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
리그너스 대륙전기 267
“크리솔라이트의 꿈 퀘스트도 이제 7단계에 접어들었고…….”
SS등급이라는 난이도가 어울리지 않게 크리솔라이트 꿈 퀘스트는 순조롭게 클리어가 되고 있었다. 바리안스의 대지에 세워진 마을 크리솔라이트가 대도시로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6단계가 클리어 되었고, 현재는 드래곤의 호의라는 7단계 퀘스트가 진행 중이었다.
퀘스트의 진행 방법 또한 간단했다. 그린 드래곤 레피스트 퓨리온의 호의로 인해 플레이어가 성장하면 자연스레 퀘스트가 완료되는 식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인 8 단계였지만 당장에 신경을 쓸 일은 아니었다.
“결국 지금 당장 클리어 할 수 있는 건 웃소의 퀘스트 뿐인가?”
원래 호는 자신이 더욱 세력을 키우게 되면, 그러니까 모든 도시의 특성화가 완료되고 A등급 마장기의 양산 체제가 갖춰지는 순간 대규모의 군대를 일으켜 수인 왕국을 정벌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러기까지에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 필요했다. 게다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수인 왕국의 내전 상황은 조심스러웠던 호의 마음을 바꾸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투콰앙!
멀찍이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호는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금속끼리 부딪치는 묵직한 소리는 마장기들끼리 전투를 벌이는 소리였다. 브로리의 코우랄라를 상대로 사드나인의 시바와 라쿤의 프랭스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분명했다.
투쾅! 쿠당탕!
다시 한 번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자 호는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정리하고는 창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예상대로 코우랄라를 상대로 시바와 프랭스가 대련을 빙자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멀쩡하게 서 있는 코우랄라와 시바에 비해 프랭스가 자빠져 있는 것을 보니 방금 전의 소리는 프랭스가 코우랄라에게 얻어맞으며 나가떨어지는 소리였던 모양이었다.
“슬슬 저 녀석들도 실전 경험을 쌓아야 하니.”
가장 먼저 전설의 마장기를 손에 넣었던 사드나인은 저번에 있었던 수인 왕국과의 대전쟁에서 아무런 활약도 보이지 못했다. 마장기 조종술이 워낙 떨어지는 탓에 A등급 마장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에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등급도 S등급으로 승급한데다가 훈련을 빙자한 브로리의 스트레스 해소에 계속해서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레 실력이 는 것이다. 이제는 브로리의 입에서 밥값은 할 수 있겠네 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을 정도였다. 프랭스의 라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세 마장기의 대결을 지켜보던 호는 옆으로 살짝 시선을 돌렸다.
“무지개 빛 공격을 당신에게!”
“힘차게 던져 드리겠어요! 어둠으로 가득 찬!”
“절망의 가게로 오세요!”
요란스러운 노랫가락과 함께 성벽 위로 나무 지팡이를 타고 다니는 고깔모자의 마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족의 SS랭크 마법병인 하이 코넷 위치들이었다.
작년이면 완료가 될 줄 알았던 브뤼헤아 비쉬의 연구는 아쉽게도 아직까지 연구가 진행 중에 있었다. 계속된 연구에 지친 공돌이의 멤버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면서 본의 아니게 연구가 중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하이 코넷 위치의 연구까지는 끝낸 탓에 각 도시에 주둔하고 있는 할리온들은 전부 랭크가 한 단계씩 상승할 수 있었다. 또한 브뤼헤아 비쉬의 연구 역시 저번과 같은 부득이한 상황이 일어나지만 않는다면 길어도 두 달 내에 모든 연구가 끝날 예정이었다.
“굳이 브뤼헤아 비쉬를 기다리지 않아도 전력은 충분해.”
그리고 호는 브뤼헤아 비쉬의 연구가 끝날 때까지 상대에게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
* * *
뿌우우우!
카우셰드를 점령하기로 마음을 먹은 호는 곧바로 원정에 나설 영웅들을 인선했다. 그렇게 전설의 마장기 오너들인 브로리, 사드나인, 라쿤이 합류했다. 아쉽게도 그린 드래곤인 레피스트 퓨리온은 하이 코넷 위치로 이루어진 마법 병단을 맡아달라는 호의 명령을 거부했다.
“이것도 알르드를 위한 전쟁인가요?”
“물론입니다.”
“……그렇군요. 마음 같아서는 도와주고 싶지만 제가 직접 나서게 된다면 이 대륙의 균형을 깨뜨릴 가능성이 높아요. 그렇게 되면 많은 드래곤들이 당신을 적대시 할 거예요. 제 도움은 당신의 영지를 발전시키거나 기술의 연구를 하는 수준에서나 가능할 것 같아요.”
레피스트 퓨리온의 대답에 호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격을 달리하는 강력한 존재인 만큼 그녀가 직접 나서준다면 그 어떤 전쟁에서도 어렵지 않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녀를 전쟁에 참가시키기 위해 목을 매지는 않았다. 레피스트 퓨리온이 없어도 우인들 쯤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피스트 퓨리온의 불참으로 인해 니나 다니엘레가 토슬치에 남아야만 했다. 혹시나 수인 왕국의 병사들이 군트락으로 쳐들어왔을 경우 병사들을 지휘해야 할 영웅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꼬꼬댁?! 호 님께서 부르신다면 당연히 내가 나서야지!”
“이제 움직이는 건가요?”
“음뭐어!”
팔쿤과 한시진 그리고 아쉬카로트와 웃소도 합류했다. 호를 포함해 전용기가 있는 마장기사만 일곱이었다. 그런 영웅들을 포함해 총 다섯 개 편대 그러니까 스무 기의 마장기가 출진 준비를 갖췄다.
호가 보유하고 있는 마장기의 전력을 생각해 봤을 때 스물이라는 숫자는 그렇게까지 많은 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호가 발견했던 전설의 마장기들이 모두 합류했고, 브로리와 함께 윤호군을 대표하는 마장기사인 한시진도 포함되었다. 수는 적어도 그 전력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정보원들의 말에 의하면 카우셰드에서 발견된 마장기는 고작해야 서른 기 남짓. 싫소와 화났소의 내전으로 인해 많은 수가 파괴되었다고 했다. 게다가 그 마저도 두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승리는 따 논 당상이나 다름없었다.
수인 왕국의 세력 순위에서 1, 2 위를 다투는 호인과 웅족이면 특별하게 주의를 해야 할 대상이었지 나머지 다른 종족들의 공략 난이도는 고만고만했던 만큼 굳이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거기에 실버 문과 하이 코넷 위치의 파괴력이라면 우인들이 지휘하는 수인 왕국의 병사들이 접근도 전에 녹여버릴 수 있었다.
“호 님을 위하여!”
“적들에게 세계수의 분노를!”
그렇게 카우셰드를 단숨에 점령할 기세로 호의 군대가 우인들의 영토로 진격했다.
“음무워어? 감히 누가 우리를 공격해?!”
“이 버러지 같은 소환자 녀석이! 푸르르륵!”
그리고 소환자 윤호의 공격 소식을 들은 싫소와 화났소는 서로 간에 벌이던 전쟁을 멈추고는 연합, 자신들의 영토를 침범한 적군에게로 칼을 돌렸다. 그러고는 카우팅 평원에서 호를 상대로 한바탕 회전을 벌였다. 결과는 비참한 패배였다.
“이, 이렇게 강할 수가?! 푸르륵!”
“살려주시오! 음뭐어! 난 아직 죽기 싫은……!”
그 결과로 화났소가 패잔병들을 이끌고 부리나케 도망을 쳤고, 싫소는 자신의 마장기를 이끌고 시진을 상대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멀리서 그런 호의 군대를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저게 그 소환자의 군대인가?”
전신이 울룩불룩한 근육으로 뒤덮인 우인이 말했다. 수소였다.
호의 군대에 대한 소문은 진즉 들었다. 그의 군대는 엘프들의 SSS랭크 병사인 실버 문을 비롯해 종족을 가리지 않은 고 랭크의 병사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고, 수인 왕국 의 십이멀을 능가하는 뛰어난 마장기사들을 휘하에 두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수소는 이제까지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리그너스 대륙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종족들이 손을 잡았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지만, 수인 왕국의 영광이었던 십이멀이 고작 소환자의 밑에 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푸르륵.”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사실로 벌어졌다. 자신의 아들이자 우인들 중 가장 뛰어나다는 영웅인 싫소와 화났소는 호의 군대를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패배했다. 실버 문의 단단한 방어와 하이 코넷 위치의 강력한 마법은 우인족의 군대를 가지고 놀았고, 상대의 마장기사들은 하나하나가 자신의 아들을 능가하는 실력자들이었다.
“방금 전, 싫소 왕자님의 목숨을 빼앗은 이는 검은 악마라고 불리는 자로 밝혀졌습니다. 이름은 한시진, 마족의 심장이라 불리는 데스사이더를 조종하는 마장기사로 본래는 소환자라고 합니다.”
“뭣이?”
자신과 오랫동안 함께했던 부하의 말에 수소의 눈이 커다래졌다. 방금 전 싫소와 전투를 벌이던 마장기사는 우인들의 왕인 자신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실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고작 소환자라니?
“……그리고 정찰병의 말에 따르면 방금 전 윤호군의 윙드 훗사르 부대를 지휘하던 영웅들 사이에서 웃소님의 모습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소의 놀라움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그럴 리가! 그 녀석은 훗사르 하나도 상대 못 할 녀석이란 말이다! 음뭐어어!”
“하지만 사실입니다.”
수소와 웃소와의 관계를 알고 있는 부하가 비통함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그런 부하의 행동이 수소에게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감히! 우인주제에 소환자를 따르고 동족을 배신해?! 이곳은 카우셰드다! 이 우왕 수소의 땅이란 말이다! 화났소를 부르고 병사들을 소집해라! 카우셰드의 본성! 미일크에서 적들을 격퇴하겠다!”
말과 함께 수소는 홱 몸을 돌렸다. 분노로 가득 찬 그의 얼굴은 웃소가 눈앞에 나타나면 당장이라도 무기를 휘두를 기세였다.
* * *
“주위에 우인 영웅은커녕 수인 병사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수소는 미일크 성에서 농성을 벌일 생각인가 봅니다. 음뭐어.”
윙드 훗사르 부대를 이끌고 정찰을 다녀온 웃소가 말했다. 원래 이 지역 출신인 까닭에 웃소는 카우셰드의 지리에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그가 가지고 오는 정보도 굉장히 정확하고 상세한 편이었다.
“미일크라…….”
“카우셰드의 중심도시입니다. 그 때문에 다른 도시들에 비해 성벽이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음무워.”
“공략하기가 쉽지 않겠군.”
“아닙니다. 푸르륵. 단순히 성벽만 높을 뿐 림드 산맥의 에스트라다처럼 무시무시한 방어시설이 있는 건 아니기에 공성전이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웃소의 말에 호가 빙그레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우인족의 왕자들인 싫소와 화났소와의 전투는 싱거울 정도로 손쉽게 끝이 났다. 애당초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객관적인 전력은 물론이고, 두 우인 영웅의 등급은 기껏해야 A등급에 불과했다. 그들의 휘하에 있는 수인 영웅들 역시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에 반해 이번 전쟁에 참여한 자신의 영웅들은 알르드의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영웅들이 총집합해 있었다. 하지만 그 둘을 물리쳤다고 해서 카우셰드를 차지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왕자들은 패배했지만 우인족의 왕 수소가 아직 건재했다.
‘그런데 수소면 저 녀석의 아빠 아닌가?’
문득 퀘스트의 내용이 떠올랐다. 퀘스트에 따르면 웃소는 수소의 장남이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지금 그는 자신의 아빠를 공격하는 패륜이나 다름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음뭐. 저는 이미 우인들 사이에서 아니, 수소라는 작자에게 버림받은 몸입니다.”
그런 호의 생각을 눈치 챈 것일까? 웃소가 투레질을 하며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제 고향은 모든 종족들이 조화롭게 어울리며 살고 있는 알르드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충성으로 모실 사람 역시 윤호 님밖에 없습니다. 푸르륵.”
“……그래.”
뭔가 찜찜하기는 했지만, 호는 웃소를 연민하게 여기지 않기로 했다. 웃소 역시 그 나름대로의 다짐을 하고 전쟁에 참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음무워. 공성전은 어렵지 않겠지만 수소의 능력은 강력합니다. 게다가 그의 직속부대인 철벽의 한우단은 빼액곰과 맞먹을 정도의 단단한 방어를 자랑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SS랭크의 병사들이죠.”
“약점은 뭐죠?”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힌시진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리고 웃소가 잠시 생각을 떠올리더니 말을 이었다.
“마법입니다. 특히 화염마법에 취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불에 약한 한우단이라.”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허기가 지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철벽의 한우단의 약점이 불이라면 공략은 어렵지 않을 터였다. 호에게는 공격 마법의 대가 하이 코넷 위치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장점은 바로 화염마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