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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29화 (229/522)

# 229

리그너스 대륙전기 229

“빌어먹을 날개 녀석! 이번에는 박살을 내주겠다!”

화이트 윙의 등장에 한시진이 크게 소리쳤다.

그녀와 화이트 윙과의 전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자신의 연인이었던 호의 복수를 위해 한시진은 데스 사이드를 이끌고 미친 듯이 전투를 치러나갔고, 자신들의 마장기를 무참하게 박살 내는 그녀의 앞을 10 천사가 가로막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만난 서로는 몇 번이나 전투를 벌였지만 제대로 된 승패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의 전투 결과는 데스 사이더의 판정승이었다.

연검이라는 특수한 공격에 익숙해진 한시진이 칸디르를 몰아붙이며 화이트 윙의 목을 잘라낼 뻔했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천족 마장기 편대의 방해로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이번에는 결코 놓칠 생각이 없었다.

콰아아아아!

한시진이 마장기를 움직였고, 데스 사이더의 마력회로가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콰지직!

곧바로 데스 사이더의 발이 지면을 박찼고, 그대로 화이트 윙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한시진은 움직이기 시작하는 화이트 윙의 행동 하나하나를 머릿속으로 저장하기 시작했다. 까다로운 무기인 연검의 움직임에 대한 예측 또한 빼놓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상대에게 데미지를 먹일 수 있는 방법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콰앙! 쾅! 콰카캉!

A등급 마장기들끼리 격돌은 무식할 정도의 충격파를 만들어냈고, 피아를 가리지 않고 근처에서 전투를 벌이던 병사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그렇게 데스 사이더와 화이트 윙이 격돌하는 동안 다른 전선에서도 마장기들끼리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우리도 한 번 놀아볼까?”

“호인족의 무서움을 보여주마! 날개 달린 녀석!”

“호 님을 위하여!”

티거알리카에 탑승한 아쉬카로트와 윈드 라이더에 탑승한 엘 아스린이 10 천사 중 하나인 니나 다니엘레와 격돌한 것이다. 그렇게 블루 스케일의 한 지역에서 양 군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전투를 벌이고 있을 무렵 천족의 포위망에서 도망친 호는 멍한 표정으로 바위로 만들어진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흐아암. 호. 이제 슬슬 나갈 때가 되지 않았나?”

그런 호를 향해 브로리가 하품을 하며 지루하다는 듯 기지개를 폈다. 그런 브로리의 주변으로 박살이 난 뼈다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여기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한 달은 넘은 거 같은데…….”

“벌써 그렇게나 되었나?”

브로리의 대답에 호는 살짝 놀라며 고개를 주억였다. 동물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는 수인족의 말이니 틀리지는 않을 터. 예상보다도 훨씬 많은 시간이 흘러 있었다.

현재 둘이 머무르고 있는 장소는 어둠의 미궁이라 불리는 C등급 던전이었다. 스켈레톤 시리즈와 듀라한 등이 주로 나타나는 이 던전은 미궁이라는 말처럼 굉장히 복잡한 지형으로 이루어진 장소였다. 당연히 공략본을 가지고 있는 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덕분에 천족들은 미궁 안으로 들어간 호의 행방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그들과는 상극이나 다름없는 언데드 몬스터들이 공격해 온 탓에 천족들은 큰 피해를 입구 던전의 밖으로 물러나야만 했다. 물론, 호를 놓칠 수는 없다는 생각인지 던전의 입구에 여러 겹의 포위망을 구축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내가 바보처럼 그리로 나갈 리가 있나.’

어둠의 미궁은 입구가 여러 개 있는 던전이었다. 그들의 영토에 있는 던전도 아닌 블루 스케일의 던전에 대한 정보를 천족들이 전부 파악하지는 못했을 터. 하물며 그중 두 개의 입구는 김유진이 투항했던 공성전이 벌어진 성 근처로 이어지고 있었다.

“슬슬 나갈 때가 된 것 같군.”

“좋은 판단이다, 호. 빨리 나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방심하지 마. 천족들의 무기가 먼저 날아올 지도 몰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딱히 큰 걱정이 들지 않았다. 전장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천족의 포위망에 갇히기 전 디르시나로 보냈던 서신을 생각하면 블루 스케일이 무력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특성화가 완료된 영지의 생산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던전의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을 한 지 나흘.

“그럼 그렇지.”

브로리와 함께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언데드들을 성불시키며 어두컴컴했던 던전에서 빠져나온 호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호의 눈으로 블루 스케일의 깃발이 걸려 있는 성이 보이고 있었다.

“로우덴과 한시진이 잘 해주고 있는 모양이로군.”

호가 윙드 훗사르를 통해 디르시나로 보낸 서신에는 전황의 불리함과 영지의 총동원령을 알리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천족들이 자신들이 자랑하는 10 천사 중 둘을 보낼 정도로 블루 스케일 점령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지만 자신 역시 10 천사 전부도 아닌 고작 둘을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허투루 영지를 키우지는 않았다.

더욱이 그들의 영지를 점령하는 것도 아닌 방어전이었다. 게다가 공략본은 물론이고, 팀 심시티와 공돌이도 있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엔딩을 봤던 플레이어의 노하우를 우습게보면 곤란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블루 스케일의 성은 그렇게 이제껏 이 세계에서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던 림드 산맥의 결과물 이었다. 그들이 천족의 공세를 잘 막아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으으으.”

그 순간 괴로워하는 신음이 호의 귓가로 흘러들었다. 브로리가 낯을 찡그러고는 자신의 배를 만지고 있었다.

“배고파.”

“……어. 그래.”

그리고 조그마한 외형과는 달리 브로리는 상당한 대식가이자 미식가였다.

어둠의 미궁에서 생활하는 동안 식량은 부족하지 않았다. 전투 식량이라 부르는 비상식량이 마장기에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 전투 식량이 브로리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의 음식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전투 식량을 꺼내먹었던 첫 날, 그녀는 이런 음식 따위를 나에게 먹으라는 거야? 라며 식량 봉지를 집어던졌다. 그러고는 전투 식량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덕분에 전투 식량으로 허기를 메웠던 호와는 달리 그녀는 어둠의 미궁에서 생활하는 동안 최소의 음식만을 입에 대었다. 말 그대로 죽지 않기 위해 먹을 정도의 양이었다.

어둠의 미궁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는 스켈레톤과 구울과 같은 언데드들이었다. 당연히 맛있는 음식 아이템이 나올 리도 없었다.

‘전투 식량이 뭐가 어때서?’

퀭한 모습의 브로리를 보던 호는 자신의 가슴팍에 보관되어 있는 전투 식량 봉지를 툭툭 두드렸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조기 튀김, 맛이 없기로는 역대 급에 속하는 해물 비빔 소스캔, 똥국이라 불리는 된장국과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수준과는 하늘과 땅 그 이상의 맛 차이를 보이는 짜장, 카레밥등의 군대 식단을 생각하면 리그너스 대륙에서 만들어지는 전투 식량은 진심 최상급의 식단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이었다.

“그럼 빨리 성으로 가자.”

어둠의 미궁 내에서 몇 번이나 브로리의 히스테리를 경험했던 호는 말과 함께 블루 스케일의 성으로 걷기 시작했다.

호의 마장기였던 엑스칼리버는 천족의 추격을 피하던 도중 수리가 불가능 할 정도로 파괴된 탓에 어둠의 미궁 어딘가에 버려졌다. 다행이 브로리의 전용기인 골든 스테이트는 무사했다. 하지만 마장기를 운용할 마력이 전부 떨어진 탓에 골든 스테이트는 현재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우버다인에 봉인되어 있었다.

그렇게 두 남녀가 걸음을 옮길수록 주변의 풍경도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8 월의 날씨였지만 호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는 건 불에 탄 나무둥지와 말라버린 냇가, 거뭇거뭇한 대지뿐이었다.

“이거 얘네들. 완전히 망했는데?”

천족의 도발로 인해 시작된 전쟁은 블루 스케일의 영토에 큰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올해 식량의 가격은 폭등할 게 틀림없어 보였다. 블루 스케일이 무사히 천족들을 몰아낸다 하더라도 전쟁의 화마에 휩싸였던 영토를 복구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돈 역시 필요했다. 결국 한동안 블루 스케일은 전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성에 도착해도 제대로 된 음식이 없다는 것에 내 손목을 건다. 쫄리면 뒈지시던가.”

“……젠장.”

호의 농담 아닌 농담에 브로리가 짜증 섞인 손놀림으로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 역시 주변의 상황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제대로 된 음식은커녕 굶주리고 있는 사람이 없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난 마음이 너그러우니까 그래도 입맛에 맞을 만한 괜찮은 음식이 성에 남아 있기를 빌어줄게. 혹시 전투 식량 필요하면 말해.”

“호.”

“응?”

“한 마디만 더 했다가는 품속에 있는 전투 식량 대신 주먹을 입에 쳐 넣어주겠어.”

브로리의 으슥한 목소리에 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조금만 더 놀렸다가는 정말로 주먹을 먹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도 이빨 정도는 가볍게 부술 수 있는 바위주먹이었다.

어둠의 미궁에서 생활하는 동안 호에 대한 브로리의 호감도는 전에 비해 상당히 높아져 있었다. 둘이 함께 몬스터를 상대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호감도 이벤트가 계속해서 생겨난 덕분이었다.

‘황금 본능이라는 특성이 영 거슬리긴 해도…….’

그녀의 행동을 보면 딱히 배신을 할 것 같지는 않앗다. 게다가 그녀는 시시때때로 자신에게 짐승신의 축복을 내려달라고 빌었다. 그것 때문에라도 그녀는 자신의 곁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생각보다 더 엉망인데?”

“우리가 어둠의 미궁에서 생활하던 동안 몇 번의 전투가 더 벌어진 모양이로군.”

블루 스케일의 깃발이 걸려 있는 성의 외관은 엉망이나 다름없었다. 성문은 반 이상이나 부서져 있었고, 여기저기가 움푹 파여 있는 성벽은 격렬했던 전투의 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성의 감상을 뒤로 한 채 둘은 성 내로 걸음을 옮겼다.

성 내에는 피난민들과 함께 나이트와 레인저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갑옷에 새겨져 있는 백조의 문장이 그들이 블루 스케일의 병사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계속된 전쟁으로 지친 모양인지 다들 표정이 거무죽죽했다. 다행히 보급은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인지 상상했던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인간과 수인이로군.”

“윤호의 지원군이 또 온 건가?”

“설마. 벌써 사십만의 대군이 주둔하고 있는 판국인데 거기서 또 병사들이 늘어난다고?”

림드 산맥의 수인들이 자신들을 돕고 있어서인지 나이트와 레인저들은 호와 브로리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네들끼리만 쑥덕거릴 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굳이 검문검색을 할 생각도 없어보였다.

“일단은 영주관으로 가자.”

호가 말했다. 브로리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지만 일단은 자신의 귀환을 알리는 게 급선무였다. 영주관의 위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영주관이요? 이 대로를 따라가면 그 끝에 영주관이 있어요.”

그렇게 대로를 통해 영주관에 도착한 호는 드디어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과 함께 영주관의 문을 밀었다.

“뭐지? 전쟁 때문에 병사들이 부족한 건가?”

영주관을 지키는 호위병이 없다는 사실이 조금 의아하기는 했지만 예상외로 문은 아무 저항 없이 스르르 열렸다.

그렇게 호가 영주관 안으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 귀족으로 보이는 남성의 배웅을 받는 견인 영웅 하나가 호의 눈에 들어왔다. 엘프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견인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문을 열고 들어선 호와 견인 영웅의 눈이 운명처럼 마주쳤다.

“……멍?”

“응?”

얼굴 한쪽에 외알 안경을 낀 익숙한 얼굴의 견인이 호를 바라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성에 주둔해 있는 블루 스케일의 귀족들과 천족들을 물리칠 전술을 논의하다가 본대가 주둔하고 있는 주둔지로 복귀하려던 중이었다.

“니,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놀란 것은 호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의 견인은 ‘세계를 손아래에 둔 책사–제갈공멍’이라는 거창한 클래스를 보유하고 있는 자신의 SS등급의 영웅, 로우덴이었다.

“……멍멍. 요즘 과로를 너무 많이 했나? 헛것이 보이는 것 같은데. 아니면 내 충성심이 하늘에 닿아 창조신 리그로우와 세리네스님께서 닮은 사람을 보내 준 것인가? 호 님은 이미 돌아가셨는데.”

그리고 호를 보며 인상을 쓰던 로우덴이 자신의 뭉툭한 손가락으로 이마를 꾹꾹 눌렀다. 그 때였다.

“로우덴 셰필드? 마침 잘 만났다. 이 몸에게 맛있는……!”

호의 뒤에서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색 머리카락을 나부끼는 소녀의 정체를 확인한 로우덴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천족들의 포위로 인해 실종된 인물은 둘. 호와 브로리였다.

그런데 브로리가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 최강 로리 브로리! 그렇다면?!”

로우덴의 시선이 호에게 향했다. 그러고 보니 낯선 남자에게서 풍기는 체향이 영주님의 그것과 꼭 닮아 있었다.

그 순간 두 발로 서 있던 로우덴의 상체가 앞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손에 들고 있던 서류는 이미 하늘 위로 던져지고 없는 상황.

그렇게 그의 손 아니 앞발이 땅을 딛는 순간 로우덴의 몸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영주니이이임!”

충성스러운 견인 영웅의 외침이 영주관내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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