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
리그너스 대륙전기 230
림드 산맥의 패자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빠르게 주변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천족의 포위망에 갇혀 실종되었던 영주의 귀환에 복수를 부르짖던 알르드의 병사들은 모두가 환호했다. 이런 반응은 최전선에서 천족들과 전투를 벌이던 영웅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저, 정말 호 오빠?”
한시진은 호의 생환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몇 번이나 호의 얼굴을 쓰다듬었고, 로우덴은 한 시간이 멀다 하고 호를 찾았다.
역시나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네임드는 살아 있을 줄 알았다며 환한 미소를 짓는 신윤아와 호를 볼 때마다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엘 라스엘 등 호의 총동원령에 따라 천족들을 상대로 전투에 나서고 있던 영웅들은 하나같이 살아 돌아온 호를 환영했다.
그런 영웅들의 반응을 보던 드워프 영웅 존스 홉킨스는 마치 늘어져 있던 기계들이 기름칠을 하고 폭발적으로 돌아가는 광경 같다며 기뻐했다. 어쨌든 이러한 영웅들의 환호를 한 몸에 받으며 호는 전황의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휴식의 시간도 없이 업무에 복귀하려는 자신의 행동에 한시진이 걱정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딱히 어디가 부러지고 다친 것은 아니었기에 일선으로의 복귀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게 호의 생각이었다. 무사히 귀환한 것은 좋았지만 천족과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전황을 파악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한시진이 자세히 보고를 올렸기 때문이었다.
먼저 블루 스케일의 북동쪽 평원은 이미 천족들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보고받은 내용에 따르면 그러니까 쿠투스 평원이라고 불리는 북동쪽 평원에는 본토와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 대형 항구도시가 건설 중에 있다고 했다. 방어 병력들이 삼엄하게 배치가 되어 있는 모양인지 도베르만 제독의 해군도 공세에 들어갔다가 병사들만 잃고 물러났다고 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기는 했다. 천족들도 바보는 아닌 이상 본토와 연결된 해상로를 그냥 둘 리 없었다. 더욱이 블루 스케일은 해군력이 강한 나라지 않는가? 그리고 천족의 10 천사인 칸디르와 니나 다니엘레는 현재 쿠투스 평원 남쪽에 위치한 영토인 바르시온에 주둔하고 있다고 했다.
“바르시온이라면 지금 우리가 있는 곳 아니야?”
“맞아요. 바르시온의 가디온 영지예요.”
한시진의 말을 들으며 호는 지도를 펼쳐 주둔지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정보창의 내용을 토대로 천족과 아군의 군사 모형을 하나둘씩 지도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양 측의 병사들은 거의 정확하게 바르시온의 영토를 반으로 갈라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짜고 친 것처럼 반씩 차지했는데?”
“서로의 전력이 비슷한 상황이라 성을 점령했다가 빼앗기는 게 반복 될 뿐 벌써 보름 넘게 지금의 상황이 유지되고 있어요.”
한시진의 대답을 들으며 호는 지도를 바라봤다.
‘나쁘지 않은데?’
의외로 상황은 괜찮은 편이었다.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는 전황이 훨씬 좋았다. 한때 쿠투스 평원까지 천족들을 몰아붙였던 것을 생각하면 현재는 전선이 크게 밀려나 있었지만 10 천사 중 하나 그것도 니나 다니엘레가 원군으로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영토를 빼앗기지 않고 바르시온에서 그들을 막아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고무적이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반격의 시간이었다.
“우선…….”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병력의 재배치였다. 전쟁이 길어지고 참전하는 병사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초반과는 달리 많은 부대들이 전선에 배치되어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배치된 부대들이 동일한 병종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투력이 각양각색이라는 점이었다. 사기 하락이나 병력 손실, 식량의 원활하지 못한 보급 등 다양한 이유로 전투력을 100%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더러 보였다.
그래도 한시진의 기량이 나쁘지 않고 로우덴이라는 뛰어난 참모도 있던 까닭에 부대의 운용은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그들을 지휘하는 영웅들이었다.
‘신윤아가 아르카니움 아처 부대 지휘를? 왜? S랭크라고 해도 걔는 통솔력과 무력이 100을 못 넘는 애인데?’
‘왜 엘 샤난과 리아 캬베데가 후방 부대로 빠진 거지? 사냔의 통솔력과 무력은 300 에 가까운데? 로우덴 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최전선에 있어야 할 애를 후방으로 보낸 거야?’
하지만 호는 곧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에게는 영웅들의 능력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정보창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그에 반해 로우덴은 뛰어난 머리가 있기는 하지만 영웅들이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스타일의 지휘관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게다가 이번 전쟁에 출전한 영웅들 중에는 로우덴과 친분이 전혀 없는 영웅들도 있었다. 결국 호는 전쟁에 참여한 영웅들의 능력을 정리해 각자에게 새로운 임무를 맡겨야만 했다.
대다수의 지휘관이 새롭게 임명 및 전출되며 전군이 들썩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곤란한 일이 벌어졌겠지만 자신이 돌아왔다는 소식의 진위여부를 파악하고 있는 모양인지 천족들의 도발은 삼 일 전 이후로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마장기의 오너 임명도 새롭게 했다. 이렇게 파격적인 인사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군대 내에서는 아무런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림드 산맥의 패자이자 알르드를 만든 장본인인 호에 대한 충성이 다들 극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호의 명령에 따라 새롭게 이동된 영웅들은 자기 딱 맞는 옷을 찾았다는 듯 순식간에 자신의 자리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런 영웅들의 변화에 놀란 것은 다름 아닌 로우덴이었다.
“멍멍! 이 로우덴, 군략에 대해서는 그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호 님의 선견지명에 새로운 세상을 깨달았습니다!”
띵동.
-로우덴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로우덴의 지력이 5 상승합니다.
“……좋은 거겠지?”
그리고 호가 부담을 느낄 정도로 과하게 감탄을 터뜨리던 로우덴은 덤으로 지력까지 상승했다. 어쨌든 호의 복귀 이후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참모의 자리로 돌아온 로우덴은 자신의 뛰어난 지력을 한층 발휘해 천족들의 전략 전술을 간파하기 시작했다.
“기, 기습이다!”
“우왓?! 엘프들이 어떻게 여기에?!”
“모두 후퇴! 양동작전이다!”
그 덕분에 호의 병사들은 호의 복귀 이후 천족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승리를 거둬나갔다. 눈에 띄는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천족들의 손에서 요충지 몇 개를 빼앗기도 했다.
“이제 슬슬 대어를 잡아 볼까?”
그리고 한시진과 함께 전투에 나서며 호는 천족의 영웅들이 어디어디에 배치되어 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10 천사인 칸디르와 니나 다니엘레의 위치 역시 파악된 상황이었다. 10 천사라는 지위 때문인지 둘은 서로의 군대를 가지고 단독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칸디르는 후방에서 니나 다니엘레는 전방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호는 예전에 볼 수 있었던 그녀의 능력을 떠올렸다. 니나 다니엘레는 주디케이터라는 SS등급의 클래스에 700이 넘는 무력을 보유한 영웅이었다. 그리고 호의 눈동자가 자신의 손목으로 향했다. 손목에는 1 이라는 숫자가 나타나 있었다.
SS등급의 영웅이자 천족을 대표하는 10 천사라면 아무리 자신이 싫어하는 천족이라고 해도 충분히 손에 넣을 가치가 있었다.
“그럼 슬슬 미끼를 던져야겠네.”
니나 다니엘레만 포로로 잡으면 그녀를 굴복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리기는 하겠지만, 라헬에 대한 신앙심만 꺾으면 나머지는 오너 시스템이 알아서 해 줄 터였다.
* * *
“아무래도 윤호라는 인물의 생환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아요. 윤호의 인상착의를 잘 알고 있는 정보원이 몇 번 이나 전장에서 그를 목격하기도 했고요.”
“확실히 적들의 대응도 달라졌지.”
칸디르의 말에 니나 다니엘레가 자신의 검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는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윤호. 그의 군대로 인해 블루 스케일을 점령하겠다는 자신들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블루 스케일을 점령하고 양쪽으로 모에드 왕국을 압박하겠다는 작전 역시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 여파로 아아리스 성국과 모에드 왕국과의 전쟁은 그 흐름이 이상해지고 있었고, 8 왕국의 맹주나 다름없는 골든 크로우와의 전쟁 또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림드 산맥의 패자라 불리는 그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다.
‘대체 어떤 녀석이지?’
여신 라헬은 소환자들이 이 세계의 혼란을 끝낼 수 있는 존재라고 했다.
하지만 니나 다니엘레는 가장 가까이서 여신 라헬을 섬기는 10 천사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그 말에는 동의를 할 수 없었다. 이제껏 그녀가 만났던 소환자들은 단 한 명도 그녀의 관심을 끌기는커녕 천족의 일개 병사만도 못한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
니나 다니엘레의 눈동자가 칸디르의 뒤쪽에 자리를 잡은 남성에게 향했다.
소환자 박상민. 4회 차까지 소환이 이뤄진 지금 칠십 명에 가까운 천족의 소환자 중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소환자였다. 하지만 니나 다니엘레는 박상민의 능력이 그리 대단치 않다고 생각했다. 전장에서 목격했던 그는 템플 나이트라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피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윤호라는 인물은 달랐다. 일단 그는 다른 소환자와는 달리 혼자가 아니었다. 자신만의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도 한 지역의 패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을 정도였다.
“맞아요.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니나 다니엘레. 그가 이끄는 군대는 이제까지 만났던 군대와는 전혀 다른 군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칸디르가 경각심을 담아 말했다. 니나 다니엘레와는 달리 그녀는 호가 이끄는 군대와 직접 마주친 경험이 있었다. 온몸에서 여러 색의 빛을 내뿜던 실버 문들이 로얄 소벨리온들의 방어를 두부 가르듯 잘라내는 모습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렇군.”
그런 칸디르의 경고에 니나 다니엘레는 다소 놀랍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윤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지 오래였다. 어디까지나 그 역시 소환자에 불과하다는 게 그녀의 결론이었다.
‘소환자들이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지 고작해야 4 년.’
그 짧은 시간 동안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실버 문의 등장은 조금 충격적이었지만 니나 다니엘레는 그게 호가 아니라 그의 휘하에 있는 엘프나 수인 영웅들의 존재로 달성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호가 없을 당시 군대를 지휘하던 로우덴이라는 수인족의 계책은 몇 번이나 그녀의 허를 찔렀을 정도로 대단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런 니나 다니엘레가 호와 마주친 것은 그로부터 나흘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였다.
스아아아아아!
이른 새벽.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음습한 기운과 함께 짙은 안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수많은 언데드들이 니나 다니엘레가 이끄는 천족의 군대를 가로막았다. 주위를 가득 메운 언데드들의 수는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았다.
“크아아악! 아악!”
“적이다! 언데드 들이다!”
적습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병사들의 비명이 주둔지에 울려 퍼졌다.
“대체 어디서?”
언데드들의 등장에 잠에서 깨어난 니나 다니엘레가 재빠르게 자신의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디온 성에서 대규모의 병력이 출진했다는 소식을 받고 병사를 움직이고 있었다.
실제로 두 개의 마장기 편대가 그녀 휘하에 있는 부대를 급습했고, 지휘관이 사망할 정도의 큰 피해를 입기도 했었다.
‘설마?!’
잠깐 한 수인의 얼굴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떠올랐지만, 곧 니나 다니엘레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죽음의 존재들이 마족도 아니고 수인의 명령을 받고 움직일 리 없었다. 또한 자신들을 노린 것도 아니게 분명했다.
이렇게 많은 수의 언데드들이 움직인다는 것을 정찰병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모두의 시선을 피해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결국 이들을 마주친 건 재수가 없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더욱이 이 주변은 계속된 전쟁으로 수많은 목숨이 희생된 전장. 언데드들이 등장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