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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55화 (255/522)

# 255

리그너스 대륙전기 255

“쿠워어어어엉!”

포효에 가까운 고함과 함께 릴라릴라급 마장기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골드 이글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동체가 뒤틀린 골드 이글을 다시 양손으로 내려찍어 고철로 만들어버린 화이트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런 그의 눈동자에 어지러운 난전의 광경이 들어오고 있었다.

“도란스! 리셴르나! 무사하나?!”

화이트베의 목소리가 통신구를 통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개미굴의 지형이 통신을 방해하는 모양인지 들려오는 소리는 불규칙했고 또한 제각각이었다. 안타깝게도 그중에 그의 부관인 도란스나 리셴르나의 통신은 없었다.

욕설과 괴성이 섞인 마장기사들의 목소리는 사방에서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동굴을 가득 울리는 폭발음과 세찬 진동들 역시 전투의 격렬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덕분에 화이트베는 지금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녀석들!”

개미굴에 먼저 자리를 잡은 호 녀석은 함정을 파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게 분명했다. 그들을 포위하기 위해 시간을 조금 지체했던 게 치명적으로 작용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개미굴 안으로 진입한 수인족의 수는 오십만 이상. 지금도 꾸역꾸역 후속 부대들이 개미굴 입구를 통해 진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갑작스런 저들의 기습에 다들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었지만, 침착하게 맞받아칠 수만 있다면 승리는 자신의 손에 있을 거라는 게 화이트베의 생각이었다.

“모두들 침착하게 대응해라! 쿠와앙! 상대는 대단치 않은 녀석들뿐이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자넷급 마장기를 양손으로 밀쳐내며 벽으로 박아버린 화이트베가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전투는 적과 아군을 쉽게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난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화이트베의 움직임은 전부 호에게 노출이 되고 있었다.

띵동.

-빗 파트가 조종하고 있던 C등급 마장기 골드 이글이 파괴되었습니다.

-슬프게도 빗 파트가 사망했습니다. 당신을 위해 싸웠던 그의 용맹은 기리 기억될 겁니다.

-쇼트 레이닝이 조종하고 있던 C등급 마장기 자넷이 반파되었습니다.

-쇼트 레이닝이 경상을 입었습니다.

“순식간에 두 기? 꽤 대단한 놈이 있나보네.”

메시지를 확인한 호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옆에는 리셴르나가 개미굴의 지형이 세세하게 그려진 지도에 수인들의 위치를 하나하나씩 체크하고 있었다.

“이쯤에 있던 마장기 두 기가 순식간에 파괴됐어. 누가 있는 거지?”

“두 기가 순식간에 파괴되었다고? 그런 실력을 지닌 녀석이 있던가?”

호가 가리킨 부분을 확인한 리센르나가 고개를 갸웃하더니만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쯤이면 분명 그 녀석이다.”

“그 녀석?”

“그래. 마장기 두 기를 순식간에 박살낼 수 있는 실력자는 그 녀석밖에 없다. 바로 화이트베다냥.”

“아아. 십이멀이로군. 그러면 충분히 이해가 되네. 화이트베라…….”

리셴르나의 말에 호가 그의 이름을 읊조렸다. 웅 족의 화이트베. 수인족의 십이멀이자 현재 이 군대를 이끌고 있는 총사령관이었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설정 따르면 화이트베는 방어전에 능하며 굉장히 신중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한 유능한 마장기사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움직이는 릴라릴라 등급 전용는 순식간에 엄청난 괴력을 발휘해 상대를 무력화시킨다는 글도 본 기억이 있었다.

빗 파트와 쇼트 레이닝. 제대로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B등급 영웅들이 그를 상대로 버틸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슬슬 저 녀석을 잡을 연어 미끼를 던져줘야겠군. 화이트베 말고 실력이 뛰어난 녀석은 또 누가 있지?”

“냥냥. 재수 없기는 해도 저 녀석의 부관인 도란스 녀석도 유능한 마장기사다. 비페테리어도 실력이뛰어나고.”

“그 녀석들을 포함해서 주의해야 할 녀석들이 대충 어디쯤에 있을 지 전부 체크해줘.”

호의 말에 리셴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부적인 작전은 모두 자신이 계획했던 만큼 그 녀석들이 어디쯤에 있을지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 여기 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것을 지도에 표시한 리셴르나가 호를 향해 지도를 툭 던지고는 물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개미굴로 진입한 수인들의 수는 사십 만 이상. 밖에서 입구를 지키고 있는 녀석들의 수도 몇 만은 될 거야.”

지형의 이점을 활용한 기습으로 제법 많은 피해를 주기는 했을 테지만 완전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상당한 수의 병사들이 멀쩡히 살아남아 있었고, 화이트베는 그런 병사들을 규합해 위기에서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을 터였다.

“무너질 때까지 두드릴 생각이야. 너희들이 부대를 쪼갠 채로 알아서 이 안으로 들어오셨는데 이 정도의 환영 인사에 만족하면 섭섭하지.”

“……으으음.”

“게다가 이렇게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좋은 아이템도 있는데 말이야. 일단 손발부터 먼저 잘라보려고.”

호가 리셴르나가 던진 지도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그러고는 키마라이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을 덧붙였다.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하라고는 하지 않겠어. 하지만 귀찮게 하면 알지?”

“……배신할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 마. 그리고 우리도 전투에 합류하겠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거 조금이라도 공을 세워서 캣닢 공장 하나라도 더 만들어 달라고 하겠어.”

심각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는 리셴르나를 보며 호는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 자신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S등급 영웅의 합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충분히 써먹을 수 있는 좋은 카드였다.

“론, 해그리드, 미온느 부대 현 위치에서 우측 동굴로 빠진다. 목표 위치는 A–21 지역. 맛좋은 먹잇감이 곧 도착할 테니까 테이블에 식탁보를 깔고 대기하고 있도록.”

“니나 다니엘레. 현 위치에서 뒤로 빠진 후 나타나는 세 갈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목표 위치는 A–217 지역. A–21 지역에서 전투가 일어나면 그래도 포위 섬멸 후 A–331 쪽으로 빠져.”

“핏츠 부대. 뒤로 후퇴해서 A–116까지 도망친다. 정면에는 수인족의 거물이 있으니까 괜히 접근할 생각은 하지 말도록.”

“알겠어요.”

“옛설!”

“호 님을 위하여!”

키마라이에 탑승한 호는 지도 창을 열어 빠른 속도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미 상대의 부대 구성과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한 만큼 호의 명령은 거칠 것이 없었다.

“저 녀석, 원래 있던 세계에서 뭘 하던 녀석인 거야?”

통신구를 통해 빠르게 명령을 내리는 호의 모습을 보며 리셴르나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 역시 일군을 이끌었던 지휘관인 만큼 호의 명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는 자신이 준 정보만을 토대로 정확하고 날카롭게 수인들의 약한 부분만을 노려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이는 이 개미굴의 복잡한 지형을 모조리 외우지 않고서는 명령을 내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아군의 상황이 얼마나 좋고 나쁜지, 적과 부딪쳐서 이겨낼 수 있을 정도의 기량을 지니고 있는지와 같은 정보들을 모조리 꿰뚫고 있어야 했다.

“설마 장군이었나?”

당연하지만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막의 꾀주머니인 그녀 역시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지휘였다. 많은 전투를 지휘했다 하더라도 저렇게 직관적으로 명령을 내리려면 재능이라 불리는 그 무언가를 타고 나야지만 가능하다는 게 리셴르나의 생각이었다.

“흐음.”

그렇게 잠시 호가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리셴르나는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만약 호의 능력이 진짜라면 이번 종족 연합군은 보나마나 실패를 할 게 분명했다. 그녀가 아는 화이트베나 티르거는 결코 저 녀석을 상대할 수 없었다.

* * *

“크아악! 아아악!”

개미굴 속에서의 난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화이트베는 처음과는 달리 제법 여유를 찾은 상황이었다. 후속 부대와 합류하면서 자신들을 기습한 호의 병사들을 모조리 전멸시켰기 때문이었다. 기습으로 피해를 입고 후퇴를 했던 부대들도 후속부대의 합류로 정비를 마치고 있었다.

어차피 지금의 상황에서 선택은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이대로 밀고 들어가느냐, 아니면 후퇴하느냐. 그리고 화이트베는 이 개미굴을 소환자 윤호의 무덤으로 만들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입구로 향하는 통로들을 모조리 자신들이 막고 있는 터라 소환자 녀석은 포위가 된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소환자 윤호의 병사들을 얕볼 수는 없었다. 특히나 실버 문은 알려진 명성대로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화이트베는 충분히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확신이 있었다.

“수십만의 병력이 몰아쳐도 버틸 수 있는 단단한 방어진을 갖추면서 밀고 들어가는 거지.”

그가 가장 자신있어하는 전술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게코 부대와 애니멀린 부대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적의 기습에 당한 모양입니다!”

호를 옭아맬 수 있는 단단한 포위망을 갖추기에는 생각 외로 피해를 입은 부대가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자신과 같은 십이멀인 리셴르나도 있었다.

“리셴르나의 부대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빌어먹을. 병사를 좀 더 보낼줄 걸 그랬나?”

부하의 보고에 화이트베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공은 나눌 필요가 없다는 도란스의 조언을 받아 화이트베는 리셴르나에게 고작 오천의 병사만 주고 그녀를 개미굴 안으로 들여보냈다. 십이멀이라는 그녀의 명성을 생각하면 굉장히 초라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호에게 수많은 부대들이 기습을 당한 상황에서 그녀 역시 기습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리 리셴르나가 뛰어나다하더라도…….”

그녀의 병사는 고작 오천에 불과했다. 운이 좋다면 도망을 쳤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유능한 인재를 잃었군. 묘인 녀석들에게는 큰 타격이겠어.”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화이트베는 눈을 잠시 감았다 뜨는 것으로 그녀를 향한 애도를 마쳤다. 그렇게 병사들을 통솔하며 다시 내부로의 진격준비를 하고 있던 화이트베에게 부관인 도란스의 통신이 들어왔다.

“화이트베님. 리셴르나의 마장기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마장기가 제법 크게 파손이 되어 있습니다.”

“음?”

다급함이 담겨 있는 도란스의 말에 화이트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지도를 펼쳤다. 아까 전, 자신에게 보고를 했던 부하와 도란스와는 제법 위치가 떨어져 있었다.

“기습을 당한 상태에서 어떻게든 도망을 친 모양이로군.”

그래도 실버 문의 추격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나다니. 역시 십이멀이라는 명성이 어디 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일단 리셴르나의 안전을 확보하도록. 그녀를 잃는 것은 우리 수인 왕국에게도 큰 손해다.”

묘인의 날개를 잘라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기는 했지만 어차피 그들은 웅족에 비하면 전력이 상대적으로 크게 떨어지는 부족이었다. 티르거 같은 녀석이라면 모를까 굳이 리셴르나를 이 자리에서 처리할 필요는 없었다.

“알겠습……?! 크아아악!”

그러나 명령을 내린 순간 통신구 너머로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화이트베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도란스의 비명이었다.

“도란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 쿠와아앙!”

화이트베가 통신구를 꽉 움켜쥐며 큰 목소리를 내었다. 무언가 사단이 벌어진 것 같은데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어, 어떻게!? 적이다! 리셴!”

그리고 이 말을 끝으로 통신이 끊겨버렸다.

“빌어먹을!”

화이트베가 거칠게 통신구를 내려쳤다. 아무래도 리셴르나를 추격하던 부대와 마주치며 전투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도란스가 있는 위치가 자신이 주둔하고 있는 장소와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는 점이었다.

“전투다! 모두들 빠르게 이동한다!”

고작 이런 장소에서 리셴르나와 도란스를 잃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도란스가 주둔하고 있던 장소로 달려간 화이트베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보고는 우뚝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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