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
리그너스 대륙전기 244
‘S등급의 무기라…….’
이 대륙에서 아이템을 얻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구입, 제작 그리고 던전 공략의 보상이었다.
이중에서 구입은 제외해야 했다. S등급 무기를 구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든 일이기 때문이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시장에 돌아다니는 매물 자체가 없었다. 이벤트나 벌어졌을 때나 가끔씩 등장하는 게 S등급 아이템이었다.
제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S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하려면 희귀와 재료와 뛰어난 실력을 지닌 대장장이가 필요했다. 그리고 림드 산맥에는 그런 실력의 대장장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마장기 관련 기술을 지닌 장인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무기 제작에는 큰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호의 영지에는 뛰어난 대장장이인 드워프들이 크게 부족했다.
‘결국 던전 보상으로 얻어야 하는 건데.’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림드 산맥이 아닌 블루 스케일에는 S등급의 무기를 얻을 수 있는 위험한 던전들이 다수 존재했다. 그런 던전들을 클리어 하다보면 S등급의 무기 하나 정도는 획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저는 천본앵으로 전직하는 거죠? 오빠는 어떤 클래스로 전직하실 생각이에요?"”
“어? 나?”
“네. 능력치도 다 올리지 않았어요?”
한시진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호를 바라보았다. 지휘 계통 클래스를 선택하고 있는 그는 군대를 이끄는 전장에서 자신의 진면목을 나타냈다. 그 때문일까? 호의 휘하에서 같이 전투를 벌일 때면 한시진은 그 어떤 적도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호가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생각을 하고 있는 클래스는 있어.”
“어떤 클래스인데요?”
“오버로드.”
“오버로드?”
한시진이 입술을 한 번 열었다가 닫았다. 대군주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클래스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오버로드라는 이름의 클래스가 림드 산맥의 패자인 호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족과의 전쟁 이후 호의 영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엔딩을 본 유저답게 호는 어떻게 해야 영지를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팀 심시티와 갈리는 공돌이를 포함해 호를 도와줄 뛰어난 인재들이 영토의 전역에 배치되어 있었다.
띵동.
-디르시나에서 인간의 C등급 마장기 ‘골드 이글’이 제작되었습니다.
-베코바에서 인간의 C등급 마장기 ‘자넷’이 제작되었습니다.
마장기의 제작도 순조로웠다.
제작에 필요한 특산품들은 림드 산맥을 거점으로 대륙 서부 전체를 누비고 다니는 디아린 상단이 부족함 없이 구해주었고, 마정석과 같은 재료들은 영지 내에서 자체적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마장기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자금 역시 자체적으로 충당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력 또한 크게 늘어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C등급 마장기들은 요새도시 토갈론을 포함해 파인플, 둠디스트 그리고 아멘드마와 코르다에 배치가 되었다. 덕분에 마장기 오너로 사용될 인간 영웅들이 다수 등용이 되었다. 일단 등급에 관계없이 등용을 한 후 성장을 시키는 작업을 반복한 것이다.
“정신 똑바로 못 차려! 멍청하게 마장기 안에서 뒤질 생각이야!”
“전투 중에 계기판만 쳐다 볼 꺼냐! 니 눈은 장식으로 있는 거야?!”
그렇게 등용된 마장기사들의 훈련은 브로리가 맡았다. 사드나인을 포함해 대결을 할 수 있는 햇병아리들이 늘어났기 때문일까? 그녀는 하루하루가 신나 보였다. 하지만 모든 마장기가 호의 영토에 배치된 것은 아니었다. 림드 산맥에서 생산된 마장기 중 일부는 다른 나라로 팔려 나가고 있었다. 바로 블루 스케일이었다.
“이것이 림드 산맥에서 생산된 마장기로군요.”
“놀라운 성장 속도입니다. 우리에게 마장기 제작 기술을 넘겨받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나 빨리 완성품을…….”
“림드 산맥의 소환자는 우리에게 마장기 제작 기술을 넘겨받기 전부터 자체적으로 마장기 관련 기술에 대해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까지 놀라울 일은 아니지요.”
조그마한 흠집도 나지 않은 신형의 자넷 급과 골드 이글 급 마장기를 본 귀족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달 전 있었던 천족과의 전쟁에서 블루 스케일의 지상 병력은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몇 번의 전투에서 대패를 겪으며 완전히 쓸려 버린 것이다. 가뜩이나 약하다고 알려진 지상군인데 이제는 그마저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 마디로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다.
마장기의 피해는 더욱 심각했다. 인간 세력을 대표하는 팔 왕국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블루 스케일의 육상 마장기의 보유 대수는 고작 열기를 넘지 못했다. 그것도 세이라 클리퍼드 전용의 B등급 마장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C등급에 불과했다. 심지어 여왕의 친위대조차 마장기를 보유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해상 전력에 비해 우리나라의 육상 전력은 형편없는 수준입니다.어떻게든 마장기를 구해야 합니다!’
지상전에서 마장기가 보여주는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런 탓에 블루 스케일은 마장기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아직 전쟁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터라 직접 마장기를 생산하기에는 부대시설을 다시 건설하는 것도 1억 리스라는 어마어마한 자금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아직까지 천족들의 위협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블루 스케일에게 마장기를 판매 그것도 저렴하게 넘겨줄 인간 국가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물며 블루 스케일은 마장기를 구매할 대금조차 일시불로 치르지 못하는 판국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블루 스케일에게 마장기를 판매하겠다는 세력이 나타났다. 바로 림드 산맥의 패자 윤호였다.
“림드 산맥의 패자는 마장기의 판매 대금으로 돈 대신 땅을 요구했다죠?
“나쁘지 않은 제안입니다. 천족과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귀족들이 생겨난 터라 영주가 비어버린 영토들이 제법 생겨났지요.”
“백성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천족과의 전쟁으로 인해 소환자 윤호에 대한 인기가 워낙 높아진 만큼 큰 상관은 없을 겁니다.”
스완의 왕성에서 가만히 귀족들의 이야기를 듣던 세이라 클리퍼드는 기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천족들의 손에서 지켜냈던 소중한 땅들이 다른 세력에게 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세이라 클리퍼드 역시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전쟁으로 무너진 지상군을 재편성하기 위해서는 마장기의 존재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 때였다.
“결정은 하셨습니까?”
붉은 머리의 여인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디아린 상단의 상단주인 디아린 레드 벨벳이었다. 림드 산맥의 패자인 소환자 윤호는 자넷 다섯 기와 골드 이글 다섯 기를 넘겨주는 대가로 전쟁의 여파로 피폐해진 카틀라스 군항을 요구했다.
블루 스케일이 자랑하는 해군력의 중심지였던 카틀라스 군항이지만 천족들의 집중 공격을 받은 카틀라스는 현재 항구 시설이 모조리 파괴되었고, 성벽까지 무너진 상황이었다. 덕분에 블루 스케일의 해군 또한 다른 항구 도시에 주둔하고 있었다.
“카틀라스 군항은 현재까지도 관리가 되지 않아 무법지대가 되어버린 영지입니다. 그리고 전 영주인 스퀴드 수운다 백작 역시 전쟁에서의 공을 인정받아 예전 크로스 공작의 영토를 다스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으음…….”
디아린의 말에 세이라 클리퍼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상당히 자세하게 조사를 해온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파괴가 되었다고 해도 카틀라스 군항은 블루 스케일의 역사가 담긴 장소였다. 그리고 한때는 대도시 수준의 번영을 누렸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해군력만으로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은 저번 전쟁에서 증명이 되었다. 게다가 천족이 언제 또 호시탐탐 침략의 야욕을 불태울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이리스 성국 또한 잠재적인 적국인만큼 동태를 주시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장기가 필요했다.
“후우.”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뱉은 세이라 클리퍼드가 디아린을 바라보았다.
“카틀라스 군항은 블루 스케일의 역사가 담긴 곳입니다. 자넷 다섯 기를 추가로 요구하겠어요.”
“총 열 다섯 기의 마장기로군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수송해 온 마장기는 열기가 전부입니다. 나머지 다섯 기는 림드 산맥에서 제작이 끝나는 즉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카틀라스 군항의 할양은 추가된 마장기의 인도가 끝난 후 하겠습니다.”
“물론이죠.”
고개를 끄덕이면서 디아린은 호가 내렸던 지시를 떠올렸다. 마장기를 판매하면서 호는 리스나 특산품보다는 가능할 경우 C등급 마장기 스무 기의 선 내에서 블루 스케일의 영토를 구입하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고작 C등급 마장기 열다섯 기로 카틀라스 군항을 손에 넣다니.’
디아린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것도 호는 흘러가는 이야기로 한 말이었다. 아무리 마장기가 강력한 병기라고는 해도 블루 스케일이 자신의 영토를 판매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블루 스케일의 상황은 호의 예상보다도 훨씬 심각했다.
* * *
와아아아아!
“호 님을 위하여!”
“호우! 호우! 호우!”
그렇게 디아린이 블루 스케일의 수도인 스완에서 C등급 마장기와 카틀라스 군항의 교환 내용이 담긴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있을 무렵 호는 한시진과 함께 한창 던전 공략을 진행 중이었다.
“오빠! 나타난 것 같아요! 조심하세요!”
“저 녀석이 제왕 오거트인가 보네.”
한시진의 경고에 호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방에 나타난 몬스터의 덩치는 오우거 조차도 어린 아이로 느껴질 정도로 컸다. 보나마나 이 던전의 보스일게 틀림없었다. 느껴지는 압박감이 일반적인 녀석들이 풍겨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버프를 받은 실버 문과 할리온의 조합이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 다만, 걸리는 점이라면 지금 자신이 공략하고 있는 이 던전이 S등급 난이도의 던전이라는 점이었다.
“굳이 병사들의 피해를 키울 필요는 없겠지. 퀘스트도 진행해야 하고 말이야.”
명령만 내리면 당장이라도 돌격 할 것 같은 병사들을 힐끗 돌아보며 혼잣말을 한 호는 천천히 키마라이의 대검을 들어 올렸다.
숲속의 궁전. 미모의 엘프나 귀여운 정령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철저하게 금지된 S등급의 무시무시한 던전이었다. 진화한 오크나 흉폭한 트롤, 산속 오우거와 같은 괴물들이 출몰하는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을 돌격시키지는 않을 거죠? 그렇다면 제가 정면을 맡을게요. 오빠가 후방에서 교란해 주세요!”
통신구에서 한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딱히 다른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다.
“알았어. 아마 마지막 전투가 될 것 같으니까. 끝까지 힘내자고.”
“네!”
띵동.
-한시진이 검의 길을 발동했습니다. 그녀의 공격은 앞으로 5분간 상대의 방어력을 무시합니다.
-한시진이 몰아치는 폭풍을 발동했습니다. 그녀의 무력 수치가 20% 상승합니다.
스킬의 발동과 함께 한시진의 데스 사이더가 힘껏 도약하는 모습을 보며 호 역시 빠르게 마장기를 움직였다. 순식간에 호가 조종하는 키마라이가 순식간에 오거트의 뒤로 돌아갔다. 그런 마장기의 움직임에 분노를 느낀 오거트가 들고 있던 자신의 몽둥이를 땅바닥에 두드리며 화가 났다고 이야기를 할 무렵, 한시진의 데스사이더가 덮쳐들었다.
콰우우우우욱!
순식간에 옆구리에 길쭉한 상처가 생기며 오거트가 비명을 질렀다. 한시진다운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문득 디르시나에서 브로리의 손에 굴려지고 있을 사드나인이 떠올랐다. 그 역시 A등급 마장기인 시바의 오너였다. 하지만 한시진과 사드나인의 전투력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막말로 사드나인이 다섯 명이 있어도 한시진 혼자를 당해내기 힘들 것 같았다.
결국 시바의 효율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사드나인을 굴릴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바의 오너 구실을 할 때쯤이면…….
‘실전 경험도 필요할 테니 어느 정도는 던전에서 굴려야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호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는 오거트를 향해 검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