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
리그너스 대륙전기 212
“SSS랭크의 병종이라고? 푸핫! 그것 참 대단한걸?”
병사의 보고를 받은 중년 남성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주위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림에도 불구하고 거리낌 없는 모습이었다. 골든 크로우의 재상이자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S등급 영웅인 그나이 칼츠만이었다.
“조인들이 아주 혼쭐이 났겠군.”
“SSS랭크의 병사라. 굉장히 흥미롭군요. 전설 속에서나 나온다는 병사라고 하던데…….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 거죠? 그나이 칼츠만?”
“마족의 브뤼헤아 비쉬, 드워프의 누누, 엘프의 실버 문등. 각 종족의 최정예라 할 수 있는 병사들은 소수의 전력만으로도 불리한 전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위력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지요. 그 위력은 A등급 마장기에 흡사할 정도라고 알려져 있지만 아마 과장이 섞인 이야기일 겁니다. 뭐, 전장에서 직접 만나본 적이 없어서 정확한 판단은 내리지 못하겠습니다만 마장기 수준의 강력한 이들이라고는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골든 크로우의 지배자이자 팔 왕국의 수장으로 인간들을 이끌고 있는 여왕 이레네 아르티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장기와 엇비슷하다는 평가라면 생각이상으로 엄청난 전력이었다. 게다가 호의 전력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는 실버 문 말고도 다양한 종족의 고 랭크 병종들을 양성할 수 있는 기술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레네 아르티아 휘하로 편성되어 있는 수인족의 S랭크 기병, 훗사르도 그중 하나였다.
“실버 문. 우리도 손에 넣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힘들 겁니다, 여왕 폐하.”
그나이 칼츠만의 말은 확신에 가까웠다. 일반적인 병종도 아니고 무려 SSS랭크의 병사였다. 양성 및 연구 개발 비용이 얼마나 들어갔을 지 상상조차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골든 크로우에서도 훈련이 가능한 병사는 SS랭크도 아닌 S랭크 정도에 불과했다.
‘잠깐?! 그렇다는 말은 그 녀석은 이미 SSS랭크의 병종을 대량으로 양성할 수 있다는 경제 체제를 갖췄다는 건가? 고작 림드 산맥만을 가지고?’
인간들의 왕국 중 최강을 자랑하는 골든 크로우조차도 S랭크의 보병 로얄 나이트를 양성하는 게 전부였다. 그 윗 등급으로 소드 마스터라 불리는 보병 부대가 있었지만 훈련 및 연구비용이 워낙 많이 필요한데다가 소드 마스터의 양성에 필요한 특수한 특산품을 손에 넣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조인과의 전투에서 드러났던 호의 실버 문은 만 여명. 당연히 그 병력을 구성하는 데 있어 소모된 리스와 특산품의 가치는 상상 이상을 터였다.
‘……림드 산맥으로 가봐야겠군.’
그나이 칼츠만의 눈동자가 빛났다. 소환자 윤호는 과거 자신들의 일개 영주만도 못한 세력을 지니고 있던 녀석이었다. 발전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긴 했지만, 고작 몇 년 전 아니 채 삼 년도 되지 않은 사이에 실버 문을 양성하고 있었다. 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반드시 알아내야만 했다.
그렇게 자신에 대해 주변 영주들의 관심이 폭발하고 있을 무렵 호는 오 천의 실버 문을 둠디스트에 주둔시키고는 디르시나로 돌아가고 있었다. SSS랭크의 병사를 이용한 무력시위는 성공이었다. 자신을 공격해왔던 조인 부대들은 실버 문의 무서움에 앗 뜨거 하며 도망을 갔다.
그 무서움이 상당히 크게 작용한 모양인지 페렛 습지대로 도망을 쳤던 조인들은 자신들의 영토에 들어서고 나서도 제법 먼 거리를 후퇴했다고 했다.
‘페렛 습지대를 손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요?’
조인들이 이끄는 수인 군대의 침입을 물리치며 실버 문의 압도적인 위력을 체험한 한시진은 호에게 페렛 습지대로 공세를 펼치자는 의견을 내었다. 하지만 호는 그런 한시진의 의견에 고개를 저었다. 이번 전쟁에서 실버 문을 등장시킨 건 병종 랭크의 차이를 이용해 상대를 점령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실버 문의 위력을 직접 경험했으니 쉽사리 쳐들어오지는 않겠지.”
과장스럽긴 해도 SSS랭크의 병사들은 이 세계에서 핵무기만큼의 전쟁억제력을 지니고 있었다. 쉽게 표현하자면 마장기 수준. 상대는 소수의 실버 문만 하더라도 쉽게 공격을 하지 못할 터였다. 그리고 호는 그 틈을 이용해 폭발적인 전력 증강을 꾀할 생각이었다. 아직 다른 세력을 도모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 * *
호가 디르시나를 떠났던 시간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다. 그 만큼 조인과의 전투가 빠르게 마무리 된 것이다. 만약 둠디스트에서 며칠 더 머무르지 않았다면 그 시간은 좀 더 빨라졌을 터였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디르시나에는 여러 변화들이 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호를 놀라게 할 만한 사안도 있었다.
“잠깐. 여, 연구팀이 만들어졌다고?”
“네. 존스 홉킨스씨 아래에 있는 엘 브릭 이라는 연구원이 자신만의 팀을 만들고 싶다고 간곡하게 요청을 해서 제가 승인 명령을 내렸어요. 당신이 올 때까지 미룰까도 했는데 엘 브릭이라는 엘프가 그 날이 아니면 안 된다고…….”
“아니아니! 잘했어!”
호의 반색에 특이 사항에 대해 보고를 하던 아스트리드 벨이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의외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상을 뛰어넘는 격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와! 여, 연구 팀이라니?! 그러면 로우덴이 이끄는 심시티 같은 팀이 하나 더 들어난 거야?! 그것도 연구 특화로?!’
팀 이라는 개념은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 한 경험이 있는 호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 세계만의 룰이었다.
그나마 여러 정보를 통해 추측으로 알게 된 사실은 팀은 어떠한 조건을 만족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특수한 이벤트로 인해 구성된 다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호가 이런 팀의 개념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불과 일 년이 채 되지 않았다. 전부 로우덴 덕분이었다.
영지 개발 전문 팀으로 명성을 높이고 있는 심시티. 로우덴을 포함해 다수의 A, B등급 영웅으로 이루어진 이 영지개발전문팀은 로우덴의 지휘 아래에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영지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도 개발이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그 속도는 일개 영웅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에 비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그만큼 돈도 빠르게 소모되기는 했지만 로우덴의 지휘 아래에 있는 다수의 영웅이 모인 개발팀 심시티는 영지를 개발하는 데 있어 치트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했다.
그리고 그런 심시티의 활약에 고무된 호는 영지를 빠르게 개발하기 위해 휘하의 뛰어난 영웅들로 하여금 몇 번이나 팀을 만들어보라는 제의를 했었다. 하지만 심시티와 같은 팀의 구성에는 호가 알지 못하는 특별한 조건이 있는지 로우덴을 제외한 나머지 영웅들은 그런 호의 제안을 심드렁하게 받아들였고, 결국 호는 또 다른 팀의 창설을 포기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내가 없는 사이에 팀이 만들어지다니!’
그것도 무려 연구팀이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는 데 있어 연구의 중요성은 두말 하면 입이 아플 정도. 호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진정시키며 벨을 향해 물었다. 일단 연구 팀을 만들었다는 영웅에 대해 알고 싶었다.
“연구팀의 수장이 엘 브릭이라고?”
“네. B등급의 엘프 영웅이에요. 우리 쪽에 임관한지는 반 년 정도 되었고요.”
“얼마 안 됐네. 팀을 구성했다고 했지? 구성인원이 어떻게 되지?”
“총 여섯 명이에요. 엘 브릭을 포함해 엘프 영웅 세 명과 마족 영웅 한 명, 수인 영웅 두 명이 포함되었어요.”
“……조합이 굉장히 언밸런스하네.”
“그렇긴 한데, 사이는 나쁘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아니, 오히려 서로들 뜻이 잘 맞는 것 같았어요.”
말과 함께 벨이 서류를 건넸다. 서류에는 팀의 구성인원들에 대한 프로필이 담겨 있었다. 전부 림드 산맥에서 등용된 이들은 호에게서 소환자의 축복을 받아 B등급 영웅으로 진화한 영웅들이었다.
<영웅 정보(Status)>
1. 이름 : 엘 브릭
2. 성별 : 남(283)
3. 종족 : 엘프
4. 소속 : 시스테인
5. 레벨 : 182
6. 직업 : 상급 연구원(B)
7. 세부능력
통솔 : 22 / 100(C)
무력 : 64 / 100(C)
지력 : 261 / 300(A)
정치 : 239 / 300(A)
매력 : 167 / 200(B)
8. 특성 : 호기심 많은 탐구자, 화합.
‘그렇게 대단치는 않은데? 대체 팀이 만들어지는 조건이 뭐야?’
엘 브릭의 정보를 보며 호의 입에서 신음에 가까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실망스럽게도 엘 브릭의 능력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클래스도 평범했고, 특성도 두 개 밖에 없었다. 또한 보유하고 있는 스킬도 없었다.
‘다른 영웅들은 어떻지?’
호는 프로필에 나와 있는 나머지 영웅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또 다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른 영웅들의 수준 역시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마족 영웅의 능력치가 다른 영웅들에 비해 조금 높은 편이긴 했지만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했다.
“이 녀석들 실적은 어때?”
실망스럽긴 하지만 연구팀의 프로필을 확인한 호는 벨을 향해 은근한 기대를 담아 물었다. 영웅들의 수준이 낮긴 했지만, 실적만 좋으면 다른 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심시티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시너지만 보여줘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심시티만큼은 바라지도 않는다. 70% 아니 반 만 이라도 충분해.’
어차피 영웅들은 아이템을 통해 승급을 시킬 수 있었다.
“나쁘지 않아요.”
그리고 벨의 입에서 짤막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일단은 듣고 싶었던 대답이었다.
“정확히 어떤 수준이지? 존스 홉킨스나 레온 바티스타와 비교를 하면?”
“확실히 같은 등급의 연구 기술 개발 명령을 내렸을 때 존스 홉킨스씨나 레온 바티스타씨보다 진척 속도가 훨씬 빠른 편이에요.”
“호? 의외인데? 프로필의 내용만 보면…….”
“그렇게 대단치는 않으니까요. 그래도 연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서 그런가? 설명은 못하겠지만 연구 주제에 대한 집중도가 굉장히 높은 것 같아요. 적성 차이일까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리그너스 대륙전기 내의 영웅들이 자신들의 성격 및 특성에 따라 어떤 임무를 선호하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유저들의 이야기가 있었고, 호 역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마 엘 브릭은 연구 개발을 선호하는 영웅 중 하나일 게 틀림없었다.
“아, 특히나 엘프, 마족, 수인과 관련된 연구 기술의 연구 진척 속도는 놀랄 정도예요.”
“음?”
호가 눈빛을 반짝였다. 엘프, 마족 그리고 수인 영웅으로 구성된 연구팀이라 그런지 그들과 관련된 종족의 연구 기술에 기술 보너스와 비슷한 효과를 받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아니, 연구팀이 생겨났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래서 엘 브릭이 만든 팀의 이름이 뭐지?”
계속해서 벨의 보고를 받던 도중 호가 물었다.
“어, 그게 그러니까 조금 특이한 이름이에요.”
“응? 뭔데?”
좀 전까지의 실망스러운 표정은 온데 간 데 없었다. 이름 정도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로우덴이 만든 팀의 이름은 심시티. 충분히 특이한 이름이었다.
‘연구 관련 내용이니까 리서치? 스터디? 아니지. 지식을 탐구하는 자? 솔로몬의 지혜? 뭐, 이런 거창한 건가?’
호의 머릿속으로 다양한 이름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과연 엘프 영웅이 어떤 이름을 지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물씬 피어올랐다.
“갈리는 공돌이. 자기들끼리는 줄여서 갈공이 라고 부르더라고요.”
“……미친놈.”
호의 얼굴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