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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02화 (202/522)

# 202

리그너스 대륙전기 202

‘곤란할 뻔했는데…….’

자신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움직이자 헬림 또한 자신의 마장기인 엔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엘프족의 S랭크 병종인 아벨리우스와 수인족의 S랭크이 병종인 훗사르가 등장했다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된 첩보로 인해 마웅키에 주둔한 병사의 수가 형편없을 정도로 적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지금의 상황만 봐도 그랬다. 마웅키의 병사를 이끌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자신들이 움직였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분명 이 경계지역을 지키고 있었어야만 했다.

“적들의 수가 적은 게 분명해. 정말 다행이로군.”

헬림은 그렇게 곱씹었다. 그러고는 씨익 웃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조금이나마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으로써 그런 고민이 싸악 사라진 것이다.

첩보대로 마웅키에는 형편없는 수의 병사들밖에 없는 게 분명했다.

헬림이 이끄는 군대는 거침없이 마웅키로 향했다. 보통 거점지역에는 기본적으로 약간의 병사들을 배치시키곤 했지만 그녀는 그런 지시까지도 건너뛰었다.

이대로 단숨에 마웅키를 점령하고 이어서 토리아 항구와 레스트를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

“주비어스의 본대가 오기 전에 나크 평원을 점령한다!”

헬림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만 할 수 있으면 모든 공은 자신이 차지할 수 있었다.

천족들은 마웅키의 경계 지역을 통과한지 사흘 만에 마웅키 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웅키 성에 도착한 천족들은 곧바로 고지대에 자리를 잡았고, 트루사 편대가 마웅키 성 내부를 살피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트루사들을 격추하기 위해 마웅키의 성벽위로 에머넌스 아처들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잠시 소규모 교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전투는 마웅키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이 몇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꼴밖에 되지 않았다.

상성의 우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머넌스 아처 부대는 성벽위로 강하한 트루사 부대를 맞이해 전멸했기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수적 열세 때문이었다.

트루사 부대와 에머넌스 아처 부대의 전투에서 천족들이 알아낸 정보는 마웅키의 전력이 형편없는 수준이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몇몇 트루사들이 자신들이 마웅키를 다스리고 있는 영주로 보이는 한 명의 소환자를 발견했다고 알려왔다.

“소환자가 마웅키를 다스리고 있을 줄이야.”

헬림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신 라헬이 소환한 소환자는 각 종족의 큰 기대를 받고 이 대륙에 도착했다.

여신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혼란에 빠져 있는 이 리그너스 대륙을 통일할 수 있는 영웅들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대륙에 모습을 드러낸 소환자들은 그들의 기대에 한참이나 못 미칠 정도로 형편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소환자가 작은 성이지만 그래도 한 영지의 영주로 있었다.

“그러고 보니 림드 산맥의 패자 역시 소환자였지.”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림드 산맥의 패자로 알려져 있고, 현재 자신들과 대립하고 있는 호 역시 한때는 소환자였던 인물.

아무래도 그는 소환자를 중시하는 성향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 헬림을 자신의 부대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본격적인 공성전이 시작된 것이다. 시작은 역시나 천족이 자랑하는 비행병이었다.

“막아!”

“북서쪽! 지원을 요청한다!”

수천이나 되는 트루사들이 하늘을 날아 그대로 마웅키에 강하했다. 그들이 땅으로 강하하는 소리로 인해 마웅키의 성 여기저기서 쿠웅 하는 진동이 울려 퍼졌다. 에머넌스 아처들이 연신 화살을 날렸지만 어둠을 틈탄 기습인데다가 워낙 많은 숫자로 인해 막는 게 불가능했다.

“적들이 몰려온다!”

성벽 위에 있던 아벨리우스가 뒤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천족들은 비행병의 존재로 성 내부가 혼란에 빠져 있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엔젤 솔저와 윙 아처로 이루어진 대군이 성문을 부수기 위해 천천히 진군하기 시작했다. 가장 선두에는 천족들의 C등급 마장기 엔젤이 있었다.

“순식간에 점령해라!”

헬림은 마웅키에서 시간을 끌 생각이 전혀 없었다. 들은 바에 의하면 호의 병력은 주비어스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제법 대단한 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림드 산맥의 본대가 나크 평원으로 넘어오기 전에 나크 평원을 모조리 점령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이도 나크 평원에 주둔하고 있는 호의 병력은 질은 뛰어나도 수는 굉장히 적은 수준이라고 했다.

“천족들을 몰아내라!”

“세계수의 분노로 적들을 불태우리라!”

천족들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아벨리우스와 에머넌스 아처들도 반격에 들어갔다. 조용했던 새벽이 순식간에 비명으로 가득 찼다.

“멍멍. 드디어 시작이로군요.”

“그렇네요. 그리고 저들 중 대다수가 내일의 아침을 보지 못하겠죠?”

한시진의 말에 로우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눈동자를 깊게 빛내고 있는 그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천족들을 모조리 몰살시킬 생각이었다.

“그러면 로우덴. 병사들의 지휘를 부탁드릴게요.”

“직접 전투에 나설 생각이십니까? 멍멍?”

“물론이죠.”

고개를 끄덕이고는 데스 사이더가 숨겨진 쪽으로 달려가는 한시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로우덴은 차분하게 전장을 파악하게 시작했다. 그녀와 아쉬카로트라면 천족의 마장기는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처리할 게 분명했다.

“그러면 어디 시작해볼까? 멍?!”

여기저기서 보고들이 날아오고 있었기에 전장의 파악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마웅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처음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것은 자신 있게 마웅키에 강하를 한 트루사들이었다.

“이 녀석들! 끊임없이 나오고 있잖아?!”

“큭! 여기 지원을 부탁해!”

비행병인 트루사들이 자신들의 강점인 이동력을 포기하고 성 내로 강하를 한 이유는 상대의 병력이 굉장히 적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분명 자신들의 수가 더욱 많았는데, 어느새 그 상황이 역전 되어 있었다.

“설마. 하, 함정인가?!”

“도망쳐!”

상황을 알아챈 눈치 빠른 트루사들이 재빠르게 자신의 날개를 펼쳤다. 하지만 그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순간 수십 발의 화살이 그대로 트루사들의 몸에 틀어박혔다. 아벨리우스 또한 가만있지 않았다. 그렇게 위풍당당하게 마웅키에 강하했던 트루사들은 자신들의 장점을 살리지도 못한 채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성벽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는 에머넌스 아처와 아벨리우스 들로 인해 공략이 지지부진하고 있었다. S랭크 병종과 B랭크 병종의 방어에 C랭크에 불과한 엔젤 솔저와 윙 아처는 그들의 방어를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수적 우위에 있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보이는 능력의 차이가 상당했다.

게다가 아벨리우스는 단단한 방어를 자랑하는 보병이면서도 회복 마법까지 쓸 수 있었다. 결국 보다 못한 헬림이 직접 마장기를 이끌고 나섰다. 등 뒤에 조그마한 날개가 달린 엔젤급 마장기가 허공을 날아 성벽 앞까지 접근했다.

“엔젤급 마장기네요.”

“단번에 처리하도록 해요, 아쉬카로트.”

“좋아요. 그러면 제가 먼저 시작할게요. 용병으로 받은 것도 있는데 뭐라고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요?”

통신이 마무리되자 한시진은 한껏 숨을 들이마셨다.

“빨리 끝내고 자야겠네.”

몸이 살짝 으슬으슬한 게 새벽의 찬 공기가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성 밖에서 시작된 한 줄기의 빛이 엔젤급 마장기를 관통했다. 티거알리카의 포격이었다. 그것을 목격한 한시진은 곧바로 자신의 조종간을 당겼다.

쿠우웅!

엄폐물에 숨어 있던 검은색의 마장기가 마웅키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대한 낫을 들고 있는 무시무시한 외형은 수많은 적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마족의 A등급 마장기. 데스 사이더였다.

“저, 저건……?!”

“설마? 데스 사이더?!”

“데스 사이더다! 마족이 있다!”

“어째서 마족의 마장기가? 하,함정?!”

갑작스런 마장기의 등장에 천족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 마장기?!”

당황한 것은 헬림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런 공격에 마장기가 온통 경고등을 울리고 있던 찰나에 또 다른 마장기가 성 내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크기를 지닌 A등급의 마장기, 데스 사이더였다.

“이이잌!”

헬림은 조종석 무언가를 빠른 속도로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엔젤급 마장기가 접혀 있던 자신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빨리 자리에서 이탈하려는 의도였다.

‘교활한 녀석들!’

병사들의 말대로 이건 함정이었다. 적어도 마웅키는 두 대 이상의 마장기가 있는 게 분명했다. 빨리 이 사실을 주비어스에 있는 본대에게 알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한시진의 데스 사이더는 엔젤급 마장기가 날개를 펼치는 순간 순식간에 달려와 자신의 몸을 들이밀었다.

콰아앙!

금속의 거인들끼리 부딪치며 엄청난 소리를 만들어냈다.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것 같은 묵직한 충격에 한시진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상대에 비하면 피해라고 할 것도 없었다.

티거알리카의 마력포를 맞고도 서 있던 엔젤급 마장기는 데스 사이더와의 몸싸움을 이겨내지 못한 채 볼썽사납게 나자빠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마장기 뒤에 있던 날개 역시 지면과 부딪치며 박살이 나 있었다. A등급과 C등급의 차이. 그리고 데스 사이더와 엔젤급 마장기가 지닌 체급의 차이 때문이었다.

“제법 과격한 공격인데요?”

“천족의 마장기를 상대하는 건 처음이라서요. 날개가 보이기에 저도 모르게 달려들었네요.”

“천족의 마장기 중에는 비행 능력이 있는 것들이 있어요. 하지만 엔젤급 마장기는 아주 조금만 날아오를 수 있을 정도로 기초적인 비행 능력만 가지고 있어요. 그렇게까지 과격하게 달려들 필요는 없어요. 그냥 낙하지점에 마력포만 날려줘도 금방 제압할 수 있거든요.”

아쉬카로트의 말을 들으며 시진은 데스 사이더의 낫을 휘둘렀다. 무기까지 내동댕이치며 나자빠진 적을 제압하는 건 숙련된 오너인 그녀에게는 손쉬운 일이었다.

“헤, 헬림님이 당했다!”

“마장기가 두 기나 있어! 헛?! 적! 적이다!”

“모두 도망가! 이건 함정이야!”

엔젤급 마장기의 오너이자 자신들의 대장이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한 채 당해버렸다. 그와 함께 숨어 있는 아벨리우스들과 에머넌스 아처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천족들의 혼란은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캬아아앙!

이어서 포효와 함께 힘껏 뛰어오른 티거알리카가 지면에 요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내며 천족들을 쓸어버렸다.

호인족의 본능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아쉬카로트는 신나게 천족들을 물고 늘어졌다.

거리낄 것도 없었다. 천족들이 티거알리카를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한시진이 내린 명령 또한 천족부대의 몰살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연락을 받은 엘 아스린과 리아 캬베데는 각자의 훗사르들을 지휘하며 파인플과 둠디스트로 달리고 있었다.

“뭐지? 어디선 온 기병대지?”

“적이다!”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정체를 알 수 없는 군대에 성을 지키던 천족들이 비상종을 울렸다.

하지만 대다수의 병사가 헬림을 따라 마웅키로 원정을 떠난 상황이라 각각의 성에는 백여 명이 채 안 되는 병사들만이 주둔하고 있을 뿐이었다.

“단숨에 점령하자냥!”

아무리 훗사르가 공성전에 쓸모없는 기병 계통의 병종이라고는 해도 압도적인 병력의 차이 그리고 랭크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었다. 쉬지 않고 공세를 가하는 훗사르의 모습에 성을 지키고 있는 천족들의 눈에는 절망감이 어렸다.

“여신 라헬이여!”

“라헬이시여! 우리에게 신의 힘을 빌려 주소서!”

천족의 병사들은 연신 자신들의 여신 라헬을 찾았다.

하지만 성문이 깨져나가는 순간 훗사르의 날카로운 창이 그들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나마 리아 캬베데가 진군한 둠디스트는 조금이나마 버텼을 뿐, 엘프의 B등급 마장기 윈드라이더의 오너인 엘 아스린이 진군한 파인플은 불과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한 채 모든 천족들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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