘들었다.

“음무워. 감히 동료를 배신하고 적들의 손을 빌려 이 카우셰드를 침공해? 그러고도 이 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더냐?”

말과 함께 수소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빈틈이 보이는 순간 단숨에 눈앞의 적을 목을 꺾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소는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을 겨누는 웃소의 창이 계속해서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웃소는 자신의 연한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아버지. 저는 카우셰드를 침공한 것이 아닙니다. 음무워.”

“뭣이?! 푸르르륵!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녀석인 줄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만 이렇게까지 멍청할 줄은 몰랐구나! 네놈이 한 일이 카우셰드를 침공한 게 아니면 뭐란 말이냐?!”

수소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런 수소의 근처로 피가 잔뜩 묻은 창을 든 윙드 훗사르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버지. 저는 저의 군주이신 윤호 님을 위하여 정당하게 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음무워.”

웃소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면서 미소를 드러내었다.

“음무어. 저와 마찬가지로 정당한 왕위의 계승자였던 화났소는 제 손으로 직접 목을 베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아버지뿐입니다.”

살짝 벌어졌던 미소는 어느새 환한 웃음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눈을 번뜩이며 한 손을 들어 올린 순간 윙드 훗사르들이 수소를 향해 달려들었다.

“네 이놈! 웃소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윙드 훗사르를 주먹으로 멀리 날려버린 수소가 분노에 찬 고함을 터뜨렸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살기와 위압감에 주위에 있던 윙드 훗사르들이 잠시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윙드 훗사르들은 다시금 수소를 향해 달려들었다.

S+랭크의 병사인 윙드 훗사르 다수를 상대로 우인족의 왕은 혼자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흉흉하게 살기를 내뿜으면서 자신의 튼튼한 근육을 이용해 윙드 훗사르의 목을 하나하나씩 꺾어버리기 시작했다.

서른 기가 넘는 윙드 훗사르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를 포위하고 있는 윙드 훗사르의 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그와 비례하듯 수소의 몸에도 상처들이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 우리의 왕이!”

“적들을 뚫어라! 왕을 지켜라!”

내성으로 도망을 치던 철벽의 한우단이 수소가 포위된 것을 보고는 그를 구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들이 몇 발자국도 움직이기 전에 실버 문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적들에게 세계수의 분노를!”

“호 님을 위하여!”

거대한 뿔을 앞세우며 돌진하는 철벽의 한우단을 향해 실버 문들이 검을 겨눴고, 곧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썩 나오너라! 이 겁쟁이 녀석아!”

윙드 훗사르에게 포위를 당한 와중에도 수소는 웃소를 향해 조롱하듯이 소리를 쳤다. 그러자 이제껏 뒤에서 가만히 있던 웃소가 자신의 창을 두어 번 휘두르며 앞으로 나섰다.

“아버지. 전 당신을 존경했었습니다. 당신이 저를 버리기 전까지 말이죠.”

“흥! 난 너 같은 자식을 둔 적이 없다! 내 아들은 적들과 용감히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싫소와 화났소 뿐이다!”

수소의 말에 웃소는 창대를 꽉 잡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주군인 소환자 윤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적을 바라보았다.

“음뭐어어어!”

우인 특유의 우렁찬 고함과 함께 웃소가 수소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미스릴로 만들어진 강철의 창을 수소의 가슴으로 찔러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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