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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10화 (210/522)

# 210

리그너스 대륙전기 210

수인 왕국 내에서도 유별나게 호전적인 기질을 보이는 조인들이 나크 평원을 침공했다.

‘조인들이?’

‘조인이 침공했다고요? 토리아 항구의 방어는 어떻게 되는 거죠?’

‘뭐라고냥?!’

그리고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위에 있는 영주들이 시선이 전투가 벌어지는 나크 평원으로 향했다.

림드 산맥의 패자인 호는 대륙에서 낮은 평가를 받는 소환자라는 존재답지 않게 주변에서 굉장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영웅이었다. 1 년차 소환자인 그는 마족의 휘하에 있다가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한 인물로 마족, 엘프, 수인과의 연이은 전쟁에서 몇 차례나 승리한 전적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조인 역시 수인 왕국의 중심 부족 중 하나로 상당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부족이었다. 특히 조인들 중에는 십이멀이라 불리는 수인족의 상급대장이 두 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많은 영주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둠디스트에서 공성전이 펼쳐졌다. 결과는 무승부. 둠디스트를 공격한 조인들은 둠디스트의 단단한 방어를 깨뜨리지 못했고, 둠디스트를 지휘하는 한시진 역시 전력의 열세로 조인들을 향해 직접적인 공세를 취할 수 없었다.

“죽.여.버.려.뺙!”

“물러서지 마라!”

조인 영웅들과 두 성을 방어하는 지휘관인 한시진과 아쉬카로트는 연신 병사들을 독려했고, 때로는 전장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며 적들을 물리쳤다. 그렇게 둠디스트와 파인플에서 몇 차례의 전투가 연달아 펼쳐지는 사이 디르시나에서 출진한 호가 실버 문들과 함께 전장에 도착했다.

“저게 뭐지? 삐약?”

멀찍이서 한 무리의 병사들이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발견한 한 조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장기는 인간 마장기인데 그들을 따르는 병사들의 생김새는 영락없는 엘프들이었다.

“잡탕이로군.”

“그러게. 째째재재재잭!”

여기저기서 조인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소환자라는 약해빠진 녀석들을 모시는 녀석들이라 그런지, 상대는 다양한 종족으로 이루어진 병사들을 운영했다. 좋게 말하면 연합군, 나쁘게 말하면 잡탕이었다. 하지만 모든 조인들이 웃음을 터뜨린 것은 아니었다.

“달빛처럼 은은한 빛을 내뿜는 엘프 병사들이라…….”

“느낌이 불안해. 꼭. 어디선가 들은 것 같지 않아?”

“성벽에 있는 아벨리우스들과는 생김새가 확연하게 다른데? 똑같은 엘프 부족이 아닌가보지?”

조인들을 이끄는 영웅들 또한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엘프 병사들을 보며 경계심 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런 조인들을 뒤로 한 채 호는 마장기의 통신장치를 통해 한시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모하지 않을까요? 오빠? 병력의 수도, 구성도 저쪽에 비해서는…….”

한시진의 말에 호는 살며시 입 꼬리를 들어 올리고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방금 전 호는 그녀에게 만의 실버 문으로 수인들을 향해 돌격하겠다는 말을 했었다.

‘확실히 겉으로 보기에는…….’

무모해 보였다. 상대는 어림잡아도 오만 이상의 가까운 병사들 이었다. 그에 반해 실버 문들의 숫자는 정확히 일 만. 한시진이 걱정하는 모습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아니.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실버 문들은 그 어려운 걸 해낼 수 있는 병사들이거든.”

그러나 전쟁은 숫자놀음이 아니었다. 특히나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조인족의 군대는 A, B랭크로 이루어진 것에 반해 실버 문은 무려 SSS랭크의 병사였다. 기본적인 공, 방 능력치 차이만 해도 수 배나 차이가 나는데다가 호는 병사들의 능력을 올려주는 지휘관 계통의 클래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대신 양익으로 조금이나마 시선을 끌 수 있게 훗사르들을 지원해 줘.”

“알겠어요. 그 정도라면 충분히 여유가 있어요. 그리고 저도 출진할게요.”

“직접 나서게?”

그나마 걱정이 있다면 웨어 타이거와 릴라릴라로 이루어진 상대의 마장기 전력이었는데, 한시진의 데스사이더가 나선다면 상대의 마장기 전력 또한 충분히 무마시킬 수 있었다.

“네. 오빠가 나서는 데 그냥 지켜볼 수는 없잖아요? 곧바로 병사들 준비할게요.”

“이거 데스사이더가 나선다면 질 수가 없는 싸움이 되겠는데?”

호는 마장기의 조종간을 꽉 움켜쥐었다. A등급 마장기인 데스사이더와 실버 문의 합공이라면 막말로 발로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전투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았다.

“가자! 진격!”

그리고 한시진에게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말을 들은 순간 호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엘프 보병들이 진군하는 모습을 본 조인들은 자신들의 A랭크 비행병 하피 쉴더들을 앞으로 내세웠다. 양 손에 방패를 든 하피 쉴더들이 앞장서며 방어선을 단단히 구축했고, 그 뒤로 마쵸킹을 비롯해 다람쥐 석궁수들이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인족의 마장기 또한 하나둘씩 자신의 동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조인족의 성격이 다들 호전적이라고 하던데, 꼭 그렇지는 않나 보네. 의외로 방어가 정석적인데? 맞불을 놓듯 달려들 줄 알았더니만.”

엑스칼리버 내에서 조인족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방어력이 높은 클래스를 앞세우고 양익을 이용해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움직임은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는 방어 전술이었다.

딱히 대단한 것도 놀랄 만한 것도 아니었다. 상대가 아무리 조인이라 할지라도 그 정도 머리가 없지는 않을 터였다.

‘비슷한 전력이었으면 피해가 제법 컸겠지만…….’

더욱이 상대는 마장기까지 있었다. 대다수가 캣츠와 메카 리자드급으로 C등급에 불과했으나 일반 병사들에게 마장기는 그 무엇보다도 위협적인 병기였다. 간간히 웨어 타이거와 릴라릴라도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일반 병사도 일반 병사 나름이었다. 단단히 방어 라인을 갖추기 시작하는 수인들과 마장기를 보고 있으면서도 엘프 보병들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SSS랭크의 엘프 보병 실버 문. 달의 여신을 모시는 존재로 알려져 있는 이 병사들의 강함은 고작 몇 마디의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띵동.

-<전장의 노래> S랭크가 발동되었습니다.

하늘에서 빛 무리들이 화려하게 휘날리며 실버 문을 감싸기 시작했다. 호의 클래스인 제네시스–전장의 마에스트로의 스킬이 발동한 것이다. 하지만 스킬의 발동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띵동.

-<침착하라!> D랭크가 발동되었습니다.

-<지휘관이 독려> B+랭크가 발동되었습니다.

-<아크 스피릿> A랭크가 발동되었습니다.

하사관에서부터 시작해 상급 사관, 전쟁 군주 그리고 아크 로얄까지.

호는 이제껏 지휘관 계통의 클래스로만 전직을 계속해 왔고, 그런 클래스들의 스킬들을 하나하나씩 익히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위 직업에서부터 배웠던 스킬들은 비슷한 효과일지라도 전부 중첩이 되어 적용되었다.

“가자! 저 새들의 털을 모조리 뽑아버리자!”

“이게 바로 호 님의 힘!”

전장의 노래만 하더라도 병사들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각각 10, 5 씩 높여줬다. 그와 더불어 아크 스피릿 또한 30%의 공, 방 수치를 높여주는 스킬 이었다. 스킬 랭크는 낮더라도 침착하라와 지휘의 함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상승된 실버 문의 공격력과 방어력은 본래부터 두 배 가량이나 높아진 상태였다.

이런 호의 스킬들은 휘하 병사들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진가를 발휘했다. 1 의 두 배는 2 에 불과하지만 100 의 두 배는 200 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버 문은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병종 중 최고 등급에 해당하는 SSS랭크의 병종이었다.

“저, 저게 뭐냐? 짹!”

“적들이 이상하게 변했다!”

“물러서지 마라! 우리에게 치느님의 은총이 함께할지니!”

“For The Chik!”

갑작스럽게 변한 실버 문의 기세에 전방의 조인들이 경악성을 토해냈다. 일 만의 실버 문들이 내뿜는 날카로운 기세는 제법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몸을 꿰뚫을 정도였다. 하지만 도망은 칠 수 없었다. 도망을 칠 장소도 없을뿐더러 뒤쪽에는 아군의 부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강해졌다, 돌격해!”

그리고 성공적으로 스킬이 발동된 것을 확인한 호의 외침이 전장에 울려 퍼지면서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됐다.

“적들에게 안식을!”

“세계수의 분노로 적들을 불태우리라!”

“호 님을 위하여!”

선두의 실버 문과 하피 쉴더 들이 격돌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나도 일방적이었다.

단 일검. 두 개의 커다란 사각 방패를 든 하피 쉴더들은 실버 문의 공격 한 번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방패를 몸을 가리며 실버 문의 공격을 막아내려는 녀석들도 결과는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의 검은 방패와 함께 하피 쉴더의 목을 날리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째애액!”

“막아랏!”

순식간에 방어선이 무너져 내리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호는 천천히 엑스칼리버를 움직였다. 자신이 직접 전투에 참여할 필요도 없었다. 실버 문들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조인 영웅들이 이끄는 수인 병사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실버 문의 용맹한 모습만이 아니었다. 당황한 얼굴로 죽어가는 조인들도 호의 눈에 또렷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뭐,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을 테지.”

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결과가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고작 일만에 불과한 엘프 병사들의 돌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모든 병사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판국이었다.

하지만 하피 쉴더는 A랭크 병종. 그에 반해 실버 문은 SSS랭크의 병종이었다. 기본적인 능력치의 차이가 하늘과 땅 수준이었다. 거기에 자신의 각종 버프까지. 병사 수의 차이? 기본적인 능력의 차이가 이 정도가 나면 숫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지금의 실버 문들은 일반 병사들에게 재앙이나 다름없는 마장기도 때려잡을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런 호의 생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먼저 시선을 끌겠어!”

선두로 길을 뚫고 있던 실버 문 하나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카니앗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뒤로 네 명의 실버 문이 대열을 이루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장기 만큼이나 맛 좋은 먹잇감도 없지!”

“우리도 간다!”

다른 실버 문들 또한 마장기들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마장기의 마동포가 지면을 불태웠지만, 그들의 움직임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땅바닥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마장기의 무시무시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실버 문 들은 침착한 눈동자로 마동포의 움직임을 읽으며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마장기의 공격을 피해내고 있었다.

카앙!

실버 문의 미스릴 장검이 카니앗산의 다리 중 하나를 강타하며 불꽃을 튀겨냈다. 일반 병사들의 공격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단단함을 자랑하는 마장기였지만 실버 문의 공격을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움푹 파인 다리로 또 다른 실버 문이 그대로 검을 내리쳤다.

“쳇! 귀찮게! 죽어 버려!”

투투투투!

자신이 조종하는 카니앗산의 다리를 공격하는 실버 문들을 확인한 수인 마장기사가 그들을 향해 마력 화살을 발사했다. 곧바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십 발의 마력화살이 순식간에 쏘아져 나갔다. 한 발, 한 발이 땅에 조그마한 크레이터를 만들어 낼 정도의 위력적인 마력화살이었다.

하지만 마력 화살은 단 한 명의 실버 문의 목숨도 빼앗지 못했다. 세 명의 실버 문이 마력 화살을 향해 자신들의 방패를 들어 올리며, 또 다른 실버 문들 보호 마법을 시전 하자 마력 화살은 그대로 무력화되었다.

캉! 카카앙!

한 번, 두 번, 세 번.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불꽃이 튀어 올랐다. 잠시 후,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카니앗산의 다리 하나가 그대로 잘려져 나갔다.

“이, 이런!”

하지만 실버 문의 공격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몇 명씩 조를 이룬 실버 문들은 카니앗산의 다리를 향해 동시 다발적으로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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