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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32화 (232/522)

# 232

리그너스 대륙전기 232

“아아악!”

“살려줘! 케엑!”

사방에서 들려오는 병사들의 비명소리에 니나 다니엘레는 직감적으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장기에만 탑승하면 충분히 적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였다.

상대의 공격은 단순한 기습이 아니었다. 자신을 노리고 단단히 준비한 공격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사방에서 보이는 적들의 마장기들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대, 대체 어떻게?!”

그리고 바보 같게도 자신은 그런 상대의 함정에 아무것도 모른 채 빠져든 것이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상대의 움직임은 은밀했고, 치밀했다.

그 결과로 자신의 소중한 병사와 부하들이 허무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언데드들과 호의 병사들 뿐. 그녀를 호위하는 마장기사들 역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퇴각하셔야 합니다! 니나 다니엘레 님!”

“지금이라도 후퇴 명령을!”

호위병들이 니나 다니엘레를 향해 말했다. 하지만 니나 다니엘레는 그런 호위병들의 말대로 몸을 뺄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수만에 가까운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자신이 물러나면 이들은 해가 지기 전에 헛되이 목숨을 잃을 게 분명했다.

“큭! 살아남은 병사들을 추스른다!”

니나 다니엘레는 입술을 깨물었다. 후퇴는 그 다음이었다. 여기서 자신의 모든 병력을 잃는다면 블루 스케일에 있는 천족과 호와의 균형이 깨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칸디르 역시 버티지 못할 게 분명했다.

투쾅!

“적습!”

그리고 상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던 엔젤 가디언급 마장기가 충격과 함께 넘어졌다. 엔젤 가디언을 강타한 것은 푸른빛의 화살. 엑스칼리버의 무기인 MLC 였다.

퉁! 투퉁! 퉁!

이어서 마력포의 굉음이 니나 다니엘레의 고막을 때리며 주위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니나 다니엘레는 재빨리 세인테르의 거대한 방패를 들어 적들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마력포의 목표는 그녀만이 아니었다.

콰아아앙!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그녀의 뒤를 지키던 호위병이 탑승한 엔젤 가디언급 마장기였다. 하지만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

‘적들의 수는?!’

니나 다니엘레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눈에 보이는 마장기는 엑스칼리버를 포함해 세 기. 윈드 라이더와 티거알리카 였다. 수인족의 전천후 마장기인 티거알리카가 조금 까다롭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도망은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아남은 병사를 추스르겠다는 계획은 이미 포기했다. 자신의 예상보다도 상황이 훨씬 나빴다. 지금 당장 전장에서 몸을 빼야만 했다. 그때였다.

“흣?!”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에 니나 다니엘레는 자신도 모르게 마장기의 조종간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이어서 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땅에 강하게 박히는 소리가 그녀의 귀로 들려왔다. 커다란 낫이 세인테르의 목덜미를 살짝 스치고는 그대로 땅바닥을 산산조각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크아아악!”

뒤쪽으로 호위병의 비명이 또 다시 들려왔다. 전용기로 보이는 황금색의 웨어 타이거가 자신의 호위 마장기의 사지를 입으로 뜯어내고 있었다. 순식간에 호위병들을 전멸시키고 자신을 포위한 상대의 마장기들을 보며 니나 다니엘레는 질끈 눈을 감았다.

“하…….”

칸디르의 경고가 다시금 머릿속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실책이었다. 소환자 윤호. 그를 쉽게 생각해서는 안됐다. 가디온 성에서 대규모 병력이 출진했다는 정보로 자신을 이곳까지 움직이게 만든 첩보 역시 거짓이었으리라. 그는 이미 함정을 파고 자신들을 기다린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가정을 해야 갑작스럽게 나타난 언데드들도 그리고 그들과 함께 아군을 공격하는 종족 연합군도 설명이 되었다. 적의 검은 은밀했고, 날카로웠다. 이미 전세는 기운 상황이었다.

“적의 손아귀에 놀아나버렸군.”

니나 다니엘레는 표정을 굳혔다. 자신을 포위한 마장기들의 벽을 뚫는다 하더라도 그 뒤로 몇 겹이나 적들의 포위망이 구성되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은 여기서 스러지리라.

하지만 심판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천족의 10 천사 중 하나로써 그녀는 적들의 손에 순순히 당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호에 대해 분노를 불태웠다.

“윤호!”

적의가 가득 담긴 목소리와 함께 세인테르가 달려들었다. 그런 세인테르의 앞을 데스 사이더가 가로막았다.

“어디를!”

쾅! 콰앙!

두 대의 마장기가 격돌하면서 연쇄적인 폭발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낫과 검 그리고 방패가 휘둘러지며 빛이 번쩍였다.

띵동.

-한시진이 검의 길을 발동했습니다. 그녀의 공격은 앞으로 5분간 상대의 방어력을 무시합니다.

-니나 다니엘레가 용맹의 함성을 발동했습니다. 30분 동안 그녀의 무력이 50 상승합니다.

-브로리의 무릎 꿇어라가 발동했습니다. 이제부터 브로리의 공격은 치명타로 발동됩니다.

-엘 라스엘이…….

순식간에 벌어진 공방과 함께 호의 눈으로 스킬이 발동했다는 메시지가 빠르게 떠올랐다. 다들 견제 따위는 필요 없이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죽어버렷!”

그리고 골든 스테이트가 양팔을 교차시키며 세인테르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브로리의 움직임에 니나 다니엘레는 대검의 긴 사정거리를 이용해 그녀를 밀쳐내고는 뒤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B등급 마장기를 잡아 뜯어내는 브로리의 괴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물러난 그녀를 검은 악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콰캉!

검은 악마가 휘두른 낫이 세인테르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니나 다니엘레의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어깨 장갑의 장식만 부서진 상황.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시간이 없었다. 어느새 접근한 윈드 라이더가 조종석을 향해 투척용 단검을 던진 것이다.

“젠장!”

니나 다니엘레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 나왔다. 이 자리에 모인 마장기의 오너들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10 천사 혹은 상위 영웅에 비교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개자식!”

어떻게든 여기서 자신을 처리하겠다는 소환자 윤호의 의지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공격을 허용한 그녀는 이대로는 당할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세인테르의 검을 하늘 위로 들어 올렸다.

“성검! 그람!”

세인테르의 검이 빛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여파로 니나 다니엘레는 자신의 신성력이 빠르게 소모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몇을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니나 다니엘레가 노린 것은 상대의 에이스로 생각되는 검은 악마였다. 이미 그는 자신을 향해 사신의 낫을 휘두르고 있었다.

“디 앤드.”

그리고 멀리서 니나 다니엘레가 성검 그람을 발동해 한시진을 공격하려는 모습을 본 윤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성검 그람의 단점은 강력한 위력 탓에 신성력의 소모가 엄청날 뿐 아니라 마장기의 출력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그대로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지.”

이미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면서 천족의 10 천사를 상대로 수많은 전투를 경험했던 그였다. 당연히 니나 다니엘레의 능력이 무엇인지 또한 어떻게 그녀의 능력을 무력화 시키는지 잘 알고 있었다.

콰아아앙!

“으아아악!”

비명과 함께 성검 그람을 휘두르던 세인테르의 팔이 터져 나갔다. 팔에 내재되어 있는 마력로가 성검 그람의 출력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이어서 세인테르의 마력로에서도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주, 죽여 버린다! 소환자 녀석!”

“그러게 마정석의 보급을 조심했어야지. 엘프들도 그렇고 천족도 그렇고. 다들 보급의 중요성을 모른단 말이야.”

멀찍이서 니나 다니엘레의 고함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호는 가볍게 귀를 파는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뭐, 지금은 저렇게 행동해도 오너 시스템으로 인해 영혼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지고 난 후면 그녀 역시 자신을 위해 검을 들어 올릴 게 분명했다.

그리고 천족의 10 천사, 니나 다니엘레가 이끌던 군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은 곧바로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뭐, 뭐라고?!”

“니나 다니엘레가?!”

“말도 안 돼! 블루 스케일 따위가 그녀가 이끄는 군대를 물리쳤다고?!”

소식을 접한 10 천사들과 천족의 영웅들은 다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자랑하는 10 천사 그것도 심판관이라 불리는 니나 다니엘레가 패배 후 실종된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작지 않은 여파가 전군으로 퍼져 나갔다. 블루 스케일을 침공한 원정군을 비롯해 각 지역에서 전투를 벌이는 천족들의 사기가 눈에 띄게 떨어진 것이다.

블루 스케일 역시 갑작스럽게 들려온 승전보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것도 그냥 승리가 아니라 천족의 10 천사 중 한 명을 무너뜨린 대승이었다. 하지만 블루 스케일의 여왕 세이라 클리퍼드는 자신들의 대승에도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천족의 10 천사를 물리치는 대전투에서 블루 스케일이 공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병사들을 회군시킨다!”

니나 다니엘레의 군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은 칸디르는 바르시온까지 넓게 퍼져 있는 병사들을 모조리 회군시켰다. 전선을 넓히느니 쿠투스 평원에 전력을 집중시켜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해상 교두보를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천족들이 물러나 비어버린 성들은 호의 병사들이 하나둘씩 이삭을 줍듯 차지해 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쿠투스 평원의 경계에서 진군을 멈추고는 군사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휴우.”

그리고 더 이상의 진격의지를 보이지 않고 정비에 들어간 호의 군대를 보며 칸디르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병사들이 10 천사인 니나 다니엘레의 실종 아니 사망한 게 확실한 것으로 보이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번 것이다.

하지만 칸디르는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니나 다니엘레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여신 라헬에 대한 믿을 저버리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 * *

의외로 니나 다니엘레의 정신을 무너뜨려 오너 시스템의 발동 조건을 만족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관우는 내 여자가 작성한 공략본에 나온 방법과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 했을 때 사용했던 방법들을 적절하게 이용하니 10 천사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쉽게 라헬에 대한 신앙이 무너진 것이다. 아니, 일찌감치 그녀는 라헬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사라졌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호는 오너 시스템을 이용해 쉽게 그녀를 동료로 맞이할 수 있었다. 덕분에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죽일 듯이 검을 휘둘렀던 상대가 동료가 된 림드 산맥의 영웅들은 니나 다니엘레를 보며 다들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재정비를 마친 호는 군대를 세 개로 나눠 쿠투스 평원으로 진격했다. 한시진이 이끄는 서부 공략대, 쿠투스 평원의 후방 도시 레진 점령을 목적을 한 로우덴의 군대, 그리고 칸디르를 상대하는 호의 본군이었다.

“진격하라! 아름다운 사파이어의 땅에서 천족들을 몰아내자!”

그렇게 폭풍의 전조나 다름없던 평화는 호의 병사들이 움직이면서 깨져버렸고, 쿠투스 평원 전체에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투의 선두에서 천족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온몸이 날카로운 검으로 되어 있는 여신의 전사인 실버 문. 그들은 천족의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방어를 무너뜨리며 호에게 승리를 안겨다 주었다. 윙드 훗사르, 할리온, 아르카니움 아처 역시 자신의 임무를 백 퍼센트 완료해내며 벌어지는 전투를 계속해서 승리로 이끌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한 강철과도 같았던 천족의 방어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고, 쿠투스 평원을 가득 메웠던 병사들 역시 그 수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어느 덧 주위에 보위는 것이라고는 호가 이끄는 림드 산맥의 다 종족 연합군뿐이었다.

“물러서지 마라! 여신 라헬을 위해!”

칸디르의 명령을 받아 호가 이끄는 본진을 막아섰던 천족의 남성 영웅 슈트발름이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하지만 그 지금의 상황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다는 걸 그 역시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단단한 검이자 방패였던 마장기들은 새카많게 타버린 채 주위에 굴러다니고 있었고, 병사들 역시 붉어진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둘씩 쓰러지고 있었다.

상대의 마장기는 지옥의 악마들보다도 강력했고, 병사들은 타락한 악마보다도 교활했다.

“으읏?!”

그 때였다.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하얀 빛에 슈트발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여신 라헬이 강림이라도 했는지 사방을 가득 메운 빛에 눈을 똑바로 뜰 수가 없었다.

“저건?”

그리고 빛에 눈이 익숙해진 순간 슈트발름은 정면으로 보이는 하나의 인영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서, 성검 그람?”

환하게 타오르는 불꽃의 검. 성검 그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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