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
리그너스 대륙전기 266
“시끄럽군.”
“뭐? 시끄러워?! 쿠워어엉!”
“지금 그게 왕인 당신이 할 말이에욧?! 삐이이이!”
“꿀꿀! 소중한 나의 동족이 십만이나 넘게 죽었다!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질 거냐! 아쉬토!”
전장의 폭군이라 불리며 수인 왕국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아쉬토의 카리스마도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호인 다음으로 강력한 세력인 웅족과 머릿수만큼은 수인 왕국 중 가장 많다고 알려진 토끼 부족과 돼지 부족이 손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저러다가 히히힝. 소환자라는 녀석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포니가 걱정을 담아 말했다. 소환자 윤호의 땅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었다. 전쟁에서 입은 피해는 모조리 복구 한 지 오래였고, 농장, 시장, 병영 등을 비롯한 기초 건물들과 각종 특수 건물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B등급 마장기인 엑스칼리버의 배치도 다수 이뤄진 상황이었다. 첩자의 말에 따르면 군트락의 토슬치만 하더라도 엑스칼리버 두 개 편대가 순찰을 돈다고 했다. 거기에 코우랄라와 프랭스가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일 때면 군트락이 과거 수인 왕국의 영토였는지 아니면 소환자의 영토였는지 구별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심각성을 대회의의 높으신 분들은 체감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만한 게 군트락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두 개의 영토는 대 회의에 참석할 자격이 없는 군소 부족들의 영토였기 때문이었다.
“푸르르륵. 음무워. 그래서 큰일이야.”
오직 우인들의 영토만이 한시진이 군주로 있는 디치 플레이스만과 붙어 있을 뿐이었다.
“그 쪽의 상황은 어때? 히히힝.”
“좋지 않다. 가뜩이나 골치가 아픈 상황에서 문젯거리가 또 늘었어. 음뭐.”
“골치가 아픈 상황? 아아.”
수소의 말에 포니가 알았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우인족은 한창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 세대교체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왕좌를 걸고 부딪치는 자식들끼리의 싸움이었다.
“히힝. 어차피 자네의 자식 중 왕좌를 물려받을 녀석이라면 화났소랑 싫소, 그 둘 중 하나 아니겠나?”
“그렇긴 하다만……. 그 두 녀석의 세력이 비등비등해서 말이지. 푸르르륵.”
말을 하면서도 답답한 모양인지 수소가 목을 좌우로 꺾었다. 서로의 전력이 비슷비슷한 까닭에 이번 왕자의 싸움은 쉽사리 승부가 갈리지 않고 있었다. 결국 양 측 다 엄청난 피해를 볼 게 분명한데, 문제는 갑자기 등장한 강력한 적인 소환자 윤호가 과연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 영악한 녀석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군.”
“음. 그렇지 않아도 오늘의 회의가 끝나면 나의 영토로 돌아갈 생각이네.”
“카우셰드로?”
“그렇다네. 푸르륵.”
수소가 주먹을 불끈 움켜쥐자 탄탄한 근육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온몸에 새겨진 전장의 광기가 감정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까지 애새끼들 뒷바라지를 해야 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말이지.”
소환자 윤호는 수인 왕국을 대표하는 열 두 종족 중 무려 세 종족을 굴복시켰다. 카우셰드의 우인족 역시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수소의 뜻을 읽은 포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혹시 모르니 나도 준비를 해야겠어. 자네가 무너지면 그 다음은 내가 아닌가? 히히힝.”
“푸르륵. 내가 무너져? 음뭐어. 오히려 소환자를 물리치고 그의 땅을 차지하려고 들지도 모르지.”
“그렇게라도 되면 당장에 모든 병사들을 보내주겠네.”
오래된 친우인 포니의 말에 수소는 커다란 눈망울을 끔벅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email protected]$%!%!@$”
“이 쉬벌탱! 너 진짜 뒤지고 싶냐?!”
회의는 여전히 난장판이었다. 뭐, 결국 이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오늘의 회의는 아무 소득 없이 끝이 날 게 분명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어떻게 됐나? 히히힝?”
“그 녀석?”
갑작스러운 포니의 질문에 수소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름이 우…….”
“그런 놈은 몰라. 내 기억에서 지운지 오래라네. 음무어.”
“…….”
“아무리 자네라도 쓸데없는 말은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군. 푸르륵.”
자신의 질문을 듣지도 않고 딱 잘라 끊는 수소의 행동에 포니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살기와 함께 온몸으로 흉흉한 기세를 내뿜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도 수소에게 그의 존재는 금기인 모양이었다.
* * *
<영웅 정보(Status)>
1. 이름 : 웃소
2. 성별 : 남(101)
3. 종족 : 우인족
4. 소속 : 알르드
5. 레벨 : 450
6. 직업 : 황소(S)
7. 세부능력
통솔 : 239 / 300(A)
무력 : 464 / 500(S)
지력 : 211 / 300(A)
정치 : 499 / 500(S)
매력 : 127 / 200(B)
8. 특성 : 소의 인내, 침착한 마음, 황소의 괴력.
띵동.
-‘웃소의 복수’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웃소는 소들의 왕이자 카우 킹이라 불리는 영웅, 수소의 장남이었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전사였던 아버지와는 다르게 웃소는 심약했고, 나약했으며 또한 겁쟁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장남의 모습에 실망한 수소는 거리낌 없이 웃소를 버렸고, 그런 수소의 행동은 어린 웃소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웃소는 우인족의 그 어떤 영웅들보다도 뛰어난 모습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웃소는 자신이 잃어버렸던 자리를 다시 되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사를 빌려달라고?”
호의 말에 웃소는 어깨를 흠칫하더니 커다란 눈망울을 뒤룩 굴리다가 살며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무슨 결심이라도 했는지 곧 고개를 들어 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음무워. 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호 님께서 훗날 카우셰드를 공격하실 때 저도 꼭 함께하고 싶습니다. 음뭐.”
웃소의 말을 들으며 호는 고개를 주억였다.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퀘스트 클리어를 목적으로 둔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우인족의 땅인 카우셰드를 공격할 수 있었다. 다만,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에 아직 준비가 덜 된 터라 가만히 있는 것뿐이었다.
“그건 어렵지 않아. 하지만 저번 전쟁에서 점령한 영토를 안정시키고 발전시키는 게 먼저다.”
그리고 웃소 역시 그런 사실들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음뭐. 하지만 호 님. 카우셰드의 공략은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입니다.”
“최적의 타이밍?”
“그렇습니다.”
웃소가 이제까지의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비장한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웃소의 말에 의하면 현재 카우셰드는 우인 대왕 수소가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그 후계자들끼리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들의 이름은 화났소와 싫소. 수소의 차남과 삼남이라고 했다.
“이놈의 Korea사…….”
웃소라는 이름부터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진짜 네이밍 센스만큼은 답도 없는 회사였다. 아무튼 웃소의 말에 따르면 카우셰드는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후계자들끼리의 치열한 전쟁으로 영토가 엉망이 되고 있다고 했다.
“흐음.”
어쨌든 이야기를 듣고나니 귀가 솔깃했다. 저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면 수인 왕국의 열두 종족 중 하나인 우인족의 세력을 날름 집어삼킬 수 있는 기회였다. 명분도 충분했다. 웃소는 카우 킹이라 불리는 수소의 장남. 비록 버림받았다고는 하지만 그의 피를 이어받은 정당한 후계자 중 하나였다.
‘일단 체크는 해봐야겠군.’
하지만 수인 왕국의 동태를 알 수 없는 만큼 지금 당장 병사를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은 원래 진행하려고 했던 계획들을 모두 끝내놓고 생각할 일이었다.
S등급의 영웅이 된 웃소는 한시진이 있는 디치 플레이스만으로 보냈다. 우인족의 영토인 카우셰드의 근처에 머무르며 그들의 동태를 살피겠다는 의지를 보인 탓이었다. 어차피 퀘스트도 있는 까닭에 호는 별 생각 없이 웃소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데스사이더–화랑의 개조가 끝이 났다. 먼저 외형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거대한 낫을 휘두르는 것 뿐 아니라 찌를 수도 있게끔 새로이 칼날을 만들어냈으며 장갑도 강화되었다. 그에 따라 마력석의 출력도 높아졌다.
“이거 굉장히 좋은데요?”
한시진이 새롭게 개조된 자신의 전용기를 조종하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마장기라면 브로리의 코우랄라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들었다.
“일반 마장기와 전용기니까. 노말과 레어의 차이라고 할까?”
데스사이더–화랑의 개조를 시작으로 앞으로 호의 전용기가 될 키마라이–플레임을 비롯해 여러 마장기들의 개조가 이어졌다. 비록 돈은 많이 소모됐지만 전력의 강화를 위해서면 꼭 해야 할 일들이었기에, 호는 과감하게 마장기의 개조를 승인했다.
팀 갈리는 공돌이의 브뤼헤아 비쉬 연구도 순조로웠다. 계속된 연구로 인해 공돌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말라가고 있었지만 그들이 개발해야 할 것들은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많이 힘드시죠? 브뤼헤아 비쉬의 연구를 마치면 포상과 함께 사흘간의 휴식을 드리겠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주세요.”
그래도 림드 산맥의 군주가 되어 자신을 찾은 아스트리드 벨의 따뜻한 한 마디로 인해 그들은 최소한의 휴식만을 취하며 연구와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또 한 번의 해가 지나갔다.
* * *
“역시…….”
매 달 초마다 각 영토의 군주들이 보내오는 보고서를 보던 호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유지비에 비해 생산량이 부족해 마이너스의 수입을 기록하던 영지들이 조금씩 발전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수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중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곳은 다름 아닌 리셴르나가 군주로 있는 바리안스의 대지였다.
“돈이 최고라니까.”
팀 심시티가 움직이면서 새로운 도시인 크리솔라이트가 생겨났고, 아트리그의 경우에는 질 좋은 캣닢이 생산되어 주변으로 부리나케 판매가 되고 있었다. 이스파한 역시 A등급이었던 대도시에서 현재 SS등급의 메갈로폴리스까지 발전되어 있었다. 전부 돈을 때려 박은 결과였다.
붉은 핏빛의 대지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이미 특성화가 완료된 아멘드마와 코르다에서 생산되는 잉여 자원들이 모조리 커티삭과 지크 로리로 투자가 되었고, 마족의 도발을 막는 요새 도시로 탈바꿈한 커티삭은 현재 마동포 이제르론의 건설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 두 영토만큼은 아니지만 페렛 습지대와 디치 플레이스만도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호가 군주로 있는 군트락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슬슬 움직여도 괜찮겠는데?’
그렇게 각 영토의 상황을 체크한 호는 주변의 지도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체적인 생산량만으로도 충분히 영토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영지들을 발전시켰고, 방비체계도 충분히 갖췄다. 지금이라면 수인 왕국의 도발이 있어도 무리 없이 막아낼 수 있었다.
솔직히 마족이나 천족 혹은 엘프가 상대라면 조금 더 준비를 철저하게 한 후에 행동을 개시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호가 노리고 있는 상대는 수인 왕국. 사파리에서부터 시작된 호인족과 웅족의 주도권 싸움으로 인해 자중지란이 일어난 녀석들이었다.
첩보에 따르면 현재 수인 왕국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대륙의 남동쪽은 그들끼리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는 우인족의 영토인 카우셰드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보류해놓은 퀘스트도 하나하나씩 끝내야지.”
디치 플레이스만에 있는 웃소의 말에 따르면 왕좌를 건 화났소와 싫소의 싸움은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 특이사항으로는 사파리로 떠났던 우인족의 왕 수소가 일선에 복귀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워낙 오랫동안 카우셰드를 떠난 탓인지 그를 따르는 세력은 많지 않다고 했다.
SSS등급을 향한 브로리의 승급은 아직까지도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페이샬의 라홀로프 상단이 수인 왕국 제일의 상단으로 올라서면서 브로리의 승급 아이템 중 하나인 수인의 축복을 받은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SS등급의 던전인 폭풍 바람의 신전은 아직까지도 공략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A등급 마장기만 최소 열 기 이상이 필요하다고 했으니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