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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98화 (198/522)

# 198

리그너스 대륙전기 198

“후우.”

깊게 숨을 들이쉬자 차가운 공기가 폐 안으로 들어가며 상쾌한 느낌을 만들어내었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원래 살고 있었던 현실에서는 황사 때문에 느낄 수 없었던 자연의 공기였다.

그렇게 몇 발자국을 옮겼을까?

멀리서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명소리도 함께였다. 큰 소음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반응을 할 정도의 소리였다.

이어서 몇몇 아벨리우스들이 경계 태세와 함께 무기를 빼드는 모습이 보였지만 곧 자세한 사항을 파악하고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비명소리의 주인공을 떠올리며 호는 눈을 감았다. 띵동. 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메시지가 김준수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신뢰할 수 없는 다른 세력의 소환자를 살려둘 수는 없었다. 더욱이 김준수는 언제든지 배신을 할 가능성이 있는 녀석이었다.

그 녀석이 떠들어댄 정보로 인해 호는 나크 평원에 주둔하고 있는 천족들의 정보는 물론이고 주비어스의 전력에 대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만약 반대가 경우가 되었을 경우 자신들의 정보가 상대방에게로 넘어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김준수가 죽어야 할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그 녀석은 자신의 소중한 동료들 역시 성욕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어째서 당연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조금 의문이었지만. 아무래도 천족들이 비위를 맞춰주다 보니 이 세계 전체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호가 자신의 막사로 이동하려는 찰나, 뒤에서 누군가가 후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호 님! 멍멍!”

특유의 거친 숨소리와 울음소리.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로우덴이었다.

“무슨 일이지? 로우덴?”

“원인들을 지휘하던 녀석이 누구인지 알아냈습니다. 멍멍.”

“호오? 그게 누구지?”

“타레스라는 녀석이더군요.”

“타레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호가 고개를 갸웃하자 로우덴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목소리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런 로우덴의 모습에 호는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 자신이 몰랐을 거라는 것을 예상하고 타레스라는 인물에 대해 정보를 조사한 모양이었다.

“타레스는 원인족의 부족장인 버독의 참모 역을 맡았던 녀석입니다. 저도 몇 번 본적은 있습니다.”

“호오…….”

“그렇게 뛰어난 인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멍청한 녀석도 아니죠.”

진실의 현자라는 S등급의 영웅인 로우덴이 멍청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제법 쓸 만한 영웅인 것 같았다. 어림잡아 B 혹은 A등급의 영웅 정도로 예상되는데 그 정도라면 충분히 영입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가뜩이나 호는 인재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타레스라는 녀석은 어디에 있지?”

“지금 이 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호 님이 자신들을 구해줬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하더군요.”

로우덴의 말대로 멀리서 훗사르 부대와 함께 보지 못했던 수인 병사들이 자신들의 막사로 오고 있는 게 호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정체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천족들에게 공격을 당하던 원인들이었다.

그렇게 자신들이 주둔한 막사에 도착한 원인족의 무리 중 한 명이 몇 기의 훗사르와 함께 호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른 원인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한 녀석이었다.

<영웅 정보(Status)>

1. 이름 : 타레스 탄트라만

2. 성별 : 남(121)

3. 종족 : 원인족

4. 소속 : 수인 왕국

5. 레벨 : 294

6. 직업 : 하이 폴리션(A)

7. 세부능력

통솔 : 212 / 300(A)

무력 : 36 / 50(D)

지력 : 289 / 300(A)

정치 : 469 / 500(S)

매력 : 187 / 200(B)

8. 특성 : 농지 확대, 충실한 조언, 전황 파악.

9. 스킬

<제 말씀을 들으셔야 합니다, 영주님> A랭크

원인들은 비열하고 간사하며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원인들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타레스 탄트라만은 불의를 싫어하며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모시는 인물이 상식적으로 불합리한 일을 진행할 경우 격한 반대를 나타내며 설득을 하려고 합니다.

-효과 : 자신이 하는 일에 타레스 탄트라만이 반대한다면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예상치 못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흠.’

책사라기보다는 내정형 영웅에 가까운 능력치를 보이는 녀석이었다. 전체적으로 나쁘지는 않았다. 특히나 469의 정치 능력은 낙후된 도시들을 발전시킬 때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스킬 또한 특이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외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 스킬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쓸 만은 해 보였다.

호에게 다가가는 타레스의 표정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영토인 나크 평원과 페렛 습지대가 완전히 파괴가 되었다. 그것도 순식간에 말이다.

‘우끼끼, 우끼. 빌어먹을, 버독 녀석…….’

버독이 천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을 때 타레스는 목숨을 잃을 번 하면서도 격렬하게 버독의 결정에 반대를 했었다. 천족이 호시탐탐 나크 평원을 노리고 있다는 낌새를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버독은 천족과 손을 잡았고, 천족의 군대가 나크 평원에 주둔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타레스는 몰래몰래 천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언제 천족이 자신들의 칼날을 원인들을 향해 들이밀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타, 타레스! 살려줘! 살려!”

“설마 저건 신성력 폭발? 우끼긱?!”

그러던 도중 버독의 몸이 하얗게 빛나는 것을 본 타레스는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나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버독에게서 일어난 일이 신성력 폭발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재앙이 시작되었다.

“캬아아아아!”

“괴, 괴물이다! 살려줘!”

말 그대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천족들이 나눠준 식량을 먹었던 수인들의 많은 수가 괴물로 변해버렸고, 여기저기서 학살이 벌어졌다. 원인족 군대가 괴물들을 막기 위해 나서긴 했지만, 지휘하는 영웅이 없어서일까?

갈팡질팡하다가 몬스터들에게 고립되어 죽는 상황이 반복해서 벌어졌다.

그리고 타레스는 그런 병사들을 한데 모아 길을 뚫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괴물 한 무리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적은 수의 병사들이 전부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패잔병들이 하나둘씩 모이며 어느 새 군대라 부를 수 있는 규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전한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페렛 습지대와 나크 평원 전체가 괴물들의 천국으로 변해 버렸다. 거기에 천족들의 군대 역시 호시탐탐 남은 수인 잔당을 노리고 있었다.

“토리아 항구로 가자! 우끽.”

그런 타레스가 향한 목적지는 토리아 항구였다. 사방이 포위되는 다른 영지들과는 달리 토리아 항구는 바다 쪽 만큼은 포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게다가 불리한 상황에 빠지더라도 배를 통해 도망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타레스가 토리아 항구로 도착하기 전 천족의 군대가 먼저 들이닥쳤다.

이동 속도의 차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족의 군대는 또 다시 나타난 군대로 인해 전멸했다.

‘윤호.’

바로 눈앞의 인간이 이끄는 군대였다. 윤호에 대해서는 타레스도 귀가 따갑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와 가장 많이 맞붙었던 상대가 바로 원인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비록 적이긴 하지만 타레스는 윤호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한 가지 사실만 봐도 그랬다. 마족의 소환자였지만 그는 마족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낸 입지적적인 인물이었다.

“타레스 탄트라만입니다. 우끼긱. 림드 산맥의 패자 윤호 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타레스의 인사는 자유분방한 원인족의 특성과는 다르게 굉장히 공손했다. 자신들의 목숨 줄을 붙잡고 있는 게 누구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었다.

“영광일 것까지야. 나한테 그렇게까지 좋은 감정은 들지 않을 텐데? 재앙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이용해 나크 평원으로 침공해 들어왔으니까.”

하지만 눈앞의 남자가 보인 반응은 제법 차가웠다. 반응이 좋을 리 없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마장기를 앞세워 전쟁을 벌였던 사이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러날 상황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바짝 엎드려야 했다.

“우끽. 하지만 재앙을 일으킨 것이 윤호 님은 아니시지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나크 평원을 원인족의 땅으로 둘 생각도 없고.”

윤호의 말에 타레스는 열심히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천족과의 전투에서 느끼기는 했지만 윤호가 있는 군대는 엄청난 정예들이었다.

다양한 종족의 마장기들이 한 데 모여 있었고, 수인의 S랭크 병종인 훗사르와 엘프가 자랑하는 아벨리우스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주둔하고 있었다.

‘저 정도의 병사들이라면…….’

괴물들로 인해 망가진 나크 평원 정도는 순식간에 점령할 수 있었다. 천족들 또한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타레스는 나크 평원에 주둔하고 있는 천족들의 군대가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호에게 상대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최강 로리인 브로리도 있었다.

그렇게 호의 전력을 파악하던 도중 타레스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단어가 빠르게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이상향 혹은 유토피아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알르드 라는 단어였다. 어차피 원인들은 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든 나크 평원에서 세력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수백 년간은 다른 종족의 핍박으로 시달릴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든 타레스가 다시 바짝 엎드렸다.

“호 님께서는 알르드를 만드신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위기에 빠진 저희 종족들을 구해주셨으면 합니다. 우끼긱.”

“음?”

갑작스런 타레스의 행동에 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원인족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곧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타레스의 말대로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괜찮은 선택으로 보였다. 나크 평원에 살아남은 원인들을 모조리 흡수할 수 있었으며, 덩달아 A등급 영웅 또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비열하고 신뢰할 수 없는 원인의 특성 때문일까? 분명 타레스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면서도 알았다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게다가…….

‘견원지간이라는 말은 이곳에서도 통용됐지.’

타레스를 바라보는 로우덴의 시선도 심상치 않았다. 그렇게 호가 어물쩍하는 모습에 불안함을 느낀 타레스가 땅바닥에 얼굴을 쳐 박은 채 소리치듯 말했다.

“우끽! 저희 원인들을 받아주신다면 호 님께 제가 알고 있는 우리 원인들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모든 것? 그게 뭐지? 멍멍?”

“그…….”

로우덴의 질문에 타레스가 머뭇거리면서 호의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버독이 제작한 마장기들입니다.”

타레스의 말에 호와 로우덴의 눈동자가 동시에 커졌다. 타레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단순히 마장기라는 단수의 용어가 아니었다. 마장기들이었다.

* * *

파리에서의 입지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던 탓인지 혹은 하루하루 달라지는 림드 산맥이 탐이 난 건지 원인족의 부족장인 버독은 어떻게든 림드 산맥을 다시 손에 넣으려고 한 모양이었다.

버독이 제작한 마장기들.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호는 타레스를 데리고 자신의 막사로 향했다.

아직 해가 지지는 않았지만 바깥의 공기는 싸늘했고, 이야기도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버독이 제작한 마장기가 총 열 여섯 기, 네 개 편대입니다. 우끼긱.”

타레스의 말에 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마장기들이라고 표현하기에 기껏 해봤자 서너 대 정도 되는 줄 알았는데. 자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숫자였다.

“제법 수가 많은 걸? 어디서 그런 돈이 났지?”

“사파리에서 지원받은 물건도 있고……. 우끼긱."”

“지원받은 물건도 있고?”

말을 마친 호는 옆에 놓인 따뜻한 물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한 모금 들이키자 적당히 데워진 물로 인해 속이 따뜻해졌다. 마른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도 막사의 온기를 높여 주고 있었다.

‘이건 무슨 로또 당첨 수준의 이벤트지?!’

열여섯 기의 마장기. 심장이 빠른 속도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게임이었다면 씨발 천족 만세! 라고 소리를 질렀으리라.

그리고 잠시 후, 말끝을 흐렸던 타레스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나크 평원은 개발만 잘하면 많은 군량을 생산해낼 수 있습니다. 그걸로 재미를 좀 봤습니다. 우끽.”

“무역을 했나 보군.”

“그렇습니다. 조인과 천족 그리고 토리아 항구를 이용해 멀리 떨어져 있는 인간들의 왕국까지 상단을 보냈었죠. 우끼긱.”

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 외로 원인들의 상단은 굉장히 멀리까지 원정을 다녔던 모양이었다. 확실히 항구가 있다는 건 상단 운영에 있어서 엄청난 메리트였다. 다만, 자신은 나크 평원을 점령해도 토리아 항구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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