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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39화 (239/522)

# 239

리그너스 대륙전기 239

크아아악!

“빌어먹을.”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통신구를 통해 들려오는 비명에 호는 나직이 욕설을 내뱉었다.

결국 골드 이글도 마력탄을 피하지 못하고 당해 버렸다. 띵동. 소리와 함께 생겨난 메시지에 무슨 내용에 적혀 있는지는 굳이 확인할 필요조차 없었다.

‘이대로라면 위험해.’

이제 남은 마장기는 자신과 브로리의 골든 스테이트 뿐이었다. 하지만 고작 두 기의 마장기로 페일 캣어스의 보호막을 부수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여러 가정들이 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대로 전투를 계속하느니 일단 후퇴를 해 다음을 기약했다. 만약에 자신이 마력탄에 당해 다른 영웅들처럼 중상을 입기라도 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가상현실 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는 단순히 Game Over 라는 그림만을 볼 수 있을 테지만 이 세계에서는 정말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죽는 것이다.

‘엘 니키타, 센스, 페이샬 티슈…….’

부서진 마장기들의 잔해와 중상을 입은 영웅들을 잃는 것이 아깝긴 했다. 후퇴하는 와중에 몇 명의 병사들이 죽어나갈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이었다. 그들의 목숨보다는 자신의 목숨이 훨씬 중요했다. 그때였다.

캬아아아악!

띵동.

-브로리의 무릎 꿇어라!가 발동했습니다. 이제부터 브로리의 공격은 치명타로 발동됩니다.

하지만 분노에 찬 고성과 함께 브로리의 골든 스테이트가 페일 캣어스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하자 호 역시 어쩔 수 없이 페일 캣어스의 보호막을 향해 공격을 가해야만 했다. 다른 영웅도 아니고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브로리를 두고 후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젠장! 미친 세상에서 살아가다보니 나도 함께 미쳐버렸나!”

머릿속은 후퇴를 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결국 여기서 모든 것을 끝내야 했다.

“다음은 아홉 개! 정신 바짝 차려! 재수 없으면 한 명에게 여덟 개의 마력탄이 날아올지도 몰라!”

“흥! 이 몸의 마장기 조종술은 대륙 최강이다!”

호의 경고에 브로리가 콧방귀를 내뿜었다. 아군이 당한 모습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상황이었지만 전투에서만큼은 언제나 냉정한 그녀였다.

투두둑

그렇게 페일 캣어스의 보호막을 향해 얼마나 공격을 퍼부었을까? 보호막의 실금이 점점 퍼져 나가는 모습을 본 호가 기합 찬 목소리로 외쳤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내면 저 보호막 부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나 더 공격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하는 보호막의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페일 캣어스가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보호막이 깨지는 것보다 먼저 페일 캣어스가 지팡이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더 많이! 더 넓게!”

“조심!”

밝은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순간 호의 얼굴에 긴장감이 샘솟기 시작했다. 이번에 생성되는 마력탄은 총 아홉 개였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마력탄의 개수를 파악한 호는 반사적으로 눈을 찌푸렸다. 총 아홉 개의 마력탄이 생성되었지만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마력탄의 개수는 고작 두 개에 불과했다.

쾅! 콰아앙!

장애물을 이용해 마력탄을 처리한 호는 재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생선 모양을 한 다수의 마력탄이 사방에서 브로리의 골든 스테이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쾅! 쾅!

SS등급의 영웅답게 브로리의 마장기 조종술은 명불허전이었다.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처럼 커다란 마장기로 하여금 미끄러지듯 움직이던 그녀는 바닥에 마력탄을 부딪치게 만들어 동시에 두 개의 마력탄을 처리하는 신기를 보였다. 하지만 아직도 다섯 개의 마력탄이 브로리를 쫓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골든 스테이트가 이상한 방향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바로 페일 캣어스가 있는 장소였다.

“뭐, 뭐냐앙?!”

페일 캣어스가 당황한 목소리가 외쳤다. 하지만 브로리는 더욱 속력을 내며 그런 페일 캣어스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야?!”

“저 녀석! 분명 보호막 안에서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지? 어디 한 번 맛 좀 먹어보라지!”

“어? 어어?!”

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 브로리는 더 많이! 더 넓게! 의 스킬로 생성된 마력탄을 페일 캣어스의 보호막에 부딪칠 요량으로 보였다. 그리고 호의 눈동자가 페일 캣어스에게 향했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골든 스테이트를 바라보는 묘인 보스의 얼굴에는 황당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 빌어먹을 보호막이 깨지는 순간 넌 나한테 뒤졌다!”

반구형의 보호막을 향해 부딪칠 정도로 달려들던 브로리의 골든 스테이트가 그대로 페일 캣어스의 보호막을 뛰어넘었다. 그와 동시에 다섯 개의 마력탄이 페일 캣어스의 보호막으로 날아들었다.

콰아아아앙!

다섯 개의 마력탄이 동시에 폭발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폭발의 후폭풍에 의해 마장기가 뒤로 밀려났을 정도였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페일 캣어스의 보호막이 그 와중에도 남아 있었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브로리가 한 대 치는 순간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리긴 했다.

“……이렇게나 쉬운 방법이 있었는데. 왜 그런 고생을 한 거지?”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래서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고생을 한다더니. 페일 캣어스를 공략하는 방법은 자신의 마력탄으로 자신의 보호막을 부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보호막이 부서진 페일 캣어스의 능력은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에 나왔던 대로 E등급 병사만도 못한 능력이었다.

“케엥! 캬악! 캭!”

그리고 그런 페일 캣어스는 현재 브로리의 손에 잘게잘게 다져지고 있었다.

어쨌든 캣 타워의 공략은 성공했다. 하지만 입은 피해가 만만치 않았다. B등급 마장기 한 대와 C등급 마장기 두 대의 완파. 잔해정도나 수거해서 타임리스 상단을 통해 판매할 수 있을 뿐, 수리는 꿈도 꿀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세 명의 영웅이 중상을 입었다. 가장 먼저 부상을 입었던 페이샬 티슈는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하마터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영웅이 될 뻔했고, 나머지 영웅들의 부상도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었다. 결국 이들이 완쾌하고 다시 업무에 복귀를 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도 성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3 환상의 캣닢(S등급 장신구)

효과 -지력 80 증가 (+4)

-묘인족 전용

묘인족 사이에서 전설로만 내려오는 환상의 허브입니다. 고양이라면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향기를 풍기는 이 허브는 묘인족의 머리 또한 맑게 해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환상의 캣닢.

이름은 좀 우습지만 효과 자체는 상당히 좋은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저 아이템이 어울리는 영웅도 마침 호의 머릿속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상급 주문술사인 리젤 칼리노에게 준다면 꽤나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호는 고작 환상의 캣닢을 얻기 위해 캣 타워를 공략한 게 아니었다.

“어?! 찾았다! 찾았습니다! 호 님!”

엉망이 되어버린 최상층을 수색하던 병사 한 명이 가죽으로 만들어진 주머니를 발견했다. 가죽 주머니 안에는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종이가 한 장 들어 있었다.

[빛바랜 가죽 주머니(S등급 유니크)

오랜 세월이 지나 빛이 바랜 가죽 주머니입니다. 견인족이 사용했던 물건인지 주머니의 한 쪽에는 그들의 발자국과 같은 모양이 남아 있습니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심스럽게 다뤄야만 할 것 같습니다.]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한 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거였다.

이게 로우덴이 말했던 강다리의 무덤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가 틀림없었다.

빛바랜 가죽 주머니에 대한 설명에는 조심스럽게 다뤄야만 한다고 나와 있었다. 그렇기에 호는 조심스럽게 가죽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꺼낸 지도는 림드 산맥에 위치한 한 도시의 남동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긴 킬리드 아닌가?”

호의 고개가 몇 번이나 오래된 지도와 지도 창을 오갔다. 아무리 봐도 지도에 나타난 도시는 킬리드가 틀림없었다. 오래된 지도는 킬리드의 근처에 위치한 림드 산맥의 한 장소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에 뭐가 있는 건가?”

지도 창에 장소를 체크한 호가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지도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파삭하는 소리와 함께 지도가 잘게 부서지기 시작했다.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큰일 날 뻔했네.”

그 모습에 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지도 창에 위치를 찍어 놓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이 벌어질 뻔했다. 결국 얻은 거라곤 강다리의 무덤이 림드 산맥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점이었다.

띵동.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수인족의 전설–견인’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과거 림드 산맥에는 다양한 수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험준한 산맥의 환경이 그들을 외부의 위험에서 지켜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인들의 왕국이 만들어지고 오랜 세월이 지난 현재 림드 산맥에는 그 어떤 수인족도 살고 있지 않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문일 뿐 정확한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도 다른 종족들의 눈을 피해 림드 산맥에서 생활하고 있는 소수의 수인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이 중요시 여기는 무언가를 지키면서 말이죠.]

“림드 산맥에 있는 수인들을 찾아야 하는 건가?”

“그래.”

브로리의 목소리에 호가 대답했다. 퀘스트의 정보가 갱신되면서 호는 대충이나마 강다리의 무덤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퀘스트는 먼저 림드 산맥의 수인들을 찾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림드 산맥이라……. 나도 어렸을 때는 그곳에서 잠깐 살았었다. 좋은 기억은 아니었어.”

브로리의 말을 들으며 호는 고개를 주억였다. 그녀가 말한 좋지 않은 기억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대충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림드 산맥 내면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는 맞는 거겠지?’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는 림드 산맥과 같이 플레이어들이 지나갈 수 없는 험준한 지형들이 다수 존재했다. 아예 지나갈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기절초풍할 정도로 끔찍한 피해를 입을 뿐이었다.

실제로 과거 한니발 장군이 로마를 침략하기 위해 알프스를 넘었던 것처럼 양들의 침묵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플레이어가 마왕성이 있는 영토 블라디션을 점령하기 위해 A등급 마장기 다수와 오백만이 넘는 병사를 이끌고 리그너스 대륙의 남서쪽을 관통하고 있는 커다란 산맥인 워레인지 산맥을 넘는다고 해서 팬 사이트를 들썩이게 만든 적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양들의 침묵은 상대도 되지 않으면서 귀찮을 정도로 달려드는 호전적인 마족들을 일일이 상대하느니 단숨에 마왕 쉐르난비체를 때려잡고 마족들을 복속시킬 생각이라고 했다. 또한 플레이어가 극복할 수 없는 지형지물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런 이벤트를 개최했다고 했다.

그리고 시작된 원정대의 모습을 보며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던 유저들은 다들 경악을 토해냈다.

“저게 뭐야?!”

“개발자 개객끼들아! 저런 곳을 사람이 지나가라고 만들어 놓은 거냐!”

드래곤을 포함한 수많은 몬스터들의 습격, 폭설이 끝나자마자 폭우가 쏟아지는 기상천외한 날씨. 날랜 엘프들도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는 험준한 길 등은 원정을 지켜보던 유저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호 역시 그중 하나였다.

결론만 말하자면 원정은 성공하긴 했다. 난관에도 불구하고 양들의 침묵은 행군을 감행, 결국 워레인지 산맥을 넘었던 것이다. 하지만 워레인지 산맥을 통과한 양들의 침묵은 곧바로 마왕 쉐르난비체의 공격을 받아 사망. 게임 오버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워레인지 산맥을 넘은 직후, 그가 보유하고 있던 군대는 반파된 A등급 마장기 두 기와 이 만이 조금 넘는 병사들뿐이었다. 실패나 다름없는 성공이었다.

분명 이 이상한 세계는 가상현실 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와는 다른 세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상현실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흡사한 배경은 호가 림드 산맥을 탐험해야 한다는 사실을 껄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디르시나로 돌아간다!”

캣 타워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얻었다. 공략은 성공했고, 퀘스트도 갱신했다. 영웅들의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아이템도 손에 넣었다.

하지만 부서진 마장기의 잔해를 볼 때면 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만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퀘스트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퀘스트의 보상은 획득해야만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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