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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05화 (205/522)

# 205

리그너스 대륙전기 205

“호 님에게 충성을 맹세하겠어요.”

짐승신의 축복이 끝난 호인 여성이 호를 향해 벌러덩 눕더니 배를 까뒤집었다. 수인 특유의 충성 방식 중 하나였다. E등급 영웅이었던 그녀는 몇 번의 승급과 함께 눈 깜짝할 사이에 C등급이 되었다.

소환자의 축복은 계속되었다. 짐승신의 축복, 세계수의 축복, 어둠의 축복, 창조신의 축복 등 각 종족 영웅들의 격을 상승시키는 승급이 계속해서 이뤄졌고, 그럴 때마다 디아린은 자신의 눈을 비벼야만 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죠? 고작 이런 아이템으로 창조신의 권능을 발휘할 수 있다니!”

“고작이라니? 아무 아이템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말과 함께 디아린은 자신의 옆에 놓은 하나의 보석을 들어올렸다. 붉은 빛을 띠는 아름다운 보석이었다.

“누가 이런 루비에 해양석을 사용해 +7까지 강화를 시키겠어요? 그런 대륙의 부자들도 하지 않는 미친 짓이라고요.”

“그래. 바로 거기에 축복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거지.”

“하…….”

디아린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소환자, 특히 눈앞의 인물은 자신의 상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존재였다.

어쨌든 그녀가 보기에 소환자의 축복을 내리기 위해서는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한 것 같았다. 각 영웅들 마다 필요한 아이템이 제각각이었으며 영웅의 등급이 상승할 때도 필요한 아이템이 모조리 달랐다. 개 중에는 디아린의 상식으로는 상상도 못했던 기상천외한 것들도 있었다.

“확실히 상단이 있다는 게 편하단 말이야.”

어쨌든 소환자의 축복을 사용하느라 제법 많은 리스를 소모하긴 했지만, 그 덕분에 쓸 만한 영웅들을 수십이나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호는 이런 영웅들을 각각의 도시로 이동시켰다.

특히나 호는 영웅들의 반 이상을 나크 평원 쪽으로 보냈다. 블루 스케일의 영지가 된 토리아 항구를 제외한 나머지 네 도시가 빈털터리였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바나나 잼으로 유명한 레스트는 단 한명의 영웅조차도 배치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토갈론 요새에도 다섯 명의 영웅이 추가로 배치되었다. 덕분에 토갈론 요새를 지키고 있는 컹컹이와 엘 아르윈이 한시름 놓았다는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그렇게 주점에서 영웅들을 고용한 후 디아린을 통해 얻은 아이템들로 영웅들의 승급을 반복하는 동안 해머스에서 특성화 개발이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해머스의 특성화는 성공적입니다, 멍멍. 영주님이 보내주신 수인 영지민들의 노동력 덕분에 특성화 행중에서도 가장 난관이었던 마정석 공장의 건설도 성공적으로 끝났으며 그로 인해 두 달 후 부터는 최상품의 마정석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멍멍. 더불어 최근에 배치된 엘프, 수인 동료들도 크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저 로우덴은 영주님의 충실한 개로서…….]

“좋았어.”

로우덴의 편지를 책상 위로 던지며 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앞으로 해머스는 순도 높은 마정석이 생산되는 광산 도시로 림드 산맥의 중추적인 생산도시 역할 및 마장기 전력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줄 예정이었다.

“해머스의 개발도 끝났으니 이제는 마장기의 기술 개발에 전념해도 되려나.”

하지만 그러기에는 특성화가 필요한 도시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식량 생산을 위해서는 나크 평원에 있는 도시의 특성화 개발을 시작해야 했고, 림드 산맥에서도 칼리드, 베코바, 에스트라다가 특성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 지역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붉은 핏빛의 대지와 토갈론의 요새도 신경을 써야 했다.

‘내실을 기해야 하나? 아니면 무리해서라도 마장기를 제작해야 될까?’

이런 고민에 대해서는 다른 동료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나마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했던 윤아가 있기는 했지만, 그녀는 별반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과 함께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리면서 생각에 잠겨 있던 호가 결정을 내린 듯 몸을 일으켰다.

“그래. 제작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장기 관련 기술에는 신경을 써야겠어.”

제작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개발할 필요는 없었다. 그만큼의 골드도 시간도 없었다.

다만, 마장기를 수리할 수 있는 기술은 지금 당장이라도 필요했다. 아직도 전쟁에서 손상된 마장기를 타임리스 상단에게 의뢰 대금을 주면서 수리를 부탁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마장기가 많지 않은 지금이야 크게 상관이 없다지만 훗날 큰 전쟁이 일어나거나 드워프와의 관계가 틀어질 때를 대비해야 했다. 언제나 전쟁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법이었다.

* * *

“설마 나크 평원의 작전이 실패할 줄이야.”

한 천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두 쌍의 날개를 지닌 천족이 말했다.

“림드 산맥을 지배하고 있던 녀석의 대처가 빨랐어. 신성력이 폭주한 괴물들이 수인 난민들을 따라 에스트라다로 몰려갔다고 하던데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대규모 군대가 에스트라다에 도착했다고 하더군.”

“이틀? 그렇게나 빨리? 그 녀석 설마 우리들의 계획을 눈치 챈 건가?”

한 천족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허!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들의 계획을 눈치 챘다고? 고작 소환자가?!”

“고작 소환자가 아니야. 그 녀석은 림드 산맥의 패자다.”

“웃기는 소리. 운 좋게 림드 산맥을 손에 넣은 애송이일 뿐이지.”

“애송이 치고는 지니고 있는 전력이 상당하다. 마족의 A등급 마장기인 데스 사이더와 수인족의 A등급 마장기 티거알리카가 그 녀석의 깃발을 단 채로 전장에 등장했다.”

원탁에 모여 있던 천족들이 두 쌍의 날개를 지닌 천족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주비어스를 관리하고 있는 모든 천족들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그 증거로 그는 다른 천족들과는 달리 한 쌍이 아닌 두 쌍의 날개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림드 산맥의 패자는 소환자이긴 해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녀석이었다. 주비어스의 모든 전력을 동원해서 꽝 하고 맞붙는다 하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나크 평원을 포기할 생각인가? 멍청한 원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쏟아 부은 신성력이 얼마나 되는 지 다들 잘 알 텐데?”

가장 처음 입을 열었던 천족이 무표정하게 말했고,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대로 천족들이 수인들에게 넘겨줬던 식량은 평범한 식량이 아니었다. 여신 라헬의 권능이 담긴 신성력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천족들은 엄청난 양의 리스와 식량 그리고 신성력을 소모했다.

“게다가 엔젤급 마장기도 잃었어. 오너였던 헬림도 생사가 불분명하지.”

“자신의 힘에 대해 욕심을 내던 소환자도 한 명 사라졌더군.”

“보나마나 죽었겠지.”

한 천족이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그의 말투가 천족들이 소환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소환자가 죽은 건 상관없어. 어차피 대체할 녀석들은 많으니까.”

“1회 차 녀석들 중에 가장 성장이 빠른 녀석이 어느 정도야? 소환자가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지 3 년이 넘은 것 같은데 아직 우리 쪽 소환자 중에 누군가가 어떤 활약을 보였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한 것 같은데?”

“당연하지. 1회 차 녀석들이 소벨리온 정도라는데, 활약은 무슨 활약. 게다가 마장기를 다룰 줄 모르는 녀석들 천지라는군.”

귀에 황금색의 귀걸이가 걸려 있는 천족이 코웃음을 쳤다.

“그에 비해 마족의 소환자였다가 자신의 힘으로 독립 국가를 세운 윤호라는 인물은 대단한 녀석이지.”

“그런 녀석이 우리 쪽에 있어야 했는데…….”

두 쌍의 날개를 지닌 천족이 입맛을 다셨다. 그것도 잠시 천족들은 나크 평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마장기를 포함해 많은 병력을 비롯해, 돈과 식량 그리고 신성력을 투자했다. 하지만 얻은 것이라고는 제로. 엄청난 손해를 보고야만 말았다.

“아무래도 나크 평원을 되찾아야겠지.”

“바다 쪽으로는 블루 스케일이 버티고 있어. 아무래도 호라는 녀석과 손을 잡은 모양이더군.”

“그렇다면 해상을 통해 군대를 상륙시키는 건 불가능하겠군.”

육상 병력은 형편없지만 해상 전력은 다른 세력과도 붙어볼 만할 정도의 강군을 보유하고 있는 블루 스케일이었다. 그런 블루 스케일을 뚫고 상륙작전을 감행한다? 애꿎은 병사들의 목숨을 날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여러 의견을 내뱉던 중 한 천족이 중얼거렸다.

“조인들을 이용해서 크게 흔드는 게 어떨까요?”

“그 녀석들을 이용해서? 식량이라도 주자는 건가?”

말을 내뱉은 천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쌍의 날개를 지닌 영웅, 이루살이 몸을 일으켰다.

“나쁘지 않은 방법인 거 같기는 하군. 낡고 지루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이제이만큼이나 피를 흘리지 않고 이득을 취하는 방법이 또 없기는 하지.”

“그러면 그렇게 하도록 하죠.”

“저도 찬성입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미개한 녀석들에게 여신 라헬님의 은총을 내려주도록 하죠.”

결정과 동시에 회의는 끝났다. 가장 먼저 이루살이 회의장을 떠났고, 다른 천족들 역시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삼삼오오 회의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후 천족의 사자가 조인족이 있는 페렛 습지대에 도착했다.

* * *

띵동.

-골든 크로우와의 연구 협약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마장기의 관절 기술의 연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창 디르시나의 영지 업무를 처리하던 도중 호의 눈앞에 하나의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골든 크로우와 연구 협약이 완료되며 마장기 관련 기술 중 하나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메시지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기술 조건을 만족하여 이제부터는 C등급 마장기의 수리가 가능해집니다. 상위 등급의 마장기를 수리하기 위해서는 마장기 관련 기술에 대한 노하우를 좀 더 쌓아야만 합니다.

“후. 잘됐군.”

호가 미소를 지었다. 비록 C등급에 불과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자력으로 마장기를 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마장기를 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타임리스 상단에게 값비싼 수리 대금을 지불할 필요도 없어졌다.

“둠디스트와 파인플의 방어에 대해서는 한시름 놓을 수 있겠군.”

호는 지도 창을 열어 자신의 세력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두 도시를 바라보았다.

한시진과 아쉬카로트가 영주로 있는 두 도시에는 수인족의 C등급 마장기인 카니앗산이 각각 네 기씩이 배치되어 있었다. 타레스를 통해 다원의 신전에서 노획한 카니앗산들이었다. 두 도시가 서로를 도와가며 방어 태세를 갖춘다면 조인과 천족의 도발쯤은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장기를 다룰 줄 아는 오너들 역시 충분했다. 호는 디르시나에서 등용한 영웅들 중 수인 영웅들만을 골라 가장 먼저 축복을 내렸고, 그들을 B등급으로 승급 시키자마자 양 도시로 배치시킨 것이다. 마장기를 다루는 기량에 대해서는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훈련에 필요한 마정석도 상당량 보냈으니 시진과 아쉬카로트가 알아서 잘 훈련시켜 줄 것 같았다.

‘이렇게 2 년? 아니 3 년 정도만 무난하게 흘러가면 참으로 좋을 텐데.’

그렇게 정보창을 통해 자신이 보유한 도시들의 정보 및 성장 속도를 살펴보던 호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앞으로의 청사진을 떠올렸다.

엘프, 마족, 수인 그리고 인간들의 틈바구니에서 호는 제법 크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 림드 산맥, 나크 평원, 붉은 핏빛의 대지, 토갈론의 요새 등 영토의 크기만 따진다면 인간들의 왕국 중 하나인 블루 스케일의 3 분지 1 이나 되는 커다란 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여기에 로우덴의 도움을 받아 도시 특성화의 개발 역시 성공적으로 끝내며 폭발적인 성장을 위한 기틀도 마련했다. 현재 림드 산맥의 디르시나, 해머스의 특성화가 끝난 상황이었고 베코바와 킬리드에서도 대대적인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블루스케일과 수인족 리셴르나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토리아 항구를 손에 넣은 블루 스케일은 여왕인 세이라 클리퍼드가 직접 선물과 친서를 보내왔을 정도였다. 리셴르나 역시 볼 붸르니체스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당한 전력을 갖춘 자신과는 적대시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대로 별 사건 없이 시간을 보낼수만 있다면 리그너스 대륙을 통일하는 데 있어 크게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마장기와 상급 병종의 개발. 그리고 세력을 대표할 수 있는 뛰어난 영웅들이 필요해. 적어도 SS등급 이상. 내 능력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고.”

그리고 호는 자신이 중얼거렸던 내용들을 조그마한 종이에 흘리듯 적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건…….’

호의 눈동자가 종이에 적힌 문장 중 하나로 향했다.

“일단 전직부터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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