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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50화 (250/522)

# 250

리그너스 대륙전기 250

“또 전쟁이로군요.”

호에게서 대략적인 상황을 들은 니나 다니엘레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수인 왕국이 연합군을 편성했다는 것은 허투루 넘길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피를 흘리고 쓰러질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부터 그녀는 호의 영웅으로 전쟁에 나서야 했다.

이미 타락한 배신자의 낙인이 찍혀 있겠지만 그 소식을 들은 천족의 친우들이 자신을 떠올리며 어떤 생각을 할지도 신경이 쓰였다.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놓인 천족 영웅이 한 명 더 있다는 점이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 뭐, 어차피 당장이 아니더라도 터져야 하는 문제였어.”

호 역시 니나 다니엘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런 잡념들은 얼마 안 있으면 사라질 터. 크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커티삭을 떠나 디르시나에 도착한 호는 곧바로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미 수인 왕국의 합군이 공격해 올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만큼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마장기의 생산에 온 전력을 쏟는다!”

기술 공방이 밤낮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대장간에 망치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주성 내에서도 회의가 계속해서 열렸다.

“수인들이요?”

“응. 대대적으로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더군. 이제까지의 전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전쟁이 될 거 같아.”

“그 녀석들 나크 평원에서 당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데 대대적인 공세라면?”

“병사의 수만 최소 백오십만. 마장기 역시 백 기 이상일 거라더군.”

전쟁 소식을 듣고 디르시나로 귀환한 한시진이 호의 말에 얼굴을 굳혔다.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숫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수인들의 숫자에 기가 죽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아군의 전력으로 적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둠디스트의 영주로 있었던 만큼 아군 도시의 방어 체계에 대해서는 제법 상세하게 알고 있기도 했다.

“그 정도 숫자의 마장기면 먼저 성벽을 강화해야겠어요. 후방을 교란시킬 수 있는 다수의 윙드 훗사르 부대도 필요해요. 마장기의 수 역시 부족하고요.”

“모든 지원에 대해서는 아스트리드 벨한테 말하도록 해. 최대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말해놓을게. 마장기 역시 준비는 되어 있는데, 오너들의 훈련이 부족해.”

“병아리들을 실전에 투입하는 건 위험한데……. 당장 적들이 쳐들어 온 건 아니니까 조금이라도 훈련을 마치면 보내줘요. 아니면 몇 개 편대 정도라도 먼저 보내주시면 제가 직접 훈련시킬게요.”

그런 한시진의 모습에 호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일군을 맡길 수 있는 지휘관다웠다.

“그런데 오빠는요? 같이 안 가실 거예요?”

“아무래도 나는 남쪽으로 가야 할 것 같아.”

“남쪽?”

“응. 수인들이 바리안스의 대지를 통해서도 대대적인 공세를 펼칠 거라는 첩보를 입수했거든.”

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인 왕국도 제법 본격적으로 나오려는 모양인지 이번의 공세는 페렛 습지대를 통한 공격뿐 아니라 바리안스의 대지를 통해서 이뤄지는 공격도 있었다. 일종의 별동대라지만 군대의 지휘관이 십이멀인데다가 그 숫자가 무려 사십만이 넘었다.

“이번에도 함께 싸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조금은 아쉽네요.”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너라서 다행이기도 해.”

“헤헤. 나만 믿어요. 오빠보다 먼저 승전보를 가져다줄게요.”

“몸 조심 해야 하는 거 알지?”

“걱정 마요, 오빠. 제가 누군지 잘 알잖아요?”

호의 말에 한시진이 혀를 빼꼼 내밀며 말했다. 그렇게 한시진은 엑스칼리버 다섯 기와 함께 자넷, 골드 이글 편대를 이끌고 둠디스트로 떠났다. 그러고는 조인족의 영토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둠디스트와 파인플, 이 두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던 내정 건축물들의 공사를 모조리 멈추고는 방어 시설의 건설에 들어갔다.

“수인족들이?!”

소식을 접한 파인플의 영주 아쉬카로트 역시 한시진에게 협력하며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흐냥! 알았다냥!”

리아 캬베데가 영주로 있는 에스트라다 역시 비상이 떨어졌다.

림드 산맥의 최종 방어선이나 다름없는 요새도시 에스트라다가 한 행동은 나크 평원이 무너졌을 때를 대비한 군수물자를 비축이었다. 단단한 성벽과 수많은 방어시설들의 힘을 빌려 수많은 적들이 몰려와도 전투를 장기전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또한 에스트라다에 배치된 리그너스 대륙 최강의 방어시설 중 하나인 마동포 이제르론 또한 충전이 시작되었다.

“수인들이 또 쳐들어온다고?!”

“이런 빌어먹을 녀석들! 감히 호 님을 해코지하려고 해!? 단단히 혼쭐을 내주겠어!”

“쉬발! 알르드를 위하여!”

“호 님을 위하여!”

병사들의 모병 역시 대대적으로 이어졌다.

이상향 알르드의 생활에 만족하던 영지민들은 수인들의 침략 소식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두 팔을 걷어 올렸다. 특히나 천족과의 전쟁 이후 굶주림을 피해 림드 산맥으로 넘어왔던 인간들의 지원이 빗물처럼 몰려들었다.

안타까운 점은 호에게 그런 인간들을 활용할 수 있는 병종이 없다는 점이었다. 호가 모병할 수 있는 인간 병사는 아쉽게도 F등급의 농민뿐이었다.

어쨌든 림드 산맥의 일부 도시와 나크 평원의 도시에서 훈련을 마친 병사들은 곧바로 둠디스트와 파인플로 떠났고, 붉은 핏빛의 대지로도 많은 수의 병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굿 럭.”

“호 님을 위하여. 승리를 거두자고. 멍멍.”

“세계수님의 은혜가 그대들 앞에 있기를.”

영웅들의 배치 또한 빠르게 이루어졌다. 내정 수치가 높은 영웅들은 후방으로 군사형이나 맹장형의 영웅들은 전방의 도시로 이동되었다.

그런 영웅의 배치에서 호가 제일 중요히 생각한 것은 한시진이 총사령관으로 있을 부대에 포진될 영웅들이었다. 커티삭에서 들은 정보에 따르면 티르거라는 이름의 호인족이 본대를 그리고 화이트베라는 웅족이 바리안스의 대지를 지나는 별동대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고 했었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팔쿤과 같은 십이멀과 그 못지않은 유능한 영웅들이 전쟁에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그렇다면 우리도 본격적으로 나서줘야지.”

중얼거림과 함께 호는 한시진의 이름 옆에 로우덴, 아쉬카로트, 칸디르, 엘 라스엘, 컹컹이와 같은 영웅들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다들 전장에서 능히 뛰어난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영웅들이었다. 게다가 니나 다니엘레처럼 오너 시스템으로 등용이 된 칸디르와 같은 경우는 화이트윙이라 불리는 자신의 전용 마장기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칸디르는 출진 전에 한 번 만나봐야겠네.”

하지만 강제적으로 등용을 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불안한 면도 없잖아 있었다. 아쉽게도 엘프 영웅들은 이번 전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마장기가 없었다. 덕분에 그들은 전부 실버 문들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내 쪽으로 집어넣을 애들은…….”

가장 먼저 믿을 수 있는 맹장 브로리의 이름을 적어 넣은 호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신윤아와 김유진의 이름을 추가로 적어 넣었다.

“김유진이 마장기를 탈 수 있었지?”

그녀는 윤아처럼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한 경험이 있는 소환자였다. 게다가 제법 열심히 했던 모양인지 마장기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었다. 거기에 니나 다니엘레의 이름까지 적어 넣은 호는 손에 든 만년필을 두어 바퀴 돌리고는 마침표를 찍었다. 괜찮은 애들은 많았지만 눈에 확 띄는 녀석이 없었다.

어차피 여기에 리셴르나까지 합류하게 되면 일찌감치 계획했던 작전을 수행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후우. 이제부터가 시작인가?”

지휘관이 공석으로 되어 있는 수많은 부대들과 영웅들의 일람표가 호의 눈앞으로 떠올랐다. 덕분에 호는 정보창으로 알아볼 수 있는 영웅의 종족과 특성에 맞춰서 병력을 편성하고 부대의 임명장을 쓰느라 한참의 시간을 쏟아야 했다. 그러나 이런 호 만큼이나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인물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전설의 마장기 시바의 오너인 사드나인이었다.

* * *

끼기기기깅!

마장기의 금속이 찢어질 것처럼 울부짖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엑스칼리버의 신규 오너가 된 영웅들 몇몇과 편대를 이룬 사드나인은 현재 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침없이 앞으로 달리고 있었다. 실전 훈련이라는 이름하에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달려! 달리라고! 이 고물딱지야!”

그런 사드나인의 뒤로 거대한 크기의 몬스터들이 떼를 이뤄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을 늦춘다면 마장기가 갈기갈기 박살 나는 것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멍멍! 빌어먹을! 내 주제에 무슨 마장기야! 시현이랑 같이 놀기나 할 걸! 멍! 시, 시바를 선택한 게 잘못이었어! 씨바!"”

붉은 경고등과 함께 미친 듯이 웅웅거리는 마력 엔진의 소리에 사드나인은 정신이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의 본능은 어쩔 수 없는지 손과 발은 미친 듯이 마장기를 조종하고 있었다.

“뭐? 그러면 지금이라도 당장 날 주던가.”

통신구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사드나인은 이빨을 으드득 깨물었다.

주고 싶다.

정말로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시바는 현재 자신에게 귀속된 상황이었니까. 귀속이 풀리는 것을 곧 자신의 죽음을 의미했다.

“아, 저기 슬슬 보이네. 니들도 준비해.”

브로리의 말이 끝나는 순간 여기저기서 헛기침 소리와 끄응거리는 신음성, 경악에 찬 비명이 들려왔다.

다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보고 절망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지금 시바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대형 몬스터들의 수는 적어도 수백은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호, 사드나인. 실력도 늘었으니 이제 슬슬 실전을 경험해 볼까?’

‘멍멍! 좋습니다!’

브로리의 칭찬에 구박 대신 한 명의 마장기 오너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던 게 실수였다.

상황의 이상함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SS등급 던전의 입구가 눈앞에 보일 때였다. 다른 마장기의 오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 그럼 공격.”

“지, 지금 말입니까?!”

“저 수의 괴물들을 상대로요?!”

브로리의 명령이 떨어지자 당황한 목소리들이 통신구를 통해 다수 터져 나왔다. 자신들은 시바를 포함해 두 개 편대밖에 되지 않은 수였다. 그에 반해 몬스터는 수백이 넘었다. 그것도 대형 몬스터들이었다.

그런 오너들의 반응에 잠시 침묵을 하던 브로리가 들으라는 듯 통신구를 통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 사드나인은 자신도 모르게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전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말들이 많네? 너희들 눈앞에 적들이 많으면 안 싸우고 도망칠 생각이야?”

일리가 있는 브로리의 말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정신 상태가 썩은 녀석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오 초 내로 안 가면 내가 간다. 몬스터한테 죽나 나한테 미친 듯이 쳐 맞고 죽나 어차피 똑같으니 상관없겠지?”

“어차피 이제는 엑스칼리버도 많아질 텐데 한, 두기 없어졌다고 호가 뭐라고 하지는 않을 거야. 안 그래? ”

통신구 사이로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았다. 사드나인 또한 충격을 받아 나오지 않은 목소리로 입만 뻐끔거렸다.

미쳤다. 미친년이었다.

최강로리 브로리. 분명 제정신이 박힌 녀석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미친 인물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돌격.”

그리고 비명과 함께 절벽 위에서 대열을 이루고 있던 엑스칼리버들이 미친 듯이 자신에게 달려오는 모습을 보며 사드나인을 눈을 질끈 감았다.

“사드나인 너도 당장 뒤로 돌아. 넌 A등급 마장기니까 좀 더 열심히 싸워야지.”

그런 사드나인의 귀로 지옥의 문에서 기어 나온 악마가 말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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