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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96화 (196/522)

# 196

리그너스 대륙전기 196

토리아 항구에서 천족이 나타났다는 정보를 들은 호는 진군 속도를 높였다.

천족이 토리아 항구를 차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그런 천족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는 수인들을 돕기 위한 목적이 컸다.

“전속력으로 이동한다!”

호의 명령에 따라 잠잠했던 마장기의 엔진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아직까지 잔존 병력이 남아 있을 줄이야.’

수인들을 덮친 기근은 굉장히 심각했다. 그렇기에 나크 평원과 페렛 습지대에서 살고 있던 주민들은 물론이고 병사들까지도 천족이 나눠준 식량을 먹고 괴물로 변해 버렸다. 원인족의 부족장인 버독이 행방불명된 것만 봐도 그랬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버독 역시 신성력이 폭발해 끔찍한 괴물이 되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윤아가 보고한 정보는 더욱 의외로 다가왔다. 분명 나크 평원과 페렛 습지대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일 터였다. 그런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좀 더 수월하게 나크 평원을 점령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나크 평원이 자신들의 것이라며 우리들 또한 천족처럼 공격을 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순순히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통신기를 통해 들려오는 브로리의 말에 호는 당연하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나크 평원을 차지하지 않을 거라면 병사를 일으키지도 않았다.

쿠웅! 쿵!

마장기가 속도를 낼 때 마다 마력의 바람이 흩날렸다.

드워르기니와 같은 차량형 마장기가 아니라 그런지 움직임이 거칠어질수록 마장기사에 가하는 부담 또한 높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숙련된 마장기사라는 것을 보여주듯 불평불만을 내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벨리우스와 훗사르 역시 마장기의 뒤를 바짝 따르고 있었다. S랭크의 병종답게 군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호가 토리아 항구에 도착할 때쯤 에머넌스 아처 부대는 본대와 반나절 정도로 거리가 벌어지고야 말았다.

‘어차피 상관은 없지.’

어디까지나 에머넌스 아처 부대의 목적은 견제였다. 최상위 병종이 아닌 이상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전투에서 궁병이 주역이 되는 일은 드물었다.

다크 엘프들이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천족의 군대는 마장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병력은 약 1만가량. 적지 않은 수이긴 했지만 에머넌스 아처 부대가 없어도 충분히 할 만했다.

“30 분 거리! 수인들의 막사를 발견했습니다!”

강행군 속에서도 정찰을 다녀온 훗사르들이 본진으로 복귀해 보고를 했다.

“수인들의 막사가? 병력 상황은?”

“정확히 파악 할 수 없었지만 이천 정도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훗사르의 대답에 호는 빠르게 정보창을 열었다.

훗사르들의 보고에 따라 전장 정보가 갱신이 되고 있었다. 그 증거로 수인 막사의 위치가 표기되고 있었다. 하지만 표기된 수인족의 막사는 붉게 점멸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브로리.”

“어엉?”

갑자기 불러서였을까? 통신구를 통해 브로리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목소리를 가다듬은 브로리가 말했다.

“무슨 일이지? 출진인가?”

“응. 여기서 삼십 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수인들이 천족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다고 하더군. 훗사르 부대를 이끌고 그들을 도와줬으면 좋겠어.”

“그 정도야. 알겠다.”

SS랭크의 영웅인 그녀의 실력이라면 문제없이 수인들을 도와 천족들을 몰아낼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명령을 내린 호는 마장기 편대의 지휘권까지도 그녀에게 내려줬다. 자넷과 골드 이글로 이루어진 C등급 마장기에 불과했지만, 천족들에게 마장기가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시무시한 전력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전장의 뒤로 돌아간다.”

“포위 공격을 할 생각이로군요?”

한시진이 말했다. 그녀의 데스 사이더가 자신의 무기인 검은 낫을 빙빙 돌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한 놈도 도망치게 할 생각이 없거든.”

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굳어진 목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나크 평원에 있는 천족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도 짐작할 수 없는데다가 언제 주비어스의 지원 병력이 도착할지 모르는 이상 상대의 병력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이십여 분 뒤,

“죽! 여! 주! 마!”

심연 속 악마의 목소리와도 같은 브로리의 괴성이 전장에 울려 퍼지고.

“날개 달린 것들은 모조리 박살내 버려! 우리는 수인족의 최정예! 훗사르다!”

“히이! 햐!”

S랭크의 수인족 기병대 훗사르들이 천족들을 향해 자신들의 무기를 겨누며 무서운 기세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장기?! 저건 웨어 타이거다!”

“대체 정체가 뭐지? 아군이 아직 살아 있던 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군대의 갑작스런 등장에 난전을 펼치고 있던 양 진영의 병사들이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빠르게 혼란이 수습된 수인과는 달리 천족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나 또 다른 수인 군대를 보며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전장을 향해 달려오던 웨어 타이거급 마장기가 하늘을 날아 전장으로 뛰어 내렸다.

쿠아아아앙!

순식간에 열댓 명의 천족 병사들이 마장기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을 정도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어서 훗사르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장소는 기병대가 제 활약을 펼치기 딱 좋은 평야지대였다.

순식간에 속도를 높인 훗사르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전장을 휘감았다. 가공할 만한 기세를 내뿜는 훗사르들의 돌격에 천족들은 막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돌격을 허용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끔찍했다.

“크학!”

“으아아악! 살려줘!”

“보병! 보병!”

여기저기서 천족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훗사르들이 자신의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하나 이상의 천족이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방금 전 까지 목숨을 걸며 전투를 치르고 있던 수인들은 입을 벌리며 신기해했다.

“어디에서 온 지원군이지?”

“저게 말로만 듣던 S랭크의 병종 훗사르인가?”

“소문대로군. 정말 무시무시한 위력이야. 어흥.”

훗사르는 C, D랭크에 불과한 자신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였다.

그래서일까? 훗사르를 바라보는 수인 병사들의 눈에 선망이 담기기 시작했다. 브로리의 골든 스테이트 역시 연신 전장을 휘돌며 천족들을 학살했다.

상대에게는 C등급 마장기조차 없는 만큼 거리낄 게 없었다.

“후퇴! 후퇴한다!”

이대로라면 자신들을 기다리는 미래가 전멸이라는 것을 안 모양인지 천족들이 몸을 돌려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날개를 펼쳐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병사들도 있었다. 그 때였다.

투학!

한 줄기의 빛이 전장을 가로질렀고, 날개를 이용해 하늘로 날아올랐던 천족 병사들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니, 모조리 먼지로 화했다는 표현이 옳았다. 그 증거로 검은색의 먼지가 허공에 흩날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갑작스런 공격에 훗사르들을 피해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했던 천족들이 행동을 멈추고는 몸을 움찔했다.

그러고는 빛이 날아온 쪽으로 다들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 한 마장기가 든 무기에서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엑스칼리버의 MLC였다.

“와! 제법 먼 거리였는데. 오빠, 전에도 물어봤지만 군사…….”

“학교 안 나왔거든? 나는 군대 경험은 평생 살면서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이 정도의 사격은 멀쩡하게 군대 다녀온 애들이면 다 하는 기본 소양이라고.”

정확히 말하면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했던 플레이어들의 소양이었지만.

어찌되었든 MLC의 등장에 날개를 이용해 도망을 치려던 천족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하늘로 날아오르면 MLC의 표적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모조리 사로잡는다.”

그런 천족들을 향해 호가 말했다. 도망쳐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다만, 살려서는 보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전투는 학살에 가까울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천족들의 군대는 대다수가 그들의 C랭크 보병인 엔젤 솔져와 그와 동일한 랭크의 궁병인 윙 아처로 구성되어 있었다.

천족이 자랑하는 비행병인 트루사도 포함되어 있긴 했다. B랭크 비행병으로 리그너스 대륙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천족의 기본 병사였다.

하지만 그런 트루사도 아벨리우스나 훗사르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상성으로 우위를 점한 것도 아닌데다가 B랭크와 S랭크는 그 차이가 상당히 컸다.

그렇게 전투를 벌이면서 호는 자신이 직접 천족들의 목숨을 빼앗기 보다는 아벨리우스 부대 쪽으로 도망치는 천족들을 몰아넣었다.

일종의 토끼몰이로 아벨리우스 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신윤아에게 경험치를 몰아주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신나게 신윤아에게 천족들을 몰아넣던 현준에게 한시진의 통신이 들어왔다.

“오빠. 천족들의 대장을 붙잡았어요.”

“그래? 용케 찾았네?”

“천족들과는 다른 외모를 하고 있어서 발견하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문제?”

한시진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당혹감에 호는 눈을 깜빡였다. 1회 차 소환자로 이 세계에서는 베테랑이나 다름없는 그녀가 압승을 거두고 있는 이 상황에서 당황을 느끼고 있는 사실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천족을 지휘하고 있던 인물이 인간인 것 같아요.”

“인간? 어?!”

잠시 인간이라는 단어를 읊조리던 호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치켜떴다. 천족을 지휘하는 인물이 인간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니, 가능하기는 했다. 바로 자신들과 같은 소환자가 천족을 지휘하면 되었다.

“아무래도 우리와 같은 소환자로 보여요.”

그런 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한시진이 말했다. 한시진의 손에 사로잡힌 인물은 십대의 소년이었다. 소년은 지금의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는지 연신 눈동자를 굴리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나이만큼이나 앳된 얼굴에는 무서움과 두려움, 당혹감 등 다양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럴 법도 했다. 호의 군대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그는 수인들을 전멸시키고 항구 토리아를 차지할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런 소년의 앞으로 병사들이 촤악 갈라지며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였다.

“이름?”

“……네?”

호의 말에 소년이 긴장한 얼굴로 호를 올려다볼 때였다. 뻐억 하는 소리와 함께 호의 옆에 서 있던 한시진이 소년을 강하게 발로 걷어찼다.

“크악! 씨발! 개새……!”

“이름 묻잖아.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 안 되지? 죽어나간 천족들처럼 너도 먼지로 만들어 줄까? 그리고 방금 전 욕, 참은 건지 어쩐 건지는 모르겠는데 다행인 줄 알아. 끝까지 내뱉었으면 이거 끝나고 넌 죽었어.”

예전 세계에서 군인이었기 때문일까?

살기가 담긴 한시진이 행동에 소년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호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름?”

“호…… 아니, 김준수입니다.”

“김준수? 대한민국 사람? 지금도 대통령은 신재현인가?”

“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소년의 대답에 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눈앞의 소년은 자신과 동일한 세계에서 소환되어 온 소년이었다. 가상현실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가 있던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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