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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33화 (233/522)

# 233

리그너스 대륙전기 233

“설마 니나 다니엘레 님이?!”

성검 그람을 다룰 수 있는 영웅은 저번 전투에서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10 천사 니나 다니엘레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살아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돕기 위해 전장에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슈트발름은 온몸의 긴장이 쫘악 하고 풀리는 느낌이었다.

“니나 다니엘레 님이다!”

“10 천사가 살아 있었어!”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천족의 병사들도 니나 다니엘레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악마와도 같은 적진의 가운데서 자신의 신성력을 내뿜고 있었다. 그런 니나 다니엘레의 등장으로 인해 천족들의 가슴에는 어쩌면 승리할 수 있다는 혹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조그마한 희망이 가슴 속에 싹트기 시작했다.

“아아…….”

그리고 자신에게 집중된 천족들의 시선을 느끼며 니나 다니엘레가 미소를 지었다. 성검 그람의 하얀 빛에 녹아드는 아름다운 미소였다. 하지만 슈트발름은 그런 니나 다니엘레의 미소가 굉장히 슬퍼보였으며 또한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순간 영문 모를 불안감이 슈트발름의 가슴 속에서 뭉클 피어올랐다.

“마, 말도 안 돼……!”

그리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슈트발름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몇 번이나 자신의 눈을 비볐다. 방금 전 느꼈던 불안감이 현실로 변하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환하게 빛을 내던 성검 그람이 회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람의 성스러운 불꽃에 천족들이라면 질겁하는 어둠의 마력이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니, 니나 다니엘레!”

슈트발름의 입에서 피가 토해져 나왔다. 눈앞의 천족은 여신을 곁에서 모시는 고귀했던 전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타락했다. 그 누구보다도 추악한 모습으로 타락한 것이다. 겉으로는 10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녀가 몸에 품고 있는 것은 여신의 성스러운 신성력이 아닌 타락한 마나였다. 저 자는…….

“으아아아아!”

강한 분노가 슈트발름의 몸을 잠식했고, 그의 발을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표는 단 하나. 타락한 마나를 받아들인 추악한 천사였다. 10 천사가 여신 라헬을 배신하는 불미스러운 일어난 것이다. 이 사실이 퍼져나가기 전에 니나 다니엘레를 죽여야 했다. 슈트발름은 그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용감한 자로군! 컹!”

그런 슈트발름에게 누군가가 말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슈트발름의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누구?! 크허억!”

분노에 차올랐던 슈트발름이 이상함을 깨달은 순간 무언가가 그의 배를 강하게 후려쳤다. 피할 새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가시가 삐죽 나 있는 강철의 메이스는 그의 갑옷을 가볍게 박살 내며 슈트발름의 내장을 휘저었다. 믿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괴력이었다.

“내가 누구냐고? 내 이름은 오우거 슬레이어 컹컹이다. 컹.”

피를 토하고 쓰러진 슈트발름을 향해 컹컹이가 자신의 메이스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너는 용감한 천족이지. 나는 우리의 앞을 가로막은 용감한 자에게 이제부터 경의를 표하겠다다. 컹컹!”

그러고는 그의 몸을 향해 메이스를 내리쳤다.

“쿨럭! 컥!”

컹컹이가 메이스를 내리칠 때마다 슈트발름의 입에서는 연신 피가 토해져 나왔다. 몸의 감각이 사라졌는지 어느새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라, 라헬님……!’

그런 슈트발름의 눈에 보이는 거라곤 하얗게 물든 세계뿐이었다. 그렇게 슈트발름이 사망하고 잠시 후 전의를 잃은 천족들이 하나둘씩 항복하기 시작했다.

호가 슈트발름의 군대를 전멸시키는 동안 한시진 역시 A등급의 천족 영웅이 이끄는 부대를 박살 내며 천족이 차지하고 있던 쿠투스 평원의 영지 하나를 빼앗았다. 로우덴 역시 자신의 뛰어난 책략을 이용해 레진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거라곤 칸디르가 이끄는 천족의 본대뿐이었다. 그 숫자는 육만 명. 삼십 만에 다다르는 호의 병사와 비교하자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 수였다.

“도베르만 제독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해 준 모양이네.”

천족의 병사가 적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블루 스케일의 도베르만 제독이 전략을 바꿔 천족의 수송부대만을 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본국으로의 수송을 막겠다는 듯 자신들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목숨까지 버려가며 공격을 가하는 블루 스케일 해군에 천족들의 행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수많은 대군이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패배와 10 천사인 니나 다니엘레가 이끌던 군대가 전멸하면서 그들의 생각 이상으로 많은 수의 병력이 소모된 탓도 있었다.

어쨌든 이유야 아무래도 좋았다. 호는 니나 다니엘레와 함께 또 한 명의 10 천사인 칸디르 역시 포로로 붙잡을 생각이었다. 오너 시스템을 사용해 천족의 10 천사 중 두 명을 손에 넣는다? 엄청난 성과였다. 적어도 라헬의 세력을 그만큼 깎아내린 셈이었다.

“한시진과 로우덴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도록.”

남은 것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천족의 병사들을 블루 스케일에서 몰아내는 것뿐이었다. 이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 짧았지만 길게 느껴졌던 이번 전쟁도 끝이었다.

그리고 호는 자신에게 들어올 부수입을 생각하며 가느다랗게 미소를 지었다. 이번 전쟁에 참여한 대가로 호는 블루 스케일 측에서 토리아 항구를 비롯해 C등급 마장기 몇 기와 마장기 제작 기술을 얻어낼 수 있었다. 비록 C등급이지만 드디어 자신의 영지에서 마장기의 제작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 지 4 년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이는 가상현실 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 할 때도 이뤄내지 못했던 성과였다.

‘하지만 고작 이걸로 만족할 생각은 없지.’

블루 스케일을 도와 전쟁을 치르면서 호는 이 나라가 얼마나 엉망인지 낱낱이 파악할 수 있었다.

여왕 세이라 클리퍼드의 능력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나라의 귀족들은 등급이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쓰레기같은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다.

트집을 잡을 요소도 있었다. 블루 스케일의 멍청한 귀족들 때문에 자신이 목숨을 잃을 뻔했고, B등급 마장기와 다수의 고 랭크 병사 역시 허무하게 날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처음 전쟁을 시작했을 때와 달리 천족의 지원이 늘어나면서 엄청난 재화와 인력이 소모되기까지 했다.

그런 호의 눈으로 마장기의 격돌로 인한 불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칸디르의 전용기인 화이트 윙과 한시진의 데스 사이더였다.

“그러고 보니 칸디르를 손에 넣으면 화이트 윙 역시 절로 얻을 수 있겠군.”

이왕이면 무사히 포획을 했으면 좋겠지만, 박살이 나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드워프의 타임리스 상단이라면 천족의 A등급 마장기 역시 수리할 수 있으리라. A등급 전용기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수리 비용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콰콰콰콰쾅!

마력포가 전장을 휩쓸었고, 동시다발적인 비명과 함께 여기저기서 피 보라가 튀었다.

그리고 그 뒤로 윙드 훗사르의 돌격이 사방에서 이어졌다. 전투가 시작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빠르게 승패가 갈리고 있었다.

패배를 직감한 병사들이 해안가에 있는 배를 타고 도망을 쳤지만 그 수는 소수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렇게 도망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블루 스케일의 함선들이었다.

화이트 윙에 탑승한 칸디르가 열심히 분전했지만 그녀 혼자서는 사방에서 달려드는 호의 친위대를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을 막아서는 니나 다니엘레의 모습에 전의를 상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붙잡혔다.

“호외! 호외요!”

“전쟁이 끝났습니다! 천족들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쿠투스 평원에 있던 천족의 요새가 불타오르면서 블루 스케일을 침공했던 천족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이 소식은 곧바로 수도 스완을 포함해 블루 스케일의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와아아! 이겼다! 이겼어!”

“우리가 이겼다! 호 님 만세! 세이라 클리퍼드 여왕 폐하 만세!”

천족들을 몰아내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은 바로 소환자 호였다.

그의 군대가 아니었으면 블루 스케일은 진즉에 천족의 손에 떨어졌을 터였다.

게다가 호의 병사들은 풍족한 군량을 바탕으로 전쟁으로 인해 굶주리고 있던 블루 스케일의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식량을 나누어주기까지 했었다.

그런 이유로 백성들에 대한 호의 인기는 블루 스케일의 다른 귀족들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 있었다.

그 점 때문에 곤란해진 것은 다름 아닌 세이라 클리퍼드를 위시한 블루 스케일의 고위 귀족들이었다. 자신들을 돕기 위해 전장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호를 실수로 죽일 뻔했기 때문이었다.

실수라고 해도 정도가 있는 법, 이미 죽어버린 녀석들이긴 했지만 자국 귀족들이 했던 실수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실수였다.

하물며 그냥 넘어갈 수도 없었다. 어쨌든 호의 도움으로 인해 블루 스케일이 무사할 수 있었고, 아직까지 블루 스케일의 영토에는 삼십 만에 가까운 호의 병사가 주둔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무능한 아군의 실수는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호를 찾은 세이라 클리퍼드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호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하나의 서류를 스윽 밀었다.

“이건?”

“우리와 블루 스케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자는 뜻으로 만들었습니다. 여러 상황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함께 천족을 상대했던 전우지 않습니까?”

“아아…….”

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세이라 클리퍼드는 감격에 찬 얼굴로 서류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어진 서류의 맨 윗줄에는 무언가를 쓰다가 지워진 자국이 깊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자국을 부드럽게 만진 세이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을사조약?’

손끝의 촉감을 통해 알아낸 글자는 그녀가 알 수 없는 영문 모를 단어였다.

* * *

“신윤아 너 을사조약이라고 알아?”

“헐? 오빠 저 무시함?”

호의 말에 윤아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버럭 했다.

“그리고 을사조약이 아니라 을사늑약. 조약의 체결 과정에서 강압성이 있었기 때문에 조약이 아니라 늑약으로 표현하는 게 맞는 거예요. 오빠는 그런 것도 모르면서.”

“오오…….”

“저 사학과 다니는 여자예요.”

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자 윤아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사학과라니. 진로도 좁고 퇴로도 좁은데다가 취업문은 더 좁다는 그 끔찍한 관문을 통과할 생각을 하다니. 윤아 너 고 3 때 참 용감했구나. 혹시 금수저였어?”

“……우와. 이 오빠 보게? 말로 명치를 후려치네. 그러면 오빠는요? 오빠는 어디 학과 나왔는데요?”

“학과? 그게 뭐가 중요해? 일단 취.직. 했다는 게 중요하지. 이 오빠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중견 기업에 입사했거든?”

“크윽!”

승리자처럼 가슴을 쭈욱 펴는 호의 행동에 윤아가 좌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머리를 긁적이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면 뭐해요. 오빠나 나나 이 이상한 세계에 갇혀 있는 걸. 아! 엄마 보고 싶고, 치킨도 먹고 싶다.”

“……나도. 사실 취업한 지 두 달도 안 됐어.”

어쨌든 이 을사늑약으로 인해 한국 정부는 외교권을 일본에 박탈당했고 내정 면에서도 간섭을 받기 시작하며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그렇게 한국인에게는 불평등 조약의 대표라 불리는 을사늑약이 세이라 클리퍼드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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