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
리그너스 대륙전기 208
“하아. 최소한 상재에 재능이 있는 영웅 셋을 붙여주세요. 그 이하면 저도 일 못해요. 정말로 파업할 거예요.”
“알았어."”
“농담이 아니라 진짜 이대로라면 제 상단이 망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주점에서는 디아린 상단의 상단주 디아린, 과로사로 사망하다라는 음유 시인들의 노랫소리가 떠돌겠죠. 그리고 그 노래를 듣는 손님들은 디아린의 바보 같음을 비웃을 테고요.”
상상하기도 싫다는 듯 손으로 자신의 팔을 부여잡으며 디아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번엔 진짜야. 이번 상행을 떠나기 전에 충분히 상단에 도움이 될 만한 영웅 셋을 붙여줄게.”
“정말이죠?!”
“그래!”
호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디아린이 말한 조건에 맞을 만한 상재에 재능을 보이는 영웅이라면 지력과 정치 수준이 높은 B등급의 영웅정도면 충분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소환자의 축복으로 영웅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난 지금의 상황에서 B등급 영웅 세 명을 빼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미스릴이 필요하다고요?”
“그래.”
“미스릴을 구하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요.”
“하지만 불가능 한 것도 아니지. 안 그래?”
아르카니움 나이트의 개발은 단순히 SS랭크의 병종을 얻기 위해 충동적으로 내린 명령이 아니었다.
호는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경험과 공략본의 정보를 최대한 이용해 현재 자신의 상황에서 가장 무난하게 군사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그중에서 아르카니움 나이트 개발이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아르카니움 나이트 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뷰트의 성목과 미스릴 그리고 세계수의 정수라는 세 특산품이었다. 그리고 이 중 뷰트의 성목과 세계수의 정수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아벨리우스 양성에도 필요한 뷰트의 성목은 아멘드마와 코르다의 특산품으로 두 도시에서 충분히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세계수의 정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토갈론의 요새에서 나오는 특산품인 세계수의 잎을 모종의 방법으로 처리를 하면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세계수의 정수를 얻으려면 그에 따른 연구를 완료해야 했는데 공략본을 통해 알아본 결과 어차피 아르카니움 나이트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선행 연구 중 하나인 터라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미스릴 만큼은 달랐다. 그리고 디아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들이 미스릴을 판매한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어요.”
“팔 왕국 중 하나에서도 미스릴 판매하는 곳이 있을 걸?”
호가 말했다. 공략본에는 림드 산맥에서 북쪽으로 두 달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에서 미스릴이 생산된다고 나와 있었다.
“모에드 왕국 카로프트 말이로군요. 하지만 모에드 왕국의 미스릴은 전부 골든 크로우와 계약이 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군. 어떻게 빼올 수 있는 방법은?”
“골든 크로우와 한 판 떠서 이기면 가능하겠죠.”
디아린의 말에 호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드워프들이 미스릴을 판매하고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가격은 크게 상관하지 않을 테니 그 미스릴들을 무조건적으로 구입해 줬으면 해.”
“알았어요. 최대한으로 노력해 볼게요.”
디아린이 또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며칠 뒤, 디아린은 상단을 이끌고 남쪽으로 향했다. 미스릴을 판매한다는 드워프의 영지로 떠난 것이다. 새롭게 상단 일을 도울 영웅 세 명이 합류했기 때문일까? 상단을 이끌고 출발하는 그녀의 표정은 이제껏 호가 본 표정 중에서 가장 밝아보였다.
그렇게 아르카니움 나이트 개발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그에 맞춰 영웅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호는 딱히 할 일이 없어졌다. 중간에 라홀로프 상단과의 미팅이 있기는 했지만, 딱히 어려운 미팅도 아니었다.
“노예요? 저희야 언제든지 환영이죠.”
애당초 노예를 주로 매매하는 라홀로프 상단으로써는 노예를 구입하려는 호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뭐, 도와줄 것 없을까?”
“아, 괜찮아요. 당신은 피곤할 텐데 쉬세요. 영지 업무는 제가 해낼 수 있어요.”
“…….”
영지의 업무는 호의 조언을 받아 B등급 클래스 시빌 오피서로 전직한 아스트리드 벨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었다.
“벨이 이 정도로 잘해줄 줄은 몰랐는데.”
서당 개 3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이 세계에서 영지 업무만을 주로 맡아온 그녀는 다른 영웅들의 도움을 받아 무난하게 메트로폴리탄 등급의 도시인 디르시나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림드 산맥의 전체적인 개발은 로우덴의 주관 하에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었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리더 아래 B등급 영웅들이라는 직원들이 배치가 되니 발전 속도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호가 할 일은 휘하 영웅들의 승급 작업밖에 없었다.
“가, 감사합니다! 영주님!”
미남이라는 말이 절로 어울리는 남성 엘프가 감격에 겨워하며 호를 향해 무릎을 굽혔다. 소환자의 축복, 엘프들에게는 세계수의 축복이라 불리는 격의 상승을 느낀 그는 황홀함에서 벗어나오지 못한 채 연신 호의 발등에 입을 맞췄다.
그렇게 남성 엘프가 물러난 후, 호는 손을 위로 쭈욱 들어 올리며 기지개를 폈다.
“으으. 이것도 지겹네.”
공략본을 이용해 영웅들의 정보를 찾아 승급을 시키는 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게다가 초반에야 많은 수의 영웅들을 등용할 수 있었지만, 시간에 제법 흐른 지금은 일주일에 고작 두, 세 명의 영웅만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런 상황이 계속 지속되면 좋겠는데.”
아르카니움 나이트의 연구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고, 미스릴의 구입 역시 성공적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토갈론의 요새나 나크 평원의 방어 또한 현재로서는 완벽하다시피 했다. 열 기가 넘는 마장기와 함께 전투 쪽으로 재능이 있는 영웅들이 다수 배치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아무 사건 없이 시간이 흐르면 모든 도시의 특성화가 끝나는 순간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자원을 이용해 마장기를 제작, 리그너스 대륙의 정벌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거는 그거고 지겨운 건 지겨운 거였다.
“으아아아!”
늘어지는 목소리와 함께 호가 쭈욱 기지개를 폈다.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제대로 쉴 틈도 역시 생활했던 패턴 때문일까? 조용한 지금의 상황이 마냥 편하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 * *
‘멍멍. 붉은 핏빛의 대지는 영주님께서 고안하신 특성화 개발로 인해 큰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아메드마, 코르다의 특산품인 뷰트의 성목 생산량이 크게 늘어 아벨리우스 그리고 새롭게 편성된 아르카니움 나이트의 양성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두 도시가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새롭게 병사들과 마장기가 배치된 사실을 안 리셴르나가 사신을 보내왔습니다만 별다른 문제없이 해결되었습니다.’
‘경계 지대에 배치된 병사들이 많다는 것에 대해 리셴르나가 우려를 표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중간 중간 개발자국이 찍혀져 있는 편지가 호의 손에 들려 있었다. 로우덴이 보낸 편지였다. 그는 림드 산맥의 특성화 개발을 마치고 현재는 붉은 핏빛의 대지에 머무르고 있었다.
“심시티라고 했던가?”
호는 로우덴이 창설했다는 영지 개발 전문팀을 떠올렸다. 심시티는 A등급 영웅과 B등급 영웅이 다수 포함된 팀으로 로우덴의 지휘 아래에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일사불란하게 빠른 속도로 영지를 개발하고 떠나곤 했다.
“이 정도로 엄청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처음 로우덴이 자신만의 팀을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보내왔을 때 호는 대수롭지 않게 허락을 했었다. 영웅이야 많았고, 로우덴의 충성심 또한 의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멍멍! 저를 믿어주신 영주님에게 이 로우덴!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신의 한수가 되었다.
영지 개발 전문팀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로우덴의 팀 ‘심시티’가 보여주는 영웅들의 시너지는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 한 경험을 통해 이 세계에서의 도시 발전과 관련된 호의 상식을 가볍게 파괴해 버렸다. 심시티를 만든 로우덴이 지지부진했던 베코바와 칼리드의 특성화 개발을 순식간에 끝내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호를 더욱 경악스럽게 만든 것은 에스트라다에서 보여준 심시티의 성과였다. 호는 일찌감치 나크 평원으로 향하는 경계 지대에 배치된 도시인 에스트라다를 요새 도시로 만들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심장부나 다름없는 림드 산맥을 최종적으로 방어하는 도시로써의 개념이었다.
그리고 심시티는 그런 에스트라다의 특성화 개발을 불과 5 개월 만에 끝내버렸다. 덕분에 에스트라다의 성벽에는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 시설 중 하나인 마동포 이제르론이 배치되어 있었다.
림드 산맥의 풍부한 재력과 디아린 상단의 지원이 뒷받침 되었다고는 해도 호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그래서 새롭게 팀을 짜보려고 했는데 망했지.”
로우덴의 팀인 심시티가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호는 곧바로 존스 홉킨스를 찾았다. 존스 홉킨스 역시 다른 영웅들과 팀을 만들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면 연구 속도가 빨라질 것을 기대한 행동이었다.
“팀? 그게 뭡니까?”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존스 홉킨스는 호가 말한 팀이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만, 영주님. 저는 그런 친목 모임을 만들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아니, 이해하려고 들지 않았다. 이런 반응은 존스 홉킨스만이 아니었다. 호의 제안에 다른 영웅들 역시 존스 홉킨스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제야 호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팀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략본에도 팀이라는 것은 나오지 않지.’
로우덴이 만든 심시티가 자신이 모르는 특수한 이벤트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쨌든 심시티의 등장은 호에게 있어 엄청난 호재였다. 덕분에 림드 산맥은 각 종족들의 중심도시를 가볍게 찜 쪄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발전은 곧바로 군사력으로 투자되기 시작했다. 드워프들의 거래로 들여온 미스릴들이 발전된 대장간에서 무구로 변신했고, 미스릴 무구를 얻은 아벨리우스들은 하나둘씩 SS랭크인 아르카니움 나이트로 전직했다.
많은 돈이 투자된 병영에서는 쉬지 않고 병사들이 모병되었고, 이렇게 모병된 병사들은 파인플과 둠디스트 그리고 토갈론의 요새로 향했다. 계약으로 인해 골든 크로우나 블루 스케일로 떠나는 병사들도 있었다. 그리고 드워프들과의 미스릴 거래에 성공한 후 또 다시 호의 부탁 같은 명령을 받고 정령족의 영토로 떠났던 디아린이 디르시나에 도착했다.
“후……. 달빛의 가루. 획득하는 데 성공했어요.”
“역시 디아린 상단의 상단주! 어떻게 정령들을 잘 설득한 모양이네?”
“운이 좋았어요. 정령들이 마웅키에서 생산되는 특산품을 원했거든요.”
“콜치트리캄 말이지? 정령들이 마웅키의 특산품인 콜치트리캄을 필요로 했다는 소식은 이미 보고를 받아서 알고 있어. 그런데 어째서 정령들이 콜치트리캄을 필요로 한 거지?”
“뭐, 콜치트리캄은 내상 회복약으로 사용되는 특산품이에요. 그런데 최근 정령들의 영토에 질병이 돈 모양이더라고요.”
“정말로 운이 좋았네.”
“맞아요. 하지만 콜치트리캄과 달빛의 가루 거래 비율은 70 대 1 에 불과해요. 그 이상의 수준으로는 거래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해서…….”
“아냐.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해.”
호가 말끝을 흐리는 디아린의 말을 끊었다. 콜치트리캄과 달빛의 가루에 대한 가치를 랭크로 따진다면 B 혹은 C 와 SSS랭크 정도. 70 대 1 의 비율만 해도 놀랄만한 성과로 굳이 욕심을 낼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특산품 교환 거래가 성사되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면 심시티 녀석들을 마웅키로 보내야겠네.”
달빛의 가루. 호의 판단으로 SSS랭크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이 특산품은 정령족의 영토에서 극소량으로 생산이 되는 특산품이었다. 들리는 소문에는 자연사한 정령들이 신들의 품으로 돌아가면서 남기는 가루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어쨌든 최대한 많은 양의 콜치트리캄을 생산해 거래가 지속되는 동안 만족스러울 만큼의 달빛의 가루를 획득해야 했다.
‘그러면 일단 보병은 끝난 건가?’
그리고 이 달빛의 가루는 미스릴과 함께 무슨 일이 있어도 손에 넣으려고 했던 특산품이었다. 바로 엘프의 SSS랭크 보병인 실버 문의 양성에 필요한 재료이기 때문이었다. 하이 엘프인 에어리스를 통해 알게 된 썬더 퓨리나 익스큐션 스워드와 같은 인피니티 나인의 병사를 제외하면 SSS랭크의 병사는 호가 알고 있는 이 대륙 최고 랭크의 병사들이었다.
그리고 이미 아르카니움 나이트 개발을 성공리에 끝낸 드워프들과 연구원들은 벌써부터 실버 문의 연구에 들어간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