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
리그너스 대륙전기 243
“힘내라, 사드나인.”
이 정도의 충격이면 마장기 내부에 탑승한 오너는 백이면 백 기절했을 상황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한시진이 집무실의 문을 열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들어섰다.
“저 꼬마 아이는 오늘도 팔팔하네요.”
“꼬마 아이? 브로리가 시진이 너보다 백 살은 더 많을 걸?”
“그래도 생긴 건 어린 아이잖아요. 정말 이 세계의 종족들은 다들 외모로 나이를 판단할 수 없어서 힘들다니까요.”
시진이 호가 업무를 보는 책상 위로 살짝 엉덩이를 걸치며 말했다.
“그건 시진이 너도 마찬가진데? 너도 다들 이십대 중반이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걸? 십대 후반이라면 모를까.”
“에이……. 오빠 너무 나갔다.”
“그럼 스무 살은 어때?"
“아이 참. 그 정도는 아니라고요.”
말은 그렇게 해도 얼굴의 광대는 승천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괜찮은 정보는 있었어?”
그녀 역시 수인족의 전설에 대한 정보를 찾는데 여념이 없었다. A등급 마장기인 시바와 같이 이 세계에서 강력한 무기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인지 의외로 그녀는 수인족의 전설을 찾는데 있어 호 이상으로 열심이었다.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없었어요. 다만, 나크 평원에서 살았다는 한 늙은 원인이 로랜드라는 이름의원인 대장이 수인 왕국을 지배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어요.”
“로랜드?”
한시진의 말에 호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왠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드는 이름이기도 했다.
‘수인족의 전설’ 퀘스트의 내용 중에는 강다리가 한때 수인 왕국의 족장에 올랐을 정도로 이름을 날렸다고 나와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전, 한시진 역시 로랜드라는 원인 대장이 수인 왕국을 지배했던 시절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호는 그 시절이 원인족의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수인족의 전설과도 무슨 연관이 있어 보였다.
“나크 평원에서 온 원인이라고 했지?”
“네. 마웅키에서 살았다고 했어요.”
시진의 대답에 호가 고개를 주억였다. 나크 평원에서 왔다면 천족들의 사악한 계략으로 일어났던 신성력 폭발에서 가까스로 도망을 친 난민 중 한 명인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자신에게 투항했던 원인 영웅이 한 명 있었다. 하이 폴리션이라는 클래스를 보유한 타레스 탄트라만이라는 이름의 녀석이었다.
‘강다리에 대한 정보도 로우덴이 말해줬는데, 타레스가 로랜드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을까?’
현재 타레스 탄트라만은 하이 폴리션이라는 자신의 클래스에 맞는 능력을 한껏 발휘하며 마웅키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둠디스트와 파인플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으로 인해 다른 종족들의 침략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는데다가 림드 산맥에서부터 건너오는 수많은 재원들의 영향 덕분인지 폐허가 되었던 마웅키는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게다가 최근 로우덴의 심시티가 마웅키에 도착했다는 보고도 있었다.
“오랜만에 나크 평원을 방문해야겠네.”
신성력 폭발이 일어나기 전만 하더라도 나크 평원은 많은 수의 원인들이 거주하고 있던 곳이었다. 원인족의 전설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 된다면 다른 지역보다는 나크 평원이 가장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우끼긱? 로랜드님 말입니까?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우끽.”
그리고 한시진과 함께 마웅키에 도착해 타레스를 만난 호는 그에게서 놀라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어, 어떻게?”
이렇게나 쉽게 단서를 찾다니? 호의 목소리에는 얼떨떨함이 섞여 있었다. 아무래도 대륙의 온 행운이 자신에게 스며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견인족의 전설에 이어 원인족의 전설까지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호의 머릿속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우끼긱? 버독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타레스의 말에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었다. 그는 신성력 폭발로 인해 멍청하게 사망한 원인족의 부족장이었다. 대단한 녀석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호전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던 터라 호가 림드 산맥에 자리를 잡고 난 이후 몇 번이나 공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 버독이 로랜드님의 후손이었습니다. 정말 강력한 힘을 지니셨다고 알려진 영웅 중의 영웅이었죠. 우끽. 뭐, 후손인 버독도 힘만큼은 최고였습니다. 바보라 문제였죠.”
말과 함께 싸악 바나나를 하나 깐 타레스가 한 입에 바나나를 삼키며 말을 이었다.
“역시 레스트에서 생산되는 버내노우는 최상품이로군요. 우끼긱. 어쨌든 호 님께서 최근 견인족의 전설이었던 강다리의 유물을 얻었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그 말은 즉, 로랜드님의 유물도 찾으시려는 겁니까? 우끽?”
“음.”
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무래도 타레스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쩝쩝거리던 타레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끼긱. 로랜드님의 무덤이 있는 장소는 제가 알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
호가 되물었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부터 가장 먼저 해결할 생각이었다.
띵동.
-‘수인족의 전설–원인’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로랜드는 수인 왕국을 이루는 종족 중 하나인 원인족을 대표했던 영웅입니다. 수인 중에서도 가장 강한 힘을 지녔던 그는 자신의 전용기 마이크와 함께 수인 왕국의 부흥기를 이끌었습니다.
그런 그의 유물이 페렛 습지대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만약 그 유물을 차지할 수 있다면 로랜드의 힘을 얻는 것과 함께 수인들 사이에서 이야기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그들의 전설에 손이 닿을지도 모릅니다.]
“으음…….”
퀘스트의 정보를 확인한 호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문제가 무엇인지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로랜드의 무덤은 나크 평원이 아니라 페렛 습지대에 있는 거로군.”
호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우끼긱. 그렇습니다. 한때 페렛 습지대는 우리 원인들이 지배하던 땅이었지만 현재는 조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곳이죠. 우끽. 만약 호 님께서 로랜드님의 유물을 얻으시려면 필히 조인들과의 충돌이 일어날 겁니다. 게다가…….”
타레스는 계속해서 설명을 덧붙였다. 로랜드의 무덤은 페렛 습지대에서도 가장 안 쪽에 위치한 리저리안이라는 도시 내부에 있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리저리안에 원인족의 조상을 모시는 신전이 있는데, 그 신전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고 했다.
“결국 원인족의 유물을 얻으려면 페렛 습지대에서 조인들을 전부 몰아내야겠네요.”
“아마도 그래야겠지.”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이라도 조인들을 페렛 습지대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실버 문을 비롯한 고 랭크의 병사들과 함께 양산되고 있는 C등급의 마장기를 이용하면 충분히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을 페렛 습지대에서 몰아낸 이후가 문제였다.
‘수인 왕국의 왕 아쉬토가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거다. 분명 수인족의 상급대장인 십이멀들을 움직이겠지.’
호가 자신의 세력을 세운 이후 수인 왕국은 자신들의 영토 중 두 곳을 호에게 빼앗긴 상황이었다. 원인족의 지배하에 있었던 림드 산맥과 나크 평원이 바로 그 곳이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호에게 복수를 해야 할 원인족이 신성력 폭발 사건으로 인해 붕 뜬 상황에다가 종족 연합체라는 수인 왕국의 특수성이 맞물리면서 현재 호와 수인 왕국은 긴장 속에서 짧은 평화의 시기를 누리고 있었다.
‘타이밍을 재고 있을 테지.’
하지만 마족과 함께 호전적인 면에서는 리그너스 대륙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게 바로 수인들이었다. 분명 지금은 잠잠해도 내적으로는 실버 문을 무력화시키고 자신을 짓밟을 계획을 짜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런 와중에 자신이 페렛 습지대를 차지한다? 백이면 백 전면전이 일어날 게 틀림없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오빠? 만약 페렛 습지대를 공격하게 되면 수인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한시진 역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아. 아니면 준비를 철저하게 하거나. 수인 왕국을 이루는 종족 중 하나라면 모를까, 왕국 전체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해.”
만약 전면전이 벌어지면 순식간에 수백만에 다다르는 병사가 림드 산맥으로 진군해 올 게 틀림없었다.
그뿐인가? 수인 왕국을 대표하는 뛰어난 영웅들 역시 자신의 목을 얻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들 터였다. 아무리 실버 문이 강력하고 한시진과 브로리가 뛰어난 마장기사라 그들 전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로랜드의 유물을 그냥 포기하는 것도 아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네.”
곰곰이 생각을 거듭하던 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천본앵이요?”
디르시나의 집무실.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하던 한시진이 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응. 천본앵 혹은 검의 그림자. 승급을 하려면 그 두 클래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걸 추천해.”
“이름만 듣기에는 둘 다 괜찮아 보이는데요? 특별히 장단점 같은 건 없어요?”
“천본앵은 다 대 일의 전투에서 장점을 보이고 검의 그림자는 일대일 혹은 기습전에 능한 특수 클래스라고 알고 있어.”
굳이 둘 중 하나를 고르자면 검의 그림자 보다는 천본앵이 좋았다. 호가 아는 시진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브로리와는 다른 성격의 맹장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호는 한시진에게 천본앵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요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녀는 리그너스 대륙의 영웅이 아니라 소환자. 클래스를 뛰어넘는 능력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가 어떤 클래스를 선택해도 호에게 있어 시진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뛰어난 인재였다. 그리고 끙끙 거리며 고민을 하던 한시진이 결정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천본앵으로 할게요.”
“천본앵? 왜?”
“그냥 이름이 예뻐서요. 고국 느낌도 나고요.”
“고국 느낌? 아아…….”
호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유였다. 게다가 틀린 말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그녀가 살았던 대한 제국은 일본을 포함해 연해주와 간도 너머 몽골까지 국토로 삼고 있었던 커다란 나라였다.
[천본앵(S)]-무수히 많은 벚꽃 잎을 검의 의지대로 다스렸다는 위대한 검호를 뜻하는 칭호입니다. 찰나의 순간에 천 번의 검을 휘둘렀다는 천본앵은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데 있어 뛰어난 클래스입니다. 자신의 통솔 수치와 무력 수치가 20% 상승합니다.
조건-전 종족 가능. 검술 계열 A등급 직업을 보유한 상황에서 무력 수치가 500 이상 필요합니다. (달성)
-홀로 A랭크 이상의 적을 1000 번 격퇴 격퇴해야 합니다.(2124 / 1000)
-홀로 100명의 적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야 합니다. (달성)
-B등급 이상의 마장기를 보유해야 합니다. (달성)
-천본앵의 격에 어울리는 자신만의 검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미달성)]
“어?”
그리고 천본앵의 승급 조건을 시진에게 적용시킨 호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천본앵의 전직에 필요한 다섯 가지의 조건 중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를 이미 달성한 상황이었다.
“어? 그래요? 잘됐다!”
호에게 설명을 들은 한시진이 ‘천본앵? 왠지 느낌이 좋은데요?’ 말하며 활짝 웃었다.
어떻게 보면 그녀가 전직 조건을 달성한 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큰 전쟁이 벌어지면 매번 전투에 나섰던 데다가 전장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그녀였다.
‘천본앵의 격에 어울리는 검?’
현재 한시진이 착용하고 있는 무기는 +6 우스바 에스테리온이었다. 호가 한시진과 함께 림드 산맥의 던전을 클리어하고 다니던 도중 획득했었던 검이었다.
B등급 무기로 강화도 잘 되어 있어 무력을 68이나 증가시켜 주는 효자 중의 효자 아이템이었지만 확실히 S등급 클래스인 천본앵에는 조금 부족함이 느껴지는 무기였다.
아마 저 전직조건은 최소한 S등급 이상의 무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