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
리그너스 대륙전기 242
쾅! 콰쾅!
세 마장기의 연속 공격에 과거의 견인족 마장기가 빠른 속도로 걸레짝이 되기 시작했다. 단단한 장갑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세 명의 엘리트 급 오너가 함께하는 합격의 위력은 가공할 정도였다.
콰아앙!
그리고 호의 대검이 가슴에 있는 원형의 크리스탈을 부수는 순간 과거의 견인족 마장기가 거대한 화염과 함께 검은 연기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끝났군.”
“너무 싱거운데?”
“그래도 제법 단단한 편이라 때리는 맛은 있었어요.”
“그건 그래.”
한시진의 말에 브로리가 웃으며 대답했다. 호도 마찬가지의 생각이었다. 확실히 샌드백을 치는 것처럼 손맛은 있었다. 호의 병사들은 빠른 속도로 강다리의 무덤을 공략해 나갔다. 그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타락한 견인들을 가볍게 물리치며, 마장기를 발견하면 곧바로 호에게 보고를 올렸다. 확실히 다들 고 랭크의 병사들이라 그런지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다.
“와아…….”
그리고 사드나인과 함께 후방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한시현은 빠르게 올라가는 경험치를 보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몇 번이나 자신의 눈을 비볐다. 멍멍아 야옹해봐에서 일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와 양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무시무시하게 생긴 괴물들이 전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군의 병사들이 강력하다는 점이었다. 그녀의 기준으로는 다들 초인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주점에서 만났던 영웅들이 어째서 실버 문이라는 엘프들을 가리켜 무시무시한 괴물들이라고 불렀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콰앙! 쾅쾅! 콰직!
게다가 마장기라 부르는 상대의 거대한 괴물 역시 간단히 박살이 나고 있었다.
마장기 전을 목격한 사드나인은 다들 환상적인 실력이라며 연신 감탄을 터뜨렸고, 그럴 때마다 한시현의 콧대도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괴물을 상대하는 마장기 중에는 그녀의 언니인 한시진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과거의 견인족 마장기들은 호를 위시한 세 명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간단하네요.”
덕분에 강다리의 무덤 공략은 파죽지세로 진행되었다. 캣 타워를 탐험했을 때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였다.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공략이 끝날 것 같았다.
“그러게? 그나저나 너 전부터 느끼던 거지만 실력이 제법 좋다?”
“예전에 한 방 얻어맞았던 기억은 사라진 모양인가 보죠?”
“뭐?! 어디 다시 한 번……”
“"앞에 문이다.”
한시진의 가벼운 도발에 브로리가 흥분하려는 낌새가 보이자 호는 재빠르게 선수를 쳤다. 아무리 공략이 순조롭다 하더라도 둘이 투닥투닥 거리게 둘 수는 없었다. 실제로 커다란 철문이 눈앞에 보이기도 했다.
“아마 마지막 문으로 보이는군.”
“이 무덤의 최종 보스가 있다는 말이네?”
실버 문의 활약으로 밝혀진 내부 지도에는 이 문을 제외한 다른 통로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있었다. 결국 강다리의 무덤 공략의 끝이 앞에 있다는 이야기였다.
‘생각보다 쉬운데?’
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공략이 쉬워도 너무 쉬웠다. 아주 조금의 위기 상황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견인족 마장기가 조금 거슬리는 존재긴 했어도 상대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어떤 적이 있을지 모르니 최대한 경계하면서 진입한다.”
말과 함께 호는 키마라이를 움직여 천천히 문을 열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금속음과 함께 문이 열리며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먼지가 가라앉을 때쯤 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자신의 눈앞으로 강다리의 무덤 공략에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 *
“이게 그 강다리라는 영웅의 유물인가요? 호 오빠?”
데스 사이더의 조종석에서 내려온 한시진이 눈앞에 보이는 마장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응. ‘시바’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마장기인가봐.”
“생긴 것은 골든 스테이트와 비슷하게 생겼군.”
브로리가 자신의 마장기와 시바를 번갈아보면서 말했다. 확실히 비슷한 생김새긴 했다. 사족 보행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착된 무장 역시 대부분 비슷했다. 마치 시바의 후속기가 웨어 타이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곤 시바의 크기가 웨어 타이거의 두 세배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다는 점이었다. 크기만 놓고 보자면 릴라릴라나 티거알리카와 비슷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가져갈 생각이에요?”
당연한 말이지만 병사들을 이용해 마장기를 지상으로 옮기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들고 갈 수가 없다면 직접 이동하게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저걸 이용하면 되지.”
호가 한 병사가 들고 오는 기다란 막대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분명 키마라이의 핏빛 열쇠와 비슷한 물건일 거야."”
“아하! 시바를 조종하는 데 필요한 키 아이템 같은 건가요?”
한시진의 질문에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종할 영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한시현을 등에 업고 있는 A등급 영웅 사드나인이었다.
수인족 그것도 견인이니 만큼 시바를 조종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을 터였다. 그리고 병사의 손에서 막대기를 받은 호는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며 막대기의 정보창을 열었다.
[강다리의 여의봉[SS등급 유니크]
효과–시바 소환(수인(견인족) 전용))
전장 19M, 무게 약 29 톤. 견철강이라는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A등급 마장기 시바를 소환하는 열쇠입니다. 시바는 A등급의 견인족 영웅만이 탑승할 수 있으며, 처음 탑승한 영웅에게 귀속이 됩니다. 또한 시바는 S등급의 초대형 마장기 알바트로스로 합체할 수도 있습니다. 알바트로스의 합체는 시바를 포함한 열두 부족의 마장기가 함께 있어야 가능합니다.]
“어, 어어?”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아니, 그건 아니고. 잠깐, 잠깐만.”
호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눈앞에 떠오른 정보창을 다시 바라보았다.
시바가 A등급 마장기라는 건 딱히 놀랄 만한 사실은 아니었다. 수인족의 전설 이라는 거창한 퀘스트의 이름을 생각해봤을 때 보상 중에 A, B등급의 마장기가 있을 거라고는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A등급 보다는 B등급의 마장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강다리의 무덤 난이도가 생각 외로 너무나도 쉬웠던 탓이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귀속이 된다고?’
호의 눈동자가 사드나인에게 향했다. 지금 사드나인이 시바를 조종한다면 앞으로 시바는 사드나인만 움직일 수 있게 되는 셈이었다.
“멍?”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호의 행동에 한시현과 놀고 있던 사드나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것도 딱히 문제는 없지만…….’
조금 아쉽기는 해도 사드나인의 등급을 올리면 상관이 없어보였다. 울부짖는 천둥이라는 레어 클래스를 가지고 있는 만큼 성장 가능성도 높았다. 어차피 휘하에 있는 견인 영웅들 중에서도 로우덴을 제외하면 사드나인이 가장 유능한 녀석이기도 했다.
‘그런데 S등급 마장기라니?!’
가상현실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등장하는 마장기는 A등급이 최고의 등급이었다. 그러나 S등급의 초대형 마장기 알바트로스는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끝을 봤던 호도 처음 듣는 마장기였다.
“……변신 로봇물이라도 찍으려는 건가?”
하물며 이 마장기는 무려 합체를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그것도 열 두 부족의 마장기가 모두 있어야만 했다.
“멍멍. 알바트로스라. 분명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희 수인들 사이에서는 전설로만 내려오는 마장기죠.”
“나도 들은 적이 있어.”
호의 이야기를 들은 사드나인과 브로리가 서로 고개를 주억였다. 의외로 둘은 알바트로스라는 마장기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알바트로스라고?!”
“이럴 수가! 알바트로스는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마장기가 아니었어?”
놀라운 것은 수인족의 기마병인 윙드 훗사르들이 알바트로스의 이름을 듣고는 웅성거리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아마 수인들 사이에서 알바트로스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멍멍. 수인 왕국이 위기에 빠지면 나타난다면 전설의 마장기로 어머니의 어머니,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이야기니까요. 멍.”
그런 윙드 훗사르들의 반응이 놀랍지 않다는 듯 사드나인이 말했다.
“그런데 저게 그 알바트로스와 관련이 있는 마장기라니…….”
브로리가 떨리는 눈으로 시바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순간 탐욕이 물들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전용기나 다름없는 골든 스테이트가 있었다. 게다가 시바는 수인 그것도 견인 영웅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짜증나.”
“커어어엉?!”
브로리가 사드나인을 노려보고는 명치를 강하게 후려쳤다. 시바의 오너가 된 사드나인을 향한 부러움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사드나인도 그 사실을 아는지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은 웃고 있었다.
띵동.
-마장기 ‘시바’가 A등급 영웅 사드나인에게 귀속됩니다.
-전설의 실마리가 이어지면서 사드나인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소환자 윤호를 자신의 유일한 주군으로 생각할 것이며 절대로 배반하지 않을 겁니다.
-전설의 마장기 시바를 획득하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 했습니다.
-시바의 획득으로 당신을 향한 견인들의 충성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머어어어엉!”
메시지와 함께 유적 내에서 시작된 개소리가 사방으로 힘차게 울려 퍼졌다.
시바를 획득하면서 얻을 수 있던 것은 단순한 A등급 마장기 한 기만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전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퀘스트 다운 보상이었다.
‘이거 은근히 꿀인데?’
떠오르는 메시지를 하나씩 읽으며 호는 눈앞의 커다란 마장기를 바라보았다. 캣 타워와 강다리의 무덤이라는 고작 S등급의 두 던전을 공략하고 얻은 보상이었다. 위험한 상황에 빠진 적도 있지만 보상은 그 노력에 비해 너무나도 달콤했다. 마치 꿈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사드나인의 전용 무기가 된 강다리의 여의봉에 관한 정보에는 시바와 같은 마장기가 무려 열 한 대가 더 존재한다고 했다.
“전부 내가 가져야겠어.“
그 내용을 떠올리면서 호가 눈을 빛냈다.
이렇게 환상적인 보상을 주는 퀘스트를 다른 소환자가 클리어하게 둘 수는 없었다. 하물며 퀘스트의 내용에는 열두 기의 마장기 전부를 모아야만 S등급의 초대형 마장기인 알바트로스를 얻을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 * *
“수인들 사이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마장기 말입니까? 멍멍?”
“냐아아앙? 마장기? 우리 종족에게 그런 게 있던가?”
“음머어?”
시바를 획득하고 디르시나로 돌아온 호는 곧바로 전설의 마장기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 구전을 통해서 내려오는 이야기들인지라 정확한 정보를 모으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는 계속해서 순찰을 돌고, 멍멍아 야옹해봐를 방문한 재야 영웅들과 대화를 나누며 수인족의 전설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틈틈이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에 나오는 정보들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호만큼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었다.
콰지직! 쾅!
“오늘도 시작이군.”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호가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멀리서 마장기들 끼리 부딪치는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사드나인과 브로리가 대결을 벌이는 소리였다. 강다리의 무덤에서 귀환한 이후 브로리는 시바의 오너가 된 사드나인의 마장기 조종술을 높여야 한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시바와 대결을 펼쳤다.
아무리 봐도 질투심 혹은 새로운 마장기에 대한 궁금증에서 나오는 행동이었지만 호는 그런 브로리의 행동을 굳이 막지 않았다. 시바의 오너가 된 사드나인의 마장기 조종술을 높여야 한다는 건 호 역시 공감하는 바였기 때문이었다.
A등급 마장기 시바의 능력은 예상 이상으로 뛰어났다. 구형처럼 생겼다고는 해도 전설의 마장기라는 수식어가 어디 가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로리와 사드나인이 맞붙으면 사드나인이 개처럼 쳐 맞는 게 일상이었다. 등급은 골든 스테이트가 떨어지지만 마장기를 다루는 실력과 경험이 너무나도 차이가 났다.
쿠르르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집무실이 크게 흔들렸다. 시바가 땅바닥에 강하게 쳐 박히면서 벌어진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