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리그너스 대륙전기 213
아스트리드 벨의 보고가 끝나고 호는 엘 브릭을 위시한 특이한 이름의 연구팀을 만나 보았다. 구성원들 전부가 그들의 종족을 기준으로 하면 이십대 수준으로 젊은 편에 속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희들을 찾으셨다고요?”
“이럴 수가! 우, 우리 갈리는 공돌이! 아니, 갈공이가 호 님에게 인정받는 팀이 되다니?!”
연구팀에 속한 영웅들은 영웅 정보에 나온 대로 평범한 수준의 영웅들이었다. 황당하긴 했지만 벨이 말했던 연구 팀의 어이없는 명칭 역시 사실이었다.
“……사실 알고 보면 이거 꿈이라던가? 아니면 가상현실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세계인데 버그로 못 빠져 나온다던가 그런 거 아니야?”
그렇게 갈공이들과의 만남을 마치고 자신의 집무실에 혼자 남은 호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중얼거렸다. 기분이 묘했다. 갈리는 공돌이. 줄여서 갈공이. 확실히 정상적인 이름은 아니었다.
더욱이 대학교에서 이과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이름이었다. 문과를 전공했던 호도 공돌이의 비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잠깐 보기는 했지만, 갈공이의 리더인 엘 브릭 역시 정상적인 엘프는 아닌 것 같았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느낌이 그랬다. 아니면 이름 탓이던가.
‘어쨌든 연구팀의 이름이 그렇다면 그 이름이 어울리도록 만들어줘야지.’
림드 산맥을 손에 넣고 자신만의 세력을 만든 몇 년 동안 호는 많은 수의 연구들을 완료하고, 기술을 개발했었다. 개 중에는 SSS랭크의 엘프 보병 실버 문에 관한 연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호가 달성한 것은 수많은 연구들을 생각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수 년, 아니 수 십 년이 흘러도 모든 연구를 끝내지 못할 터. 실제로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던 유저들 사이에서는 게임의 엔딩을 보는 것보다 모든 기술의 연구를 완료하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갈공이는 연구팀 그것도 마족, 엘프, 수인과 관련된 연구 기술에 시너지를 받는 연구팀이었다. 그리고 이 세 종족은 자신의 영토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종족이었다. 당연히 그와 관련된 연구의 효율 역시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생각을 마친 호가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잠시 후 세 종족과 관련된 기술 도표가 호의 눈을 빼곡하게 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표를 보며 고심하던 호는 서랍에서 종이를 하나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도표와 책상 위를 번갈아보며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달빛의 고깔모자, 후플후프 지팡이, 날렵한 백색 부엉이등. 마족, 그것도 마법병과 관련된 연구의 이름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연구의 최종 장에는 실버 문과 동급 아니 전면전에서는 더 큰 활약을 펼칠 수 있는 마법병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브리헤아 비쉬.”
마족의 SSS랭크 마법병. 마족을 대표하는 마장기인 데스 사이더 만큼이나 유명한 그녀들은 공격, 저주 마법을 사용하는 무시무시한 마녀들이었다. 호 역시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며 그녀들과 전투를 펼친 적이 있었는데, 상대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더욱이 SSS랭크인 병사의 위력은 이미 조인들과의 전투에서 증명이 된 만큼 브리헤아 비쉬의 능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마족과 관련된 연구기술에 보너스를 받는다고 했지?”
그렇게 종이에 브리헤아 비쉬에 관한 모든 연구를 적은 호의 입 꼬리가 씨익 말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개발이 완료된 연구를 제외하더라도 브리헤아 비쉬를 양성하려면 백 여 개 이상의 연구를 추가로 완료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는 갈리는 공돌이의 몫이 될 터였다. 그리고 며칠 뒤, 다르시나에 마법 연구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두 개의 마법 연구소가 있었지만, 이번에 새롭게 지어지기 시작한 마법 연구소는 팀 갈공이의 전용으로 사용 될 연구소였다.
마법 연구소는 일반적인 건물과는 달리 제법 고급에 속하는 건물이었다. 그런 만큼 마법 연구소를 건설하는 데는 많은 자재와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특성화 개발을 마친 디르시나의 재정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저게 바로 우리들의 연구소!”
“거봐! 내가 뭐랬어? 호 님께서는 우리들을 인정해주실 거라 했잖아?”
“호 님이 맡긴 연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완료해야 돼.”
“우리가 알르드의 역사를 새로 쓰자고!”
호의 명령에 따라 자신들의 연구소가 지어진다는 소식을 들은 갈공이 멤버들은 모일 때마다 호의 이름을 칭송했다. 당연히 호에 대한 충성도는 하늘을 찌를 정도.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B랭크 연구인 달빛의 고깔모자를 보름 만에 완료하며 자신들의 역량을 증명했다.
“이거 상상이상인데?”
아스트리드 벨을 통해 자신이 맡긴 연구가 완료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호는 놀란 표정으로 보고서를 바라보았다. B랭크의 연구는 딱히 높은 수준의 연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보름 만에 연구를 끝낼 수 있느냐? 결코 아니었다. 거기에 전용 연구소까지 완성된다면? 그들의 연구 속도는 더욱 더 탄력을 받을 게 분명했다.
“충분히 굴릴 만한 보람이 있겠는데? 공돌이를 갈면 공돌공돌하고 울던가?”
좋은 검을 얻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사용을 하는 게 예의라고 배웠다. 그리고 호는 충분히 갈공이들을 잘 써먹어 줄 자신이 있었다. 그들이 개발할 기술들은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상황이었다.
* *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제4회 차 소환자들의 소환이 끝이 났습니다. 총인원은 98명입니다.]
“뭐야? 그것밖에 안 돼?”
여신 라헬의 목소리가 선택의 신전에 울려 퍼지자 드워프의 대족장 골드 스트리안이 불만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소환자들의 수는 회차가 늘어날수록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이번 회차에 소환된 소환자들만 봐도 그랬다. 고작 98명. 1회 차와 비교해보면 대략 반이 조금 넘는 수에 불과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소환자들이 소환되는 기간이 점점 짧아진다는 점이었다.
“언제부터 드워프들이 소환자의 수에 신경을 썼죠?”
“언제부터긴? 당신네들이 소환자한테 요새 도시 토갈론을 빼앗길 때부터지. 흠. 누구였더라? 엘프 장로 하나의 콧대가 완전히 박살이 난 걸로 알고 있는데?”
“당신이 걱정하지 않아도 엘 로즐린의 콧대는 무사합니다.”
“뭐, 뭐어?!”
엘프 왕국의 여왕 엘 유스타시아가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자 골드 스트리안이 벙 찐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귀쟁이 녀석들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런 자신의 심정을 이해하는지 엘 유스타시아의 뒤쪽에서 정령 여왕 아르넨 리네가 배를 부여잡고 웃기 시작했다.
소환자. 여신 라헬의 부름으로 이 세계에 소환된 다른 차원의 인간들은 리그너스 대륙의 종족들에게 점점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한 소환자의 활약 때문이었다. 그 이름은 윤호. 한때 마족의 소환자였지만 수인족의 영토를 빼앗아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한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림드 산맥과 나크 평원을 포함해 제법 넓은 영토를 지배하고 있는 윤호의 명성은 각 종족의 지배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워낙 활약상이 워낙 두드러졌기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수인 왕국을 이루는 부족 중 하나인 원인들을 박살냈고, 엘프 왕국의 장로 엘 로즐린과의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또한 최근에는 실버 문이라 불리는 전설로 내려오는 병사들을 이용해 조인들이 이끄는 수인 군대를 박살내기도 했다.
‘그 엘프 여왕도 제대로 양성하지 못하고 있는 실버 문 인데 말이지.’
골드 스트리안은 힐끔 엘 유스타시아를 바라보고는 황금 술잔에 담긴 술을 들이켰다. 실버 문. 달의 여신을 모시는 근위병으로 알려져 있는 그들은 숙련된 엘프 병사들 중에서도 여신에게 선택된 용맹한 전사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골드 스트리안은 이 자리에 모인 그 누구보다도 실버 문의 강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한때 엘 유스타시아가 이끄는 군대와 전투를 치렀었고, 개 중에는 소수이긴 해도 실버 문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상대하기가 엄청나게 까다로운 녀석들이었단 말이지.’
제법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그 전투에서 마주쳤던 실버 문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골드 스트리안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었다. 몇 번에 불과했지만 드워프의 대족장인 자신의 공격을 막아낼 정도로 방어 능력이 뛰어났을 뿐더러 보호 및 회복 마법까지도 사용했기에 상대하기가 여간 귀찮았던 게 아니었다. 물론, 골드 스트리안은 그 날의 전투에서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던 실버 문들을 모조리 여신의 품으로 돌려보내줬었다.
‘그런데 소환자가 훈련에 성공했단 말이야. 그런 녀석이 내 휘하로 들어오게 되면? 우리들이 자랑하는 공성병 누누도 대륙을 뒤덮는 것도 꿈은 아니다!’
어쨌든 림드 산맥의 실버 문에 대한 소문을 들은 골드 스트리안은 드워프 족 휘하에 있는 소환자들을 모두 모아 하여금 하나의 영지를 맡겨 놓았다. 실버 문 정도는 아니더라도 고위 랭크의 병종을 양성할 수 있도록 영지를 발전시켜도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벌인 일이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다른 종족의 지배자들 역시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번에는 3회 차와 반대 순서로 소환자를 선택하겠습니다. 먼저 만마의 지배자인 여왕 쉐르난비체…….]
“잠깐.”
쉐르난비체가 여신의 말을 끊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공포로 인해 오들오들 떨고 있는 소환자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우리 마족은 매번 처음과 끝만을 반복했다. 이번에는 순서를 바꾸고 싶은데?”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러면 약간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만마의 지배자께서는 다른 종족의 지배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시지요.]
여신 라헬의 목소리가 선택의 신전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아르넨 리네가 살며시 손을 들어 올렸다.
“우리 정령족의 순서는 네 번째인데, 괜찮나요?”
“물론. 처음과 끝만 아니면 상관없다.”
쉐르난비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고, 그녀를 대신에 아르넨 리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이 대륙을 구성하는 정령들을 지배하는 정령 여왕 아르넨 리네. 열 네 명의 인원을 선택해 주시길 바랍니다.]
라헬의 음성이 끝나기가 무섭게 귀여운 요정 세 마리가 빠른 속도로 소환자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우앗?! 저리가!”
“아, 안 돼!”
“끌려가고 싶지 않아! 혜, 혜미야!”
그런 요정들의 움직임에 소환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호기심을 보이는 인물도 있는가 하면 겁을 먹거나 뒤로 물러나는 인간들도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르넨 리네는 세 마리의 요정에 의해 선택된 소환자들을 데리고 선택의 신전에서 사라졌다.
아르넨 리네 다음으로는 수인이 동일한 수의 소환자들을 데리고 선택의 신전을 벗어났다. 이어서 드워프와 마족이 자신들이 선택한 소환자들과 함께 자신들의 영토로 향했다. 네 종족 모두 소환자를 고르는 데 굉장히 신중한 모습이었다. 소환자가 전혀 쓸모없는 게 아니라는 게 호를 통해 증명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전과는 다르게 이번 소환은 분위기가 제법 딱딱했다. 다들 유능한 소환자를 고르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하기야 호와 같은 녀석을 휘하로 넣을 수 있다면 수 천 년 동안이나 팽팽했던 리그너스 대륙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은 종족은 인간과 천족 그리고 엘프였다.
“그러면 제 차례인가요?”
천족의 여왕 라이프린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그녀는 남아 있는 소수의 인원 중에서 열세 명을 선택해야만 했다.
“처, 천사인가?!”
“천사가 있었어! 천사라고!”
찰랑이는 은발과 포근한 눈매, 모든 걸 정화시킬 것 같은 순백의 예복을 입은 천사의 등장에 소환자들의 눈에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요정, 괴물, 난장이, 악마와는 달리 이들과 함께 한다면 이 이상한 세계에서 조금이나마 더 안전하게 그리고 오래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라이프린은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소환자를 선택하지 않았다. 아니,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