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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63화 (263/522)

# 263

리그너스 대륙전기 263

“네. 백 명 정도였나? 수는 많지 않았는데 확실히 아르카니움 슈팅스타였어요.”

“벌써 그렇게까지 연구가 진행되었나?”

생각해보니 딱히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각 종족들이 지닌 저력을 생각하면 이제야 SS랭크의 병종 연구를 끝냈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물론, 좋은 소식은 더더욱 아니었다.

“슬슬 실버 문의 힘이 빠지겠군.”

이대로 시간이 더 흐르면 다른 종족들도 SS 나 SSS랭크의 병종들로 군대를 이룰 터였다. 그렇게 되면 랭크의 차이를 이용한 실버 문의 전투력도 급감할 터였다. 그 전에 어떻게든 세력을 늘려놔야만 했다.

일단은 현재 연구 중에 있는 전용기 개발을 끝내고 SSS랭크의 마족 마법 병종 브뤼헤아 비쉬의 연구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단단한 실버 문과 강력한 한 방이 있는 브뤼헤아 비쉬로 이루어진 군대라면 한 번 더 세력을 넓힐 수 있는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팀 갈리는 공돌이는 정말 소금과도 같은 녀석들이었다. 그들로 인해 연구의 개발 속도가 몇 배나 빨라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연구에 들어가는 자금도 역시 그 이상으로 소모됐지만, 호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닌 시간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다시 여행을 떠날 시간이었다.

“찌익! 호 님을 위하여! 이 라쿤! 목숨을 바쳐서라도 토슬치를 사수하겠습니다!”

호를 향해 라쿤이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경례를 올렸다. 짐승신의 축복과 프랭스를 수여한 여파였다. 과도한 그의 충성심이 가끔은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보기에는 재미가 있던 터라 어울려 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 그래. 수고.”

대대장이 으레 부하에게 하는 것처럼 호 역시 라쿤을 향해 건성하게 경례를 했다.

“크흑! 호 님을 위하여!”

그러자 라쿤이 감격에 찬 모습으로 눈물을 흘려대었고, 호가 이끄는 군대가 토슬치를 떠나기 시작했다.

“……쟤 좀 이상하지 않아?”

성벽 위에서 호의 깃발을 들고 소리를 지르는 라쿤을 뒤로 한 채 걸음을 옮기던 브로리가 성벽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도 귀엽잖아? 열심히 하는 모습도 마음에 들고.”

“하긴. 다람쥐족답게 똘똘하기는 해. 그 웃소라는 녀석은 미련해서 너무 답답했는데.”

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브로리가 허공으로 감정이 실린 주먹을 휙휙 휘둘렀다.

“아아.”

그런 브로리의 모습에 호의 입에서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최근 웃소가 슬픈 눈망울로 쳐다보는 일이 많아져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어째 브로리의 행동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주먹으로 몇 대 맞은 것 같았다.

* * *

그린 드래곤 레피스트 퓨리온이 살고 있는 퓨리온 산맥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었다. 그중 가장 빠른 방법이자 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리안스의 대지에 있는 제덴 사막을 횡단해서 가는 길이었다. 나머지 방법은 수인족의 영토를 지나야 했던 터라 불가능했다.

“흐, 덥다.”

“물! 물!”

이미 한 번 다녀왔던 길이었지만 제덴 사막의 뜨거운 햇살은 사막을 지나는 여행자들을 갈증과 더위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그래도 최근 바리안스의 대지에 대한 심시티의 개발이 시작되면서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대형 오아시스들이 사막 내에 여러 개 만들어진 까닭에 여행자들과 상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군가!”

그렇게 호 역시 대형 오아시스에서 짐을 풀고 있던 도중 누군가가 우렁찬 목소리로 호를 향해 외쳤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영주를 부르는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실버 문들이 호를 보호하기 시작하면서 오아시스 내에 이상한 기류가 맴돌았다.

“어?”

목소리의 주인공을 발견한 호의 눈동자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모토를 지니고 있는 타임리스 상단의 상단주이자 마장기에 미친 드워프, 밴더필트였다.

“밴더빌트씨 아니십니까?!”

호가 아는 척을 하자 실버 문들이 자신들의 검을 갈무리했다. 순간적으로 오아시스 전체를 긴장시킨 실버 문들의 무력시위에 여기저기서 쉬고 있던 여행자들이 그제야 한숨을 놓으며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자네의 활약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네. 정말 대단해!”

“전부 밴더빌트씨 덕분입니다.”

“크흐흐흐! 그런가? 하긴 내가 구입한 마장기 대금이 림드 산맥의 발전으로 이루어졌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겠군. 하하하!”

드워프답게 밴더필트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아아. 간만에 골든 크로우에 큰 건이 생겨서 말이야. 광물들을 싣고 이동하는 중이라네.”

밴더필트의 말대로 오아시스 한 쪽에는 많은 수의 드워프들이 막사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천으로 뒤덮인 수레들이 배열되어 있었다.

‘큰 건이라.’

호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왠지 짐작이 가는 일이 하나 있던 탓이었다.

“밴더필트님께서 직접 가실 정도면 거래 규모가 상당한가 보군요. 그런데 드워르기니는 어쩌고요?”

“아아. 최근 수리중이라네. 아들 녀석이 타고 다니다가 드워르기니를 다시아 했거든.”

“……다시아요?”

“아아. 마장기를 뒤집었다는 우리들의 은어일세. 빌어먹을. 덕분에 소중한 내 아기의 외부 전체가 싸그리 갈려나갔어.”

밴더빌트의 말에 호는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자제분께서 활발하신 모양이군요.”

“활발? 그냥 미친 거지. 그래도 자식은 자식이라고 그런 사고를 쳤는데도 불구하고 솥뚜껑 같은 이 주먹으로 몇 대 패주고 말았다네.”

뭐, 별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게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밴더빌트가 뒤통수를 벅벅 긁더니 스윽 물었다.

“최근 엑스칼리버의 양산에 성공했다지?”

“블루 스케일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흥. 이래봬도 마장기 하면 환장하는 나일세. 고작 그런 도움만으로 B등급 마장기를 제작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호의 말에 밴더빌트가 뚱한 목소리를 내었다.

“추가로 기술 연구에도 많은 돈을 투자했죠. 기술자들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C등급 마장기 제작에도 상당한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아후. 우리 드워프들도 마장기 개발에 돈을 투자해야 되는데 나 원…….”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밴더빌트의 한탄에 호가 물었다. 무슨 의도를 가지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냥 서로에 대한 안부를 알기 위한 가볍게 하는 질문에 가까웠다.

“그냥 마장기를 좋아하는 늙은이의 한탄일세. 최근 황금 망치 협곡에서 개발 중이었던 헤임빌의 연구가 중단되었다네. 연구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게 그 이유라고 하더군.”

헤임빌. 드워프의 A등급 마장기로 강철 철퇴를 무기로 사용하는 만능형 마장기였다. 화려한 외관은 물론이고 내구력, 전투력, 유지력 모두 다른 마장기들에 비해 뛰어난 편이었기에 많은 유저들이 리그너스 대륙전기 후반 즈음 주력으로 사용하게 되는 마장기이기도 했다.

“황금 망치 협곡이면 대 족장 골드 스트리안의 영토로군요.”

드워프의 대 족장답게 골드 스트리안은 A등급 마장기를 개발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인 선행 연구들을 모두 마친 모양이었다. 하기야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도 드워프 세력은 다른 연구에 비해 마장기와 관련된 기술 분야에 많은 것을 투자하곤 했었다.

하지만 A등급 마장기의 벽은 단순히 연구만 계속한다고 해서 넘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방금 전 밴더빌트의 말대로 엄청난 연구비용과 재료들이 필요했다. 연구 관련 특성을 지니고 있는 높은 등급의 영웅, 리스와 식량의 생산이 넘쳐다는 다수의 대 도시, 마장기 연구에 필요한 특산품들을 생산할 수 있는 특산품 전용도시까지. 이 삼 박자를 갖춰야만 도전할 수 있는 게 A등급 마장기의 연구였다.

가상현실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최종 병기인 만큼 그만큼 허들도 높았다. 덕분에 호 역시 엑스칼리버의 양산 체제를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족의 A등급 마장기인 라이온레인의 연구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A등급 마장기의 제작 기술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드워프들의 대족장이라도 연구를 지속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쩝쩝. 나도 알아.”

호의 대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밴더빌트가 입을 쩝쩝댔다. 그러다가 황금색의 특이한 마장기를 발견하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 마장기는 처음 보는 마장기인데? 어……. 설마?!”

“원인의 전설적인 영웅이었던 롤랜드의 유물인 코우랄라입니다.”

“우와아아!”

코우랄라를 보며 밴더빌트가 어린아이라도 된 것 마냥 탄성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빠른 걸음으로 코우랄라 쪽으로 사라져버렸다.

“여전히 마장기는 엄청 좋아하시네.”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밴더빌트와 만난 덕분에 골드 스트리안의 영토가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있었다. 깨달음도 하나 얻기는 했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A등급 마장기의 개발은 시작하지 말자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렇게 오아시스에서 이틀 가량을 묶으며 휴식을 취한 호는 제덴 사막을 건너 퓨리온 산맥으로 향했다.

“호 님을 위하여!”

“몬스터들을 물리쳐라!”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탓인지 퓨리온 산맥에는 몬스터들이 우글거렸다. 그래봤자 마장기와 고랭크의 병사들로 이루어진 호의 군대에게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귀찮은 녀석들!”

단지 하찮은 녀석들을 상대로 코우랄라를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에 브로리의 짜증이 점점 늘어날 뿐이었다.

띵동.

-그린 드래곤 레피스트 퓨리온이 당신의 향기를 느꼈습니다.

-레피스트 퓨리온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 합니다.

그렇게 몬스터들을 물리치면서 전에 레피스트 퓨리온을 만났던 장소로 이동하기를 이틀째. 호가 원했던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쿠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산맥이 떠나갈 것 같은 엄청난 포효가 귓전을 쩌렁쩌렁하게 울려왔다. 드래곤들의 권능인 드래곤 피어였다.

“금방 볼 줄 알았는데, 오랜만이네요.”

왠지 뼈가 느껴지는 레피스트 퓨리온의 말에 호는 가슴을 살짝 쓸어내렸다. 만약 시간을 좀 더 지체했다면 퀘스트의 유효 기간을 넘겼을 거라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세계수의 가지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트러블도 좀 있었고요.”

키마라이에서 내린 호가 하늘 위에 떠있는 에메랄드 색의 드래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트러블?”

“그렇습니다. 그런데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면 제 레어로 가도록 해요.”

굳이 사양할 필요는 없었기에 호는 레피스트 퓨리온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번 퀘스트를 끝내면 그녀를 동료로 얻을 수 있었다.

* * *

‘그린 티라고 했던가?’

호는 눈앞에 있는 찻잔에 담긴 차를 바라보았다. 레피스트 퓨리온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앞에 놓인 차는 그린 드래곤의 마력을 품은 차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향기와 목으로 넘기는 순간 밀려오는 포근한 느낌에 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특산품으로 판매하면 굉장하겠는데?”

“안타깝지만 많은 양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렇군요. 아쉽네요. 차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저도 굉장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말이죠.”

무리에서 그린 티를 특산품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레피스트 퓨리온의 말에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그린 티의 향과 맛은 놀라울 정도였다.

“코르다에 그대가 가져다 준 세계수의 가지를 심었어요. 트오세에 있는 세계수만큼은 아니지만 세계수의 기운을 담은 만큼 앞으로는 크리솔라이트 부족도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벌써 코르다에 다녀오신 겁니까?”

“드래곤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랍니다.”

레피스트 퓨리온이 잔잔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띵동.

-코르다의 엘프들이 세계수의 가지에 영향을 받습니다.

-붉은 핏빛의 대지에 거주하고 있는 엘프들의 충성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엘프와의 관계가 조금 좋아집니다.

“벌써부터 코르다에 있는 엘프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군요.”

메시지를 통해 변화된 정보를 읽으며 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호의 모습에 일순 레피스트 퓨리온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쳤다.

“이 대륙의 모든 종족들을 포용하고 있는 알르드의 군주다운 말이로군요.”

“모든 종족의 포용요?”

퓨리온의 말에 호는 쓰게 웃었다. 단순히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 행동일 뿐이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이 세계의 많은 종족들에게 큰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게 굳이 그대의 안전을 위한 일이라고 해도 말이죠.”

드래곤이라는 지고의 종족답게 그녀는 이미 호의 생각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레피스트 퓨리온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쨌든 그대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제가 당신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뜻은?”

호는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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