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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47화 (247/522)

# 247

리그너스 대륙전기 247

웅성웅성 시끌시끌

사파리에서 열리는 수인 왕국의 대회의는 왕국 내에서도 가장 큰 세력을 거느리고 있는 열두 종족에 의해 진행이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인 왕국은 각 종족의 연합체로 이루어진 만큼 공동체에 큰 손해를 입히거나 부족의 세력이 크게 줄어들게 되면 대회의에서도 퇴출이 됐다.

이렇게 빈자리가 생기면 대 회의에 참가하는 종족의 대표들은 후보자를 받아 경제, 군사, 외교 등 모든 면에서 평가해 기준을 만족한 새로운 종족을 선출해 대 회의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주곤 했다. 그리고 이런 대 회의에 참가하는 수인들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었다. 주류 혹은 비주류.

“아쉬토가 마음을 단단히 먹은 거 같군.”

견인족의 장로 말라뮤트가 묘인족의 장로인 랙돌을 향해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주류는 수인 족 내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종족들이었다. 대표적으로 호인과 웅족, 마(馬)인등이 이에 속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거든.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문들 역시 호인들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고 있는 형편이고.”

랙돌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반해 비주류는 대 회의의 참가조건을 만족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은 지니고 있지만 주류에 비하면 세력이 크게 뒤떨어지는 종족들을 가리켰다.

한 때는 주류에 속했던 종족이지만 잦은 전투로 많은 동족들을 잃고 세력이 크게 축소된 견인, 대회의를 제외하면 수인 왕국의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묘인.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대회의에 참가하게 된 다람쥐족 등이 대표적인 비주류 종족들이었다.

“알바트로스 때문인가?”

“음. 시바가 등장한 만큼 알바트로스의 전설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으니까.”

“시바……. 그랬지.”

말라뮤트는 살짝 숨을 들이켰다. 흰색의 짙은 눈썹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몇 주 전 왕국의 이름을 드높였던 전설적인 영웅인 강다리의 마장기가 림드 산맥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수인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졌다. 전설의 마장기 시바의 주인이 된 자는 사드나인이라는 견인족이었다. 강다리가 견인족의 영웅이었던 만큼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전설의 마장기가 등장했다든 소식을 들은 수인들은 모두들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에 일어났다. 시바의 주인이 된 사드나인이 충성을 하는 이가 수인 왕국이 아니라 림드 산맥의 패자인 소환자 윤호라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즉, 자신들의 전설적인 유물이 수인들을 위해서가 아닌 소환자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뭐야? 시바가 우리 것이 아니었단 말이야? 꼬꼬댁!”

“아쉬토는 대체 뭘 한 거냥?”

“에라이! 호인들이 다 그렇지. 싸움만 잘 할 줄 알지 뇌가 없는 녀석들이라고.”

당연하게도 이 사실은 많은 수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다주었고, 이는 현재 수인 왕국의 권력을 휘어잡고 있는 호인들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는 셰필드 부족의 핏줄이 소환자를 돕고 있다더군.”

“셰필드 부족이? 냥! 그래서 그랬군! 강다리 님은 셰필드 부족의 영웅이셨잖아?”

랙돌의 말에 말라뮤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셰필드 부족에게 일어난 사고는 견인들에게는 금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런 탓에 말라뮤트는 헛기침으로 자연스레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짐승신의 이름으로! 대 회의를 개최한다!”

수인 왕국의 대왕 아쉬토의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지면서 시끄러웠던 주위가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대 회의 안건은 단 하나. 림드 산맥을 거점으로 한 조잡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소환자 윤호에 대한 토벌이다.”

이미 다들 예상은 하고 있던 터라 각 종족의 족장 혹은 장로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의 이 안건이 자신의 부족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찬성이다. 꼬꼬댁.”

조인족의 대표로 대 회의에 참석한 이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수인족의 상급대장인 십이멀 중 하나를 맡고 있는 팔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우리들의 전설적인 유물인 시바를 차지한 것에는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꼬꼭. 어차피 그런 마장기 따위, 우리 부족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거든.”

하지만 이어진 팔쿤의 말에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소환자 윤호를 향한 토벌의 주된 이유는 수인족의 유물 시바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팔쿤은 팔짱을 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윤호라는 소환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꼬꼬댁?”

주위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다들 소환자 윤호에 대해서 림드 산맥의 패자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관심을 가졌던 이들은 그가 SSS랭크의 병사인 실버 문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그런 수인들의 모습에 팔쿤은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아직도 심각성을 모르는군. 소환자 윤호는 위험한 인물이다. 그는 림드 산맥과 나크 평원에 뿌리를 내린 이후 계속해서 세력을 늘렸고, 현재는 SSS랭크의 병사인 실버 문을 비롯해 윙드 훗사르, 할리온 부대를 다수 운용하고 있다. 꼭! 그 수는 무려 삼십 만 이상!”

“삼십 만이라니!”

“무슨!”

팔쿤의 말에 모두들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몇몇의 수인들은 대 회의가 벌어지는 공간 여기저기서 노예처럼 바닥을 기고 있는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소환자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꼬꼭! 최근 우리 조인들은 그와 대치하고 있는 도시에서 마장기가 다수 늘어났다는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림드 산맥의 패자는 SSS랭크 병사들의 양성 뿐 아니라 인간족의 B등급 마장기인 엑스칼리버의 양산에 성공했다.”

“아, 아니!”

“그런! 무슨 말 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냐!”

회의장 내가 침묵으로 감돌았다. 그 만큼 팔쿤이 한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림드 산맥을 정벌하는 일은 단순히 한 부족의 힘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팔쿤이 한 말이 정말 사실일까?”

그리고 팔쿤을 바라보던 말라뮤트가 랙돌을 돌아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은 아닐 거다. 개인적으로 들은 정보에 따르면 최근에 있었던 인간과 천족과의 전쟁에서 소환자 윤호가 동원한 병사의 수는 삼십만 그 이상으로 확인되었으니까.”

“머, 멍멍.”

“덕분에 10 천사 중 두 명이 소환자 호와의 전투에서 실종되었지.”

하지만 이어지는 랙돌의 말에 말라뮤트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더 이상은 놀랄 기운도 없었다. 그 정도의 전력이면 수인 왕국 내에서도 주류에 속하는 힘이었다.

‘소환자가 그리 대단한 이들이었다면 우리도 빨리 저들의 지식을 이용했어야 하는 건데…….’

쇠사슬에 묶여 있는 소환자들을 바라보며 말라뮤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른 종족들은 소환자의 지식을 얻어 자신들의 세력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수인들에게 있어 소환자들은 아직까지도 쓸모없는 수준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발언으로 회의장의 분위기를 사로잡은 팔쿤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꼬꼬댁. 놀랍게도 그가 그런 세력을 만들게 이루게 된 것은 불과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일이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

팔쿤은 몇 년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그 만큼 소환자 윤호가 위협적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인식시키고 있었다.

“그렇겠군. 위험한 싹은 미리 잘라내야 돼. 히히힝.”

“맞아맞아. 언제 우리도 원숭이 녀석과 같은 꼴이 될지 모른다고.”

어느새 회의는 소환자 윤호의 토벌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 병사를 편성할 지에 대한 의견들로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다람쥐족은 이번에 새롭게 열두 부족으로 임명받은 종족이 아닙니까? 이번 전쟁에서 열두 부족의 힘을 보여주려면 마장기를 비롯한 병사들과 군량을 지원하셔야죠. 공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열 대 이상의 마장기를…….”

“찍찍? 우, 우리는 보유하고 있는 마장기 자체가 열 대가 안 됩니다!”

“소환자의 힘이 그렇게나 강하다면 호인, 웅족, 마인 부족에서 더욱 병사를 내야 하지 않겠소?! 단순히 머릿수만 채울 게 아니라 마장기와 같은…….”

“우리 웅족은 십이멀을 보내도록 하지. 쿠왕. 다만, 총사령관은 우리가 맡아야겠어.”

“무슨 소리! 우리 조인족도 십이멀이 직접 출전할 겁니다.”

하지만 더러운 정치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회의는 어느새 난장판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시끄럽군.”

콰앙!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박살이 난 돌가루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동시에 시끄럽게 떠들던 수인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스산한 살기가 회의장 내를 잠식하자 다들 천천히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웅족의 족장도 마인족의 상급 대장도 다람쥐족의 장로도 예외는 없었다. 전장의 폭군이 그들의 어깨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소란이 가라앉자 수인 왕국의 대왕 아쉬토가 입을 열었다.

“십이 종족은 병사 십만과 마장기 열 대. 그 외의 부족들은 병사 일만. 그리고 사령관은 우리 호인족의 십이멀이 맡는다.”

아쉬토의 말에 웅족과 마인족과 같은 주류 쪽 인원들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아쉬토가 잡은 터라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듣자하니 소환자 윤호의 부하 중에 내 동생이 있다지?”

“그런……?”

“아쉬토님의 동생?”

모두들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무렵 말을 꺼내는 아쉬토의 눈동자는 차갑게 빛이 나고 있었다.

* * *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지?”

니나 다니엘레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는 주위를 훑는데 여념이 없었다.

“발 닿는 대로. 라고 말하면 바보 같겠지? 커티삭으로 갈 거다.”

“커티삭?”

대답은 했지만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호를 보고 있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세상을 만들 수가 있는 거지?’

평평한 돌로 쫙 깔린 커다란 도로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어져 있었다. 프리테븐이 위치한 가드랜드에서도 볼 수 없는 거대한 대로가 림드 산맥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놀라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호와 함께 디르시나를 나서면서 그녀는 대로를 기준으로 발전하고 있는 다양한 종족들의 마을들도 볼 수 있었다.

그러고는 경악했다. 오크, 다크엘프, 엘프, 수인, 인간 등 자신의 상식으로는 한데 모일 수 없는 종족들이 서로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그너스 대륙이 통일된다면 만들어질 세계가 이러할까? 적이나 다름없는 종족들이 서로 모여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모습에 니나 다니엘레는 자신이 이상한 세계에 온 게 아닐까 하는 혼란스러움까지 느꼈을 정도였다.

“커티삭은 그대의 영토가 아니지 않은가?”

“응. 수인 왕국의 영웅인 리셴르나의 영토지.”

“리셴르나? 아아.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수인족의 십이멀 이었던가?”

니나 다니엘레의 말에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호의 행동을 볼 수 없었다. 여전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던 탓이었다. 그런 니나 다니엘레의 행동에 호가 헛기침을 한 후 입을 열었다.

“누가 보면 감옥에서 십 년 쯤은 갇혔다가 나온 천족인 줄 알겠네. 뭐가 그리 신기하지?”

“그냥. 모든 게 다 신기하다.”

호의 말에 니나 다니엘레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

“여신 라헬님은…….”

“라헬.”

“……라헬은 혼란에 빠진 이 리그너스 대륙의 종족에게 평화를 안겨다주려고 했다. 라헬교를 통해서 말이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라헬교가 없는 이 땅의 모습이 우리들이 진정으로 원하던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평화? 퍽이나.”

그녀의 말에 호는 콧방귀를 뀌었다. 라헬이 리그너스 대륙의 종족에게 평화를?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스토리에 나오는 여신 라헬은 결코 그런 착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있어 이 리그너스 대륙은 창조신 리그로우와 세리너스를 옭아맬 수 있는 족쇄였고, 라헬은 대륙의 힘을 이용해 자신이 그들을 누르고 창조신에 오르고자 했다.

하지만 그녀가 왜 자신과 같은 소환자를 이 대륙으로 불러들였는지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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