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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28화 (228/522)

# 228

리그너스 대륙전기 228

“화살이다!”

천족의 궁수들이 발사한 화살들이 게릴라 부대를 향해 날아들었다. 뛰어난 검술을 지닌 병사답게 실버 문들은 어렵지 않게 화살을 쳐냈지만 그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화살의 사정거리가 닿을 만큼 천족의 병사들이 가까이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크윽.”

엑스칼리버의 시야를 통해 천족의 마장기가 눈에 들어온 것을 확인한 호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현재 이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천족의 영웅이 누구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대응이 굉장히 빨랐다.

“호 님! 피하셔야 합니다!”

어느새 근처까지 다가온 천족 병사의 목을 정확하게 베어낸 실버 문이 호를 소리를 질렀다. 자신들은 이곳에서 죽어도 상관없었지만 호는 아니었다.

“호 님을 지켜라!”

어느새 접근한 로얄 소벨리온 부대를 향해 열 명 남짓한 실버 문들이 달려들었다. 달의 여신을 모시는 전설의 병사답게 실버 문들은 로얄 소벨리온의 단단한 방어에 틈을 만들어내고는 그들 사이로 진입 미친 듯이 자신들의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우리도 가자!”

스무기 남짓으로 이루어진 윙드 훗사르 부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의 명령이 떨어진 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천족의 궁병대를 목표로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다섯 밖에 되지 않은 리치들 역시 마법을 사용해 천족들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종족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려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며 호는 강하게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호! 빨리 피해야 한다! 어떻게든 본대로 합류해야 해!”

브로리의 통신에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수는 없었다. 그 순간 엑스칼리버의 MLC 가 푸른빛을 토해냈다. 목표는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천족의 마장기였다.

콰아앙!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고 있던 엔젤급 마장기가 MLC 에 얻어맞고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면으로 추락했다.

“모두 포위망을 뚫고 도망친다! 다들 본대가 위치한 페멜 성에서 만나자!”

마장기의 추락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엑스칼리버의 발이 크게 움직였다. 그 옆으로 브로리의 골든 스테이트가 엑스칼리버를 호위하는 모양새로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 * *

“뭐라고요?!”

한시진이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반응에 실버 문 하나가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실버 문이 전해 온 소식에 충격을 받은 다른 영웅들 역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전해들은 소식은 바로 윤호의 행방불명이었다.

‘서, 설마……!’

머릿속으로 스멀스멀 떠오르는 불안한 생각에 한시진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실버 문은 호가 행방불명되었다고 했지 사망했다고는 하지 않았다. 살아 있을 가능성은 아직 충분히 있었다.

“윤호 님께서는 천족들의 진군을 늦추기 위해 직접 소수의 병력만을 이끌고…….”

실버 문의 보고를 들으며 한시진은 뻐근해진 이마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전후사정을 들어보니 수성을 하던 블루 스케일의 군대가 다짜고짜 천족의 군대를 공격, 전멸을 당하면서 다섯 개나 되는 성을 빼앗겼고 그로 인해 호가 고립되어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현재 호는 천족의 영토에 홀로 남아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루하루가 지체되면 지체될수록 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당장 병사들을 움직여야 해.’

블루 스케일의 멍청한 행동에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올랐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호의 안전이었다. 생각은 길지 않았다.

“로우덴.”

“가, 감히 주인 아니 영주님을! 목표했던 만큼의 숫자는 아니지만 당장이라도 출진할 수 있다. 멍멍.”

현재 디르시나에는 실버 문을 비롯해 훈련을 마친 궁병, 기병, 마법병들로 이루어진 칠만의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목표는 십만. 앞으로 삼만의 병사들과 디르시나로 오고 있는 영웅 및 마장기들이 전부 도착하면 출진을 할 예정이었지만 한시가 급했다.

“곧바로 출진 준비를 하도록 하죠.”

“크르릉. 알았다. 호 님을 위험에 빠뜨린 녀석들의 뼈를 모조리 으깨주지.”

대답과 함께 로우덴이 몸을 돌렸다.

한시진과 로우덴을 포함해 자신의 영주가 위험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한 영웅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 결과 호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이 디르시나에 전해진지 불과 열두 시간 되지 않아 한시진이 이끄는 선발대가 블루 스케일의 영토를 향해 출진했다.

A등급 마장기 데스 사이더를 포함해 릴라릴라 한 기와 카니앗산 세 대가 포함된 사 만의 병력이었다. 그리고 사흘 뒤 A등급 마장기 티거알리카와 윈드라이더 한 대가 배치된 육 만의 병력이 북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블루 스케일로 향하는 호의 병력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특성화 개발이 모두 끝난 도시로만 이루어진 림드 산맥의 저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각 도시마다 세워진 스무 개의 병영은 밤이 되어도 불이 꺼지지 않았고, 대장간에서는 연신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한시진과 아쉬카로트가 지휘하는 병력이 북상한지 보름 뒤, 로우덴이 지휘하는 십만의 병사와 C등급 마장기 카니앗산 열 대가 또 다시 블루 스케일로 향했다.

총 합쳐서 이십만에 가까운 대군이 전쟁에 참여한 것이다. 그것도 A랭크 궁병인 아르카니움 아처를 제외하면 모두가 S랭크 이상의 정예병들이었다.

그리고 호의 군대가 계속해서 국경을 통해 넘어오고 있다는 소식은 곧바로 블루 스케일의 수도 스완으로 전해졌다.

“아니, 또 지원군이 도착한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소환자가 그렇게나 많은 병사들을 동원할 수 있단 말인가?”

“허 참. 윤호라는 소환자의 병사가 정말로 S랭크 병종들로 이루어진 게 사실인가?”

자신들의 영토를 침입한 천족들을 막기 위해 넘어오는 병사들이지만 점점 그 수가 늘어날수록 스완의 귀족들은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대체 림드산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증에 답답할 지경이었다.

일, 이만도 아니고 벌써 삼십 만에 가까운 대군이 블루 스케일에 주둔하고 있었다. 세이라 클리퍼드 여왕 역시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만약 호의 군대가 딴 마음을 품는다면?’

자신들의 운명은 거기서 끝이었다. 다행히 호라는 소환자는 블루 스케일의 위기를 이용해 자신의 욕심을 채울 정도의 소인배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천족의 지원군이 도착해 전황이 불리해진 상황에서도 자신들을 위해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전투를 치러나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주 전에 벌어졌던 사고를 떠올린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윤호의 실종.

직접 지원군을 이끌고 원군으로 온 림드 산맥의 패자가 천족과의 전투 중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

단순히 이게 전부였다면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전쟁 중 일어나는 불행한 사고 중 하나였을 테니까.

하지만 윤호의 실종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것이 블루 스케일의 멍청한 귀족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스완은 난리가 났다. 크게 친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을 돕기 위해 찾아온 친구의 뒤통수를 다짜고짜 날려버린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알고 보니 소드 마스터에 가까운 검술을 보유한 친구였다.

“전선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죠?”

“스카 평원을 기준으로 일진일퇴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천족들의 동태는요?”

“또다시 추가 병력이 도착했다는 보고입니다. 게다가 10 천사 중 둘이 모습을 드러낸 상황에서 또 다른 한 명의 10 천사가 전선으로 파견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천족의 공세는 점점 더 본격화되고 있었다. 쉽사리 블루 스케일을 점령할 야욕을 포기할 생각은 없는지 천족들은 해상을 통해 계속해서 병사들을 수송하고 있었다.

이미 북쪽 평원에 세워진 천족의 주둔지는 요새화가 끝난 지 오래였다.

호의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병사들이 호의 복수를 부르짖으며 전선으로 향하고 있었다. 덕분에 전쟁의 스케일이 확연하게 커져 버렸다. 호와 천족. 이 두 세력이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가 하필이면 블루 스케일의 영토라는 점이었다. 전선이 계속해서 넓어지면서 블루 스케일의 영토는 그야말로 잿더미가 되고 있었다. 수많은 백성들이 전쟁의 포화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고, 성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후우. 최악의 상황이로군요.”

세이라 클리퍼드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녀에게 보고를 올리는 귀족 영웅은 그녀의 입에 담긴 한숨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행이도 도베르만 제독이 천족의 항구 중 두 곳을 파괴했다고 하니 이제는 천족들도 자기네들 마음대로 병력을 수송하지는 못할 겁니다. 해상에서 우리의 해군을 만난다면 모두가 물고기 밥이 되어버릴 테니까요. 하하!”

“맞습니다. 이제는 소환자의 병사들이 우리의 영토를 침입한 천족들을 몰아내기만 하면 모든 게 잘 해결될 겁니다.”

“그렇군요…….”

자신만만한 귀족들의 목소리에 세이라 클리퍼드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상황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자신들의 나라에 침입한 외적을 다른 세력의 군대가 막아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과연 그들이 마장기의 제작 기술과 토리아 항구를 넘겨주는 것만으로 만족할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며 세이라 클리퍼드는 손끝으로 자신의 눈자위를 꾹꾹 눌렀다. 아무래도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좀 더 필요할 것 같았다.

* * *

콰드드득!

데스 사이더의 거대한 낫이 상대 마장기의 갑주를 찢어버렸고, 곧이어 요란한 비명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마장기에 탑승한 천족 영웅이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다.

“감히 호 오빠를! 모조리 죽여주겠어!”

그렇게 엔젤 급 마장기 한 대를 박살 내버린 한시진은 거침없이 천족 마장기들을 향해 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 악마가 온다!”

“모두 긴장해! 상대는 10 천사님들 수준의 엘리트다!”

이미 몇 번의 마장기전을 통해 천족들 사이에서도 검은 악마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진 그녀였다.

그런 데스 사이더의 앞을 순백색의 화려한 날개를 지닌 마장기가 가로막았다. 천족의 A등급 마장기인 세인테르 등급 마장기였다.

하지만 모습을 드러낸 마장기는 평범한 세인테르 등급 마장기가 아니었다.

화이트 윙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 마장기는 천족의 10 영웅 중 하나인 칸디르의 전용기였다.

“죽어랏!”

칸디르의 고함과 함께 화이트 윙이 휘두른 검이 이상한 각도로 휘어지며 데스 사이더의 조종석 부근을 관통할 듯 찔러 들어갔다.

낭창낭창 휘어지는 게 특징인 연검이라 불리는 무기였다.

연검은 궤도를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이리저리 휘어지는 특수성으로 인해 공격을 막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

덕분에 칸디르의 마장기 조종술은 극에 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였다.

카카카캇!

하지만 검 끝이 조종석에 닿기 전 데스 사이더의 거대한 낫이 화이트 윙의 휘어지는 검을 세차게 쳐냈다. 마치 당연히 그곳을 노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움직임이었다.

“큿!”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스 사이더의 모습에 칸디르는 흐트러진 마장기의 자세를 바로 잡으며 상대를 노려봤다.

호의 세력에 속한 영웅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진 검은색의 데스 사이더는 홀로 자신들의 마장기를 여덟 기나 파괴한 괴물이었다. 어떻게 저런 실력을 보유한 영웅이 소환자의 휘하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찌되었든 상대는 10 천사인 그녀조차도 방심할 수 없는 실력자였다.

하지만 칸디르는 상대 역시 호와 동일한 소환자이며 과거 대한제국이라는 그녀의 나라에서 화랑기사단장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더욱이 한시진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실력을 인정받아 제국의 기사단장 직을 맡았던 천재 중의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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