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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26화 (226/522)

# 226

리그너스 대륙전기 226

“침착. 침착해야 돼.”

그렇게 조금만 앞으로 달리자 천사와 엘프들이 한데 엉켜 싸우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검을 휘두르는 엘프와 그것을 막으려는 갑옷 입은 천사. 천사들의 집중 공격에 자신의 말을 잃은 윙드 훗사르나 그런 윙드 훗사르의 기다란 장창에 꼬지처럼 꿰여 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병사. 주문을 외우고 있는 사제와 손을 흔들어 그런 사제의 목숨을 빼앗은 리치의 모습까지. 비릿한 피 냄새와 함께 끔찍한 전투의 장면이 그녀의 눈동자에 아로새겨지고 있었다.

‘침착, 침착. 씨발……. 침착하라고.’

속으로 욕을 지껄이며 유진은 마음을 다잡았다. 이 세계에서 활동했던 경험 때문일까? 전투의 광기를 이기지 못하고 패닉 상태에 빠지는 꼴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싶지는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더욱 말이었다.

“그래.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어.”

유진은 빠르게 주위를 훑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눈에 실버 문 부대의 맹공에 괴멸되어가는 로얄 소벨리온 부대가 보였다.

‘저기다!’

생각과 함께 유진의 발이 땅을 박찼다. 가볍게 바람이 일 정도의 빠른 속도였다.

“하압!”

그렇게 전멸 직전의 로얄 소벨리온 부대에 가까워지자 도착한 유진은 기합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실버 문과 로얄 소벨리온이 대치하는 장소 한 가운데로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적?!”

갑작스런 유진의 등장에 실버 문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장 가까이에 있던 실버 문 하나가 그대로 유진을 향해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히익?!”

잔상이 느껴질 정도로 번개 같은 실버 문의 공격에 유진은 화들짝 놀라며 주먹에 마력을 담아 실버 문의 검을 쳐냈다. 그리고 손이 찌르르 울리는 엄청난 위력을 느끼며 속으로 울상을 지었다.

‘아무리 랭크가 높다고 해도 쟤는 일반 병사고 나는 영웅인데?!’

SSS랭크에 각종 버프로 강화된 병사라고 하더니만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스피드였다. 제대로 싸운다고 해도 실버 문 하나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어째서 로얄 소벨리온을 비롯한 천족들의 병사들이 그들을 상대하며 눈 녹듯 녹아내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상치 않은 녀석이다!”

주위의 실버 문들이 유진을 바라보았다. 이대로라면 수십의 실버 문들이 그녀를 덮칠 기세였다. 그 순간이었다.

“하압!”

“크헉?!”

자신에게 집중된 실버 문의 시선에 위기감을 느낀 유진이 몸을 움직였고, 이어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로얄 소벨리온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렇게 쓰러진 로얄 소벨리온은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몸을 꿈틀하다가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무슨?!”

“서, 설마! 배신이냐! 빌어먹을 소환자!”

“저 년을 먼저 죽여!”

갑자기 아군을 공격하는 유진의 행동에 로얄 소벨리온들이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북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고, 유진의 주먹에 가격당한 로얄 소벨리온들은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S랭크 병사라고는 하지만 실버 문들을 상대하면서 큰 부상을 입거나 지친 그들은 유진의 주먹을 막아내지 못했다.

“뭐, 뭐지?”

“정신이 이상하게 되는 약이라도 먹은 건가?”

눈앞에서 펼쳐진 황당한 상황에 실버 문들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갑자기 나타난 천족 영웅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실버 문들의 의문은 곧바로 풀리고야 말았다.

“항복. 저 항복할게요. 그러면 목숨은 살려주는 거죠?”

갑자기 양손을 들어 올리는 유진의 행동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실버 문 하나가 머뭇머뭇하더니만 고개를 끄덕였다.

* * *

림드 산맥의 패자 윤호.

그가 블루 스케일을 도와 이번 전쟁에 참여했을 때만 하더라도 윤호를 주목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심지어 지원 요청을 보냈던 블루 스케일의 귀족들 역시 반신반의할 정도였다. 수인들을 상대로 몇 번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고, 실버 문이라는 SSS랭크 병사의 양성에도 성공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지만, 소환자라는 색안경이 그의 활약을 무자비하게 깎아내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전부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림드 산맥에서 출진한 윤호의 군대는 블루 스케일을 침공한 천족의 군대를 파죽지세로 몰아붙였고 모조리 승리로 장식했다. 평원에서 벌어진 대회전, 공성전등 큼지막한 전투가 여러 장소에서 벌어졌지만 단 한 번도 패배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천족의 군대가 어중이떠중이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무려 10 천사 중 하나인 칸디르가 지휘하는 군대였다. 그리고 칸디르를 상대로 림드 산맥의 패자는 오로지 힘으로 그녀를 박살 내고 있었다.

그런 윤호의 활약에 칸디르는 자신이 점령했던 블루 스케일의 영토 대다수를 도로 내어 놓아야 했다. 기껏해야 남은 것은 그들이 처음 상륙했던 평원에 만들어 놓은 최후의 요새뿐이었다. 그리고 윤호가 그 요새를 점령한다면 블루 스케일에서 천족들을 모조리 몰아내게 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칸디르도 곱게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10 천사라는 명성에 먹칠을 한 셈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지원 병력이 때맞춰 수송 함대를 통해 도착했다. 생각보다 강력한 윤호군의 공격에 잃은 것은 많았지만 결국 목표했던 바를 달성한 것이다.

그렇게 10만에 가까운 병력이 다시 충원되었지만 그보다도 더욱 고무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다수의 마장기 편대가 합류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화이트 윙이라는 이름을 지닌 칸디르의 전용기도 있었다.

천족의 반격 준비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번에 도착한 수송 함대에는 칸디르와 동일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10 천사 중 한 명이 함께해 있었다. 인간들의 조그마한 소규모 왕국을 점령하기 위해 천족의 10 천사 중 두 명이 한데 모인 것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니나 다니엘레. 이름보다는 심판관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그녀는 천족의 수많은 영웅들 중 전투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영웅이었다.

<영웅 정보(Status)>

1. 이름 : 니나 다니엘레

2. 성별 : 여(1798)

3. 종족 : 천족

4. 소속 : 계시의 목소리

5. 레벨 : 762

6. 직업 : 주디케이터(SS)

7. 세부능력

통솔 : 722 / 750(SS)

무력 : 737(+100) / 750(+100)(SS)

지력 : 217 / 300(A)

정치 : 171 / 300(A)

매력 : 257 / 300(A)

8. 특성 : 광휘의 빛, 검술전문가, 빛의 용기, 용맹의 함성.

9. 스킬

<광휘의 빛> SS랭크.

천족의 10 천사 중 하나인 니나 다니엘레는 천족 중에서도 손꼽히는 위대한 영웅입니다. 그녀는 영겁의 세월보다도 오래되었다고 알려진 백열의 검을 휘두르며 광휘의 빛이라 불리는 여신 라헬의 힘을 부여받아 라헬의 뜻을 거스르는 모든 존재를 처단합니다.

-효과 : 여신 라헬에 대한 믿음이 증가하며 그녀가 지휘하는 천족 병사들의 모든 수치가 50% 씩 상승합니다.

-효과(2) : 광휘의 빛에 영향을 받는 병사들은 디버프 스킬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효과(3) : 스킬을 보유한 영웅의 무력이 100 상승합니다.

<용맹의 함성> A랭크.

수많은 천족들 중 계시의 목소리를 따르는 천족들은 적들을 상대로 전투에서 물러서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고양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데, 용맹스러움이 담긴 함성 또한 그중 하나입니다.

효과 : 스킬을 발동한 순간, 30분 동안 시전자의 무력이 50 상승합니다.

“역시 그냥 물러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호는 눈앞으로 나타난 영웅의 정보를 보며 쩝하고 입맛을 다셨다.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희미하게만 보이는 천족의 요새에 대열해 있는 수많은 병사와 마장기들. 그리고 해안가를 빽빽하게 채운 군선들은 천족의 저력이 얼마만큼 대단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와 함께 니나 다니엘레, 호가 이 세계에 소환된 이후 마주친 영웅 중 가장 뛰어난 능력을 지닌 영웅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물론, 리그너스 대륙에는 여신 라헬이나 마왕 쉐르난비체와 같은 규격 외의 괴물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호가 직접 상대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아니지. 브로리가 더 강한가?’

어쨌든 니나 다니엘레의 정보를 보며 호는 자신의 옆에 바짝 엎드려 있는 수인 소녀를 바라봤다. 무력만 놓고 보면 천족의 영웅에 비해 브로리가 더욱 뛰어났다. 하지만 통솔을 비롯한 전체적인 능력치는 니나 다니엘레의 압승이었다. 일대일이라면 브로리가 이길 수도 있겠지만 군대끼리의 전투라면 니나 다니엘레가 가볍게 브로리를 누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무력도 큰 차이가 없구나. 용맹의 함성을 발동하면 충분히 니나 다니엘레가 비벼볼 수 있겠네.”

“비벼? 기분 나쁘게 아까부터 혼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어쨌든 천족의 지원 병력은 이미 도착한 것 같아.”

브로리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머릿속으로 브로리와 니나 다니엘레의 모의 전투를 상상하던 호는 재빠르게 손을 내저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둘을 향해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한 소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 역시 제 말이 맞죠?”

“그래.”

대답과 함께 머리를 긁적이는 호의 모습을 보며 말을 꺼낸 소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침을 삼켜 넘겼다. 그녀의 이름은 김유진. 전에 있었던 공성전 때 황당한 방법으로 호에게 투항했던 천족의 소환자였다.

이름 있는 천족의 영웅도 아니고 고작 소환자가 투항했다는 소식에 호는 그녀의 투항을 받아들이지 않고 처리를 하려고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 세계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소환자의 존재는 껄끄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환자의 이름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는 느낌과 투항한 소환자가 보유하고 있는 스킬 중에 대규모 무효화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생각을 바꿨다. 훗날 있을 진정한 싸움을 생각하면 대규모 무효화 스킬을 지니고 있는 영웅의 수는 많아도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몽크가 대규모 무효화 스킬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신기하게도 대규모 무효화 스킬을 보유한 김유진의 클래스는 마법 계열이 아니라 근접 계열 클래스인 몽크였다.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 해보고 공략본까지 가지고 있는 호가 알고 있는 지식에 따르면 몽크는 대규모 무효화 스킬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공략본을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처럼 그녀 역시 알 수 없는 이레귤러가 적용된 게 아닐까 하는 게 호의 추측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호에게 투항을 한 김유진은 자신이 천족의 소환자로 생활하면서 보고 느끼고 알고 있었던 모든 정보들을 호에게 넘겨주었다. 그냥 툭 건드리기만 해도 호가 상상하지 못했던 희귀한 정보들이 술술 흘러나올 정도였다. 살아남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눈치 빠른 행동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정보 중 하나가 바로 천족의 대규모 지원군이 해상을 통해 블루 스케일에 상륙한다는 정보였다.

“어떻게 그런 정보를 알고 있던 거지?”

“박상민이라는 소환자와 친하게 지냈었는데 그가 말해줬어요. 아, 박상민이라는 소환자는 1회 차 소환자고요. A등급 영웅이고, 10 천사 중 하나인 칸디르의 신뢰를 받고 있기도 해요.”

그리고 그런 김유진의 정보는 사실로 밝혀졌다. 그녀의 말을 듣고 직접 정찰을 나온 호는 새로운 영웅의 발견과 함께 천족의 전력을 낱낱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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