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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35화 (235/522)

# 235

리그너스 대륙전기 235

블루 스케일의 상권은 디아린 상단이 조금씩 잠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디아린은 전쟁 후 가장 필요한 두 개의 물품인 마정석과 식량을 무기로 블루 스케일 내에서 빠른 속도로 상단의 규모와 영향력을 늘려나가고 있었다. 행동 역시 거칠 게 없었다. 블루 스케일에서 활동하는 디아린 상단의 상행위는 블루 스케일의 여왕인 세이라 클리퍼드와 귀족들이 보장해야 했다.

게다가 그런 디아린 상단의 뒤에 림드 산맥의 패자 윤호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의외로 이번 전쟁에서 수인 왕국과 마족의 움직임이 조용했단 말이지.”

한시진과 함께 마장기의 제작과정을 지켜보다가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호는 집무실 한구석에 걸려 있는 대륙의 지도를 바라봤다.

천족의 도발로 인해 잠깐이나마 리그너스 대륙이 혼란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수인과 마족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리그너스 대륙에서 가장 호전적이라는 두 종족답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리셴르나와 볼 붸르니체스가 한 판 붙었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니 정찰 부대끼리 가볍게 충돌한 것에 불과했다.

엘프 왕국 역시 자신들이 빼앗긴 토갈론 요새를 되찾을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로얄 센티널인 엘 키세스가 전선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잠시 긴장감이 피어오르기는 했지만 엘프 장로와의 의견 마찰이 있던 모양인지 아직까지 군사적으로 별다른 움직임은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토갈론 요새에 배치되어 있는 실버 문의 존재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래도 크리솔라이트의 경우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니다.

그렇게 주변 상황에 대해 생각을 하던 호는 자리에 앉아 종이와 펜을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검지로 애꿎은 테이블을 두드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마장기의 제작 기술을 확보하면서 이 세계에서 한 세력으로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은 만들었는데…….”

하지만 리그너스 대륙의 통일을 목표로 삼는다면 아직 자신의 세력은 태양 앞의 반딧불이나 다름없었다. 좀 더 힘을 키울 수 있는 장기적인 목표가 필요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마장기의 제작이었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오랜 투자가 필요한 일이었다. 게다가 현재 호가 제작할 수 있는 마장기는 인간 의 마장기뿐이었다. 인간 영웅을 제외한 다른 종족의 영웅들은 마장기를 운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장기적인 목표로는 놓지만 최우선 목표로는 패스.”

두 번째로 생각나는 건 모든 영토의 특성화였다. 하지만 이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굳이 목표로 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패스.

세 번째는 해상 무역이었다. 토리아 항구를 거점으로 삼아 다른 종족들과의 무역을 통해 교역수입과 특산품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영향을 받아 다양한 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해상 무역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함대를 비롯한 다양한 함선을 건조해야 했다. 게다가 다른 종족과의 무역은 조그마한 트러블 하나로도 깨지게 마련. 결국 장기적인 목표로는 삼기가 힘들었다.

마족의 SSS랭크 마법병과인 브뤼헤아 비쉬의 연구도 장기적인 대안은 아니었다. 어차피 개발해야 할 병종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할 건 많은 데 장기적인 목표로 둘 건 없네……. 어라?”

종이에 적은 내용을 살펴보던 호가 머리를 긁적이다가 탄성을 터뜨렸다. 순간 기억 속에 묻어뒀던 하나의 퀘스트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바로 크리솔라이트의 꿈 퀘스트였다.

현재 크리솔라이트의 꿈 퀘스트는 4단계까지가 진행이 된 상태였다. 그리고 호는 그린 드래곤 페리스트 퓨리온의 부탁을 받아 세계수의 가지를 그녀에게 가져다주어야 했다.

“일단 세계수의 가지를 최우선으로 확보해야겠네.”

세계수의 가지는 엘프들의 수도인 트오세에서만 소량 생산되는 희귀한 특산품이었다. 구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디아린이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해 올 것 같았다. 그렇게 호가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던 무렵이었다. 회의실 바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왕왕 울리기 시작했다. 굳이 목소리의 정체를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익숙한 목소리였으니까.

“호! 여기 있었구나!”

“그럼 내가 집무실에 있지 어디에 있겠어?”

집무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온 이는 디르시나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웅 브로리였다.

전투와 관련된 능력치를 제외하면 나머지 능력치가 크게 떨어지는 터라 내정 일을 맡겨봤자 별다른 효율을 볼 수 없었고, 기본적으로 성격이 굉장히 게을렀다. 덕분에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훈련 및 징병과 같이 군사와 관련된 명령을 제외하면 성과를 내지 못했다.

만약 능력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떨어졌다면 아무 쓸모가 없는 엑스트라 영웅 중 한명이 되었을 테지만 브로리가 보유한 SSS등급의 무력은 그런 그녀를 게을러도 충분히 봐줄 수 있는 엘리트 영웅으로 환골탈태시켰다. 어쨌든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호에게는 조금 귀찮게 느껴지는 존재에 불과했다.

“무슨 일인데?”

브로리를 보지도 않은 채 종이에 적은 내용을 정리하던 호가 그녀를 향해 말했다.

“여행! 여행을 가야 된다!”

“여행? 갑자기 웬 여행이야? 그리고 가려면 혼자서 가도 되잖아? 그렇다고 멀리는 안 돼.”

“아니, 그게 아니고. 던전 탐험이다!”

호가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자 브로리가 고개를 크게 흔들며 말했다. 그러고는 집무실 문 쪽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기서 뭐하는 거야! 빨리 들어와라!”

누가 있는 것일까? 호의 시선이 문 밖으로 향했다.

잠시 후, 한 수인이 쭈뼛거리며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귀여운 외모와 살짝 접힌 귀, 어린 견인이었다. 겁에 질린 듯 동글동글한 눈동자로 여기저기를 살펴보던 견인 소년은 자신을 바라보는 호의 시선을 느끼고는 그 자리에 넙죽 엎드렸다.

“호, 호 님을 만나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견인족 뽀삐라고 합니다!”

“그래? 뽀삐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이네.”

호는 자신을 뽀삐라고 밝힌 견인족의 정보창을 열었다. 딱히 정보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영웅이 아닌 일반 수인족인 모양이었다.

“빨리 말해라!”

“……왜 강아지 기를 죽이고 그래?”

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성격이 급한 것도 유분수지 저렇게 호통을 치다가는 겁에 질려 할 말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게다가 브로리가 내뿜는 기세는 어린 견인 족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뭐, 급한 게 아니면 천천히 얘기해도 상관없어. 탁자 위에 놓인 간식 먹고 싶으면 먹어도 되고.”

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조금은 진정이 되었을까? 뽀삐라는 이름의 어린 견인이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전해진 이야기입니다. 혹시 강다리라는 이름을 들어 보셨어요? 저희 견인들 사이에서는 전설로 내려오는 영웅인데…….”

“아니.”

호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영웅들 중 강다리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와 비슷한 이름을 한 견인 전용 아이템은 공략본에 나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분은 크기가 늘어나는 뼈다귀를 가지고 우리 견인들을 지켰다는 영웅이세요. 견인들을 대표하는 커다란 마장기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해요.”

“그래? 대단한 분이셨네. 그런데 그 강다리라는 영웅의 이름은 왜 꺼낸 거지?”

“저희 할아버지가 그러는데 그 강다리 님의 무덤이 림드 산맥 어딘가에 숨겨져 있대요.”

“그렇군…….”

뽀삐의 말을 들으며 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브로리가 한껏 흥분한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대단한 정보는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자신이 알 수 없는 영웅의 내용이었다.

띵동.

그때 호의 귀로 익숙한 알림 음이 들려왔다.

-‘수인족의 전설–견인’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강다리는 수인 왕국을 이루는 종족 중 하나인 견인족을 대표했던 영웅입니다. 오래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커다란 뼈다귀를 무기로 휘두르는 그는 한때 수인족의 족장에 올랐을 정도로 그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런 그의 유물이 림드 산맥의 무덤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만약 그 유물을 차지할 수 있다면 강다리의 힘을 얻는 것과 함께 수인들 사이에서 이야기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그들의 전설에 손이 닿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뭐야? 수인족의 전설?’

눈앞으로 펼쳐지는 퀘스트의 내용에 호는 얼굴을 굳혔다. 심상치 않은 느낌을 주는 퀘스트였다. 수인의 전설이라니?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클리어했던 그도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재빠르게 공략본을 열어 관련 내용을 검색해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레귤러인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퀘스트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호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루베릭 대륙, 팀 심시티나 공돌이, 공략본과 몽크의 대규모 무효화와 같은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설정 및 규칙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또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는 브로리의 모습을 보자 호는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럴 때만 보면 영락없이 외형에 걸 맞는 열 살짜리 꼬마였다. 어떻게 보면 이는 좋은 기회기도 했다. 수인족의 전설. 퀘스트의 이름만 해도 무언가 있다는 이름을 팍팍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뽀삐는 강다리라는 영웅이 커다란 마장기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추하면 퀘스트의 보상에는 마장기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그 무덤이 어디에 있는데?”

“그건……! 찾아야 된다. 하지만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거다! 분명 강다리에 대해 알고 있는 견인이 더 있을 거다.”

호의 질문에 브로리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결국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뭐, 상관은 없었다. 퀘스트의 내용에 따르면 강다리의 무덤은 림드 산맥의 어딘가에 있다고 나와 있었다. 브로리의 말대로 정보를 얻다보면 강다리의 무덤에 관한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그렇게 브로리와 함께 도시 내로 나온 호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멍멍아 야옹해봐였다.

“강다리라는 영웅에 관한 정보요? 헤헤! 당연히 정보는 우리 주점에서 얻어야죠. 그런 정보는 금방 구할 수 있을걸요?”

멍멍아 야옹해봐의 건물주이자 사장인 시현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급격하게 늘어난 인구로 인해 오백만 이라는 영지민을 달성하고 SS등급의 메갈로폴리스가 된 디르시나의 랜드마크인 ‘멍멍아 야옹해봐’의 내부에는 수많은 영웅 및 주민들이 음주와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그리고 멍멍아 야옹해봐에 들어선 호는 화려하게 바뀐 주점의 내부를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처음 한시현에게 주점을 맡겼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디르시나에 거주하는 영주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고 하더니만 그 소문에는 조금의 과장도 섞이지 않은 것 같았다.

“얘도 은근히 이런 면에서 재능이 있네?”

덕분에 한시현은 무희 계통인 자신의 클래스와 관련된 경험치를 다량 획득하며 차근차근 이 세계와 관련된 자신의 능력을 올리고 있었다. 아직은 B등급에 불과했지만, 조금만 도와준다면 쑥쑥 성장할 것 같았다.

그렇게 공략본의 메모 한쪽에 한시현의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적은 호는 강다리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멍멍아 야옹해봐 내부를 누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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