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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56화 (256/522)

# 256

리그너스 대륙전기 256

“……마족?”

키마라이급 마장기가 거대한 대검으로 도란스가 타고 있던 메가 리자드급 전용기를 꿰뚫고 있는 모습이 그의 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니, 마족이 아니다!’

화이트베는 노려보듯 키마라이를 쳐다보았다. 지금 이 장소에 마족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실버 문 부대가 그런 키마라이를 따르듯 포진하고 있었다. 엘프와 마족이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쯤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사실. 덕분에 화이트베는 너무나도 쉽게 키마라이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거 대어가 걸렸는데?”

화이트베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소환자다. 그것도 윤호라는 녀석이 틀림없어.”

첩보에 따르면 림드 산맥의 패자인 소환자 윤호는 마족의 마장기 키마라이와 인간들의 마장기 엑스칼리버를 다룰 수 있는 특이한 마장기사라고 알려져 있었다.

“어, 어떻게 할까요?”

“적 마장기의 수는?”

“확인된 것만 다섯 기 가량입니다. 그리고…….”

부하의 말이 멈췄다. 그리고 잠시 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웨어 타이거급 전용기! 퀴, 퀸 캣츠가 적들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뭐? 그게 무슨?!”

뜬금없는 부하의 말에 화이트베가 벌떡 놀라 적들의 마장기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있는 퀸 캣츠를 확인하고는 이를 으득 갈았다.

“리셴르나! 이 빌어먹을 고양이 녀석이 배신을 했구나!”

하지만 화이트베는 자신의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다급하게 마장기를 조종해야 했다. 적들 사이에서 황금빛을 띈 마장기가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기세가 호인 저리가라 할 정도로 흉흉했던 터라 화이트베는 상대의 앞을 가로막기보다는 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런 화이트베의 선택은 끔찍한 재앙으로 이어졌다.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마장기는 삽시간에 화이트베의 마장기를 지나쳐 다른 마장기들을 덮쳤다.

“크아악!”

“뭐, 뭐냐?! 이 녀석은!”

“무슨 괴물 같은 마장기냐! 전혀 데미지를 입힐 수가 없다!”

요란한 표호와 함께 황금색의 빛이 번뜩일 때마다 마장기의 관절 부위들이 하나씩 허공을 날았다. 난다 긴다 하는 수인 영웅들이 달려들었지만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역시 최강 로리답게 무시무시한 실력이로군.”

그리고 순식간에 수인족의 마장기 편대가 쓸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리셴르나가 말했다.

최강 로리 브로리. 개인의 무력만큼은 수인 왕국의 대왕 아쉬토에 맞먹는다는 맹장이 바로 그녀였다. 인간과 수인의 혼혈이라는 이유로 여기저기서 배척을 받았던 탓에 림드 산맥 주변을 제외하면 그 이름이 알려진 편은 아니었지만 리셴르나는 그런 브로리에 대해 다른 십이멀 보다는 잘 알고 있었다.

드워프의 족장 중 하나인 쿠퍼 쏘우를 상대할 때 용병으로 고용, 본인의 눈으로 톡톡히 그녀의 무시무시함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황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그녀가 어떤 이유로 호를 따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그녀의 실력만큼은 진짜배기였다.

“우리도 돌입한다.”

통신구가 깜빡이며 남자의 목소리가 귀로 들려오자 리셴르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목소리의 정체는 바로 윤호였다. 그런 윤호의 통신에 리셴르나는 전방의 하얀색 릴라릴라 급 마장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병사를 움직였을 때부터 이미 끝난 전투였어. 화이트베.”

단지 중, 소규모로 부대를 나눠 지휘막사의 명령에 따라 수동적으로 대기를 하거나 이동을 하는 수인들과는 달리 호의 병사들은 이 개미굴의 지리를 모조리 꿰뚫고 있는 호의 명령에 따라 한 몸 마냥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길 수 있는 전투는 이기고, 질 것 같은 전투는 회피하면서 서서히 화이트베의 세력을 깎아내고 있는 것이다.

화이트베를 상대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있는 병사들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었다. 리셴르나가 아는 것만 하더라도 열 부대 이상이 이 장소를 포위한 채 진군해 오고 있었고, 행여나 수인 부대가 지원을 올 것을 대비해 주변 부대에도 지금쯤 공격이 가해지고 있을 터였다.

“공격!”

그리고 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수십이 넘는 광선들이 수인족의 마장기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리셴르나의 공격도 있었다.

“모조리 쓸어주마!”

“흥! 이런 한심한 공격이라니! 내가 그런 공격에 당할 줄 아느냐!”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강철 거인들끼리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얼핏 보면 수인들이 유리해 보이는 전력이었다. 소환자 윤호의 마장기는 고작 일곱 기에 불과했지만, 화이트베가 이끄는 마장기는 그 두 배인 열다섯 기가 넘었다.

하지만 마장기사들의 질이 달랐다. 윤호의 전력에는 종족의 에이스급 영웅이라 부를 수 있는 브로리와 니나 다니엘레가 포함되어 있었다. 거기에 리셴르나 역시 수인족의 십이멀. 일반적인 실력을 지닌 마장기사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투의 폭발음을 들은 것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호의 마장기와 병사들이 전장에 합류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수인들의 지원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수인 마장기사들이 통신구를 통해 지원요청을 했지만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리만을 들을 뿐이었다.

“큿!”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마력포를 피하며 화이트베는 인상을 찌푸렸다. 돌아가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상대는 함정을 파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결과 아군 마장기 편대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포위전을 펼치느라 부대를 따로따로 나눈 게 실수였다. 그 결과 마장기 전력 또한 분산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어떻게든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을 빼내기가 쉽지 않았다. 아까부터 자신만을 노리며 공격을 가하는 키마라이 때문이었다.

“이노옴!”

대검을 휘두르는 키마라이의 공격에 화이트베가 눈썹을 꿈틀하며 노성을 내뿜었다. 그러고는 마장기를 움직였다. 키마라이의 동체를 붙잡아 자신의 괴력으로 찌그러뜨릴 생각이었지만 자신의 의도를 눈치 챈 듯 키마라이는 어느새 유유히 뒤로 물러난 상황이었다.

“이렇게만 붙잡고 있어도 충분히 이득이란 말이지.”

다시 자신을 노리고 쇄도하는 릴라릴라를 피한 호는 상대의 하단을 노리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상대는 수인족의 십이멀. 어렵지 않게 자신의 공격을 피하고는 릴라릴라의 거대한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컨트롤로 어떻게 커버는 할 수 있겠는데, 힘에서 크게 밀리니 제압하는 게 쉽지 않네. 무력 능력을 더 올리던가 해야지…….”

바쁘게 마장기를 움직이면서 호가 아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서로의 실력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터라 쉽게 승부가 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상황이기는 했다.

“크아아악!”

“지, 지원이 필요하다!”

이렇게 자신이 화이트베를 붙잡는 동안 상대의 마장기 전력은 눈에 띌 정도로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대 영웅 중에는 SS등급의 브로리와 니나 다니엘레를 막을 수 있는 인물이 아무도 없었다. 간혹 S등급을 바라보는 A등급 영웅이 그녀들을 막기 위해 나서기는 했지만 두 마장기의 합공에 순식간에 파괴되었다.

그렇게 대부분의 마장기를 제압한 아군은 실버 문을 도와 수인 병사들을 학살하기 시작했고, 몇몇은 호가 상대하고 있는 화이트베의 릴라릴라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나의 정예병들이!”

범상치 않은 실력을 지닌 두 기의 마장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에 화이트베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어느새 자신의 병사들은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사방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소환자 윤호의 병사들뿐이었다.

‘도망, 도망을 쳐야 돼!’

하지만 벽을 뚫는 방법을 제외하고서는 도망을 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호를 비롯해 브로리와 니나 다니엘레가 화이트베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몸은 여기서 죽을 수 없단 말이다!”

화이트베가 자신의 괴력을 앞세워 달려들었지만, 그를 향해 달려드는 세 명의 마장기사는 하나하나가 뛰어난 실력자들이었다. 결국 세 명의 합공에 화이트베는 샌드백처럼 얻어맞으며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키마라이의 대검이 릴라릴라의 가슴을 깊게 파고들었다.

“좋아.”

화이트베를 쓰러뜨리고 퀘스트를 만족했다는 메시지를 확인한 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려운 전투는 아니었지만 수인 왕국의 십이멀을 잡았다는 생각에 흥분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그런 호를 보며 리셴르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적들에게는 무시무시함의 대명사였던 화이트베의 릴라릴라가 여기저기가 모조리 뜯겨져 나간 초라한 모습으로 무너져 있었다.

수인 왕국을 대표하는 영웅들인 십이멀. 그중 웅족의 십이멀이 이 개미굴에서 목숨을 잃었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호의 영토를 점령하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자신만만하게 나섰지만 화이트베는 림드 산맥은커녕 붉은 핏빛의 대지조차도 밟지 못했다.

“적들의 수장은 잡았으니까. 이제 남은 녀석들을 몰이할 일만 남았군.”

“어떻게 할 생각이지, 호?”

“이 동굴의 주인들에게 선물이나 안겨주고 가자고. 모조리 잡고 간다.”

하지만 호는 그런 화이트베를 물리친 것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로 다시금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저, 적이다?!”

“어떻게 적들이! 본부에서는 연락이 없나?!”

“엘프들에게 공격을 당했다! 지원! 지원을 바란다!”

화이트베나 도란스와 같은 지휘관들을 잃은 수인들은 제대로 된 지휘도 없이 개미굴에 고립된 채 호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야만 했다. 순식간에 마장기 전력이 무너져 내렸고, 실버 문을 비롯한 고위 병종들이 그 뒤를 덮쳤다.

수인 군대의 수장 화이트베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호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굳이 쓸데없는 피해는 늘리지 않겠다는 듯 두, 세배 이상의 전력으로 수인들을 무너뜨렸고, 본인 역시 키마라이를 이끌면서 상대의 마장기를 상대했다.

“캬아아앗!”

리셴르나 역시 맹렬하게 전투를 벌였다. 대세를 읽은 그녀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공을 세워 아트리그에 커다란 캣닢 공장을 세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개미굴 내로 진입한 수인들을 모조리 쓸어버린 호는 부대를 정비한 후 지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뭐냐?! 어떻게 엘프들이!”

지상에는 S등급의 수인 영웅이 지휘하는 오 만의 수인족 군대가 개미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부에서 끊임없이 밀고 올라오는 호의 군대를 막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져 제덴 사막으로 도망을 쳐야만 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화이트베의 병력을 괴멸시킨 호는 곧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이스파한으로 간다고? 설마 군트락으로 향할 생각이야?”

리셴르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서만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었는데 호는 바리안스의 대지를 통해 수인 왕국의 국경을 넘으려고 하고 있었다.

“맞아, 리셴르나. 당한 만큼은 되갚아 줘야 하지 않겠어?”

“으으음. 군트락을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이 다람쥐 녀석들이니. 확실히 대단치 않은 전력을 지니고 있는 곳이기는 해.”

리셴르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인들이 몰락한 이후 새롭게 사파리의 열두 종족에 이름을 올린 다람쥐 부족은 다른 종족과의 관계는 좋았지만 종족 자체의 전력은 굉장히 허약한 수준이었다.

아마 호가 진군을 하게 되면 막는 것이 불가능할 거라는 게 리셴르나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군트락을 점령한 후에는 곧바로 디치 플레이스만으로 올라갈 생각이야.”

호의 말에 리셴르나는 잠시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전력을 나크 평원에 집중하고 있는 조인족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뒤통수를 맞게 되는 셈이었다.

게다가 화이트베가 이끌던 오십 만에 가까운 병사들이 제덴 사막에 모조리 쓰러진 터라 호의 병사를 막을 만한 군대가 없었다.

아무리 사파리에서 추가 병력을 편성한다 하더라도 그 전이면 모든 상황이 끝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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