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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97화 (197/522)

# 197

리그너스 대륙전기 197

김준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아니, 평범한 편은 아니었다.

가정불화로 인해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여러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사고를 치고 다니는 일명 양아치에 속하는 부류였기 때문이었다.

담배, 술, 오토바이, 삥 뜯기 등 안 해본 게 없었다. 꽤나 질 나쁘게 놀았는지 성폭행 경험도 있었다.

그는 가상현실게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법의 존재로 인해 여러 가지 제약이 있는 현실과는 달리 가상현실에서만큼은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던 탓이었다.

당연히 리그너스 대륙전기라 불리는 Korea사의 게임 역시 플레이 해 본 적이 있었다.

“여기는 리그너스 대륙전기 아니야?!”

그런 탓에 김준수는 어렵지 않게 이 세계에 적응할 수 있었다. 운도 좋았다. 수인이나 정령처럼 소환자를 도구 취급하는 종족이 아닌 천족으로 소속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다가 분명 라헬이 배신할 텐데?”

제대로 게임을 플레이해 본 적은 없지만 에디터를 통해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진 엔딩까지는 봤기에 김준수는 대략적으로나마 라헬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김준수의 그런 마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쩐다.’

“우리 천족을 도와주러 오신 영웅과 친해지고 싶어요.”

그런 김준수에게 한 천족 영웅이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바릴레인 이라는 이름의 F등급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미모는 현실 세계의 연예인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 이후, 김준수는 천족들 정확히 말하면 F등급 영웅인 바릴레인과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김준수의 짓궂은 스킨십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준수가 천족들의 수도인 프리테븐에서 바릴레인에게 푹 빠져 있을 때였다.

“어……?”

이제껏 자신과 어울렸던 바릴레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뛰어난 미녀가 김준수의 눈에 들어왔다. 보기만 해도 다리에 힘이 풀리고 심장이 멈출 정도였다. 그리고 김준수에게 안겨 있던 바릴레인이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분은 우리 천족들의 S등급 영웅이신 칸디르 님이세요.”

“칸디르……?”

칸디르를 보며 김준수의 눈이 빛났다. 저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자신의 옆에 있는 바릴레인도 분명 아름다웠지만 칸디르라는 여성에게 비교를 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이나 다름없었다.

그 이후 김준수는 이 세계에서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비록 제대로 클리어 한 경험은 없어도 대충 이 세계의 시스템이 자신이 알고 있는 리그너스 대륙전기라는 게임과 비슷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가상현실게임과는 달리 제약이 굉장히 많았지만 다행히 세부 능력을 올리는 법은 게임과 동일하거나 비슷했다.

* * *

“그래서 경험치를 획득하려고 이번 전쟁에?”

막사 안에서 호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감정은 경계였다.

“네? 네. 형도 알다시피 전쟁이 경험치를 가장 많이 주잖아요.”

같은 동향 사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반쯤 비어진 술의 힘일까? 어느새 김준수는 호를 향해 형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렇지. 퀘스트를 하는 것보다는 백배 낫지. 그런데 지휘하는 병력이 적지 않던데. 천족들은 쉽게 병사를 맡기는 편인가?”

“네? 아뇨. 프리테븐에서는 소환자가 별짓을 해도 군사를 지원해 주지 않아요. 그런데 주비어스에서 전쟁을 벌인다는 소문이 돌기에 자원했어요. 처음에는 조금 무섭긴 했는데, 그래도 몇 번 해보니까 어렵지 않더라고요. 어차피 게임과 크게 다를 바 없고.”

게임과 크게 다를 바 없다라……. 김준수의 말에 호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형은 몇 회 차 소환자세요? 마장기도 있고 엄청 강하신 거 같은데.”

“1회 차.”

“헐?”

굳이 숨길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호의 대답에 김준수가 눈을 크게 떴다.

“씨발, 개쩐다. 프리테븐에도 1회 차 소환자 분들이 제법 많은데. 다들 형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라고요! 형 정도면 몇 등급 이에요? A? S?”

“B등급이야. S등급은커녕 A등급으로 승급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잘 알 텐데.”

“뭐, 그렇긴 한데……. 우와. 좋겠다. 형 정도면 이 세계에서 완전 왕이네요. 왕.”

호의 말이 맞다며 김준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호는 또 하나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만 가지고 있는 특혜인 건가? 대체 뭐지?’

김준수는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유저였다. 게다가 공략본은 물론이고 에디터를 이용해서 게임을 즐겼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신윤아와 마찬가지로 에디터는커녕 공략본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김준수를 향해 호가 의아함을 연기하며 물었다.

“왕?”

“네.”

김준수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 정도의 실력이면 마음대로 애들 따먹을 수 있고, 죽이고 싶은 놈 죽일 수 있잖아요. 아까 보니까 여자들 되게 많던데. 다들 형 그거예요?”

“하하?”

어이가 없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물어볼 게 굉장히 많았다.

죽을 뻔한 상황에서 새로운 동아줄을 잡았다고 생각한 걸까?

김준수는 호가 물어보는 내용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대답을 했다. 충성심이라는 눈곱만치도 없는 행동이었지만 애당초 소환자에게 그런 것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내가 나크 평원을 정복하려고 하는데 영웅이 부족해. 성을 다스릴 수 있는 영웅 말이지.”

“헐. 저 내정 완전 쩔게 잘해요. 저 하나만 맡겨주세요. 네?”

“그래? 이거 기대 좀 되는데?”

물론, 호가 그에게 어느 정도의 기대감을 불어넣어준 것도 있었다.

정말로 자신이 영주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김준수는 흥분된 목소리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 김준수의 입을 통해 호는 나크 평원에 주둔하고 있는 천족들의 위치와 전력 그리고 주비어스의 전력에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다른 종족들의 소환자들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랐는지도 대략적으로나마 알아낼 수 있었다.

의외로 다른 유저들의 능력은 호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 수준이 크게 떨어졌다. 하기야 자신은 가상현실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폐인같이 플레이한 유저였다.

거기에 그 공략집이라는 말도 안 되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김준수에게서 대략적인 정보를 뽑아낸 호가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그를 처리하려고 할 때였다.

“저기 오빠. 저도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호와 김준수가 있던 천막으로 한 소녀가 조심스레 들어왔다. 신윤아였다.

“뭐?”

신윤아의 등장에 김준수가 눈을 굴렸다. 늘씬한 키에 곱슬기가 살짝 섞인 매력적인 여자였다.

막 무지하게 예쁘다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디 가서 빠지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는 리그너스 대륙의 존재가 아닌 소환자였다.

“맛있게 생겼네. 나중에 형한테 한 번 달라고 해야겠다.”

김준수가 중얼거렸다. 그 소리는 막사 안에 있던 신윤아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았지만, A등급 클래스를 지니며 오감이 월등하게 발달한 호의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다.

어째서일까? 잠시나마 마음속에 있던 답답함이 싸악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물어볼 게 뭔데?”

“제 친구에 대해 아나 싶어서요.”

“친구요? 누군데요? 저 프리테븐에서 꽤나 오래 생활한 터라 천족 소환자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고 있어요.”

“……김유진이라고 하는 앤데 혹시 아세요? 2회 차 소환자요.”

“김유진? 김유진?”

윤아의 말에 김준수가 김유진이라는 이름을 중얼거리며 기억을 떠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김준수가 다소 과하다싶을 정도의 움직임으로 손뼉을 짝 치더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 몽크 김유진! 알아요!”

김준수의 입에서 말이 나온 순간 신윤아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소중한 친구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모습이었다.

“몽크 김유진? 특이한 별명이네?”

몽크 김유진.

김준수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2회 차 소환자로 천족들이 기대주로 주시하는 여인이라고 했다. 몽크라는 별명답게 근접능력과 회복 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몽크라는 C등급 클래스를 보유하고 있기도 했다.

“솔직히 천족들에게 소속된 여자 소환자들은 다 좀 그렇거든요? 쉽게 따먹을 수 있다고 해야 되나? 그런 거 있잖아요. 어떤 위협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의지할 사람도 없고 하니까. 막 정신적으로 풀어지는 거. 근데 그 여자는 좀 달라요.”

“다르다?”

“네. 완전 철벽이에요. 철벽. 그래서 천족들이 더 주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가 보네.”

짧은 대화를 끝으로 고요한 침묵이 막사 안에 감돌았다. 그 어색한 분위기에 김준수가 눈앞에 보이는 술병을 들어 올렸다.

“형도 한잔 더 마실래요?”

“아, 아니. 형이 술이 그렇게 센 편은 아니라서. 밤도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 자야겠다.”

“아! 네. 저는 이거 다 먹고 잘게요.”

“그래그래. 알았다. 적적하면 술 상대 하나 넣어줄까?”

그냥 해본 말이었다. 하지만 김준수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네?! 좋죠! 형! 혹시 제가 선택할 수도 있어요?”

“선택? 왜? 누구 마음에 든 여자라도 있어?”

“네. 아까 그년요.”

“……그년?”

원래 있던 세계에서 멋모르고 날뛰던 양아치라 그런가? 거친 표현이 입에 붙은 놈이었다.

불편하게 들리는 호칭에 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김준수는 살짝 부어오른 자신의 가슴 언저리를 손으로 만져대며 말했다.

“저 발로 찬 년 있잖아요. 형이 허락해 준다면…….”

“아아.”

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김준수가 말하는 여자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알았어. 그러면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 그런 대답과 함께 호는 막사를 벗어났다. 호가 사라지자 조용했던 침묵이 막사 안을 맴돌았다.

“그러면 한잔 더 마실까?”

왠지 모를 싸늘한 느낌에 김준수는 술병을 들어 올렸다. 생각해보니 술병을 가져왔던 엘프도 맛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분명 천족과는 다른 느낌이 있을 터였다.

“흐흐흐. 어차피 형이 성 하나 맡겨준다고 했으니까.”

처음 본 사람을 믿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굉장히 친절한 형이었다.

계속해서 어색하게 웃는 게 호구 느낌도 조금 나고 말이다. 게다가 같은 대한민국의 사람이기도 했다. 자신을 중요하게 쓰지는 않더라도 나름대로 챙겨는 줄 것 같았다. 그렇게 김준수가 병째로 술병을 입에 가져다 댈 때였다.

자박거리는 소리를 통해 누군가가 빠른 속도로 막사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천이 확 젖혀지며 누군가가 뛰어 들어왔다. 한시진이었다.

“왔네. 썅년. 이리 와서 술 좀 따…….”

술기운 때문일까? 한시진을 발견한 김준수의 눈에 색욕이 깃들었다. 하지만 김준수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을 노려보는 한시진의 기세가 너무나도 매서웠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센 척……!”

그리고 김준수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한시진이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탁자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김준수를 몰아불인 한시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좀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애송아?”

그녀의 전신에서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줄기차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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