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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04화 (204/522)

# 204

리그너스 대륙전기 204

주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기특하게도 시현의 주점은 디르시나의 영지민들 중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여기 맥주 좀 하나 가져다 줘!”

“딸기 파이 하나!”

“개 사료! 개 사료 없나?!”

“나는 유기농으로 달라냥!”

“…….”

그리고 바람이 머무는 공간에 들어선 호는 넓디넓은 주점의 홀을 가득 메운 다양한 종족들을 보며 몸을 멈칫했다. 디르시나의 명물이라고 소문이 났다기에 어느 정도 발전했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완전히 오산이었다.

“어서오?”

“간단한 걸로 하나 가져다 줘.”

자신을 알아보는 급사를 향해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 호는 아무데나 비어 있는 곳을 찾아 자리에 앉았다. 왁자지껄 하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영지민들과 주점을 찾은 방랑자들이 음식과 술을 즐기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호의 눈동자가 기대감에 물든 채 주위를 훑었다. 적어도 수 명 이상의 영웅들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과 함께 정보창을 열었다. 곧 검은색과 흰색의 털이 섞인 한 견인 영웅이 호의 레이더망에 걸렸다.

<영웅 정보(Status)>

1. 이름 : 골드 리뮤트

2. 성별 : 남(121)

3. 종족 : 견인족

4. 소속 : 없음

5. 레벨 : 82

6. 직업 : 아미 도그(D)

7. 세부능력

통솔 : 32 / 50(D)

무력 : 45 / 50(D)

지력 : 26 / 30(E)

정치 : 29 / 30(E)

매력 : 72 / 100(C)

‘아미 도그?’

해석하자면 군견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클래스만 믿고 전장에 내보내기엔 세부 능력치가 형편없었다. 다른 수치 중에서 매력 수치가 가장 높은 것을 생각하면 직업을 군견이 아닌 애완견으로 하는 게 더 맞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한 손이 아쉬운 지금 등용가치는 있어 보였다. 어차피 직업과 세부 수치는 승급으로 높이면 해결할 수 있었다.

‘일단 다른 영웅들도 살펴보자.’

어차피 고용할 생각이기는 했지만, 당장 행동으로 옮길 필요는 없었다. 이왕이면 곧바로 영지 업무에 투입시킬 수 있는 녀석이 필요했다. B등급의 영웅 정도면 딱 좋았다. 그런 호의 눈에 다른 수인과는 생김새부터 확연하게 차이를 보이는 호인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영웅 정보(Status)>

1. 이름 : 코숏 타이거

2. 성별 : 여(21)

3. 종족 : 호인족

4. 소속 : 없음

5. 레벨 : 12

6. 직업 : 로드 캣(E)

7. 세부능력

통솔 : 2 / 10(F)

무력 : 22 / 30(E)

지력 : 6 / 10(F)

정치 : 9 / 10(F)

매력 : 95 / 100(C)

“…….”

그리고 호인 영웅의 정보를 살펴 본 호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한 자릿수의 능력치였다. 직업의 이름과도 어울리는 능력이었다. 로드 캣. 의역하자면 길냥이라는 의미였다. 애석하게도 다른 영웅들 역시 고만고만한 능력에 불과했다. B등급은 그렇다치고 C등급 영웅조차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로우덴을 발견한 게 행운이자 천운이었지.”

한숨과 함께 호는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아무래도 평생의 운은 거기에 쓴 게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저런 영웅들이라도 등용은 해야만 했다. 영지의 내정을 맡길 수 있는 영웅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효율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아무리 능력치가 낮고 쓰레기 같은 영웅이라도 어느 정도의 도움은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주점을 찾은 호는 주점에 있는 영웅들을 등급에 관계없이 모조리 등용을 했다. 위로는 D 등급의 영웅도 있었고, 아래로는 F등급의 영웅들이었다. 덕분에 디르시나는 갑작스럽게 늘어난 영웅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너는 마법 연구, 그대는 북쪽의 인구 밀집지역의 건설을 맡아주고. 그리고 아! 병사들의 훈련…….”

그리고 호는 수많은 전략시뮬레이션을 섭렵했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능력치의 고하에 상관없이 영웅들의 특성에 맞게 개개인의 임무를 내려주었다.

“갑작스럽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늘었어요. 괜찮을까요?”

“왜?”

“혹시 저 중에 첩자라도 있을까 싶어서요.”

호의 반문에 아스트리드 벨이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걱정은 과한 것이 아니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호 역시 첩자들이 순찰대에 붙잡혔다는 메시지를 몇 번이나 확인했었기 때문이었다. 전부 폭발적으로 발전한 디르시나의 비밀을 캐기 위해 디르시나로 넘어오다가 붙잡힌 첩자들이었다.

“괜찮아. 다 방법이 있으니까.”

“방법이요?”

호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 벨의 머리를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밖에 쓸 수 없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었다. 바로 공략본의 정보창을 이용해 상대의 소속을 살피면 그만이었다.

그로 인해 호가 등용한 인물들은 걸릴 게 아무것도 없는 전부 소속이 없는 재야의 영웅들 뿐이었다. 림드 산맥의 패자이며 마족과 엘프의 도발을 막아낸 영웅이라는 소문 때문일까? 명성이 높아서인지 새롭게 등용된 영웅들의 충성도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디아린 상단은 언제쯤 디르시나에 도착하지?”

“사흘 전 토갈론 요새에 도착했다는 통신이 들어왔어요.”

“그러면…….”

디아린 상단이 디르시나에 도착하려면 최소한 보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한동안 바빠지겠네.”

호가 중얼거렸다. 그 때까지 최대한 많은 영웅들을 발견 및 등용하고 승급에 필요한 물품을 공략본으로 검색한 후 정리를 해야 했다.

“실크, 고급 가죽, 검은 놀의 가죽? 철광석, 포벨로스틸? 대체 이게 왜 필요한 거지? 어쨌든 이 물품들을 전부 다 구해야 되는 건가요?”

그리고 보름 뒤, 디르시나에 도착한 디아린 상단의 상단주 디아린은 호가 건네준 종이쪽지를 보고는 낮은 신음성을 내었다.

“가격은 상관없어. 가능할까?”

“불가능 하지는 않아요. 상단의 규모도 제법 커졌고, 다루는 품목도 늘었으니까요.”

디아린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메트로폴리탄 규모의 대도시인 디르시나에 거점을 둔 디아린 상단은 처음에는 마법석, 광석, 가축 등의 물품을 주요 품목으로 다루며 점점 세를 키워나가고 있던 상단이었다. 하지만 붉은 핏빛의 대지 및 토갈론 요새 공방전에서 호가 승승장구를 하면서 덩달아 디아린 상단의 규모 또한 급격하게 커져 버렸다.

디아린의 수완도 상당했지만, 운이 좋게도 림드 산맥에서는 다른 세력들이 꼭 필요로 하는 희귀한 특산품들이 주로 생산이 되었다. 특히나 마법석 혹은 마정석이라고 불리는 해머스의 특산품은 어느 영지를 가리지 않고 선호하는 특산품이었다. 리그너스 대륙의 가장 강력한 병기인 마장기를 제작 및 운용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S랭크의 보병인 아벨리우스, S랭크의 기병인 훗사르가 호위하는 디아린 상단을 건드릴 간 큰 몬스터들도 없었다. 덕분에 디아린 상단은 현재 승승장구를 거듭해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몇 가지 물품들은 구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특히 포벨로스틸과 같은 광석은……. 저도 정말 오랜만에 듣는 광석이네요. 그런데 대체 이게 왜 필요한 거예요?”

“……소환자의 축복을 내리기 위해서.”

디아린의 물음에 잠시 대답을 생각하던 호가 말을 하고는 머쓱하게 웃었다. 비밀로 할까도 싶었지만 브로리를 포함해 몇몇 영웅들도 알고 있는 내용인데다가 디아린 또한 믿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에 말을 꺼낸 것이다.

“네?”

그리고 영문을 알 수 없는 호의 말에 디아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소환자의 축복? 엘프의 마장기인 아보르 비테처럼 다른 사람들의 힘을 북돋아주거나 컨디션을 높여주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영웅들의 격을 끌어 올리는 거야.”

“영웅들의 격?”

“응. 정의하자면 강제적으로 영웅들을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해야 되나? 우리와 같은 소환자들이 전직을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거 혹시…….”

곰곰이 호의 말뜻을 생각하던 디아린이 헉 하고 숨을 삼켰다. 그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 설마! 설마 그거! 창조신 리그로우의 축복을 말하는 건 아니겠죠?!”

“창조신의 축복? 너무 나간 거 아니야?”

“아뇨! 강제적으로 영웅들의 격을 끌어올리는 것은 전설로만 내려오는 창조신의 축복밖에 없다고요!”

“브로리는 짐승신의 축복이라고 하던데?”

호의 대답을 무시한 채 버럭 소리를 지른 디아린은 그렇다면 엘 아르윈이 상급 바람 정령사가 된 것도?, 리젤 칼리노도 갑작스럽게 변화한 모습을 보였잖아? 성장을 한 게 분명해라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혼잣말로 계속 내뱉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심각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이 재료들은 호 님께서 창조신 리그로우의 축복…….”

“그런 거창한 말은 왠지 낯간지러우니까 소환자의 능력이라고 해줘.”

“……알았어요. 그렇다면 이 재료들은 호 님께서 소환자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매개체라는 거죠?”

“그래.”

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디아린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럽게 충격적인 소식을 알게 된 그녀의 마음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이 능력이 이 대륙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했다.

‘당장이라도 저 재료들을 구해야 돼.’

디아린의 눈동자가 종이쪽지로 향했다. 많은 리스를 지불하거나 다른 상단들에게 주도권을 내주는 한이 있어도 저 물품들은 전부 구해와야만 했다. 이는 비상사태였다.

* * *

디아린은 굉장히 유능한 상단주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의 이름을 딴 상단을 이렇게나 크게 성장시키지 못했을 터였다. 아무리 대도시인 디르시나에 거점을 두고 있었을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유능함을 보여주듯 디아린은 호가 말했던 물품들을 빠른 속도로 구해왔다. 개 중에는 디르시나의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물품들도 있었지만, 림드 산맥에서 멀리 떨어진 영토의 특산품들도 있었다.

“으허허허허허엉?!”

수인 중에서도 가장 전투적이라고 알려진 호인족 여인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앞에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정말 저걸로 끝이에요?”

“응? 응.”

그리고 디아린이 그런 호인 영웅을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에 반해 호는 굉장히 느긋한 모습이었다.

“이건 전부 당신 겁니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으헝!”

호의 말에 호인족 여성은 뛸 듯이 기뻐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아이템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 때였다. 갑작스럽게 생겨난 진녹색의 기운이 호인 영웅을 감싸기 시작했다.

“저게……?!”

그 모습을 보며 디아린이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행여나 자신이 소리를 내었다가 소환자의 축복을 방해할까봐 싶어서인지 극도로 행동을 조심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놀람은 숨길 수 없는 모양인지 그녀의 눈동자는 화등잔 만하게 커져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진녹색의 기운이 사라진 호인족 여성의 모습은 아까 전과는 확연하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온몸의 털이 좀 더 풍성해졌으며, 풍기는 기운 또한 날카로워져 있었다.

“내, 내가 어떻게 된 거지?!"”

갑작스럽게 변한 자신의 모습에 호인 여성 역시 어안이 벙벙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 호인 여성을 뒤로 한 채 호가 디아린을 향해 말했다.

“자마디르 날은 구해왔지?”

“아? 네.”

“그거 하고 +3으로 강화된 강철 일곱 개, 호인족의 보석 두 개, 육즙이 살아 있는 1++ 생고기…….”

잠시 후, 디아린 상단의 단원들이 호가 말한 아이템들을 들고 와 영주의 집무실에 내려놓았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이템도 그렇지 않은 아이템들도 있었지만 보편적으로는 잘 사용되지 않는 아이템들이었다. 집무실을 한 편을 가득 채운 아이템을 바라보던 호인 여성이 다시 한 번 환한 표정을 지었다. 전부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템들이었다.

“오늘 제 생일인가요?”

“생일과 버금가는 날이겠죠? 새롭게 태어난 날일테니까요.”

호가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 말에 호인 여성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화아아악!

다시 한 번 진녹색의 빛이 호인 여성에게 내려졌고, 그 모습을 보는 디아린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꿀꺽 침을 삼켰다. 그녀는 지금의 이 상황이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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