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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22화 (222/522)

# 222

리그너스 대륙전기 222

마장기들끼리의 전투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릴라릴라, 키마라이가 합세해 브로리를 도와 천족의 마장기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고, 호 역시 MLC 를 이용해 멀찍이서 상대 마장기에게 타격을 주었다.

덕분에 천족의 마장기 편대는 자신들의 동료를 잃은 채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마장기의 등급은 물론이고 오너들의 실력 역시 차이가 나는데다가 전의 전투에서 무려 여덟 기의 마장기를 잃은 탓에 수적 우위로 밀어붙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사기도 엉망이었다.

“이 녀석들!”

엔젤 가디언급 마장기에 탑승한 칸디르가 홀로 분발하며 호의 마장기들을 몰아붙였지만, 그녀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이번 전투에 참여하는 호의 마장기는 처음 전투 때보다도 늘어나 있었다.

“네놈들의 날개를 모조리 꺾어주마!”

“크로스 공작님의 원수를 갚자!”

푸른색으로 도색된 자넷과 골드 이글 편대가 천족의 마장기 한 대를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블루 스케일의 마장기사들이었다.

어떻게든 이번 전투에서 전공을 세울 무렵인지 한 기의 엔젤급 마장기를 상대로 무려 네 기의 마장기가 자신들의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칫! 후퇴한다!”

순식간에 전황이 불리해지자 칸디르의 입에서 후퇴 명령이 떨어졌다.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대로라면 전의 전투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패배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렇다면 병사들의 피해만이라도 줄여야 했다.

칸디르의 후퇴 명령은 10 천사라는 명성만큼이나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천족 병사들이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 후퇴 병력에는 천족의 병사들만 끼어 있는 게 아니었다. 천족의 소환자들도 있었다.

“이거 놀라운데? 정말로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잘 알고 있는 플레이어야. 대체 누구지? 네임드인가?”

“감탄은 나중에 하고 일단 튀어요! 상민 오빠. 실버 문에게 걸리면 빼도 박도 못하고 죽는다고!”

상민의 말에 유진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뒤쪽에서는 SSS랭크의 병사들인 실버 문과 S랭크의 윙드 훗사르가 자신들을 추살하기 위해 쫓아오고 있었다.

아직 B등급 영웅에 불과한 유진은 자신들이 자랑하는 로얄 소벨리온을 종이처럼 찢어발기는 괴물들을 상대로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감탄을 터뜨리는 상민이 곱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물며 지금은 아군이 패주하는 상황이었다. 하여튼 분위기 파악이라는 것을 모르는 남자였다.

‘칫! 경험치를 많이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전쟁에 참여했는데!’

유진은 리그너스 대륙의 2회 차 소환자로 벌써 이 세계에서 2년 넘게 굴러먹은 베테랑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선택의 신전에서 천족의 소환자로 결정된 그녀는 천사들의 휘하에서 여신 라헬에 대한 신앙심을 대가로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식들을 배울 수 있었다.

다른 소환자들이 알몸으로 이 세계에 내던져지며 영문도 모르게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 것에 비하면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런 사실을 깨달은 유진은 어떻게든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힘을 기르기 시작했다. 다행이도 이 세계에 대해 알고 도움을 주던 인물도 있었다. 옆에서 연신 감탄을 터뜨리며 발을 돌리고 있는 나사 빠진 남자가 그중 하나였다.

그의 이름은 박상민. 자신보다도 먼저 이 세계에 소환된 1회 차 소환자이자 무려 A등급 영웅으로 천사들 사이에서도 제법 인정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후우. 살았다.”

혹시 모를 기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다행이도 실버 문과 윙드 훗사르의 추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덕분에 한숨을 돌린 유진은 축축한 흙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상민이 자리를 잡았다.

더 이상의 추격은 없었지만 전투에서 패배했기 탓인지 다들 크게 지친 모습이었다.

언제나 든든했던 천족의 전사들, 로얄 소벨리온들의 눈동자에 담긴 무기력함을 본 유진이 입을 열었다.

“윤호 라는 인물. 정말로 우리와 같은 소환자가 맞아요? 뭐가 저리 무서워?”

“음. 갑작스레 실버 문과 윙드 훗사르가 등장한 것부터 이상하더니만. 역시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한 경험이 있는 플레이어가 틀림없어. 그것도 베테랑이야.”

상민의 말에 묘한 분위기가 두 남녀 사이를 휘감았다.

“이름만 들어보면 딱 대한민국 사람인데. 솔직히 말해서 믿기지 않아요. 오빠의 말대로 이 게임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와 똑같은 세계에서 온 사람이잖아요?”

“그게 왜? 너와 나도 같은 세계에서 왔잖아.”

“아니, 내 말은. 오빠는 1회 차 소환자 아니에요? 윤호 역시 1회 차 소환자일 텐데 어떻게 저런 군대를 이끌 수 있냐는 거죠.”

“뭐……. 어디서 전폭적인 지원이라도 받았나 보지.”

잠깐의 침묵 후에 상민이 입을 열었다.

그 역시 의문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상민은 1회 차 소환자로 여신 라헬에 의해 이 세계에 넘어왔을 때부터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한 경험이 있는 만큼 여러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지 결정을 내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 증거로 현재 상민은 A등급 클래스를 보유하고 있는 영웅이었다. 클래스 명은 템플 나이트.

장검과 방패를 이용해 아군을 지키는 방어 클래스이자 가벼운 보조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는 성기사였다. 같은 1회 차 소환자라도 클래스가 한두 단계나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상민의 성장은 두각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상민은 천족 내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10 천사 중 하나인 칸디르의 눈에 들 수 있었고, 이번 전쟁에서도 제17 로얄 소벨리온 부대를 맡고 있었다.

‘육상 전력이 허약하다고 알려진 블루 스케일과의 전쟁이면 백 프로 승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상민은 큰 꿈에 부풀어 있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해 본 유저라면 전쟁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경험치가 얼마나 많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이번 전쟁에 참여한 천족 소환자의 수는 적지 않았다. 그의 옆에 있는 유진 역시 그중 하나였다.

물론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위험부담이 있기는 했지만 상대는 블루 스케일.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등장하는 세력 중 군사력이 가장 약하다고 알려진 나라였다.

더욱이 라헬교의 준동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기까지 했다. 이런 꿀 같은 기회는 놓치는 게 멍청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이어지는 승전보. 얼마만큼의 경험치를 획득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적에 따른 경험들이 S등급 클래스로 가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과 함께 상민은 로얄 소벨리온 부대를 이끌고 열심히 전투를 치러나갔다.

자신들의 앞에 윤호라는 소환자의 군대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시팔…….”

그리고 SSS랭크인 실버 문과 S+랭크의 윙드 훗사르가 포함된 군대가 등장했을 때 상민은 몇 번이나 자신의 눈을 비벼야만 했다.

이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눈앞에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상민은 현재의 상황이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온라인 모드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유진의 표정도 심각했다. 상민만큼은 아니지만 그녀 역시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 한 경험이 있는 유저였다.

덕분에 지금의 상황이 좋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둘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칸디르의 명령을 받은 로얄 소벨리온들이 전투에 참여한 소환자들을 찾는다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칸디르 님이?”

“어서 가요. 늦으면 또 혼날라.”

병사의 말에 상민과 유진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실버 문과 윙드 훗사르의 추격에 도망치며 미칠 듯이 뛰던 심장은 차츰 진정되고 있었다. 그렇게 로얄 소벨리온들과 함께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임시로 꾸며진 사령관 막사로 소환자로 보이는 인물들이 하나둘씩 들어가는 게 둘의 눈에 들어왔다.

“A등급 소환자 박상민. 들어가겠습니다.”

“B등급 소환자 김유진. 들어가겠습니다.”

막사에 도착한 둘의 인사에 칸디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미 막사 내에는 이번 전쟁에 참여한 천족 소속의 소환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중에는 상민과 마찬가지로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인 소환자도 함께였다.

둘을 노려보는 일본인 소환자는 본래의 세계에서 극우 일명 우익으로 활동을 하던 인물이었다. 그 때문일까? 한국인인 상민과 유진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는 팔짱을 낀 채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퉁한 표정으로 이마를 씰룩이는 게 뭔가 자신들에게 할 이야기가 있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본 유진이 껄끄러운 표정으로 상민을 향해 속삭였다.

“저 녀석 뭔가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데 뭐 걸리는 거 있어요? 나 쟤하고는 엮이기 싫은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저 녀석 우리하고 완전히 다른 부대잖아.”

그런 유진의 말에 상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 때였다.

“모두 모인 것 같은데, 일단 다들 자리에 앉도록 해요.”

소환자들을 향해 칸디르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소환자라면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이 담겨져 있었다.

임시로 꾸려진 터라 막사 내에는 소환자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10 천사 중 하나인 칸디르의 말에 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던 소환자들은 빈 바닥에 하나둘씩 앉기 시작했다.

유진의 눈에 들어온 칸디르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두 번이나 패전을 겪은 까닭인지 안색도 어두워 보였다.

더욱이 그녀는 호를 상대하면서 무려 열기가 넘는 마장기를 잃었다. 그게 얼마만큼의 큰 피해를 의미하는지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 해 본 적이 있는 유저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무거워진 분위기에 막사 안에 침묵이 내려앉자 칸디르가 입을 열었다.

“일단 왜 그대들을 이곳에 모았는지 설명을 해야겠네요. 다들 알다시피 현재 우리 친족들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블루 스케일을 점령하고 우리들의 동맹인 아이리스 성국을 도와야 하지만 여신의 뜻을 방해하는 강력한 적이 등장했기 때문이죠. 이 중 몇몇은 직접 전투에 참여했기 때문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적의 이름은 윤호. 림드 산맥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소환자입니다.”

칸디르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쟁에 참여하면서 윤호라는 두 글자의 이름을 듣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윤호는 엘프, 수인, 마족 등을 휘하에 두고 있는 영주입니다. 그런 무리들을 한데 엮을 수 있다는 게 의아스럽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죠. 어쨌든 그는 한때 마족의 소환자였지만, 지금은 독립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어떻게……?’

칸디르의 말을 듣던 유진은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선택의 신전에서부터 시작해 이 세계에 살고 있는 각 종족들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다른 소환자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다들 놀란 기색이었다.

“첩자들을 통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번 전쟁에 참여한 윤호의 병력은 약 사만 가량. 실버 문과 윙드 훗사르, 리치와 아르카니움 아처로 구성된 군대입니다. 또한 B등급으로 추정되는 마장기 네 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허…….”

“엄청난데?”

“소환자라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그런 군대를 모을 수 있는 거지?”

“최소 A랭크의 이상의 병종들이군.”

윤호가 보유한 군대의 구성에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박상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엔딩을 본 적이 있는 그는 칸디르의 입에서 나온 병사들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반해 천족군은 로얄 소벨리온 만이 S랭크의 병종이었다. 하물며 로얄 소벨리온은 보병 계열의 병종. S+랭크인 윙드 훗사르와는 상성상 불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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