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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31화 (231/522)

# 231

리그너스 대륙전기 231

“모두들 대응해라!”

“크아악! 아악!”

“빛이여! 적들을 불태우소서!”

병사들을 공격하는 언데드들을 뒤로 한 채 니나 다니엘레는 자신의 마장기가 배치된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앞을 의외의 존재들이 가로막았다. 바로 엘프들이었다.

“엘프가 어떻게 여기에?!”

엘프들을 발견한 니나 다니엘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언데드들이 엘프와 함께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적의 계략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는 이야기였다. 사태를 파악한 그녀의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었다.

몇 번이나 전장에서 마주친 만큼 니나 다니엘레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엘프들이 실버 문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다만, 전과는 조금 다르게 실버 문들의 주위로 은은한 빛들이 휘돌고 있었다.

“감히! 내가 누군지 아느냐!”

어떻게든 자신이 마장기에 탑승하는 것을 막으려는지 자신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는 실버 문의 행동에 니나 다니엘레가 고함과 함께 창을 휘둘렀다. 아무리 실버 문이 SSS랭크의 병사라고 해도 자신은 심판관이라는 별명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천족의 10 천사였다.

그리고 성검 그람, 여신 라헬의 축복이 담긴 대검의 검신에서 불꽃이 순식간에 피어 올라왔다.

화르르륵!

피어오른 불꽃의 열기는 곧바로 실버 문들을 재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니나 다니엘레는 예전과는 다른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녀의 얼굴로 당황스러움이 떠올랐다. 비록 재가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방금 전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던 실버 문들은 전에 마주쳤던 실버 문들과는 다르게 성검 그람의 신성력에 조금이나마 버티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실버 문들이 조금 더 강력해진 느낌이었다.

“……!”

그 순간 누군가의 말이 니나 다니엘레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호가 직접 이끄는 군대는 그대가 이제까지 만났던 군대와는 전혀 다른 군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며칠 전 칸디르가 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만났던 실버 문은 전과는 그녀가 이상함을 느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지금 이 자리에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인 소환자 호가 있는 게 분명했다.

“마침 잘됐군. 여기서 전쟁을 끝낸다.”

생각을 마친 니나 다니엘레는 빠른 속도로 마장기가 보관되어 있는 장소로 향했다. 스켈레톤과 같은 하급의 존재로 구성되어 있는 언데드들은 아무리 수가 많아도 두렵지 않았다. 소환자 호의 군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의 기습이라면 분명 수가 많지 않을 터였다.

다행히 마장기 격납고는 안전했다. 이미 몇몇 마장기들은 마력로의 가동을 끝낸 뒤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출진하겠다!”

말과 함께 니나 다니엘레가 자신의 마장기로 올라섰다.

우우웅!

마장기의 마력로가 움직이는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그녀의 휘하에 있는 마장기는 엔젤 가디언 등급 네 기와 엔젤 등급 열한 기, 거기에 자신의 세인테르 등급까지 총 열 여섯 기로 네 개 편대였다.

그런 자신의 전력을 생각하며 소환자 호를 떠올린 니나 다니엘레는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이 정도의 마장기 전력이라면 소수의 병사들만을 이끌고 자신의 군대를 공격한 소환자 쯤은 가볍게 물리칠 자신이 있었다.

* * *

수 천 아니 만은 훌쩍 넘는 언데드들과 천족들이 싸우는 모습은 그야말로 블록버스터 영화 속 액션 장면이 부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현실감은 이쪽이 훨씬 더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는 연출된 게 아니었다. 정말로 선과 악, 빛과 어둠의 격돌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중간 중간 엘프와 수인들이 등장하는 것도 스토리성이 가미된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감탄할 게 있었다.

“대단한데? 실력이 많이 늘었어.”

“헤헤헤. 정말요?”

호의 말에 한 소녀가 귀여운 미소로 배시시 웃었다. 고동색 나무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들고 있는 소녀의 이름은 신윤아. 군단의 소환사라는 S등급의 클래스를 가지고 있는 소환자였다.

지금 천족들을 공격하는 언데드들은 죽음의 기운에서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생겨난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호와 신윤아가 서 있는 언덕,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골짜기에 세워진 악마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형태를 한 검은색의 커다란 문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신윤아가 보유한 스킬인 차원의 문이었다.

그리고 차원의 문은 지금도 계속해서 언데드들을 불러내고 있었다.

“음음.”

신윤아의 반문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호는 연신 언데드들을 소환하고 있는 차원의 문을 바라보았다.

차원의 문에서는 스켈레톤, 구울과 같은 하급의 언데드들이 소환되고 있었다. 소수의 고위 몬스터를 소환하는 것 대신 다수의 하급 몬스터를 불러내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소환된 언데드들은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언데드들이 호의 버프 스킬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하급 언데드가 중급 언데드로 진화한 셈이지.’

덕분에 언데드들을 이용해 니나 다니엘레가 이끄는 천족 병사들을 혼란에 빠뜨린다는 목적을 달성한 것은 물론이고, 천족의 병사들에게 나름대로의 피해 또한 입히고 있었다. 호의 시선이 윤아에게 향했다. 그녀의 옆에는 빛을 잃은 푸른색의 돌덩이들이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 일부 스킬의 효과를 높여주는 아이템이자 특산품인 마정석이었다.

‘재능이 있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마정석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저렇게 많은 수의 언데드들을 소환할 수 있는 소환의 문을 유지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히잇?!”

슬그머니 눈동자를 움직이던 신윤아가 자신을 바라보는 호와 눈을 마주치고는 화들짝 소리를 지르며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호가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런 신윤아의 행동에 호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왜 그렇게 놀라?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어, 그게…….”

“뭐야. 진짜 있는 거야? 뭔데?”

“그……. 유진이 때문에요. 오빠가 유진이를 구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정말 고맙다고요.”

윤아의 말에 호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김유진. 그녀는 한때 천족의 소환자였지만 현재는 자신에게 투항한 2회 차 소환자였다. 어쩐지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가 싶었더니 그녀는 윤아의 절친한 친구였다. 신기하게도 아니 재수 없게도 친한 친구 둘이 이 세계로 소환된 것이었다.

“저랑 유진이는 진짜 엄청 친한 친구거든요. 부모님들도 전부 알 정도예요. 그런데 이 이상한 세계에서 헤어진 이후로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너네 들도 참 운 없다. 하필이면 친구끼리 이런 곳에 끌려오고.”

“그러게요. 그래도 오빠에게 유진이에 대해 말하기를 잘했어요.”

호는 자신을 향해 눈을 반짝이는 윤아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김유진이라는 소환자가 대규모 무효화라는 특수한 스킬만 없었어도 영원히 못 볼 뻔했다.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얼굴 가득 고마움을 드러내는 윤아의 모습에 호는 괜스레 가슴이 쿡쿡 쑤시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굳이 사실을 이야기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 니가 기뻐하니까 나도 좋다.”

“헤헤헤.”

“이제 친구도 만났겠다. 좀 더 힘내야지? SS등급으로도 승급하고 디멘션 서머너도 되어보는 거야.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지만 좀 더 실력에 정진하도록. 어떻게든 살아서 우리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야지.”

“네! 네!”

호의 말에 유진이 주먹을 불끈 쥐고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안무 속에서 푸른색의 빛이 발광하는 게 둘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빠! 신호가 왔어요.”

“좋아. 니나 다니엘레가 우리의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나보군. 역시 로우덴! 제갈공멍답게 정확하게 니나 다니엘레의 움직임을 예측하는군.”

호가 어깨를 풀며 말했다. 언데드들은 천족 병사들을 혼란에 빠뜨렸고, 짙은 안개를 틈타 통솔과 무력 능력이 높은 영웅들이 지휘하는 아군 병사들이 난입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자신이 움직일 차례였다.

그런 호의 뒤로 B등급 마장기인 엑스칼리버가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준비되어 있었다. 어둠의 미궁 속에 잠들어 있는 엑스칼리버가 아닌 호가 보유하고 있던 두 기의 엑스칼리버 중 남은 하나였다.

“자, 그럼 가볼까?”

호가 탑승한 엑스칼리버들이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짙은 안개 속에 숨어 있던 마장기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시진의 데스 사이더, 브로리의 골든 스테이트, 아쉬카로트의 티거알리카, 엘 라스엘의 윈드 라이더까지.

호가 동원할 수 있는 최정예의 전력이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천족들의 눈을 피해 비밀스럽게 마장기들을 운송하느라 드워프와 엘프들이 피와 땀을 토해냈지만 어찌되었든 그들은 천족들에게 발각되지 않은 채 계획대로 마장기들을 운송할 수 있었다.

거기에 은밀한 정보원인 다크 엘프들이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니나 다니엘레가 보유한 마장기의 수는 총 열 여섯 기. 자신들 역시 열 대 이상의 마장기를 동원한 만큼 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거기에 모종의 수작 또한 부려놓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호가 주위의 마장기 오너들을 향해 말했다.

“상대는 천족의 10 천사 중 하나인 니나 다니엘레다. 10 천사라고는 하지만 상대는 우리의 함정에 정확하게 빠져든 상황이니 질 수가 없는 싸움인거 다들 알 리라 믿는다.”

마장기의 조종석 내로 들려오는 호의 통신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괜히 방심하다가 다치는 멍청한 친구들은 없을 거라고 믿고. 그러면 어디 천사들의 날개를 부러뜨리러 가볼까?”

말과 함께 엑스칼리버가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니나 다니엘레는 이 브로리님이 맡아주마!”

“웃기는 소리! 그녀는 이제껏 내가 상대해왔다! 호인족의 명예를 걸고 이 아쉬카로트가 그녀의 승부를 내겠다!”

다른 영웅들 역시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천족의 10 천사 중 하나와 맞붙는 큰 전투였다. 게다가 상대는 갑작스런 언데드들의 등장에 혼란에 빠져 있는 만큼 전공을 세우기에는 최적의 상황이었다.

‘모조리 죽여주겠어.’

한시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던가?

다행히 호가 무사히 돌아오기는 했지만 한시진은 자신의 연인인 호를 위험에 빠뜨렸던 천족들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강렬한 의지는 데스 사이더의 행동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쿵! 쿵! 쿵!

엔젤 급 마장기와 비교해 1.5 배 이상은 큰 괴물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덕분에 데스 사이더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천족의 진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 마장기!?”

“데스 데스 사이더! 마족! 마족이 쳐들어 왔다!”

천족 병사들의 시선이 전부 데스 사이더로 향했다. 언데드들을 막기 위해 출진했던 엔젤급 마장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데스 사이더를 발견한 엔젤급 마장기의 상아색 눈동자가 희미하게 점멸했다. 그리고 상대 마장기를 발견한 한시진이 힘껏 땅을 박차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쿠와아아앙!

“크아아아아악!”

동시에 울리는 마장기 오너의 비명 소리. 데스 사이더의 거대한 동체가 엔젤급 마장기를 찍어 누르고는 마력이 잔뜩 담긴 사신의 낫을 이용해 그대로 베어버린 까닭이었다. 1 초? 2 초쯤 걸렸을까? 정말로 눈 깜짝 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괴물……!”

“검은 악마다! 검은 악마가 등장했다!”

순식간에 아군의 마장기를 파괴하는 데스 사이더의 모습에 천족 병사들의 얼굴이 공포로 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듯 한시진은 또 다른 마장기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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